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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EP056-재현


빈 병실. 어질러진 침대와 불이 꺼진 스크린. “…….” 사람은, 퍼즐이다. 사람의 조각들을 모아서 맞는 위치를 찾아 하나씩 끼우다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퍼즐은 꽤 복잡했고, 어느 부분은 아예 앞뒤가 뒤집혀 있었다. 뭐… 그 중에는 내가 뒤집어버린 부분도 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어떤 부분은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도록 아예 색깔 없이 새하얀 무지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게 어떤 부분이냐고? 오직 한 사람에게만 드러나는 과도한 이타심과 책임감. 온갖 행위에 흥분하는 변태가 되도록 사고가 비틀어졌는데도 유난히 견디기 힘들어하는 보태배. 일반인이라고 하기에는 수상할 정도로 높은 정신력과 내구성. 우우웅- ‘C가 건물 내부로 진입했어.’ “…….” 사람은 이유없이 행동하지 않아. 당신처럼 똑똑한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면… 그 새하얀 조각은 어떻게 만들어진 거지? 처음부터 색깔이 없었던 건가? 아니면, 그 색깔을 지워버린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새하얀 색으로 덧씌웠나? “하아….” 머리로는 지금이 이곳을 떠나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걸 알면서도…. 난, 알고 싶다. 증명하고 싶다. 그 사랑놀이가 언제까지 이어지는 건지. 정말, 끝나지 않는 사랑 놀이가 있긴 한 건지. “하… 하, 하….” 재미있네.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우우웅- ‘A는 현장 인근에 머무는 중.’ 역시, 이 끝은 내 두 눈으로 직접 봐야겠네. 그래야 의미가 있는 거잖아? *** 콰아아아아앙-!!! “으아아악!! 허, 허억, 헉…! 너, 너, 너 미쳤어? 여, 여기 서울 시내 한복판이라고!” “알아.” 콰아아아앙-!!!! “잘 피하네. 출력 조절도 안하고 있는데.” “허, 허억… 허어, 허억… 네가 감히 이, 이딴 짓을 하고도 괜찮을 것 같아?” “잡았다.” 바닥에 엎어진 이 남자의 멱살을 붙잡자마자 뻗어와서 내 어깨를 더듬는 손. 그러더니 순식간에 눈 앞에 있는 얼굴이 오빠의 얼굴로 다시 변한다. “어… 어때? 오빠야, 오빠. 으, 응? 오빠 얼굴인데 때, 때릴 수 있어?” “…….” 오빠 얼굴, 오빠 목소리…. ……. 음…. 아직 헷갈리는 부분이 많아서 좀 걸리기는 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난 전에도 때려본 적 있어.” “뭐?” 뻐억-! “케, 케헥… 커, 헉….” “…….” “헤이즈!” 아… 익숙한 목소리. 지부장님이네. 오빠가 믿는 지부장님. 그러니까 나도 믿을 수 있는 지부장님. “그만. 거기까지 했으면 충분해.” “…….” “이미 부상이 심각하다. 이제 그만….” 콰아아앙-!!!! “아아아아아악!!! 내, 내 발! 내 발!!!” “헤이즈!!” “…….” “경고한다. 더 이상 행동하지 마.” 오빠. 나,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머릿속이 뒤죽박죽 섞인 것 같아서 많이 헷갈려. 그런데… 오빠는 계속 모르고 있어도 될 것 같아. 그러니까 이 남자는 없어져야 해. 콰아아아앙-!!! *** “으, 은지야….” “진정하시죠. 헤이즈 씨는 괜찮을 겁니다. 지부장님이 직접 안으로 들어가셨으니까요.” 은지가 안에 있다는 호텔의 바로 옆 빌딩 옥상. 지상 쪽은 많이 소란스럽기에 미라지 씨의 도움을 받아 이쪽으로 안내를 받았지만… 불안한 건 매한가지다. 끼이이익- 뒤에서 옥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뒤이어서 들려오는 몇 차례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 “미라지, 수고했어. 이제 복귀해도 좋아.” “아! 더스트 씨가 오셨네요. 이럼 뭐, 정말로 걱정할 필요 없겠는데요?” 미라지 씨가 내 어깨를 탁, 탁 두드려주고는 가볍게 웃어준다. 그리고 더스트 씨가 옆으로 다가와 여전히 폭발음이 울리고 있는 호텔을 내려다본다. “S급 히어로 두 명의 충돌이라고 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헤이즈의 압도적인 우세라고 합니다.” “…….” “특성 계열의 상성 차이도 있지만, 헤이즈가 특성의 출력을 조절하지 않는 수준이라서 조금… 위험합니다.” “…….” 괜찮은 걸까, 은지는. 나는 여전히 은지가 마지막에… 내가 봤다는 환상의 실체를 알게 되자 화를 낸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했던 부탁들을 들어주면서 은지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물어보고 싶다. 나는 모르고 네가 아는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흠….” “…….” 심란한 나와는 다르게, 더스트 씨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호텔 쪽을 바라보고 있다. 걱정이 되지 않는 걸까? 은지랑 매튜 씨가. 둘이 얼마나 강한 사람들인지 알고 있기에 싸움이 끝나는 때를 기다리기만 하는 건가? 