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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EP074-외전-결혼 (5)


“표정이 좋지 않네.” “…당연하죠. 망상이 일어나려고 할 때만 아니면 저도 멀쩡하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흥분이라는 감정은 일시적이다. 어제 치료 센터에서 이 의사에게… 입에 담기 부끄러운 일들을 당한 다음. 집에서 은지가 매튜 씨에게 따먹히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망상을 부풀리고. 그 다음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그 망상을 해소하면,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오싹한 쾌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그 다음은… 자괴감, 그리고 죄책감이 뒤늦게 찾아온다. “흥분을 이기지 못한 지부장이 연인을 멋대로 탐했고, 오늘도 그렇게 할 거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그건 제가 부탁한 일에 포함되는 거니까 매튜 씨를 탓할 수 없어요.” “그래, 물론 그렇지. 자기 주제 파악은 잘 하고 있군.” “…….” “그런 울적한 기분으로는 자지도 잘 서지 않을 테니… 아니, 당신 같은 마조 돼지는 다른가?” “…할 거면 빨리 끝내죠.” “들어봐. 그런 기분으로 치료를 하는 것보다, 내가 조금 더 재미있는 제안을 해주려고 그래.” “필요 없습니다.” “얘기를 들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 이 여자가 하는 제안이 뭐가 됐든 나에게 딱히 유익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 “…들어나 보죠.” “더스트라는 히어로, 알지?” “모를 수가 없죠.” “그 여자는 배신자야.” “…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더스트 씨가… 배신자라고? 누구를 배신했다는 거지? 나를? 은지를? 아니면 매튜 씨를? “더… 더 자세하게 말해봐요.” “흥미가 좀 생겼나?” “빨리요.” “지부장이 종마 계획의 피해자라는 점은 당신도 알고 있지?” “네. 은지에게 들었어요.” “그리고 더스트, 그 히어로가 지부장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것도.” “…네.” 더스트 씨는 피해자에 가까운 위치 아니었나? 그런데 왜 배신자라고 하는 거지. “그 여자는 오히려 그렇게 직접 육체 관계를 가졌기에 종마 계획 관계자들에게 감화되었고, 여전히 종마 계획에 협조하고 있어.” “…….” “그래서 일부러 당신의 연인과 지부장을 붙여놓으려고 유도했지. 왜? 종마에게 어울리는 짝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당신의 연인을.” “그… 그건 마, 말도 안돼요.” “정말? 당신은 꽤 똑똑한 사람이잖아. 잘 생각해봐.” “…….” 궤변이라고 하기에는, 지금 이 상황이 이 의사의 말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더스트 씨가 자리를 비우고 자신의 빈자리에 적극적으로 은지를 끌어당긴 지금의 상황 말이다. “그 여자에게… 엿을 먹여보자고.” “왜죠? 당신이 왜 그런 짓을….” “재미있잖아.” “…….”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이거야.” “…드, 들어나 보죠.” “당신의 연인이 지부장의 비서를 맡는 거지.”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요?” “아니, 앞으로도 쭉. 더스트, 그 여자를 밀어내고 대신 들어가.” 앞으로도 쭉…? “…왜요?” “그 여자가 돌아오면 분명 종마 계획을 다시 이어가려고 할 걸. 그 꼴은 당신도 보기 싫잖아?” “하지만 그, 그러면 은지가 계속 매튜 씨의 옆에 있어야 하는데요.” “그것도 당신에게는 이득 아닌가? 피학 – 망상이 완치되지 않는 한, 지금처럼 강도 높은 자극은 필수적이야.” “…….” “잊지 않았겠지? 당신의 병에는 내성이 있어. 완치되면 그 날로 비서직에서 물러나면 끝. 어때?” “결국 매튜 씨와 은지가 계속 관계를 맺는다면… 더스트 씨의 목적대로 되는 거잖아요.” “아니지, 아니지.” 이 의사, 웃고 있다. 이 대화가 무척 즐겁다는 듯이, 옅지만 분명하고 선명한 미소를 짓고 있다. “결혼은 결국 당신과 하면 되잖아.” “…….” “종마의 파트너가 될 지는 몰라도, 짝이 되지는 않는다. 피임약만 쓰면 자식은 만들어지지 않아. 설령 자식이 생겨도… 법적으로는 종마의 아이가 아닌, 당신의 아이지.” “마, 맞아요. 피임약. 피임약도 더스트 씨가 관리하는데….” “그건 상부에서 지급을 받는 형식이야. 당신의 연인이 비서가 된다면 그걸 관리하는 사람도 바뀌지.” “…은지로요?” “그래.” 이, 이게 맞는 걸까? 이 여자의 말을 믿어도 되는 거야? 더스트 씨는 A급 히어로에 매튜 씨의 비서인데… 일단 얘기부터 해봐야 하는데. “그 여자가 배신자라는 증거는 이미 내가 전부 확보해뒀어.” “…그러니까, 왜 그렇게 했는데요? 그리고 그걸 왜 저한테 말하는 건데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당신도 그렇잖아?” “네…?” 이런 생각을 하루이틀 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이 여자… 이해하기 어려워. 