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EP057-가시
히어로와 빌런의 시대.
영웅과 테러의 시대.
부모의 얼굴이나 목소리에 대한 기억을 가지지 못한 나는 스스로가 운이 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테러의 잔재, 고아.
시대에 이름을 새기지 못하고 천천히 스러져갈 한 사람, 의욕 없는 평범한 소시민.
그게 나였다.
“특성이… 있네요?”
“네?”
“학생, 각성을 했어요. 종종 자신도 모르게 각성을 하고 뒤늦게 특성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평범하게 건강 검진을 받던 중 의사가 나에게 특성이 있다고 알려줬다.
히어로와 빌런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거리가 먼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나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 이해했다.
“무슨 특성인데요?”
“B급… 어쩌면 A급까지도 가능할 수 있어요. 기억을 평범한 가짜 기억으로 덮어 씌우는 정신 계열인데.”
“…….”
“평균적인 출력이라면, 반나절 가량의 기억을 평범하고 무난한 기억으로 덮어씌우는 식으로 작동하려나.
“…그래서요?”
“하지만 기억이 사라져도 감각이나 감정은 남으니까 완벽한 기억 소거라고 보기엔 어렵고….”
“아하.”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특성을 사용해서 기억을 지운 사람은 바로 그 의사였다.
나는 히어로도 빌런도 되고 싶지 않았기에.
물 흐르듯 조용한 삶을 바라고, 이미 혼자에 익숙해진 내가 각성을 한다고 히어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적 없다.
그랬던 내가 두번째로 특성을 사용한 건 대학교 1학년, 새내기가 되어 처음으로 누군가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은 뒤였다.
***
“오빠, 지금 3학년이라고 했죠?”
“네.”
“그, 그럼 말 편하게 하셔도 되는데….”
“존댓말이 편해서.”
학교 앞 번화가 거리에 있는 식당.
제법 가격대가 있는 곳이다.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나에게는 뼈아픈 지출이 되겠지만… 벌써 세 번이나 와버렸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유약한 성격은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다.
“흠, 흠!”
“…….”
“흠!”
“왜요.”
“이, 이 옷 어때요?”
“비싸 보이네.”
부자는 굳이 티를 내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티가 나더라.
대놓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얘는 금수저.
반대로 나는 부모가 없는 무수저.
“아니이… 잘 어울려요?”
“나름.”
“…히.”
“…….”
“그… 오빠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요?”
이 질문, 이번으로 세번째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같은 대답을 할 거다.
“아침밥 해주는 여자.”
“오… 아, 알겠어요.”
알기는 뭘 알아?
매번 잊어버리면서.
“그런데 오빠는 왜 맨날 혼자 다녀요?”
“…….”
“아니! 그, 치… 친구 없냐는 뜻이 아니라!”
“…….”
“그, 그럼 그런 거 없어요? 대학교 생활 꿀팁!”
얘는 매번 어떻게든 말을 붙이려고 하는 모습이….
…….
하아.
“꿀팁, 있죠.”
“뭐, 뭔데요?”
“남자 조심해라.”
“아.”
“특히 지난번처럼 술자리. 집 들어갈 때 가족이나 친구랑 전화하면서 들어가기.”
“그럼 오, 오빠도 조심해야 하는…?”
“당연하지.”
얘는 좀, 조심성이 없다.
착하고 순수한 건 좋은데… 남을 너무 잘 믿는다.
“근데 저… 밤에 전화할 친구 없는데.”
“…….”
“다음엔 오빠랑 전화….”
“알바하느라 바빠요.”
“매, 맨날 하는 거 아니잖아요!”
“어떻게 알아요?”
“제가 맨날 거기 가는데.”
그래. 일을 할 때마다 와서 음료수 하나 주고 이것저것 쫑알대다가 돌아가고.
알면서 왜 물어봤대.
“평일에는 출근해요.”
“그럼 주말에는 전화해도 돼요?”
“그러던가.”
“히히히….”
이런 것도 잠깐이지, 오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무방비한 애는 언제나 호시탐탐 노려지고 있다.
살짝 신경을 끄면 그대로 다른 남자에게 채여가겠지.
“오빠, 다 먹었으면 이제 가, 갈까요…?”
“계산은 더치페이 해요.”
“제, 제가 살게요!”
“됐어요.”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한 하늘이 옅은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다.
“오빠는 집… 어디 쪽이예요?”
처음에는 이 사거리에서 오른쪽이라고 대답했더니 같은 방향이라고 대답하더라.
두번째에는 여기서 직진한다고 했더니 또 같은 방향이라고 대답하더라.
“여기서 왼쪽으로 쭉.”
“저, 저도! 저도 그쪽인데.”
“…….”
“좀만 같이 가, 주시면 안돼요…?”
“…그래요.”
남자 조심하라는 말을 계속 해봐도 얘는 조심성이 없다.
조금 더 쌔게 말하는 법을 알아봐야 하는 걸까.
“…오빠는 여자친구 없어요?”
“네.”
“그, 그래요? 인기 많은 거 같은데.”
“왜요?”
외모는 개연성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기만질을 한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말이 싫다.
“적당히 반반하게 생겨서?”
“에? 아, 아, 아뇨! 오빠는… 다정하잖아요.”
“몇 번 봤다고.”
“저도 조, 좋은 사람이랑 나쁜 사람 구분할 줄 알거든요? 애 아니거든요?”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네.
멍청하다고 하기에는… 그냥, 사람을 너무 잘 믿는 성격이야.
