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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EP052-과거


우우웅- “아… 씨, 게임하는데.” ‘C가 직접 부산으로 이동할 예정이야. 따라서 C가 서울로 복귀할 때까지 데드라인은 유예.’ “부산? 아하… 도그마를 떼어낼 방법이 없으니 뭔가 수를 쓰겠다는 건가?” 그것도 재미있지. 나는 딱히 그쪽에 미련이 없어서 알 바 아니기도 하고. 도그마한테 알려줄 이유? 음… 없어. 오히려 내버려두면 혼자서 열폭할 가능성도 있으니 좋지. ‘A의 배경에 대해 조사해보고 싶은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네 일에 집중해.’ “…쯧.” 버릇없는 년.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알면서 꼭 저렇게 말을 한다니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해관계가 맞으니까 눈감아주지. “평범한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내구성이 이상할 정도로 좋으니까… 누가 어떻게 조립한 건지 궁금해지잖아.” 그 골빈년이 이 정도로 꼼꼼하게 완성했을 리는 없고. 게다가 한번 크게 망가트렸는데도 삐걱거리면서 움직이는 꼴이 볼만 해서 더 재미있어. 하지만… 그렇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절뚝거리면서도 늘 제자리로 돌아가려 하는 이유는? 그 이유를 전부 알아낼 때까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네. “음… 생각하니까 좀 꼴릴지도.” 다음 번에 한 번 더 수면 검사를 권유해볼까? 아니… 일단은 조사부터. 욕망이 학구열보다 앞서는 건 불가능하잖아. 방금 판단은 너답지 않았어, 레나 로마노프. *** 피학 – 망상. 빌런이 내게 강제로 심은 특성의 이름이다. 가장 괴로운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내는 망상증과 괴로움에서 쾌감을 얻는 피학증이 합쳐진, 특성보다는 정신 질환에 가까운 병이다. “으… 최소 세 번은 비누칠을 해야 겨우 닦이잖아. 대체 입술을 얼마나 쌔게 누른 거야?” 그리고 빌런 덕분에 내 괴로움은 은지와 연결되도록 강제되어 있다. …고 예전에, 지금의 의사 말고 이전의 의사가 말을 했었다. 그런데 요즘, 왜 자꾸 망상에 의사가 튀어나오는 거지? “하아… 이유가 뭘까.” 좋게 생각을 해보면, 빌런이 설정한 강제력이 약해졌다는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치료를 받고 있고 나도 최근에는 망상의 빈도와 강도가 많이 완화됐다고 체감할 정도니까. 그래서 이젠 꼭 은지가 아니더라도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을 망상으로 그려내는 거지. …내가 의사랑 그런 짓을 하고 싶을 리가 없으니까, 역으로 망상에 튀어나오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역시 의사가 수상해.” 매튜 씨에게 말을 해보려고 했는데 출장 중이라서 그런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로 일을 방해하기엔 매튜 씨가 너무 높은 자리에 있기도 하고. 평범한 일반인인 내가 혼자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주제에 대한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아. 결국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은지에게 솔직하게 말을 하는 것 뿐이네. 삑- 띠, 띠, 띠, 띠- 마침 은지가 왔다. 생중계되는 영상 속 은지는… 많이 지쳐 보였다. 오늘은 나도, 그… 마무리를 의사에게 맡기고 왔으니까, 은지에게 더 부탁할 일은 없을 거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은지야.” 집으로 돌아온 은지를 맞이하기 위해 현관으로 향한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은지는 평소처럼 내 인사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지만, 흠칫하고 몸이 순간 떨린다. “아… 오, 오빠지. 