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단편야설

한 편 완결 소설

성인소설 목록

최신 단편

야설 읽기
밍키넷 소설
토스트 메세지 나오는곳
텔레그램 공식채널

밍키넷 공식보증업체

45화 마왕을 만나러!


“잘 모르겠어...” 여전히 눅눅한 지하의 차가운 쇠창살.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꾸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전. 그곳은 용사들이 소환당하고 제일 먼저 그들의 사명을 알려 준 신성한 장소였다. 용사의 성검, 드래곤의 지팡이, 세계수의 활, 성녀의 목걸이까지. 모두 다 신전에서 지급해 준 무구였다. [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신이 내려주신 용사들이여. 부디 이 무구를 받고 사악하고 간악한 무리인 마족을 모두 섬멸해 주십시오!] “그러고 보니 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을까?” 처음 이세계에 오고 스테이터스가 보이고 직업을 확인한 후 우리는 마치 게임 캐릭터가 직업 전용 아이템을 얻은 듯 자연스레 그 무구들을 받아들였다. 왜 그 무구를 주는지, 이전에 누가 사용했는지에 대한 어떤 의문도 갖지 않은 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구 뿐 아니라 그들의 존재 자체에도 크게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자 내 머릿속은 한껏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듯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가 이 세계에 소환된 이유가 뭐지? 그들이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유는 뭐고? 베르만의 말대로라면 설마 이전의 용사도 우리처럼... 모르겠어. 아니, 잠깐. 그러면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제는 뭐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사실 그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이 세계의 인간들에게 내려진 절대적인 상식. 마족은 비열하고 잔인하며 멸해야 할 존재라는 그 명제를 그냥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내가 본. 베르만의 고통과 슬픔은 진짜였다. 과연 마족은 나쁘기만 한 걸까? 인간이 순전히 정의의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럼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땅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부정적인 생각만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어차피 이곳에 갇혀 있는 신세에 뭘 할 수 있겠단 말인가. 일단은 이곳을 탈출해야만 한다. 힘을 되찾아 마왕을 타도하겠다는 목표가 아닌. 진실을 향해 나아갈 목적으로 말이다. 요즘 친구들은 마왕의 노리개로 사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개과천선이라도 한 것인지, 날 구해 준 후 성원이는 잠잠했다. 오히려 뺏어간 힘을 돌려주기까지 한 듯 보였다. 그 덕분인지 친구들은 개인 훈련 시간을 제외하면 내 방에 2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기 위해 찾아온다. 그때를 노려야만 했다. 그리고 곧 있으면 그 시간이다. 똑.똑.똑. “유리. 나 예나야. 들어간다?” “응... 들어와.” 일 전에 고블린 간수의 사건 이후 이 방은 내 대답이 들리기 전까지는 결코 문이 열리지 않게 되었다. 엘리자베스가 건 일종의 결계라고 한다. 그렇게 방문을 열고 들어온 건 예나뿐 아니라 내 용사 일행을 함께 했던 모두였다. “예나! 유나! 수진아. 주리야!” 이들이 한순간 한 장소에 모인 게 얼마만 인지 모르겠다. 일전엔 치욕의 순간이었지만, 이제는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일단은 그저 반가운 척해야 했다. 주리가 마족으로 변해 오천왕에 들어섰다고 했으니까. “유리! 몸은 괜찮아? 밥은 잘 챙겨 먹고?” “응. 걱정해 줘서 고마워. 예나. 잘 지내고 있어.” “그렇구나... 다행이다.” 예나와 유나는 여전히 밝은 미소로 날 대해준다. 하지만 수진이와 주리는 겉으론 웃고 있지만 여전히 날 경계하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주리야 이제 마왕의 편에 들어섰으니, 아직 그의 종이 되지 않은 날 경계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수진이는... 잘 모르겠다. 왜 그녀를 보고 있자면 나도 화가 나는 걸까? 다행인 점은 그래도 주리는 공과사는 구분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직 친구였다. “유리...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아직 여기 있는 거야? 성원이... 마왕님한테 말만 하면 풀어 줄 텐데 말이야.” 주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내게 다가왔다. 다행히 다른 애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여전히 수진이는 날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난 그녀를 게슴츠레 쳐다보며 주리에게 말했다. “응... 주리. 고마워. 그러게. 나도 이제 힘들어하던 참이었어. 혹시... 성원이를 만날 수 있을까?” 수진이를 제외한 아이들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응! 잘 생각했어.” “응응. 맞아. 주인님도 분명 기뻐하실 거야.” “응. 맞아.” 그러나 수진이가 갑자기 팔짱을 끼며 말했다. “뭘 믿고?” 애들이 왜 그러냐고 추궁하며 수군거렸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그녀와는 할 얘기가 있었으니까. “얘들아. 잠깐 수진이랑 할 얘기가 있는데 자리 좀 비켜 줄 수 있을까?” “뭐? 갑자기 왜?” 