대체 정체가 뭐야…? “선택은 당신이 해.” “…….” “다시 불안하고 밋밋하지만 그럭저럭 견딜 수 있던 날들로 돌아가겠어? 아니면 이 자극적인 상황을 조금 더 이어가보겠어?” 자극적인 상황. 은지가 매튜 씨의 비서로 근무하면서, 어제처럼 기회가 날 때마다… 무슨 일이 생기는. 예측할 수 없지만 기대할 수밖에 없다. 내 머리는 고장났으니까. “…해보죠.” “좋아.” *** “아, 안녕하세요… 지부장님.” “…….” 어색하지는 않아. 살짝 긴장되는 건 맞고.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오빠는 내가 잘 해주고 있다고 말해줬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조금 더 거짓말쟁이로 있을 수 있어. “어제는… 잘 들어가셨어요?” “…….” 나를 보는 매튜 씨의 시선이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해. 하, 하긴… 어제 내가 그렇게 먼저 다가갔으니까, 당연한 건가…? “이쪽으로.” “네? 아, 아… 네.” “…어제의 일, 승윤 씨를 위한 행동이었다는 점은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 “앞으로는 저도 신중하게 행동하겠지만, 헤이즈가 비서로 있는 오늘까지는… 어제와 같이 행동해도 괜찮을지 묻고 싶습니다.” “오늘, 까지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자제력도 슬슬 한계에 가까워졌기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매튜 씨는 참는 것에 익숙한 사람처럼 보인다. 더스트 언니의 설명 덕분에 이해할 수 있었지만, 호텔에서 침대 시트를 꽉 붙잡은 것도 분명… 참은 거겠지. 하지만 그런 사람의 자제력이 한계에 가까워졌다고 한다. 왜? ‘너 같은 여자. 지부장님이 좋아해.’ 나… 때문에. 오빠 때문이 아니야. 이건 나 때문이야. 그러니까 책임을 지는 것도…. “…저는 괜찮아요.” “…….” 여기서 다시, 거짓말. 괜찮아. 오빠가 어제처럼 이어가도 될 것 같다고 말했잖아. 내가 거짓말을 해서 매튜 씨를 흥분시킨 이야기를 오빠는 훨씬 더 좋아해줬잖아. “그럼 바로… 할까요?” “…예?” “어제 지부장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바로 박기 편하게 슈트… 입고 오라고.” “…….” 나, 조금씩 뭔가를 알아가는 것 같아. 오빠를, 오빠의 망상을 만족시키는 방법도. 왜 더스트 언니가 콘돔 없이 하는 게 훨씬 기분 좋다고 했는지도. 어떻게 하면… 매튜 씨가 흥분하는 지도. 다시, 거짓말. “어젯밤부터 계속… 오늘 아침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 “지부장님도 기다리셨어요…?” “…하아.” “전, 사무실 들어오자마자 또 따먹힐 거라고 생각해서 미리 피임약도 먹고 왔는데…♡” …피임약을 미리 먹고 왔다는 말은 진짜야. 다른 말들은 당연히, 거짓말…♡ “지퍼 내려.” “…♡” *** 익명의 내부고발자가 준비한 증거들의 효과는 강력했다. 자료를 전달받은 매튜 씨가 즉시 더스트 씨를 비서직에서 해고하고 업무에서 배제한 뒤, 부산 출장에서 복귀하지 말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한 뒤 적절한 처분이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정대로 더스트 씨의 자리, 그러니까 매튜 씨의 비서직에는… 이미 임시 비서를 맡고 있던 은지가 들어가게 되었다. “괜찮겠어? 은지야. 갑자기 결정된 건데….” “웅? 나는 당연히 괜찮지! 더스트 언니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건…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 진찰이 끝나고 돌아가기 전, 복도에서 우연히 두 사람을 마주쳤다. 매튜 씨는 나를 보며 묵묵히 목례를 할 뿐, 말이 없었다. 생각이 조금 많아 보이기도 한다. 하긴, 몇 년 동안 자신의 가장 옆에서 머무르며 같이 지내던 비서가 배신자라면… 나라도 적잖이 충격을 받을 거야. “그럼… 나 먼저 가볼게. 이따가 집에서 봐, 은지야.” “웅! 이따가 봐, 오빠.” “…….” 오늘이 마지막이 될 줄 알았던 은지의 임시 비서직 기간이 갑자기 무기한 연장되어버렸다. 괜찮은 걸까? ‘날 믿어. 이 방법이 최선이야.’ ‘…….’ ‘만약 더스트, 그 여자가 돌아와서 비서 자리로 돌아오면 당신과 당신의 연인은 계속 놀아나는 꼴이 되는 거야.’ ‘하지만 은지는….’ ‘그 여자는 걱정거리를 하나 없앤 채로 조금 더 기분 좋아질 수 있는 거지. 당신도 마찬가지야. ‘저요?’ ‘이전까지 쓰던 방법보다 지금이 훨씬 더 기분 좋잖아?’ …괜찮고 말고. 아직 집에 가지도 않았는데 이미 내 머릿속은 오늘, 그리고 내일, 그 다음날… 은지가 가져올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로 가득하다. 나를 보면서 손을 살짝 흔들어주는 은지의 미소는 이번에도 왠지 모르게 약간 낯설다. 하지만… 걱정되지는 않는다. 낯선 것들은 결국 보다 보면 익숙한 것으로 변하기에.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다. “…오빠?” “어… 어?” “나, 오늘 배워야할 것도 많고 갑자기 일이 늘어나서… 조금 늦게 들어갈 것 같아.” “…그래?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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