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숨고르기
하루를 마치고 수익을 정산하는 시간, 점점 떨어져 가는 수익을 보고 한숨을 내뱉는다.
하루 2골드 정도 벌던 순수익이 어느새 1골드대 까지 떨어졌다.
단골손님은 꾸준히 늘고 있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적극적인 홍보의 부족?
가끔 탕 안에서 일어나는 여자들의 패싸움?
지구에 서도 같이 씻는다는 문화가 서구권 사람들에게 아직도 어색한 마당에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들고 온 이세계에서 쉽게 통할 리가 없었다.
물론 그걸 알고 사업을 시작하긴 했지만, 솔직히 따뜻한 물로 씻는다는 행위 자체의 매력이 서민들에게 통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마도 신기해서 찾아온 손님들이 이 문화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절벽을 깎아 만든 언덕 위에서 거리를 내다본다.
평민과 서민들이 사는 거리, 도심에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따뜻한 물로 항상 샤워를 할 수도 없는 사람들.
도심에서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저 사람들은 언젠가 내 잠재적 고객님들이 될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끌여 들여야 할까.
깊게 들이마셨던 한숨을 푹 내쉰다.
이대로 가다간 빚은커녕 나 살기도 힘들겠어.
“여기서 뭐 해요?”
“허억!”
내 귓가에서, 아주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목덜미에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 돌아서려고 앞으로 발을 디디다가 삐끗, 절벽 아래의 허공을 딛고 말았다.
‘아 씨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는데...’
덥썩.
“위험하게 이런데 서 있으니까 그렇죠.”
몸이 아래로 쏠려 이대로 떨어지려는 찰나, 양손이 내 앞으로 튀어나와 허리춤을 꼭 끌어안아 지탱해주었다.
“스텔라?”
“네, 스텔라예요.”
“죽을 뻔했잖아.”
“놀랐어요? 그건 미안 해요. 그러게 왜 이런 위험한 곳에 서 있어요?”
“그냥, 사업이 안 풀려서 바람 좀 쐬려고.”
“그래요? 이 정도면 잘되는 편 아닌가?”
솔직히 지금, 이정도의 수입은 여타 다른 사업들과 비교하면 잘되는 편이다.
언제나 똑같은 가게, 똑같은 장사들이 판을 치는 세계에서 새로운 것이 생겼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서민과 평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사업이라 그런지 나쁘지 않게 굴러가고 있었지만
내 야망은 고작 이곳에서 멈추려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한 번 사는 인생 돈 많은 여자 하나 잡아서 기생하는 삶은 내 삶이 아니지 않은가.
‘두 번째 인생이긴 하지만.’
“아직 부족해. 더 큰 사업을 하려면.”
“흐응, 그래요? 더 큰 사업이라니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특별한 사업이겠죠?”
“뭐, 지금 하는 거랑 비슷하지.”
“그럼 지금은 뭐가 고민인데요?”
고민이라... 그녀에게 말을 해도 좋을까?
솔직히 그녀라면 나에게 들은 고민을 어디 가서 떠벌릴 성격도 아니고.
사실 그럴 친구가 없기도 하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여자가 아닐까.
“그게 말이지...”
**
아슬아슬한 절벽에서 대화를 마치고 안쪽의 산책로 벤치에 앉아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홍보도 필요하고, 새로운 손님 유치도 필요하다는 거죠?”
“그렇지. 요점을 요약하자면 그거야.”
“문제점을 알고 있으시면서 왜 해결책은 모르세요? 이렇게 쉽게 나와 있는데.”
“쉽게? 그게 뭔데?”
“아, 어쩌면... 혹시 그래서 생각을 못 하신 건가?”
생각보다 쉽고 가까운 곳에 있다는 소린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뭐지?
“뭐야, 장난치지 말고 빨리 말해 줘.”
“용병이예요 용병.”
“용병?”
“그래요, 용병. 세간에 흘러다니는 입소문들, 그 대부분이 용병들에게서 나왔다고 할 만큼 용병들의 입소문은 전 세계로 퍼지는 걸요.”
하긴, 용병들은 정착하는 일 없이 떠도는 사람도 많기도하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도 많기는 하지.
싸구려 여관이 많은 이유도 용병이 드나들기 때문에 먹고 살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용병들에게 통할까?”
“통하죠. 솔직히 저도 목욕탕이란 곳에 반했는걸요? 그런데 매일 여관에서 씻는 용병들 처지에선 어떻겠어요?”
“그건 또 그렇군.”
들어 보니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왜 용병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한심할 정도로 답은 가까이에 있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다.
“그 용병들을 어떻게 끌여 들일지가 문제겠네.”
“그래요? 제 생각에는 그것도 정답은 쉬운 곳에 있는걸요? 물론, 당신에게는 조금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힘든 일?”
“말했잖아요. 용병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란 것이 빨리 퍼져나간다고.”
