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EP077-외전-결혼 (8)
나는 이미 자제력을 잃어버렸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잃어버린 자제력은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서는 헤이즈와 가까이 있기만 해도 관성처럼 손이 먼저 움직일 정도다.
승윤 씨나 헤이즈를 탓하기에는 내 지분도 분명히 있기에… 나는 떳떳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고?
너는 조력자로써 둘을 도와주고 있다.
피학 – 망상으로 괴로움을 좇게 된 남자를 돕기 위해, 그 남자의 취향에 맞춰 내 품에 안기는 여자를 취할 뿐.
“…….”
마음이 쏠릴 것만 같이 달콤한 본능의 속삭임.
정신 차려. 너는 종마가 아니다.
언제까지 과거의 시선에 사로잡혀서 너 자신을 괴롭게 만들 생각이지?
그래, 맞아. 너는 종마가 아니다.
한 명의 남자일 뿐. 약간 더 우월하고, 더 강한… 그런 남자.
반면 그 남자는? 그렇게 탐스럽고 매혹적인 여자를 내 품에 떠넘긴 그 남자는-.
“…하.”
콰앙-!!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쥔 손이 책상을 거칠게 내리쳤다.
틀렸어. 너는 우월해.
그리고 헤이즈 같은 여자는 조금 더 우월한 남성의 곁에 있어야 해.
그게 그 여자의 가치를 올려주는 방법이다.
“…….”
당장 며칠 전에 있던 사교회에서도 나는… 헤이즈를 탐했다.
그 년이 먼저 유혹했다. 그 암컷도 너를 원하고 있어.
안돼. 이대로는 정말… 선을 넘고 말아버린다.
헤이즈와는 달리, 내 선은 한 번 넘고 나서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가벼운 기준이 아니다.
과열. 그 단어가 지금의 내 상태를 정확하게 정의해준다.
“…열을 식힐 시간이 필요해. 나도, 헤이즈도.”
***
“그래서… 내일부터 사흘 동안 휴가래, 오빠.”
“휴가? 조금 갑작스럽긴 하지만, 쉬는 거니까… 좋네.”
매튜 씨의 권유로 갑작스럽게 얻게 된 사흘 동안의 휴가.
게다가 매튜 씨도 휴가를 신청했다며, 오늘은 무척 이른 시간에 조기 퇴근을 하고 가버리셨어.
…역시 뭔가 이상하지?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지부장님, 오늘 저녁에 갈 호텔도 예약해두라고 명령하면서 안에 싸주셨는데.
그래서 오빠도 조금 기대하고 있던 것 같은데… 그러면 내가 사흘동안 오빠를 실망시키게 되는 거잖아?
“그럼 휴가 동안에는 어떻게 할래? 하고 싶은 거나, 가고 싶은 곳 있어?”
“…응. 있어.”
그런데… 며칠 전에 내가 우연히 조금 재미있어 보이는 걸 찾았어.
이제는 내가 쓰게 된 비서 자리의 컴퓨터. 예전에는 더스트 언니가 쓰던 그 컴퓨터에 있던 파일.
언니, 매튜 씨한테 관심이 많았나?
매튜 씨가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 취향, 습관, 별별 것들이 정리된 문서가 남아 있더라구.
지부장님이 어떤 상황에 흥분하는지, 어떤 단어에 반응하는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매년 여름 휴가에는 어디를 가는 지도 나와있는, 그런 문서.
“바다… 갈래, 오빠? 오랜만에.”
“바다?”
고마워, 더스트 언니.
여전히,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알려주는 건 역시 언니밖에 없어.
***
“…….”
“어라, 지부장님?”
“어? 매튜 씨, 안녕하세요…?”
이 두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우연히 같은 곳으로 휴가를 왔다고?
아니,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되는 확률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따라왔다고 하기에는… 어떤 언질도 없었을 텐데.
설령 따라온 게 맞다고 해도, 왜?