후아….” “왜 그래?” “아니, 그… 도그마 씨 때문에.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나, 난 괜찮아.” 은지는 내가 모든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모른다. 그걸 말하기도 전에 의사가 전화기를 도로 가져가버리고는, 이쪽을 의식하지 않게 해야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다음에는 미리 말하고 생중계를 하는 것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오늘은 알리지 못했다. 일단은 이것부터 말하는 게 좋겠다. “그, 은지야.” “웅?” “거기 호텔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 같아.” “에? 카… 카메라?” “응. 그래서 나랑 의사랑 같이 있던 게, 너랑 도그마 씨를 같이 보고 있었던 거야.” “저, 전부 다?” “응. 그런데 우리가 볼 때에는 도그마 씨, 내 모습이 아니라 원래 모습으로 보이더라.” 전화를 했을 때 내가 의사랑 같이 있었다는 점을 은지가 신경 쓰고 있던 눈치였으니까. 이렇게 말을 하면 먼저 가벼운 오해부터 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은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르면서 입을 벙긋, 벙긋, 움직이다가 간신히 말을 뱉는다. “아… 아, 그래! 난 또… 아니, 오, 오빠를 의심했다는 게 아, 아니라! 그 의사! 의사!” “…그리고 오늘, 의사한테 입으로….” “에? 이, 입? 입으로?” “그… 진정하고, 응? 일단 들어봐.” 은지는 감정적이다. 정확히는 마음이 맑아서, 작은 감정을 한 방울만 톡 떨어트려도 순식간에 번져버린다. 특히 나에 대한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방금 말한 것처럼, 보고 있었다고 했잖아?” “으응….” “평소에는 네가 말해주면서 해주는 것들로… 사정을 하면서 마무리를 했는데, 네가 좀, 어… 바빴으니까.” “그, 그… 그치.” “그래서 영상을 보면서 혼자 하는 걸로 해보려고 했는데, 옆에서 자꾸 의사가 말을 걸어가지고….” “의, 의사! 역시 의사가 문제였지! 하… 하긴, 오빠가 그 여자한테 먼저 부탁할 리가 없잖아.” 의사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은지의 표정이 탁, 풀린다. …생중계되던 영상 속에서 허리를 높게 띄우며 가버리던 그 은지라고 하기엔 너무… 순수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네가 무슨 소리를 내면서 기분 좋게 가버렸을 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마지막에는 내 모습을 한 다른 남자에게 입을 벌려주던 모습까지, 나는…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내 눈에는 완전히 다른 남자로 보이고 있었다는 사소한 문제는 그냥 못 본 체를 한다. “시, 신경 쓸 필요 없어, 오빠! 그걸 보면서 계속 나를… 기다리는 건 아무래도 힘들었을 테니까.” “…이해해줘서 고마워.” “근데… 오빠, 도그마 씨는 좀… 그래.” “뭐가?” “아니… 좀 취향도 이, 이상하고… 오빠 모습에 오빠 목소리로 앞에 있으니까, 나도 좀 거부감이 들고.” “어색해?” “웅! 그리고 자꾸 오빠처럼 나를 이름으로 부른다니까? 특성도 이상해, 막… 어, 여, 여기에….” 부끄러워하는 은지가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킨다. “피… 피어싱이 달렸어.” “…뭐?” “지, 진짜로 달린 건 아니고! 환상 같은 건가봐. 오빠가 볼 때는 안보였지?” “어… 응. 도그마 씨도 계속 원래대로 보였으니까.” “하아아… 그 사람, 취향이 진짜 이상해. 진짜, 진짜아아. 오빠랑 너무 달라!” 피어싱… 은지에게 피어싱? …아니, 궁금한 게 아니야. 순진한 은지랑 너무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서 의아할 뿐이지. “수고했어. 오늘은 이제 쉬자. 나도 다 봤고… 해소도 했으니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유쾌한 경험도 아니었는데.” “으응… 그럼 나 마사지! 