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뱀년(3)
-32화-뱀년(3)
어떻게 반응하는 게 좋을까.
살짝 불쾌한 기분을 드러낼까.
계속 헤벌쭉 하며 순순히 끌려가 줄까.
“음...”
자연스레 고민하는 모습이 되었다.
“어떤 부분에서 고민되세요? (쫄보인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몰랐네요...”
“네?”
“그저 아름다운 여성분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생각했거든요. 갑자기 투자 상담을 받게 될 줄은...ㅎ”
“아?! 그렇게 느끼셨을 수 있겠네요! 죄송해요... (역시 경계심을 드러내네... 쫄보 새끼...)”
뱀년은 엄청 미안한 얼굴했다.
“제가 너무 사업 얘기만 했죠...? (밀당을 조금만 더 하자. 아쉽네.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하는데... 혹시 빈 수레면 안 되는 데 말이지...)”
“아니예요. 중요한 부분이죠.”
뱀년의 의중이 당장 1억을 사기 치려는 것이 아닌 사이즈를 파악해서 크게 공사를 치려고 하는 거란 걸 알았다.
통장을 까는 걸 미끼로 쓰면 좋겠지만, 통장에 있는 돈이 1억이 채 안 됐다. 내 통장 내역을 본다면 나에게 공사를 치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미끼를 직접 보여 줄 순 없지만 냄새를 강하게 피우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가벼운 대화나 나눌까요? (굉장히 조심하네...)”
“아뇨. 괜찮아요.ㅎ 투자는 주로 부동산 투자만 해왔네요. 슬슬 분산 투자를 해야 한다 생각해 오긴 했는데, 신뢰할 만한 투자 자문을 못 구해서 그냥 모아 두고만 있었어요.ㅎ”
“오! 그럼 저희랑 잘 맞으시겠어요~ (사짜는 아닐 거 같긴 한데...)”
“네. 그런데 저도 제 자산을 함부로 보여드리기 어려운 거 이해해 주시길 바라네요.”
“네. 이해하죠. (그래. 여자 앞에서는 푼수인데 돈에서는 조심성이 많은 게 맞지. 그것도 없는 건 무능한 거겠지.)”
“제가 신뢰 할 수 있는 거래처와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개인적인 친분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말씀도 이해하실까요?”
슬쩍 빈틈을 열어 주었다.
"에고. 그럼요. 사업도 다 사람 간에 하는 일인데요. 궁합이 잘 맞아야죠. 어려자기 궁합이요.ㅎ(그래.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뱀년이 내 말의 뉘앙스를 눈치채고 색기를 흘렸다.
“그럼 술 하면서 좀 더 친해져 볼까요~?ㅎ”
“그럼 오늘은 저도 오랜만에 취해 볼까요~?ㅎ (이제 자리를 비울 틈을 만들자.)“
뱀년이 먼저 서로의 빈 잔을 가득 채웠다.
이제 부터는 나도 술에 취하면 안 될 거 같았다.
하지만 일부러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고, 자리를 비우는 틈을 보일 것이다. 그때 이 뱀년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아내려는 것이다.
나와 뱀년은 잔을 마주치고 단 숨에 술잔을 비웠다.
“크으. 그래요. 일단 친해지고, 그다음에 사업 얘기든 투자 얘기든 하는 게 맞죠.ㅋ”
나는 다시 탠션을 높였다.
“그러게요~ㅎ 제가 이렇게 사업이 서툴러요.ㅎ 대표님 사업 키우신 얘기 듣고 싶어요. 얼마나 스토리가 많겠어요~ㅎ (빨리 약을 쓸 타이밍을 만들자. 실장님한테도 슬슬 연락하고.)”
약을 쓸 타이밍을 만든다는 게 무슨 말일까? 실장은 또 누구야? 뱀년의 수작이 슬슬 드러나고 있었다.
“글쎄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블루오션을 공략하기도 했고, 운이 좋았죠.ㅎ”
“에구. 겸손 하셔라. 너무 멋지세요~ 한 잔 해요~ (주량은 얼마나 되려나.)”
뱀년과 술잔을 마주치고 술잔을 비웠다.
술을 마시는 속도가 빨라졌다.
나는 시답잖은 농담을 쏟아 냈고, 뱀년은 아무 말에나 박장대소하며 호응해 주었다.
“어?! 내가, 어?! 중국 사장하고 밥도 묵고! 사우나도 가고! 어?! 다 했엄 마!”
나는 점점 혀를 꼬는 소리를 해대며 더욱 오버스러운 농담과 과장된 동작을 해 보였다. 누가 봐도 만취한 모습이었다.
“호호호. 너무 재밌으세요~ 아?! 저 엄마하고 통화 잠깐 하고 올게요? (일단 충분히 취한 거 같다. 실장님하고 통화하고... 한 시간이면 작업 다 되겠지?)”
