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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20. 곁잠


어느 일이나 그렇겠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높은 집중력을 가지고 계속해서 선을 이어가야만 한다. 색을 칠하는 일은 재능보다는 기술의 영역이다. 수없이 공부한 사람만이 깔끔하고 완벽한 색을 칠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여기서 포기하게 되는 이유다. 다른 세세한 부분도 그림 그리는 데에 필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수많은 노력으로 얻은 기술을 갈고 닦는 것이다. 매일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이상, 이러한 작업은 그다지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만화가와 일러스트레이터의 차이라면 그런 차이일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는 계속해서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 물론 두 가지 다 하는 사람도 많지만, 전업이 만화가냐 일러스트레이터냐에 따라서 그림 그리는 방향성이 확실히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고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오빠! 이것 좀 봐봐!” 조용한 곳에서... “여기 좀 보라고 조옴!” 집중해야만... “오빠악!” 하는데 동생이 나를 가만두지를 않는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너는?” 내가 화가 나 소리치자 동생도 지지 않는다. “내가 할 말이야. 왜 안쳐오고 지랄이야!” “일하는 중이니까 그러지! 그런 건 알아서 좀 해!” “나도 이제 방송해야 하니까 그러지! 와봐!” 나는 하는 수 없이 나와서 예전의 내 침실이었던 지금은 여동생의 방인 곳으로 갔다. 그제야 여동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과는 전혀 딴판인 얼굴. 밖은 붉은색, 안은 검은색인 살짝 긴 가발을 쓰고 있는 여동생은 안 경대신 동공이 붉게 확장된 서클렌즈를 끼고 있었고, 가슴이 유독 강조되는 짧은 드레스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여동생의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대충 예상이 가는 부분이었다. “뭘 그렇게 자꾸 봐? 징그럽게.” “신기해서 그런다 왜.” “하여튼 여기 좀 봐봐.” 여동생이 가리키는 곳에는 내가 이전에 옮겨둔 상자들이 있었다. “이것 좀 치워줘. 나 방송하는데 저런 거 보이면 안 돼.” 그제야 보이는 것은 동생의 촬영 장비. 어느새 전용 책상까지 가지고 온 여동생은 반사거울이라든지 마이크라든지 카메라라든지 대부분의 장비를 고급품으로 세팅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가 비치는 곳은 확실히 내 짐이 있는 곳이다. “책장까지는 괜찮은데 저런 허접구레한 것은 빨리 빼줬으면 좋겠어.” “이것까지 거실에 두라고?” “그럼 이 방에는 자리가 없는데 어떻게 해!” 참자... 나는 여동생의 고집에 하는 수 없이 상자들 든다. 여동생은 이참에 맘에 안 드는 것을 몇 개 더 들어서 내가 든 짐 위로 올려놓는다. 툭, 툭 참자... 어차피 6개월만 있으면, 아니 그전에라도 빠르게 나갈 여동생이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 그렇게 나는 점차 분노를 쌓는다. 짐을 들고 거실로 돌아가는 중에 누군가 내 컴퓨터 앞에 있는 것이 보였다. “민아야?” 내 컴퓨터를 향해 힐끗 힐끔 눈길을 주는 그녀는 토끼처럼 깜짝 놀라더니 안 보던 척 몸을 수그린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아... 아... 아니에요!” 그런 말을 하고 도망가 예전의 내 작업실이었던 방으로 도망가는 그녀. 그렇게 나는 점점 의심을 쌓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지...’ 나는 내 침대 아래쪽에 상자를 겨우겨우 집어넣어 놓고 한숨을 푹 쉰다. 뭔가 내 집을 뺏긴 느낌이 들어서 갑갑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어른이다. 저런 어린애들의 투정이나 장난은 유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 나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다시 의자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 . . 다시 말하지만, 내 작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존경받는 일이라면 또 그건 아니다. 나만큼 그리는 사람은 전 세계에 넘치고 넘칠뿐더러, 개성과 재능이 넘치는 엘리트 손재주꾼들도금손들도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인데, 반대로 내가 그리는 것은... 홀딱 벗은 채로 야한 포즈를 하는 여자 일러스트. 여동생과 수상한 관계를 맺는 짦은 만화. 가슴큰 동거녀와 매일 밤 진한 섹스를 하는 연재만화...등등이다. 이런 것을 그리지 않으면 후원금이 들어오지 않는 어중간한 그림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도 좀 더 아름답거나 귀여운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벌고 싶은데... 그러면 생각보다 표지의뢰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후... 그냥 취직해야하나...?” 너무 오랜만의 동생의 지랄을 받아주다보니 현타가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요즘 업계가 어떤가... 