마사지해주라, 오빠.” “그럴까? 오랜만에. 다른 얘기들은… 마사지 하다가 생각나면 말해줘.” “맞아! 그 사람, 막 내 피부도 태운다? 그러니까… 태운 것처럼 보이게 해. 변태야, 변태.” 피어싱에 태닝…? 은지에게는 그렇게 보이게 하면서 나는 보지 못한다고? …혹시 어쩌면 지금도? 그런 미친 생각은 몇 초 만에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의심보다는… 욕망에 가까운 생각이었기에 억누르기 쉬웠던 것 같다. *** 잠복 근무는 익숙하다. 호텔 앞 편의점, 으슥한 그림자 밑에 차를 세워두고 가만히 호텔 입구를 지켜보면서 틈틈이 시간을 확인한다. “…….”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자기 전에는 꼭 맥주 한 캔을 마셔야 한다며 나보고 아득바득 맥주 사오라고 떼를 쓰던 네가 여전하다면. 지금은 그런 심부름을 해줄 사람이 없으니… 네가 직접 나오겠지. “…음.” 나왔다. 굳이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부장님의 지시가 있었으니까. 소리없이 차에서 내린 뒤, 네가 충분히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린 다음 차 문을 똑, 똑 두드린다. 노크 소리를 들은 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어?” “…….” “누, 누, 누나? 누나 맞나?” “내가 와 니 누나고?” “누… 누나!” 향수를 가볍게 자극할 수 있는 사투리. 오랜만에 쓰게 되어서 조금 어색하다. “달라붙지 마라. 와 친한 척인데?” “바… 바, 밥 뭇나? 내는 아… 아직인데.” “…하.” 이제 와서 불쌍한 척을 해봤자, 이 남자는… S급 판정을 받자마자 나를 버리고 튄 남자다. 이제 자기는 S급이니까 급이 맞는 사람이랑 놀겠다면서. 그래 놓고 내가 A급으로 각성을 하자 찾아와서는 하는 말이. 역시 나 밖에 없다, 다 자기 돈이랑 특성만 본다, 이제 솔직하게 살겠다… 징징대기나 하고. “됐고, 니 서울 왜 왔노?” “내… 내 하, 할 일이 있어서….” “할 일? 무슨 일? 또 여자 꼬시러 왔나.” “…….” “으휴….” 레나 로마노프와 어떻게 접촉했는지 알아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질문을 해야…. “마… 맞다, 누나는 내 특성 모, 모르제? 이, 이거 봐라!” 대뜸 내 손을 잡아채고는 악수를 하는 것처럼 붙잡는다. 충분히 뿌리칠 수 있는 속도였지만 특성에 대한 정보도 알아내야 하기에 가만히 있어줬더니, 시야가 살짝 흐려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시야 안에는… 지부장님이 있었다. “…….” “어… 어떻노? 똑같제? 으, 응?” “오… 이런 기가?” 저 얼빠진 표정만 어떻게 하면 그럭저럭 닮긴 했네. 똑같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야. 손에 돋은 근육과 굳은살, 목소리까지 완전히 똑같아. 그런데… 글쎄, 이걸로는 안돼. “내 꼬실라고? 이걸로는 안된다.” “와… 와?” “몸뚱이가 아무리 똑같아도… 그 꾸덕-한 좆물은 절대로 따라 몬한다.” “…아?” “얼마나 정자가 뻑뻑-하게 들었는지, 목구멍에 덕지덕지 붙어서 잘 내려가지도 않는다. 니 아나?” “아… 아, 아….” 모르겠지. 당연히. 딱히 알려주고 싶지도 않고. “니 묽어빠진 좆물로 그기 흉내나 낼 수 있겠나?” “…….” “가가 여 안에 싸지르면 자궁이-.“ “으… 으아악!! 으아아악!!!” ……. 도망갔네. 옛날 생각이 나서 조금 긴장이 풀어져버렸나… 나도.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기도 하고. 지부장님이 괜히 자극하지 말라고 했는데. 음… 그래도 얻은 건 있어. 손을 잡는 트리거를 통해 다른 사람의 외형을 카피할 수 있다…. 하지만 사정하는 정액 같은 세부적인 요소까지는 완벽하게 복제하지 못한다. 물론 이게 S급 특성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지부장님에게 보고할 거리는 생겼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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