“오잉? 엄마? 그 나이에 통금 있어요?ㅎ”
“ㅎ그런 건 없지만, 늦으면 걱정하시잖아요~ 오늘 왠지 늦을 거 같아서요~ (이렇게 살짝 기대감 주고.ㅎ)"
“효녀네~ 다녀오세요~”
뱀년의 눈웃음엔 섹기가 좔좔 흘렀다.
저렇게 사업가들을 정신 못 차리게 하고, 목을 물었겠지. 악마같은 뱀년.
짐작컨대, 뱀년은 기회를 봐서 내 술에 약을 탈 것이다.
그리고 내가 기절을 했을 때 방으로 끌고 갈 남자가 필요하겠지. 그게 실장이란 작자일 테고.
그다음에 내 개인 정보를 습득하고 바로 돈을 갈취하든, 아니면 이튿날 강간을 당했다며 협박해서 돈을 요구하든 하겠지. 그게 꽃뱀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니까.
하여간 독심술이 없었다면 깜박 속아 넘어가 당했을 거다.
나는 뱀년이 가게를 나가는 것을 확인 하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텐더에게 다가갔다.
“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말씀 하세요.”
나는 일단 지갑에서 30만원을 꺼내 건넸다.
“어려운 부탁일 수 있어요.”
돈을 건네받은 바텐더가 살짝 당황하는 게 보였다.
“무슨 부탁이 시기에...? (단순한 부탁을 하기에 좀 큰 액수인 거 같은데... 설마...)”
설마 라니. 이 바텐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ㅋ
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일었다.
“무슨 부탁일 거 같아요?ㅎ”
“저야 모르죠... (설마 2차 가자는 건가... 그런 가게가 아닌데... 진짜 그런 거면... 조건 만남이라 생각하고 그냥 한다 할까... 돈 조금만 더 요구해서...?)”
깐깐하고 참하게 생긴 바텐더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놀랍고 재밌었다. 하여간 한국 년들은 고고한 척은 세계 최강이면서 돈이라면 아무한테나 다리 벌릴 수 있는 속물들이다.
뭐 이런 년이면 한 번 따먹어도 좋을 것 같았지만, 그건 나중에 하기로 했다. 지금은 더 중요한 다른 부탁이 있었다.
“저기 제가 술 마시는 여자 있잖아요. 방금 나간.”
“...네. (아... 2차 가잔 얘기는 아닌가? 내가 너무 나갔네...ㅎ)”
“아무래도 꽃뱀 같거든요?”
“네?! (헉... 이건 또 무슨 말이야...)”
“그냥 지금은 짐작인데 그럴 거 같아요. 꽃뱀이 이런 가게에 들락거리면 안 되지 않겠어요?”
“네... 그렇죠... (무슨 대화를 나누었기에 이러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가 자리를 비울 때 그 여자가 무슨 짓을 하는지 동영상 촬영을 부탁드리려고요.”
“아... (이런 거 함부로 해도 되나....)”
망설이는 바텐더를 보고 지갑에서 30만원을 더 꺼내 건넸다.
이 바텐더는 돈이면 무슨 짓이든 할 여자니까 돈으로 구워삶는 게 최고일 거 같았다.
“그냥 이건 저희 둘만 아는 거래예요. 제가 없는 타이밍에 그 여자가 무얼 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래요. 부탁 들어 주실 수 있으세요?”
바텐더는 손에 쥔 30만원을 꼭 붙잡고 내 손에 있는 30만원을 보며 갈등했다.
“...네. 이런 부탁이 처음이고 손님을 촬영한다는 게 좀 경우에 맞지 않지만... (60만원은... 정말 큰데...)”
“에이~ 그냥 바 전체를 촬영한다 생각하고 촬영해 주세요~ 그 여자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이 돈은 그냥 드릴게요. 그냥 편하게 생각하세요~”
바텐더는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그냥 바 전체를 혼자 촬영할게요. 손님이 자리 비우실 때만 촬영하면 되는 거죠?”
“네네! 그렇게 해주시면 되요. 그리고 이 번호로 동영상 전송해주시고요.”
내 번호를 불러 주었다.
바텐더의 핸드폰에 찍힌 내 번호를 확인했다.
이렇게 안전장치 하나를 마련해 두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네... (뭐... 가게 동영상 찍어서 보내는 데 60만원이면 대박이지... 크게 나쁜 짓도 아닌 거 같은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한결 편안 해진 마음으로 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때 맞춰 뱀년이 바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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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년과 나는 다시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10여 분이 흘렀다.
이제 독심술 사용 시간은 15분 정도 남았다.
이후 한 시간가량 쿨 타임이 있었다.
독심술 스킬 사용 시간을 잘 컨트롤 할 필요가 있었다.
뱀년이 빨리 수작을 부리게 해야 했다.
“다시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전에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어머.ㅎ 그러세요~ㅎ(나이스! 타이밍이 빨리 왔네.ㅎ)”
나는 씩씩하게 말하고 얼른 화장실로 갔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바텐더와 눈을 마주쳤고, 바텐더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뱀년은 분명 무슨 수작을 걸 거야. 아마 내 술에 약을 타겠지... 그걸 포착해 두어야 해!’
