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11화.
“자 모두 모였으니 이제 아카데미 첫 실기시험인 소규모 전투 시험을 치르겠다”
3반 교수 칼트의 외침과 함께 대강당의 마법진이 작동하며 우웅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대강당은 평소 카이가 훈련을 위해 머물던 27번 환영 실습실의 크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백 명의 학생들이 모두 들어와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넓었고, 주변을 밝히는 수정구와 마법진은 그 숫자만 해도 세 배는 많아 보였다.
카이를 포함한 3반의 학생들은 모두 각자의 파티 원들끼리 모여 있었다.
“이번 시험에서 각 파티의 점수를 토대로 A등급에서 D등급까지 점수를 메기겠다. 각 파티별로 클리어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로 평가를 받으면 된다”
그 말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어쩔까? 3단계를 감점 없이 클리어하는 게 4단계에서 감점을 받는 것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어
- 긴장하지 말고 평소처럼한다면 4단계도 감점 없이 클리어할 수 있으니까……
그때 레베카가 슬쩍 카이의 팔을 톡톡 건드리더니 배시시 웃었다.
오늘은 평소의 몸매를 드러내는 옷차림이 아니었지만 자극적인 드레스와 발가벗은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가 눈에 익었기에 왠지 모르게 단정한 정복 차림도 야하게 느껴졌다.
레베카는 평소 정복을 입을 때 착용하던 크고 동그란 안경은 끼지 않았다. 안경에 가려져 있던 차가운 느낌의 얼굴은 귀엽기만 했던 첫인상과는 다른 어른스러운 느낌을 줬다.
“어쩔까? 다들 안전하게 가는 것도 고민하는 것 같은데”
레베카의 질문에 카이는 단호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린 5단계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아무래도 4단계와 5단계는 기본 점수부터가 다르니까”
카이는 이 점수에서 A랭크를 받아야 했다.
그래야만 다음에 있을 정규파티 시험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원들을 뽑을 수 있었다.
어느새 칼트의 설명이 끝이 나고 시험을 위한 대열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카이와 학생들이 환영 마법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거리까지 물러나자 호명 된 8번 파티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
카이와 레베카의 시험 순서는 끝자락에 위치했다.
그 덕분에 차분히 같은 반 학생들의 실력을 살펴볼 수 있었다.
4단계를 안정적으로 클리어 한 파티는 보통 B랭크를 받았고 그 등급을 받은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B 랭크의 점수를 받는다면 충분히 상위권이라고 불릴 만 했다.
그렇다고 5단계를 도전한 파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단 두 개의 파티.
짧은 금발의 기사 다리안과 보조계열의 사제 아리스의 9번 파티.
거대한 근육질의 탱커 플라탄과 불의 마법사 페루의 17번 파티.
다리안과 아리스는 정석적인 용사파티였다.
뛰어난 실력을 가진 다리안이 각종 사제의 버프를 받아 5단계에 도전했고, 그들의 계획대로 다리안은 자신이 가진 최고의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각종 축복이 깃든 다리안의 검은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질긴 정예오크들의 가죽을 베어낼 수 있었다. 그는 아리스를 안전하게 지키며 차근차근 적들의 숫자를 줄여나갔다.
플라탄과 페루는 다리안의 파티와는 정반대의 전술을 펼쳤다.
플라탄이 넓은 방패로 시선을 끌면 페루의 강렬한 불꽃 마법으로 놈들을 상대했다.
페루는 위험하고 긴 영창을 차분하게 완성했고, 그녀의 마법 한 방에 정예오크 수십 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
하지만 두 파티 모두 5단계의 ‘왕’에게 무릎을 꿇었다.
오크의 왕 카르취
9파티는 다리안이 각종 버프를 받아 강해진 상태로 놈에게 덤볐지만 카르취의 특유의 괴력 앞에서 마력이 바닥나 머리통이 으깨졌다.
수십 번의 공격을 피하고 다른 오크라면 치명상을 입을 공격도 많이 적중 시켰지만, 단 한 번의 충돌로 인해 다리안의 검이 산산조각이 나며 실패했다.
17번 파티의 플라탄은 거대한 방패로 최대한의 시간을 벌어줬지만 반대로 페루의 화염 마법이 카르취의 항마력이 담긴 질긴 가죽을 뚫지 못해 클리어하지 못했다.
소규모 파티에서 마법사의 치명적인 한계가 드러나며 페루는 비통한 표정으로 탈락을 받아드렸다.
두 파티 모두 클리어에는 실패했지만 다른 파티와는 다른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줬다.
그 네 사람은 모두 A랭크를 받았다.
카이는 본능적으로 마지막 플라탄의 파티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의 도전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14번 파티는 앞으로 나와라”
그때 카이가 기다리던 놈의 번호가 호명되었다.
창잡이 데인.
용사 아카데미를 최상위 성적으로 졸업하고 용사 라이칸의 부관으로 임명 된 자.
곱슬거리는 흑갈색의 머리칼과 특유의 구릿빛 피부를 가진 데인은 특유의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 나왔다.
“5단계에 도전하겠습니다”
“좋다 준비해라”
데인의 옆에는 달리즈라는 양 갈래로 땋은 작은 소녀가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봤다.
