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18. 앗! 맛있는 냄새났어!
#18. 앗! 맛있는 냄새났어!
***
근처의 카페에 도착해서 나는 아아를 신지윤은 카라멜마키아또를 주문했다.
단 것을 좋아하는 모양.
"지윤이는 몇 살이야?"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대화를 이어 나갔다.
"22살."
"와 나보다 연상이었네. 그렇게 안 보여."
"응."
"누나니까 존댓말 써야 되나?"
"마음대로.. 난 신경 안 써."
유교파가 아니라 유학파라 이런 점에 쿨했다.
"그래. 그럼 말 편하게 할게."
끄덕끄덕
냠냠
대화가 끊겼다. 뭐라고 해야 되지 자꾸 뭔가 범죄를 저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껏 하질 못하겠다.
혓바닥으로 날름날름 사탕을 먹다가 음료를 먹는데 입가에 거품이 묻은 게 보인다.
"아 여기 묻었다."
슥!
엄지로 신지윤의 입을 닦고 엄지를 입에 가져다 넣었다.
쪽!
손가락에서 달달한 맛이 난 건 사탕 본연의 맛일까, 신지윤과 간접키스해서 일까.
이렇게 노골적으로 끼를 부렸는데도 크게 반응이 없다.
그저 먹고 있는 사탕을 집중해서 먹을 뿐.
'특이한 타입이네.. 마음에 들어.'
"지윤아. 우리 게임 하나 할까? 내가 동전을 던지면 앞,뒤를 맞추는 거야. 맞추는 사람이 틀린 사람한테 질문하나 하기. 어때?"
잠깐 고민하던 신지윤이 끄덕끄덕 승낙했다.
여자를 꼬실 때 자주 쓰는 방법이다.
먼저 고르게 하고 내가 고른 쪽이 나올 때까지 던지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내가 무조건 이기는 게임이다.
"앞,뒤 먼저 골라."
"앞."
"그럼 난 뒤."
팅-! 탁.
"뒤네. 질문할게 그럼. 현재 남자 친구 있어?"
도리도리.
"앞,뒤?"
"앞."
팅-! 탁.
"또 틀렸네. 마지막 키스는 언제?"
"해 본 적 없어."
저렇게 귀여운 외모로 모솔인가. 주변에서 가만 놔두질 않을 텐데 의외다.
"앞,뒤?"
"앞."
흔한 도박사의 오류다. 두 번 연속 뒤가 나왔으니 이제는 앞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
팅-! 탁.
게임은 계속되었다.
***
인생에 흥미가 없었다.
그냥 동화책이 읽고 싶었을 뿐인데, 수학과 과학을 공부해야 했고.
외국의 문화가 궁금했을 뿐인데, 외국어를 배워야 했다.
주말엔 다른 아이들처럼 놀이동산이나 동물원으로 놀러 나가고 싶었는데 주말에 나가면 가는 곳은 시험장이었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눈앞의 문제를 풀고, 무언가를 외우는 인생이 반복되었다.
소변을 보던 곳에서 피가 나오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을 알게 될 때쯤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
전액 장학금의 조건으로 입학한 덕에 얼마 되지 않는 유산으로 졸업까지 버티는 것은 가능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을 16세에 졸업하니, 수십 수백 개의 기업에서 오퍼가 쏟아졌지만, 딱히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난제를 하나 풀어 아껴쓴다면 평생 먹고살 수 있을 만한 돈을 상금으로 받았으니까.
17세에 능력을 각성했다.
각성자는 국가든 게이트를 관리하는 기업이든 어딘가에는 소속이 돼야 했다.
정식 헌터가 된다면,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편입시험을 보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헌터 아카데미의 입학시험 당일 늦잠을 자서 지각을 한 것.
오히려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덕분에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더 놀 수 있었다.
시험 문제는 너무 쉬웠다. 점수를 계산하여 합격점에서 1점을 더 받은 61점으로 풀었다.
왜 하필 61점이냐고?
내 목표는 간신히 졸업을 하는 것이다.
누구의 눈독에 들지도 않게 조용히 산다면, 귀찮은 일을 상당히 피할 수 있다.
내 특수 능력은 마력의 성질이 눈에 보이는 마력안. A급에 해당하는 좋은 능력이라고 한다.