나는 화장실로 들어 갔다. 특별히 소변이 마려운 건 아니었고, 타이밍을 제기 위한 것이었다.
소변을 쥐어짠 후 손을 씻으며 긴장된 마음도 함께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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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나와 바 쪽으로 천천히 걸어 갔다.
바텐더는 촬영을 잘해낸 듯 눈빛으로 신호를 줬다.
자리에 앉아 있는 뱀년과도 눈을 마주쳐 미소를 보낸 후 바텐더에게 다가갔다.
“잘 찍으셨나요?”
“...네(아... 떨려... 괜찮겠지...?)”
“바텐더분에게 아무 문제 안 되게 할 테니까 걱정 하지마시고요. 바로 제 번호로 전송해주세요.”
“...네. 이미 전송하고 있어요.”
“네. 전송 다 되면 동영상이랑 제 번호는 지워 주시고요. 그리고 맥주 두 병만 주세요.”
“네. (뭔가 철저한 사람 같네... 그래. 다 지워 버리는 게 나한테도 안전할 거 같다.)”
바텐더가 맥주를 가지러 간 사이, 다시 뱀년과 눈을 마주치고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손짓과 눈짓으로 보냈다.
띠링- 동시에 메시지 수신음이 울렸다.
바텐더가 보낸 동영상을 틀어 보았다.
예상대로 동영상엔 내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뱀년이 내 술잔에 물약을 타는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예상한 바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자 괘씸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준비한 작전을 펼치기 위해선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깊게 심호흡했다.
바텐더가 맥주와 병따개를 들고 걸어 왔다.
“그냥 저한테 주세요.”
그녀를 막아 세우고 맥주와 병따개를 내가 직접 잡아들었다.
뱀년에게 다가가며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기다리셨죠~ㅋ”
“잘 다녀오셨어요~?ㅎ (이제 저 술만 먹이면 끝이다.ㅋ)"
“네ㅋㅋ 이제 본격적으로 분위기 달구어 볼까요~?ㅋ 너무 위스키만 마시는 거 같아 맥주도 가져 왔습니다!ㅋ 맥주 하실래요?”
“아. 전 괜찮아요.ㅎ 그냥 한 가지 술로 가시는 게 좋지 않으세요?ㅎ (뭐야? 왜 갑자기 술을 바꿔?)”
“에이~ 뭘 모르시네~ 맥주는 음료수죠.ㅋ 위스키 마시다 목 축일 때 맥주가 좋죠~ㅋ 술 내공이 약하시네~”
“하하. 네. (아주 제멋대로구나...)”
나는 병과 병으로 병따개를 따려는 듯 호기를 부렸다.
“이런 거 본 적 있어요?ㅋ”
“에? 뭐 하시는 거예요? (헐...완전 고삐리 같아... 이러다 담배로 도너츠도 만들 기세다...)”
팍! 팍! 나는 맥주병을 따는 데 몇 번 실패를 했다.
이쯤이면 된 거 같았다.
“그... 그만하세요. 그러다 병 깨지겠어요... (그래. 그냥 비위 맞춰주자. 맥주 빨리 마시고, 저 위스키를 마시게 해야겠어...)”
“아... 미인 분 앞이라고 병이 빡빡하게 구네요! 흠.”
나는 민망한 척하며 맥주 병 하나를 바에 놓았다.
손에 든 다른 맥주병의 뚜껑을 오프너로 열려고 했다.
뻥. 치이-! 계획대로 맥주 거품이 잔뜩 터져 나왔다.
“어?! 어?!”
나는 크게 놀라는 척하며 병 입구를 막고 병을 돌렸다. 그 과정에서 튀어 나온 맥주 거품이 뱀년에 튀었다.
“어?! 죄... 죄송해요!”
“아... 괜찮아요! (하여간... 일을 만드네... 만들어...)”
“아닙니다... 제가 닦아 드릴게요!”
나는 맥주병을 바 위에 놓으려다 넘어트리고, 다시 맥주를 흘리고, 황급히 냅킨을 마구 뽑아 바를 닦으려다 맥주를 뱀년 다리 위로 흘리고, 아주 쌩 난리를 쳤다.
“아..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그만하세요... (ㅆㅂ... 이 개 진상...)”
“아닙니다! 제가 닦아 드릴게요!”
“아... 아니예요... 그만... 제가 할게요.... (ㅆㅂ...)”
뱀년과 나는 서로 손을 잡고 밀치는 요란스런 상황을 연출했다.
뱀년이 약간 짜증스럽게 내 손에 든 냅킨을 뺏어 들고 고갤 숙여 자기 다리와 원피스를 닦는 상황이 되었다.
‘기회다!’
나는 얼른 내 잔과 뱀년의 잔을 바꿔치기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