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18. 집나간 여대생
춥다-
몸도 마음도 춥다.
올 해 가을도 있기나 했던가? 단풍잎이 떨어지던것도 잠시. 갑작스러운 추위와 함께 겨울이 다가왔다.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셔츠 사이로 스며들어가면, 모두가 약속한 듯 패딩으로 온 몸을 꽁꽁 싸매고 나온다.
그럼에도 추위는 막을 수 없어서 각자 한손에 핫팩을 감싸쥐고, 방한 내복까지 바지 아래 갖춰입게 되는 한국의 겨울.
그런 겨울에 그나마 나는 방안에서 일하고 있다는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엣취!”
그래도 춥다!
추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있지만 방안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한기는 막을 수 없듯이
내 인생에 인연도 어느새 끊겨서 SNS로만 소통하는 삶이 되어버린 나에게 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철저하게 느껴졌다.
징글벨~ 징글벨~
밖에서 들려오는 온갖 가게들의 크리스마스 노래들과
이 추운 날에도 팔짱을 끼면서 하하호호 웃으며 길거리를 걷는 커플들의 소리들이
고독한 자취방 안에서도 들려온다.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한달도 채 남지 않았기 때문인가?
인생이란 뭔가- 싶으면서도 이런 인생을 선택한 것은 나라는 생각에 시린 마음을 겨우 억누른 채
나는 다시 타블렛 펜을 잡고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디 소설 공모전이라도 연다고, 여기저기서 소설 표지 일러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맞다. 이말을 안했었다.
나는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것도 프리랜서로.
프리랜서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엔 멋있고 여유로와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인기가 그렇게 많은 작가가 아니면 수익도 그렇게 많지 않기에.
따라서 계속해서 의뢰를 받지 않으면 당장에 집세도 내지 못하는 운명인 것이 중견 일러스트레이터의 삶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요즘 팬박스라는 것이 생겨서 지속적인 수익이 들어오는 창구가 생겼다는 점인데.
이 사람들, 야한 그림이라도 그리지 않으면 후원을 안해준다.
하는 수없이 나는 어렴풋한 그 시절 기억을 살려가며 야한 그림을 그린다.
그려서, 후원자 수를 늘려간다. 어느덧 달에 50만원은 후원으로 채워지는 나날들.
고정 팬도 생겨서 어느정도 쉬어도 굶어죽지는 않는 상태까지 왔다.
문제는 외주 의뢰였다. 주 수입원이 외주이기 때문에 수시로 일을 찾거나 누군가 찾아오지 않으면 의뢰를 받을 수 없다.
다행히도 이번 공모전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야한 표지를 그려달라고 의뢰를 해왔고, 꽤나 목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조금 쉴 수 있겠지.
그러려면 지금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한다. 쉬지않고, 계속해서.
도태되면 팬들도 떨어지고 결국에는 굶어 죽게 되는 것이니까.
그렇게 달리는 날들 중에 가끔 꼴리는 날이되면 ‘그때의 그 황금기들’을 상상하거나 영상을 보면서 자위한다.
그런 외로운 삶이 지금의 삶인 것이다.
“엣-취!”
삶을 돌아보다보니 다시 한 번 추워졌다.
크흥-
코를 풀고, 고개를 홰홰 흔든다.
아자, 아자, 정신차리자!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겨우 마음먹고 레이어를 한 장 늘렸을 때,
띵동-
갑작스레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와 함께
내 운명이 다시 한번 뒤집히기 시작했다.
띵동-
***
누...누구지?
지금에 와서 나에게 올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봐야 근처에 살고 있다는 여동생정도. 하지만 그 녀석도 이유없이 나와 만날 리가 없었다.
배달도 시킨적도 없었고, 택배가 올 예정도 아니었다.
띵동-
그래서 나는 낯선 사람의 방문을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종교권유인가? 방문판매인가?
아니면 내 그림에 원한을 품은 클라이언트가 갑작스럽게 습격하러 온걸수도 있다.
그런 망상에 빠진채, 나는 천천히 문을 연다.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는.
“푸헹- 크흥!”
누군가의 콧물 삼키는 소리.
그리고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아주 아주 긴 장발의 곱슬머리에 새하얀 피부.
이런 추운날에 헐렁한 검정색 후드 하나만 입고 나타난 여자아이가 양 볼이 발개진 채로 콧물을 흘리면서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거대한 짐들과 함께.
어... 음...
“누구세요?”
예상하지 못한 사람에 당황한 나는 다짜고짜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쭈뼛거리며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저기... ...님 맞나요? 저,,, 별꽃...K인데요...”
“네? 작아서 잘 안들려요.”
그녀의 목소리보다 밖의 징그러운 징글벨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그녀는 주먹을 꽈악 쥐더니 고개를 들고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오리꿀 작가님 맞나요?!”
얼마나 햇빛을 못봤는지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와 깊은 다크서클, 그만큼 기다란 속눈썹. 그리고 그 아래 앵두색의 빨간 입술에서 상상도 못한 이름이 나왔다.
쾅!
나는 본능적으로 문을 닫고 심호흡을 했다.
“설마... 진짜?”
오리꿀. 내 닉네임. 일러스트레이터로써 나는 오리꿀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역시 저번에 조금 대충 그렸다고 클라이언트가 칼을 들고 직접 찾아온건가?
띵동- 띵동-
내가 문을 닫자마자 울리는 벨이 끊이지 않고 울린다.
뭐야, 뭐야 무섭잖아...!
똑똑똑- 똑똑똑-
이번엔 끊이지 않는 노크소리. 점점 소름 돋는다.
아니 잠깐만. 별꽃...K? 별꽃K...
그건... 아마도...
내 팬박스에 있던 회원중 하나?