**
나에게는 잊지 못할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따뜻한 추억, 뭐 근사한 장소. 이런 것들은 물론이겠지만 안 좋은 추억도 마찬가지로 잊지 못할 장소였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던 그 레스토랑.
테이블에는 나와 스텔라, 그리고 반대쪽엔 나를 범했던 여자 레나와 종업원이같이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신고만은 제발...!”
머리를 테이블에 쿵, 박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미 이마가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몇 번을 박아대었는지 세기도 힘들 정도.
아무 말도 않고 분위기를 잡고 있으니 그녀는 내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잘못을 빈다는 어필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레스토랑은 제법 잘나가는 곳이었기에 주변의 시선을 한 몸으로 잔뜩 받는 중이라는 것이다.
“일단 고개부터 들지.”
솔직히 고작 이런 액션만으로 그녀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실제로 신고를 하고 싶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증거도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저 종업원을 시켜서 와인에 최음제를 조금 섞어 넣어서 나를 먹였다는 거지? 만날 때부터 이미 강간을 준비하고 있었던 거네?”
“그건... 아니긴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기도하고...”
“뭐라는 거야?”
“아무튼 미안!!”
듣자 하니 처음에는 그저 나를 꼬시려고 했다고는 하는데, 자기 입에 술이 들어가서 취하기도 했고, 멍청하게도 그 최음제가 들어간 술을 자기도 마시는 바람에 주체하지 못했다. 라고는 하는데.
“맞아요. 그날 집에 오셨을 때 제가 분명히 느낄 수 있었거든요.”
나 잘했죠? 라고 칭찬을 바라기라도 하듯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운 채 바라보는 스텔라의 시선에 본능적으로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면서도 배시시 미소를 짓는다.
“일단 그 머리부터 들어. 사람들 다 보잖아. 쪽팔리게 뭐하는 거야.”
아마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면 테이블이 부서지지 않았을까.
움푹 패인 테이블에서 얼굴을 들고 나를 슬쩍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린다.
지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처벌이 무서워서 저러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솔직히 용서해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이용해서 장사가 흥할 수 있다면 개에게 한 번 물린 셈 치고 넘어가 줄 마음은 있었다.
그녀의 수준이 아무리 낮다고는 하더라도 용병이지 않은가.
“용서해주는 건 아니야. 솔직히 그날의 일은 아직도 생각하면 화가 나거든.”
“그럼...”
“그러니까 거래하자는 거지. 나는 신고를 하지 않는 대신에 너는 우리 가게를 홍보해주는 거야.”
“홍보라고?”
“그래, 홍보. 솔직히 너한테 입담을 바라는 건 아니야. 그냥 넌지시 흘려 주면 돼. 같은 용병이 하는 말이 홍보같지 않고 좋잖아?”
“차라리 대놓고 홍보하는 게 좋지 않아?”
“대놓고 홍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반발심이 들 수도 있거든.”
“우리 리비드에게 그런 짓을 했으면서 토 달지 말아 주실래요?”
같은 여자들에게는 이렇게 날카로울줄도 아는 건가.
나와 동시에 입을 열은 그녀의 입에서 이렇게 차가운 말이 나올 줄이야.
그것도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 와중에.
여기서 그녀에게 진정하라고 제지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했기에 가만히, 조금 진정하라며 테이블 아래로 그녀의 허벅지 위에 손을 얹었다.
“어쨌든 네 말대로 신고를 당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힛!”
테이블 아래로 들어온 부드러운 손, 바지 안쪽으로 뱀처럼 타고 들어오더니 엉덩이를 손안에 가득 쥐어 버렸다.
슬쩍 스텔라를 바라보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마주 보고는 싱긋 눈웃음을 짓는다.
내가 허벅지를 두드렸던 것을 잘못 이해한 건가?
갑자기 노골적으로 성희롱을 해 오는 것 때문에 이상한 비명이 흘러나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두 명의 시선에 곧바로 스텔라에게서 시선을 떼고 하지 말라고 크게 한 번 헛기침했다.
“어쨌든 그으... 렇게 알고 넌지시 말을 던지라 이거지잇! 알아 들어?”
내 헛기침에도 그녀는 멈출 생각이 없는지,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는 손길은 오히려 더욱 대담해졌고, 오히려 내 뒤쪽으로 손을 넘긴 것을 감추려 바짝 달라붙어온다.
엉덩이를 살살 매만지며 은근히 아래로 손을 내리더니 남자가 가진 유일한 아래쪽 구멍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자 저절로 몸이 흠칫 떨려온다.
갑자기 화를 내듯이 언성을 높이자 다시금 시선이 우르르 쏠리는 것이 느껴진다.
이대로 있다가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
등 뒤로 손을 넘겨 그녀의 손등을 살짝 꼬집고는 바지 속에서 그녀의 손을 빼내고 자리에서 후딱 일어나버린다.
“알았으면 내일부터 그렇게 해. 너도, 가게에 온 손님들한테 기회가 되면 넌지시 흘리고. 알았어?”
“응. 알았어.”
“네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