예전부터 눈치가 없던 예나를 제외하자면 대충 돌아가는 판세를 알아차린 모양이다. 주리가 먼저 뒤를 돌아가자 애들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나갔다. 그렇게 이 좁고 차가운 방 안에 나와 수진이만이 남았다. 먼저 정적을 깬 건 수진이었다. “무슨 생각이야?” “응? 무슨 생각이냐니?” 수진이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유리. 내가 너랑 지낸 세월이 얼만데 널 모르겠어? 여전하네. 거짓말할 때 눈썹 떠는 거 말이야.” “...” “뭐. 오히려 잘 됐어. 나도 너한테 따로 할 말 있었으니까. 묻고 싶은 게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뜸 들이는 거 싫어하니까.” 그렇게 수진이의 얼굴이 잘 보이는 거리에까지 다가온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진짜 정의는 뭐야?” 수진이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되물었다. “그게 무슨 의미야?” 난 그녀에게 베르만이 와서 했던 말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신전의 이상함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걸 들은 수진이는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만 내 말에 공감이라도 하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아. 내게 궁술을 가르쳐 준 엘프들도 하나같이 그저 신의 뜻이라는 말밖에 안 했어. 그리고 이제 와서 하는 애긴 데...” “뭔데?” 그녀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해 주었다. 바로 엘프들도 자신이 왜 우리에게 호의를 가졌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들조차 마족과 마인들은 섬멸해야 할 대상으로밖에 인지하지 않았다고도 말이다. “나야. 역사라든지, 우리가 모르는 깊은 감정의 골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네 생각이 맞다면 그게 아닐 수도 있겠네.” “응... 그래서 너한테 묻고 싶었어. 진짜 정의가 뭘까? 하고 말이야.” “왜 하필 난데?” “응?” 수진이는 다시 눈을 뱀처럼 가늘게 뜨며 내게 되물었다. “오히려 그런 얘기는 성녀인 예나나 마족이 된 주리한테 해야 맞는 거 아니야? 이상하잖아. 그 질문을 나한테 하는 게 말이야.” “...”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고 난 그저 날 경계하는 그녀의 마음을 허물려는 의도로 접근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모양이었다. 내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증오의 감정을 말이다. “유리. 넌 성원이가 좋다고 그랬어. 그렇지만 걔는 마왕이 되었고 결국 네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부 파괴할 거라고. 그래서 포기했던 거 아니야?” “응...” “유리. 내게 정의가 뭐냐고 물었지?” 그녀는 잠시 심호흡하고는 말했다. “내가 좋을 대로 살 거야. 그게 내 정의야. 그래서 난 유리를 좋아할 수가 없어. 넌 결국, 내게 연적일 뿐이니까.” “뭐...? 연적이라니...?” 안 돼. 말하지 마. 더 이상 내 아픔을 건드리지 말란 말이야. “나 성원이랑 결혼할 거야. 다른 애들도 결혼하겠지. 하지만 결국 걔는 내가 차지하게 될 거야. 걔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건 나니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성원이... 그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건 바로 나야. 너희는 알고 있었잖아. 내가 그를 얼마나 원하는지 말이야. “다른 애는 몰라도. 아직 제 마음도 숨기고 솔직하지 않는... 아니, 그를 사랑하지 않는 너에게 성원이와 맺어질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아.” “...” 그녀는 뒤돌았다. 이대로 그녀를 보낸다면 영영 우리... 아니, 이제는 솔직해지자. 성원이와의 사이는 영영 멀어질 것이다. 결국 수진이가 말한 대로 난 그를 잃어버릴 것이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내 친우들에게... “그럼. 그를 사랑한다면...?” “...뭐?” “뭐긴... 그를 사랑한다면 나도 너희와 동등한 위치가 되는 거 아니야?” “유리... 너 지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인 거지?” 나도 알고 있다. 영영 용사로서 돌아갈 수 없는... 결국 정해진 운명으로인한 사명보다 내 개인적 욕심과 사랑을 택하게 된 것이니까.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이대로 그가 다른 여자와 사랑을 하는 걸 멀리서 울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건 싫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의 진실을 알아볼 필요도 있으니 말이다. 그와 함께라면 설령 틀린 길이라도 행복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응. 각오했어. 나도 이제 참지 않을 거야.” 수진이는 잠시 혀를 찼지만 이내 몸을 돌려 내 얼굴을 마주하고 팔짱을 꼈다. “어...어차피. 넌 나한테 못 이길 테니까 말이야. 괜한 기대하지 마라고!” “흐응... 내가 질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은데?” “뭐... 뭐?” 수진이는 잠시 눈을 찡그렸지만, 예전부터 지내 온 친구끼리의 친밀감을 다시 느낀 것 같아 기뻐 보였다. 그 반증으로 찔끔찔끔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난 한차례 심호흡을 하곤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가자. 마왕을 만나러!”

고객센터 Sup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