마력안을 개안하고 나서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마력은 그 사람이 품은 마음과 의지를 투영한다.
갖가지 오색찬란한 색을 가진 예쁜 마력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이에게 발현되는 순간, 색은 탁해지고 음습하고 끈끈한 성질로 돌변하여 주변을 오염 시킨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를 보는 남성들은 대부분 검은 기운을 풍기며 나에게 접근해 왔다.
내가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수차례 그들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마력안은 나에게 축복이자 저주와도 같았다.
그런데 대체 이 남자는...
하얗지도 검지도 않은 온통 잿빛의 기운을 풍긴다.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는 색이다.
하지만...그 마력이 풍기는 냄새는 도저히 나를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팅-! 탁.
"앞"
동전을 튕겨 앞이나 뒤가 나올 확률은 각각 50%로 경우의 수가 많아질수록 평균으로 회귀한다.
"또 뒤네. 내가 또 이겼어."
벌써 6번째 뒷면이다.
독립시행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뒤만 연속으로 7회 나왔다.
50%로 평균회귀한다면 아마도 다음에는 앞이 나올 때도 됐다.
서로 관련이 없는 사건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착각에서 나온 도박사의 오류를 범하는 자신이 한심스럽지만, 굳이 많이 이길 필요가 없었다.
내가 궁금한 건 딱 하나.
[잿빛 마력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는 이유]
단지 이것을 탐구하고 싶었다.
마력의 성질일까? 감정의 영향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특수 능력의 영향일까?
너무너무 너무너무 궁금하다.
"흠~. 이번엔 뭘 질문하나? 신지윤. 22세. 남자 친구 없음. 첫사랑 없음. 키스해본 적 없음. 더 이상 캐묻는 게 실례 같은데.. 아 이걸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디저트는 아무거나."
"디저트는 다 좋아하는구나"
"한 번 더. 앞."
뭘 질문하든 상관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지식욕이다.
이유를 듣지 못한다면, 오늘 잠은 다 잤다.
"잠깐, 너무 나만 물어보는 것 같은데. 이렇게 할까?"
"??"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앞이 나오지 않을까.. ?
근데 왜 갑자기 조건을 바꾸는 거지?
"지윤이가 너무 못 맞추니까 내가 기회를 줄게. 앞,뒤가 나오면 네가 질문 하는 거야."
"그럼 그냥 말해 줘."
"그건 재미없지. 동전은 앞,뒤 말고도 하나가 더 있지?"
"옆?"
"그래, 옆면. 옆면이 나온다면 소원 하나 들어 주기. 그게 무엇이든 간에.어때 할래? "
뒷면만 연속해서 6번 나왔다.
대부분 사람은 지금쯤 확률회귀를 생각하여 앞을 선택할 것이다.
뒷면도 괜찮다. 어차피 독립시행이기 때문에 연속으로 6번이 나왔던 60번이 나왔던 이 다음 앞과 뒤가 나올 확률은 동일하게 50%다.
그런데 뒷면도 아니고 옆면에 배팅을 한다고?
악마의 유혹인가.
앞,뒤를 가지고 배팅했다면 의심할 법했지만, 옆면이라니..? 정말로 순수하게 기회를 주려는 모양.
사탕을 줄 때는 긴가민가했지만, 그는 아무래도 착한 사람 같다.
"그럼. 앞,뒤"
"응. 나는 옆."
완벽하게 집게의 힘과 각도를 계산한 내가 뽑지 못한 사탕을 한 번에 뽑았다.
사탕의 끈에 집게가 꼬여서 우연히 운이 좋게 뽑긴 했지만.
앞,뒤를 맞히는 내기를 했는데 뒤만 6번 골라 6번 연속 뒷면이 나왔다.
모두 그가 운이 좋게 이겼다.
그다음 7번째 시도.
동전 앞,뒷면이 아닌 옆면이 나올 확률은?
계산할 수는 없지만 0에서 소수점이 세 자리 이상은 밀려나야 될 것이다.
나는 천 번을 시도해도 한번 성공할 자신이 없다.
팅-! 택택택.. 데구르르르르르
책상 위에서 몇 번 통통 튀던 동전이 굴러가다가 옆으로 섰다.
"@*#$*)(**)^&^#*(&"
의자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졌다.