…역시 우연이 맞다. 옆에 승윤 씨까지 있는 걸 보면, 두 사람은 그저 휴가를 즐기러 온 거다.
“여기… 저랑 오빠는 처음 와보는데, 사람도 거의 없고 엄청 좋은 곳 같아요. 그렇지, 오빠?”
“응? 어… 그러게. 호텔도 깔끔하고, 해변도 넓고.”
“…그렇습니까? 저도 좋아하는 곳입니다. 그럼, 즐거운 휴가 보내시길.”
최대한 빠르게 대화를 끝낸 뒤, 돌아섰다.
머리가 조금 뜨거워지는 것만 같다.
지금까지 헤이즈에게 느꼈던 정욕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상당히 낯설고 이질적인 감정이 차오른다.
…미쳤군, 매튜 앤더슨.
설마 헤이즈와 승윤 씨가 팔짱을 끼고 함께 휴가를 보내는 모습에 질투라도 느끼는 건가?
저 여자는 내 것인데,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멋대로 가슴을 움켜쥐고 허리를 박아대다가 자궁에 씨앗을 가득 쏟아낸 내 암컷인데-.
“…….”
머리를… 식혀야 한다.
휴대폰의 전원은 꺼두는 게 좋겠군.
자제력을 잃은 내가 헤이즈를 내 객실로 호출하는 문자를 보내기 전에.
***
“하… 하아. 젠장….”
머리를 식히려고 온 휴가에서, 고작 정욕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다는 핑계로 휴대폰을 끄고 딸이나 치고 있다고?
언제 급한 연락이 올 줄 알고? 직무유기다. 고작 이런 남자였나, 나는.
…게다가, 그 자위에 사용된 가장 솔직한 욕망이 담긴 이미지마저… 부하 직원과 나눈 정사의 기억이란 말인가?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분명 그 암컷의 잘못이다.
여기까지 따라와서 따먹어달라고 졸라대는 꼴과 같은데… 왜 망설이는 거지?
“…….”
딩동-
밖으로 나가기엔 내 꼴이 말이 아니라 주문했던 룸서비스가 도착한 모양이다.
옷은… 어차피 잠깐이니 간단하게 샤워가운만 걸친 그대로.
문을 열고 직원을….
“…….”
“아… 지부장님? 방에 계셨네요? 다행이다.”
“어떻게… 찾아왔지?”
“프론트에 물어봤어요. 히어로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지부장님을 급하게 찾고 있다고 하니까….”
“히어로 라이선스는 그런 용도로 사용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남용이야.”
“하지만 급한 상황은 맞는 걸요? 오빠… 상태가 조금, 나빠서요.”
승윤 씨의 상태라면… 망상.
…망상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는 뜻인가?
핑계야. 저 마조년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연인을 들먹이고 있다.
그러니 너도 사욕을 채워.
“…….”
“들어가도 될까요? 지부장님.”
“헤이즈, 너… 대체 무슨 생각이지?”
“네? 제가 왜요?”
일단 안으로 들였다.
문을 연 채로, 헤이즈를 복도에 세운 채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으니까.
“여기를 어떻게 온 건지 사실대로 말해.”
“…저는 그냥 오빠랑 휴가를 왔을 뿐인데요?”
“아니, 너는….”
나는 지금 헤이즈를, 나와 관계를 맺기 위해 일부러 같은 휴가지까지 찾아온 여자로 여기는 건가?
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말이 안되는 확률이야.
“저는 여기서 지부장님을 마주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
“그 증거로… 피임약도 가지고 오지 않았거든요.”
헤이즈가 등 뒤에 두고 있던 손을 앞으로 꺼낸다.
손에 들린 비닐봉투에는 낯설지 않은 모양새의 사각형 종이 박스가 담겨있다.
두 개. 봉투에 담긴 상자는 두 개다.
“그래서 급하게 이것까지 사왔는데.”
“…….”
“혹시… 다른 사정이 있으세요? 그럼 어쩔 수 없고요.”
“…뭘 어쩔 수 없다는 거지?”