그게 그건가…?
“그럼 오빠는… 그, 연애할 생각 없어요…?”
“네.”
“왜, 왜요? 왜요?”
이렇게 속이 다 보이는 질문이나 하고.
그리고 나는, 그런 질문에 다 대답을 해주고.
“취향이 좀… 쉽지 않아서.”
“네? 무, 무슨 취향이요?”
“몰라도 돼요.”
“에?”
이제 여기가 고비다.
번화가가 끝나가는 길목, 모텔의 간판이 이곳저곳에서 깜빡거리는 구간.
사거리에서 어느 쪽으로 나가도 꼭 있는 모텔 거리.
“…….”
“…….”
“그… 오, 오빠.”
아.
“…왜요.”
“쉬… 쉬, 쉬었다가 갈래요?”
“…….”
“이렇게 하… 한다던데, 대학생들은….”
겨우 술자리에서 한 번 도와줬다고.
겨우 알바하는 편의점에서 한 달 정도 말동무가 되었다고.
겨우 학교에서 인사 몇 번, 밤에는 디엠 몇 번….
마지막으로 데이트라고 부르기도 초라한 만남의 끝에서, 너는 이번에도 같은 말을 하는구나.
어느새 나는 너에게 너무 많은 정을 줘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
“오… 오빠?”
“가요.”
딱 잘라서 네 마음을 거절하는 것과, 기억나지 않는 찝찝함과 거부감에 자연스레 멀어지는 것.
네가 덜 힘들어할 수 있는 쪽은 아무래도 후자겠지.
게다가 나는 이런 기회를 아무렇지 않게 걷어찰 수 있을 정도의 성인군자도 아니라고.
…결국 오늘도 쓰는구나, 콘돔.
***
“속옷 신경 썼네. 어차피 다 벗겼지만.”
“…으, 읏.”
“나올 때부터 따먹힐 생각 하고 나온 거야?”
“아… 아, 아니요…. 혹시 모, 모르니까….”
“벌써부터 보지 적셔놓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대학 생활 3년째.
원치 않게 알게 된 내 성적인 성향은 여전하다.
“입 벌려봐.”
“아, 아…?”
“혀 내밀어.”
“헤, 헤에…. 으우, 으, 웁…♡ 우, 으붑, 읍…♡”
얘는 가슴이 좀 민감하다.
많이 민감한 수준은 아니고… 만져주면 적당히 기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매일 꾸준히 만져주면 언젠가는 밖에서 가슴만 살짝 만져줘도 젖으려나.
…또 나쁜 생각.
“파하, 하, 하아-♡ 하, 하아-♡”
“다리 벌려봐.”
“으, 으우… 부, 부끄러운데… 불만 꺼, 꺼주….”
“벌려.”
“…으읏.”
얘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조금 얕은 곳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눌러주면 좋아하더라.
그러면서 손바닥으로 클리 눌러서 쌔게 짓눌러주면-
“흐읍-♡ 으, 읍…♡”
“방금 갔지.”
“아, 아니요오….”
“갔잖아. 여기 이렇게 쑤셔주면 보지가 좋다고 조여대는데.”
보지즙이 질질 흘러서 손바닥을 적신다.
부끄러워하는 탓에 자꾸만 오므라드는 다리는 힘으로 눌러서 닫지 못하게 만든 채로, 계속 손가락을 두 개로 늘린다.
“으읍, 흐, 읍-♡”
“보지에 힘 빼.”
“후, 후아…♡ 하, 하아, 하…♡”
“자지 빨아본 적 있어?”
“아, 아니요오….”
알고 있다.
너에게는 이런 상황이 아예 처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네 처녀를 가져간 건 나니까.
“남자 조심하라고 한 지 몇 분 됐다고 모텔 가자고 꼬리치고.”
“꼬리친 거 아… 아닌데….”
“그럼 뭔데?”
“…….”
“맞잖아. 콘돔도 사왔지?”
“아, 아니요….”
이번에도 여전한 너 때문에… 이걸 또 샀다, 내가.
콘돔 비싼데… 하.
“콘돔도 없는데 모텔 가자고 한 거야? 존나 변태년이었네, 이거.”
“으, 으읏…♡”
“변태라는 소리 들으면서 보지 조이지 마라.”
“히-♡ 히, 으읍♡ 읍♡ 히, 윽♡”
“입 벌려.”
“헤, 헤에-♡ 헤으, 으, 웁♡ 으으웁♡”
너무, 너무… 너무 쉽잖아, 너.
이러면 안된다고.
“엎드려.”
“으… 으, 읏…♡”
“처음이니까 살살 해달라는 말 하지마라.”
“너, 너무해요….”
“그러게 남자 조심하라고 했지.”
콘돔을 뜯는다.
이 새하얗고 말랑한 엉덩이에 내 손자국을 남겨서 붉게 물들이고 싶다.
네 가느다란 목을 조르고 내 멋대로 호흡을 통제하면서 가버리게 만들고 싶다.
분홍빛 유두에 내 취향에 맞는 피어싱을 달아주는 건 또 어떨까.
“…하아.”
“그, 그래도 저는… 괜찮아요, 오빠….”
“뭐가 괜찮아?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남자한테 보지 대주는 게 괜찮아?”
“아… 아니, 오빠니까….”
그런 말을 하던 사람도 몇 명 있었는데, 세 번은 넘기지 못하고 나를 피하더라.
너는 다를까?
…아니. 기대를 하면 실망만 커진다는 걸,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배웠다.
“허리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