뭔가 잘못 된 게 틀림없다.
"뭐..뭐야. 괜찮아?"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진짜로 옆면이 나와 버렸는데 앞의 남자는 별 감흥없이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괜찮냐고 물으며 나를 일으키며 은근슬쩍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지만 내기는 내기.
소원이란 게 대체 뭔지 빨리 들어 주고 이유를 듣고 싶다.
"소원 뭔데."
누군가를 죽이거나 괴롭혀 달라는 것 같은 소원만 아니라면 어지간한 건 들어줄 생각이다.
너무 궁금하다. 세상 거의 모든 디저트를 먹어 봤지만, 그에게서 나는 냄새는 특별하다.
저런 냄새가 나는 빵이 있다면, 15년간 지하실에 갇혀서 그것만 먹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음.. 지금은 생각나는 게 없는데. 나중에 써도 되지? 나 일행이 왔다고 하거든? 가봐야 할 것 같네 . 다음에 봐~"
"..."
그는 결국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가
버
렸
다.
***
"크하하하. 개꿀잼."
목표는 달성했다.
신지윤은 성장기가 덜 끝난 듯한 몸에 비해 가슴은 이미 훌륭한 성장을 마친 뒤다.
A급을 선사했다.
아리와 같은 A+급이 아닌 이유는.....
"왁!!"
"꺄아아아아악!!!"
별일 아니다.
아리가 딴에는 놀래켜 볼려고 살금살금 내 뒤로 접근하길래 카운터를 쳤을 뿐이다.
'무슨 생각하고 있었더라? 에라 몰라.'
"놀랬짜나아아아아아~!"
"그러게 누가 그렇게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오래? 크크."
"후우..후우.. 나 너무 놀라서 심장이 안 멈춰..후엥~"
"그래? 어디 한번 볼까."
왼손으로 입고 있던 외투 안으로 아리를 쏙 넣은 다음 블라우스 안으로 오른손을 넣어 아리의 심장 위(일단은 가슴)에 청진기(일단은 손)을 얹었다.
요즘은 이 정도 대담한 플레이도 곧잘 받아주는 아리다.
"아윽..너~ 또 밖에서..."
"괜찮아. 가만있어."
많이 놀란 탓인지, 심장이 큥큥 뛰는 게 가슴 위로 느껴진다.
이 자그맣고 소중한 생명의 박동을 느끼다 보니 소유욕이 물씬 피어오른다.
쪽-!
가볍게 이마에 뽀뽀해주니, 심장이 큥큥큥큥 아까의 두 배에 버금가는 속도로 뛰는 게 느껴진다.
딱히 해 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되다니.
새삼 음양신선공의 위대함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
아리와 카페에 앉아 있는데 저기 구석에서 물 빛 머리가 보인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참 신경 쓰인다.
일부러 저러나?
"어머. 쟤 봐~~!!. 꺄~ 너무 귀엽다. 중학생 인가?"
"너보다 언니야."
"에엥!? 아는 사람이야?"
오늘 처음 알았지만 그 정도면 잘 안다고 볼 수 있다.
"시험 볼 때 내 뒷자리 앉은 앤데. 신경 쓰지마."
"우웅~ 뭔가 할 말이 있는 걸까?"
"크큭. 아까 너 기다리면서 잠깐 게임 했는데 내가 다 이겼거든. 그래서 그런 듯?"
뭐, 정당하게 게임의 결과에 따랐을 뿐이다.
"무슨 게임? 나도 할래앵."
"동전 던져서 앞,뒤 맞추기. 할래?"
"웅!"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 소원 들어 주기."
"그래!"
또 이렇게 한 명의 피해자가 추가로 발생하게 생겼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물 빛 머리통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무슨 비밀이라도 파헤쳐 볼 셈인가.
"너 먼저 선택해. 앞?뒤?"
"나느은~ 뒤!"
팅!- 탁!
"앞이네."
"으.. 한 번 더 해."
"또 소원 걸고?"
"당연하지!"
"뭐로 할래?"
"뒤!"
팅!- 탁!
"앞이네"
팅!- 탁!
팅!- 탁!
팅!- 탁!
...
그렇게 나는 아리에게 무려 11개의 소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곳엔 좌절하는 아리와, 탐구하는 지윤과, 자축하는 선호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