나는 현관문에 달린 안전체인을 걸고 조심스럽게 다시 문을 열었다.
끼익-
쑥-
갑자기 들어오는 그녀의 발.
“악! 깜짝이야!”
“저기 오리꿀 작가님 맞죠? 작가님! 에츗!”
“쉿! 조용히 하세요! 안닫을 테니까 발 좀 빼시고요...”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얼어 죽겠어요...”
“아니 누구신데요?”
“흑... 저 모르시나요? 별꽃K요. 글마다 댓글도 달아줬잖아요...”
“아 그건 알겠는데... 왜...?”
“일단 안에 들어가서... 제발...”
끝까지 발을 빼지 않고 있는 그녀가 사정사정하는 바람에 나는 겨우 문을 열어줄 수 밖에 없었다.
드륵드륵...
쿵-
거대한 짐과 캐리어까지 가지고 들어오는 그녀.
다소곳이 거실에 있는 식탁 앞에 앉아서 내가 내오는 차를 마신다.
“휴우-”
나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녀 맞은 편에 앉아서 그녀의 말을 대충 정리해본다.
“그러니까 당신은... 제 팬박스 후원자시고요.”
“네.”
“그건 알겠는데 무슨일로 오신거죠?”
“푸헹- 크흥! 일단은요... 제가 아는사람이 없어서...”
“네?”
“제가 아싸라 사람을 잘 못만나서요... 근데 갑자기 생각난게 작가님이고...”
“뭔가 앞에 빠졌지 않았나요?”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그녀는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졌있는것 같았다.
“아 맞다. 저 가출했어요.”
나는 그말을 듣고 스마트폰을 켜서 바로 112에...
“아니 잠깐만요. 저 성인이에요! 이제 성인에요. 스무살. 스무살!”
그녀가 급하게 스마트폰을 붙잡는 바람에 신고를 하지 못하겐 나는 의심쩍은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무슨 가출?”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집에서 단속이 심해서요. 수업빼고는 나가지도 못하게 하구... 너무 힘들어서요...”
그렇게 그녀는 하소연을 하게 되는데.
그녀 말로는 그녀는 선천적 아싸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단속이 심해서 어쩔 수 없이 친구를 못만나며 살고 인터넷세상에서나 살게 되고 마는데,
대학교에 가게 되었으니 이제는 탈출이다 하던 참에 부모님의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대학교가 우리집에서 가까우니까 통학하렴.”
안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하면서 통제하는 탓에 대학교 오티도 엠티도 나가지 못하던 그녀는 더 이상 못참고 이번 겨울, 가출을 결심한다.
지방에서부터 서울까지 기차로 세시간거리.
그녀는 그나마 없는돈 있는 돈을 털어서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다.
나 하나만을 보고...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어이가없었다.
“그건 정말로 경찰을 불러야할 사항 아닌가요?”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어서...”
이건 아동학대...아니 성인학대다. 어떻게 친구도 못만나게 할 수가 있나?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격하게 공감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려고요?”
내가 묻자 별꽃K는 쭈뼛거리며 고개를 떨군채로 말한다.
“오리꿀...작가님... 저....”
그리고 천천히 작은 입술에서 오물오물 나오는 말도 안되는 소리.
“작가님 집에서 살고 싶어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제... 집에서요?”
‘아무리 성인이라도 이런 어린애를 나같은 늙은이 집에서 살게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범죄적이지 않나? 아니 그녀를 지금 가두고 있는 그녀의 부모님도 거의 범죄자나 마찬가지니... 피장파장인가?’
내 머릿속 이상한 논리들이 서로 섞에며 혼잡하게 흘러간다.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것은 내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청춘의 발악일지도 모른다.
“제발. 저 조용히 사는거 잘하고요. 방없어도 잘 살수 있어요. 원하시면 돈도 벌 수 있고요... 아니면 ㅁ...”
나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그녀가 하기 전에 재빨리 입을 막는다. 내 손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에 닿아 순간 쭈뼛 소름이 돋는다.
“아니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요.”
부드럽다.
“그럼 일단 집을 구하기 전까지 만이라도 여기 지내봐요.”
더 만지고 싶다.
하지만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에...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고. 다만 살짝 미소지어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제 어른이었다.
부끄럽지 않아야할. 어른이니까.
“저... 저는...!”
“네. 말하세요.”
“제 이름은... 유민아라고해요...”
유민아. 그녀다운 귀여운 이름이었다.
“그래요 제가 방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작업실이고 하나는 침실이니까...”
“그럼 침실에서 둘이?”
“아뇨. 작업실에 토퍼 하나 사서 둘테니까 거기서 주무세요. 당근마켓같은 곳에서 하나 정돈 팔테니까...”
“네...”
나는 그렇게 그녀가 살 방안을 만들어주었다. 오늘은 내 침대에서 자기로 했고, 내일부터 토퍼가 오면 거기에서 자기로.
그렇게 결정하자 민아는 한숨을 내쉬며 기뻐했다.
“정말 감사해요...! 진짜 오리꿀 작가님 아니었으면 어떻게 해야 했을지...”
“알았으니까. 오늘은 이제 그만 쉬세요.”
나도 아직 해야할일이 많이 남았다. 그림도 그려야했고... 그녀가 마음편히 있으려면 작업실을 침실로 옮겨야겠지...
그렇게 밤이 다가온다.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었지만 어찌저찌 일은 간신히 다 끝마쳐놓은 상태.
나는 여려가지 생각을 하며 거실 소파에 눕는다.
오늘만은 여기가 내 침대가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눈을 감는다.
.
.
.
그런데, 내 집은 어떻게 알고 온거지?
문득 잠결에 든 생각은 얼마안가 찾아온 깊은 피곤감에 묻혀 잊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