“지부장님이 못하신다면, 다른 남자-.”
이번에도 손이 먼저 튀어나가 헤이즈의 팔목을 붙잡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면, 헤이즈가 내 거부를 이유로 다른 남자에게 접근할 정도로 헤픈 여자는 아니다.
즉 방금의 발언은 나를 자극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 점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몸은 전혀 다르게 느낀다.
이 탐스러운 마조년을 놓치지 말라고.
“하실… 거죠?”
“…헤이즈.”
“…이미 발기하고 계시는데.”
“닥쳐. 넌... 고통받는 연인을 핑계로 나를 유혹할 생각밖에 없는, 발정난 암컷이야.”
“…♡”
폭언에서 서슴지 않고, 오히려 은근하게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헤이즈.
살갗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자극적이다. 자위를 중간에 끝마쳐 어중간하게 굳어져 있던 자지가 순식간에 위로 고개를 치켜든다.
“오빠는 제가 지부장님한테 그런 말 듣는 거, 좋아해요.”
“…….”
“그러니까, 더… 해 주실 거죠?”
나는 분명 머리를 식히기 위해 이곳으로 왔을 터인데.
이래서는….
“…벗어. 전부. 당장.”
뜨겁게 달아오른 쇳덩이가 담금질을 하며 몸을 식히려 할 때, 쇳덩이를 냉수가 아닌 불구덩이에 집어넣는 꼴.
그것은 쇳덩이의 잘못이 아니다.
불의 잘못도 아니다.
물과 불을 가리지 못한, 미련하고 열등한 대장장이의 잘못일 뿐이다.
***
“하아, 하, 으읏…♡”
파앙-!
“오♡ 오, 오옷…♡”
자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 좋은 구멍.
자지에 딱 맞게 조여진 채로 꿈틀거리며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빡빡하고 뜨거운… 구멍.
내 취향에 더없이 들어맞는 몸과… 성격, 말투, 목소리.
…….
우우웅- 우우웅-
“후, 아…♡ 자, 잠시만, 요…♡”
침대에 엎어져 있던 휴대폰을 집어든 헤이즈가 전화를 받는다.
상대는 당연히… 승윤 씨겠지.
“여… 여보세요, 오빠…♡”
‘…….’
“으응…♡ 나, 지금… 잠깐 우, 운동하고 있어…♡ 호텔 지하에 헬스장이 이, 있더라고….”
운동?
“금방 가, 갈게…♡ 이제 한 개… 아니, 한 세트만 더 하면, 끝이니까…♡ 으, 응….”
‘…….’
“웅… 사, 사랑해…♡”
“…….”
“하, 아…♡ 계, 계속 하셔도, 돼요…♡”
“방금 그게 무슨 소리지? 설명해.”
“네…?”
“승윤 씨의 망상 때문에 날 찾아왔다고 했을 텐데.”
헤이즈가 천천히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침대에 등을 대고 누우면서 나를 올려다본다.
그리고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 다리를 활짝 벌리고, 손으로는 방금까지 내 자지가 처박혀있던 구멍을 벌린다.
“대답해.”
“오빠는… 제가 거짓말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
“어차피 돌아가서 다 말해주면, 오빠는 맨날 좋아해줬어요…. 지금까지 항상.”
“…….”
조금 혼란스럽다.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지? 방금의 전화? 아니면… 내 객실로 찾아온 이유?
하지만… 지금 내가 그만둔다 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
이미 콘돔 네 개를 채우고, 한 개를 쓰는 중이며, 마지막 하나도… 쓸 예정인데.
“내일… 바닷가, 나가세요?”
“…….”
“저… 이번 휴가에 입으려고 수영복도 새로 샀거든요.”
“낮에 봤다.”
“그거 말고… 또 있어요. 오빠한테도 아직 안보여줬는데….”
움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든, 하지만 내 욕망에서 제법 많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소유욕을 건드리는 말이다.
의도한 부분인가? 방금 전… 헤이즈의 발언.
“…나중에 보도록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