신입은 월 200만원도 안 주는 곳이 싸이고 쌓였다. 게다가 정규직은 겸업 제한 등 여러 문제가 많으니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로 있는 것이다. 그때 다시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쪼르르르르 누군가 몸을 낮추고 조심스레 걸어오는 느낌. 이 인기척은... 역시 “저기요오...” 민아였다. “자..작가님... 그림 그리는 거... 봐도 되..되나요?” 심하게 긴장했는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덜덜 떨면서 물어보는 민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누가 보면 집중이 잘 안돼서요...” 그러자 그녀가 울먹이며 사정한다. “제발요... 진짜 조용히 있을게요... 한 번만 한번만요...” 아... 제발... 나는 저런 애원에 너무 약하단 말이야. 나는 고개를 저으려다가도 너무 서럽게 울먹거리는 그녀의 눈동자에 그만 허락해주고 말았다. “뭐... 그럼 좀 떨어져 구경하세요. 시끄럽게 하지 마시고요.” “감사합니다! 오리꿀작가님!” 그제야 기쁘게 내 뒤로 뛰어드는 그녀. 아까까지 벌벌 떠는 여자아이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놀이공원에 가기로 약속한 초딩처럼 방방 뛰며 내 침대로 간다. 잠깐 내 침대로? “어...? 거긴...” “아... 여기 있으면 안 돼요? 그럼 바닥에 앉을까요?” “아, 아니 괜찮아요. 그냥 침대에 앉아있어요.” 그러자 만 아는민아는 다소곳이 얌전하게 내 침대 위로 올라가 나를 지켜본다. 지긋이- ‘역시 신경 쓰여...’ 누군가 내 그림을 보는 것도 신경 쓰이는데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는 것은 더욱더 신경 쓰이는 법이다. 왠지 실수하면 혼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팬. 수수하게 내 그림이 좋아서 구경하는 것일 테지. 하지만... 지금 그리는 것은 방금에도 말했던 ’가슴 큰 동거녀와 질펀하게 섹스하는 만화’의 최신버전이다. 그렇다. 동거녀를 자는 사이에 덮친 주인공을 동거녀가 좋아해 둘이 메일같이 섹스하는 내용...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저 그 만화 엄청나게 좋아해요! 이거 최신화인 거죠?” “깜짝이야!” 정말 깜짝 놀랐다. 나레이션 중에 말 걸지 말라고 민아야... “죄..죄송해요. 그림 그리는데 방해됬죠..?” “다음엔 조용히 말해줄래?” “네... 알겠습니다.” 흠흠... 여하튼 이 내용은 내 옛날 이야기를 이래저래 각색해서 만화로 그린 것이다. 들키지 않을정도로 각색했으니 인제 와서 ’그녀‘가 나에게 뭐라고 할 일은 없을것이라 생각되지만... 깊은 마음 한곳에는 어쩌면 그녀도 알고 오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정말 감동적인 스토리... 너무 로맨틱해서 좋았어요.” 이래저래 갑자기 말이 많아지신 민아양은 역시 어딘가 이상하다. 떡신밖에 없는 만화가 로맨틱? “제가 처음 작가님 본 그림이 이 만화였어요. 너무 좋아서 반해버릴 정도로... 아, 그림이요! 그림...” “...그렇구나.” 대단히 내 팬인 듯 싶었다. 어지간하면 이 만화. 처음부터 보기가 쉽지가 않다. 팬박스 단골이 아니면 초기편은 보기 힘드니까. 잘해줘야겠다. 없는 돈을 나에게 투자하고 있으셨으니... 이러저러한 일이 있는 다음에는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쓱쓱- 사각사각- 조용한 거실에서 타블렛소리만이 들리는 이순간이 가장 집중이 잘 된다. “꺄하하하핳!” 가끔씩 침실에서 들리는 여동생의 수상한 비명소리만 아니면 다 좋을텐데 말이다. 쓰윽 쓱쓱- ’휴우-‘ 드디어 겨우 만화 한편의 드로잉을 다 마치게된나는 고개를 돌려본다. 응? “코오...” 민아가 조용하다 싶더니만 그녀는 숨을 죽인채 자고 있었다. “에휴...” 나는 조용히 다가가 이불을 그녀에게 덮는다. 으음... 금방 뒤척이는 그녀. 창백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쁜 얼굴이 숨겨져있는 민아의 얼굴이 머리카락 사이에서 드러나고, 긴 검정 곱슬머리가 침대 밑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그녀의 앵두빛 입술이 빛에 반짝인다.... 침범벅인 탓에 그러했다. 두근... 두근! 갑자기 두근거리는 내 심장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들려 놀라버렸다. '뭐야? 또?' 저런 어린애를... 내가 어떻게... 생각과는 달리 척수반사대신 자지반사라도 하는지 저절로 내밀어지는 손. 나는 손을 벌벌 떨면서도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부드럽고,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 그녀는 귀엽게 미소 짓는 것 같았고. 나는 천천히 손을 내려 그녀의 촉촉한 입술에 손을 댄다. 말랑- 나는 천천히 그녀의 입술 감촉을 즐긴다. '그래, 이 정도까지라면...' 말랑말랑 아직은 세이프다. “후우-” 나는 천천히 손을 떼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단단하게 세워진 의지. '이제 그만해야지.' 그런 내가 돌아나오려는 순간. “으응~” 그녀가 신음하며 몸을 뒤척인다. 스륵- 살짝 신음하며 이불을 걷어차는 그녀 잠버릇이 험한 것은 별개로... 출렁- 얇은 티셔츠로는 절대 숨겨지지 않는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튀어나오고 살짝 음영이 보이는 젖꼭지가 발딱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노브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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