콰아아앙-!! 다시, 호텔 쪽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폭발음. 그리고 함께 일어나는 연보랏빛 연기. “음.” 그걸 보며 나지막이 한 음절을 뱉는 더스트 씨.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방금까지 들려오던 폭발음과는 조금 다른, 한층 더 크고 거친 폭발음이었다. 일어나는 연기도 보라색이 아닌 탁한 잿빛. 쿠구구구궁- “어…?” 호텔 건물의 외벽에 커다란 금이 가면서 불길한 소리가 나더니, 건물이… 무너진다. 커다란 호텔이 옆으로 서있던 그 위치에서 그대로 밑을 향해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가라앉는다. “어… 어? 으, 으, 은지… 은지가, 아, 안에….” “…….” 치지지직- “말해.” ‘더스트 님, 보셨습니까? 호텔이 통째로….’ “보고 있어. 내부 인원은?” ‘현재 파악 중에 있습니다.’ “파악되는 즉시 보고해.” 아… 아니지? 설마. 은지가 이렇게, 죽….” “사망했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 “이 호텔은 테러에 대비하여 하층, 그 중에서도 건물 중심부는 상당히 견고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럼….” “아마 잔해에 파묻히더라도 두 사람이 머무르며 구조를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할 겁니다.” 더스트 씨는 붕괴가 일어난 호텔 주변의 크고 작은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지부장님은…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으신 적이 있습니다.” “…….” “그때의 경험은 이런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때의 경험? 그거, 설마… 테러 때문에 건물 지하에 갇혔다는 그걸… 말하는 건가? 그리고 그때, 매튜 씨는 더스트 씨를…. “아… 아니, 안돼… 안돼요. 그건….” “그건 지부장님에게 달렸죠. 전… 믿습니다.” 상상도 하기 싫은 가능성이 떠오른다. 아니야. 어쩌면 은지가 매튜 씨를 이길 수도 있을 거야. 매튜 씨라면 이번에는 이성을 유지하면서 구조를 기다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만약에, 은지가 매튜 씨를 이기지 못한다면. 매튜 씨가 이번에도 트라우마가 올라와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면. “…아, 아.” 치지지직- “말해.” ‘현재 잔해 내부에 지부장님과 헤이즈, 두 명 모두 고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도그마는? 구출까지 필요한 시간은?” ‘도그마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추가 붕괴 위험성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확인.” 제발. 그런 미래 만큼은 나에게 보여주지 말아줘, 은지야. “…….” “승윤 씨? 괜찮으십니까?” “…아.” “승윤 씨!” *** *** *** “오빠?” “…….” “오빠아…?” “…아.” 또 왔네, 얘. “크, 크흠. 저, 저 아시면서 왜 모르는 척 해요…?” “만 삼천 오백 원입니다.” “아아! 알아봤으면 인사라도 해줘요!” “봉투에 담아드릴까요?” 얘는 우리 과에 새로 들어온 새내기다. 적당히 예쁘고, 적당히 귀엽고, 잘 웃고, 돈 많고… 남자들이 딱 좋아할 스타일. …가슴도 크고. “이… 이거, 오빠 드세요.” “…….” “호, 혼자 다 못 마셔서! 그래서 드리는 거예요!” 원 플러스 원 행사 상품인 음료수 캔 하나를 내 쪽으로 쏙 내민다. 상당히 낡아빠진 수법이다. 얘는 맨날 이걸 마신다.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료수지만…. 말을 해줘도 어차피 소용없을 거다. “결제됐습니다.” “…….” “안녕히 가세요.” “…….” “안녕히, 가세요.” 할 말이 있는데 꺼내질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조금 답답하지만 여기서 삼 초 정도 기다리면…. “그, 오… 오빠?” 이렇게 말을 꺼낸다. “왜요.” “내, 내일! 수업 끝나고 바쁘세… 요?” “…….” “아, 아, 아니! 지난번에 그… 그거, 고마워서….” 여기서 ‘그거’는 신입생 환영회에서 이상한 새끼가 자꾸 집적거리는 걸 떼어내 준 걸 말하는 거다. 아마 그대로 뒀으면 멋모르는 신입생이 선배 따라갔다가 모텔에서 따먹히는 전개로 흘러갔을 거고. 그리고 나는… 딱히 쟤를 도와주려고 한 게 아니다. 내가 볼 재미를 뺏기는 게 싫었을 뿐이다. “고마워서, 뭐요.” “제가 바, 밥! 밥 사드릴게요! 맛있는 거! 오빠 먹고 싶은 거!” “그러던가.” “지… 진짜죠? 내일! 내일 까먹으면 안돼요!” 방긋방긋 웃으면서 봉투를 받아 든 네가 문을 열고 나간다. 좋게 말하면 독특한, 나쁘게 말하면 이상한 애다. 보통 세 번 정도 따먹히고 나면 내가 쎄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슬슬 거리를 벌리던데. “그래도, 뭐… 조만간이지.” 어차피 길게 볼 사이도 아니니까 괜히 관심 가지지 말자. 그럼 난… 미리 콘돔이나 계산 해둘까? 쟤는 맨날 안사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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