아무래도 그녀는 데인과 달리 5단계에 자신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데인은 그런 그녀를 살피지 않았다.
오히려 카이를 돌아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레베카는 깔깔 웃으며 카이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널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카이는 깊은 내면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불쾌한 심정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디 그렇게 자신만만한 네놈의 실력을 보여봐라’
교수 칼트의 신호와 함께 5단계의 시험장소인 바위협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인과 달리즈는 다른 파티 원들이 그랬듯 전투하기 용이한 넓고 평평한 바위로 이동했다.
그들이 재빠르게 그곳으로 이동하자 4단계에서 등장하는 정예오크들이 바위틈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하위 단계에서 등장하는 오크들과는 몸집과 피부색부터가 달랐다.
마기가 깃든 검은 피부와 반 배는 더 큰 덩치를 가진 정예 오크들이 협곡이 떠나가라 괴성을 지르며 사방에서 몰려왔다.
달리즈가 그녀의 키 만한 거대한 지팡이를 허공에 휘두르자 주변에 있던 바위들이 요동치며 갈색 수염을 가진 난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급 땅의 정령 노움이었다.
‘정령술사였군’
카이는 단델의 노림수를 파악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노움은 주변에 있는 바위들로 3m 크기의 골렘을 만들더니 그 머리 위에 꼿꼿이 몸을 세워 주변을 둘러보며 바위골렘에게 지시를 내렸다.
바위 골렘은 두 손을 뻗어 달리즈를 자기 어깨에 태우더니 주위에서 달려드는 정예 오크들에게 거대한 돌주먹을 휘둘렀다.
둔탁한 충격이 환각 너머에 있는 카이에게도 전해질 만큼 강렬했다.
대부분의 정예 오크들이 노움이 지휘하는바위골렘에게 달려들었지만 마력으로 보호받는 골렘은 예상보다 더 단단했고, 많은 충격을 받아 부서진다해도 주변에 널려 있는 거대한 돌덩어리로 금세 복구했다.
카이는 새삼 정령 술사의 능력에 감탄했다.
정령술은 마법사와 달리 캐스팅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 대신 동급의 마법사보다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속성에 맞는 조건이 주어졌을 때, 예상 밖의 강점을 가지기도 했다.
플라탄이나 다리안과는 달리 데인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정예 오크만을 상대하며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
그는 딱 바위골렘의 다섯 발자국 뒤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달려드는 오크는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손목만을 움직여 세 번의 공격 안에 목숨을 빼앗았다.
“와 제법인데?”
카이의 옆에 있던 레베카가 데인의 창술을 보고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다.
데인의 사용하는 창술은 카이가 보기에 용사 시절과 달라진 게 없었다.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만큼 현란했고, 동작 하나하나가 화려 했다.
단순히 빠르기로 승부하는 창술이 아니었다.
상대의 눈과 감각을 속이는데 특화 된 창술이었다.
쿵!
그때였다.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노움이 부리는 바위골렘이 거대한 충격을 받으며 무너져 내렸다.
노움은 떨어지는 와중에도 자기 계약자인 달리즈를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자신보다 더 큰 키의 달리즈를 껴 앉은 채 바닥에 추락한 노움은 충격에 비틀거리더니 형태를 잃고 대지로 돌아갔다.
다른 정예 오크보다 반 배는 더 크고 일반 오크보다 두 배나 큰 카르취가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천천히 그들이 서 있던 돌바위로 다가오더니 골렘을 부수고 바위에 박혀 있는 도끼를 뽑아 들었다. 두꺼운 팔뚝에 새겨진 붉은 문양들이 보였다.
오크의 왕이라는 수식어 답게 한 낱 환영속에 복원된 존재임에도 상당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달리즈는 제 역할을 끝낸 듯 물러났고 데인은 창을 카르취에게 겨누며 자리를 박차고 달려갔다. 놈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에게 달려드는 데인을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마치 공격해 보라는 듯한 오만한 자신감이 보였다.
데인은 침착하게 자기 몸통만 한 도끼를 든 카르취를 상대로 창을 휘둘렀다.
한 번에 세 방향으로 찌르는 놈의 비장의 기술은 무방비하게 서 있던 카르취의 양쪽 어깨와 목을 동시에 꿰뚫었다. 언뜻 보기에 놈이 반응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바, 반응하지 못한 거야? 저 괴물이?”
놀란 레베카가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시험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치명타를 입힌 데인의 공격에 지켜보고 있던 다른 학생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카이도 마지막의 그 공격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는 창술을 몰랐기에 그저 대단하구나 하고 넘겼지만 지금은 그 격차가 확연히 느껴졌다.
그때였다. 쓰러 질 줄 알았던 카르취는 목을 꿰뚫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도끼를 휘둘렀다. 단순한 그 일격에 실린 풍압이 바닥에 있던 작은 돌멩이들이 주변으로 튕겨 냈다.
데인은 다급히 창을 회수하려고 했지만 도끼가 한 발 빨랐다.
찰나의 순간 달리즈가 마법으로 세운 거대한 바위가 데인의 앞을 막아줬지만 무의미했다. 카르취의 도끼는 바위를 부수고 나아갔다.
쩍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가슴팍에 도끼를 얻어맞은 데인은 들고 있던 창을 놓치며 튕겨져 날아갔다.
단 일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