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EP029-선물
아무래도 오빠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오빠도, 나도, 연락에 크게 신경을 쓰는 타입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오빠, 답장은 꼬박꼬박 잘 해주는데.
사진을 보내고 나서 한참 뒤에 다시 보면, 읽음 표시는 됐는데 답장은 없고.
그리고 또 한참 뒤에 봤냐고 물어보면 봤다고 대답은 해주고.
“오늘의 일정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네? 아… 수, 수고하셨어요, 지부장님!”
“헤이즈도 수고 많았습니다.”
걱정은 되는데, 원래 오빠는 남에게 의지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더 걱정이야.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을 게 분명하거든.
그래서 내가 맨날 혼자 끙끙 앓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그래도….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 아뇨! 괜찮아요.”
매튜 씨도 분명 고마운 사람이지만, 이건 나랑 오빠 문제니까 괜히 입 밖으로 꺼내지 말자.
게다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도 있잖아?
오빠한테 줄 기념일 선물 고르기.
“그럼… 가실까요. 가까운 곳에 백화점이 있습니다. 그 옆으로 번화가도 있고요.”
“네! 좋아요.”
***
딸치고 싶다.
이대로 저 사진에서 이어지는 순간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기분 좋게 싸버리고 싶다.
저 얇은 벽 너머에 있을 은지와 매튜 씨가 무슨 짓을 하고 있을 지, 최대한 괴로운 가능성을 그려내면서 사정하고 싶다.
“하… 하아, 후….”
하지만 하면 안된다.
참아내겠다고 스스로 약속을 했기에.
자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건 아니지만, 한 번 자위를 해버리면 나 스스로 그걸 멈출 수 있을 리가 없다.
띠링-
‘오빠! 나 지금 선물 사려고 백화점 왔는데, 받고 싶은 선물 있어?’
은지의 문자.
하지만 짧막한 메시지를 읽는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불쑥 튀어오르는 망상의 한 순간에서 눈을 돌리느라 바쁘다.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그것에 시선이 사로잡힐 것만 같아서.
“…하아.”
이렇게 말이다.
매튜 씨의 허리 위에 올라타서 손을 머리 뒤로 모은 채, 열심히 허리를 흔드느라 가슴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은지가-
“…….”
너무나 생생하게 눈 앞을 가려서.
‘네가 골라줘. 뭐든 좋으니까.’
짧은 답장을 간신히 보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은지가 준비할 선물이 기대되지 않는 건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나는 소중하고 고맙게 받을 수 있을 거다.
반대로… 오늘밤에도 나에게 도착할 사진 한 장은?
“…하아.”
사진이 아니라 차라리 동영상이라면 어떨까.
그래… 동영상. 나는 왜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만 하고, 동영상은 말하지 않은 거지?
겁이 났나? 움직이는 동영상 속에서 은지가 얼마나 열심히 허리를 흔들고 있을 지 마주하는 게?
‘혹시 오늘은 사진 말고 동여-‘
“…….”
지운다. 차마 끝까지 적지 못한 메시지를 다급하게 지운다.
은지가 출장을 가는 사이에 나는 이 망상을 참아보기로 했던 결심을 간신히 되새기면서, 숨을 고른다.
“하아아… 좋아, 또 참았어….”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집 청소나 하자.
집을 깨끗이 청소하다 보면 내 마음과 머릿속도 조금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은지가 오는 내일 밤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조금 아슬아슬할 지도 모르겠다.
…진료를 받으러 가봐야 하나.
***
“우와… 사람 진짜 많네요.”
“이 도시에서 제일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입니다.”
“혼자 왔으면 무조건 길 잃어버렸을 것 같아요….”
백화점을 한 바퀴 둘러봤는데… 이거다! 싶은 게 없어서 옆에 있는 번화가까지 오게 됐다.
그래도 몇 가지 후보 정도는 점 찍은 것들이 있긴 해서 조금만 더 보고 결정하면 될 것 같은데.
그나저나, 숙소로 돌아가면 또 오빠한테 보내줄 사진도 찍어야 하잖아?
오, 오빠 선물을 고르느라 그쪽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있었어…!
“어… 여긴 무슨 가게에요?”
“여긴….”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번화가의 한쪽에 세워진 커다란 건물, 뭔가 알록달록한 색감의 간판이 눈에 띈다.
캐릭터 일러스트처럼 생긴 입간판도 있고, 안쪽으로 옷들도 조금 보이고…?
“…성인용품점인 것 같습니다.”
“네? 이, 이렇게 큰데요?”
여, 역시 일본은 일본이구나?
근데… 잠깐만.
여기라면 오빠한테 보낼 사진에 쓸 만한 거, 있지 않을까…?
다, 당연히 이런 곳에서 기념일 선물을 고를 생각은 아니야!
“혹시, 매튜 씨… 오늘 찍을 사진, 생각 해보셨어요?”
“아직입니다.”
“그럼 여기, 잠깐만 구경이라도 하고 갈까요…? 뭔가 괜찮은 게 있을 지도 모,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승윤 씨의 취향에 맞는 소품이 있을 수도 있겠죠.”
***
뭔가 잔뜩 사버린 뒤에야 숙소에 돌아왔다.
소, 소품을 잔뜩 샀다는 게 아니라… 오빠 선물도 사고, 기념품도 사고!
…물론 그 중에는 성인용품점에서 산 것도 몇 개가 있긴 해.
“오빠는 뭐하고 있을까….”
선물은 내 마음대로 고르라는 메시지 이후로 연락이 없네.
그래도 내일이면 다시 볼 수 있고!
소… 속옷도! 이제 내일이면 오빠가 사준 속옷을 입고… 후, 후후….
“헤이즈.”
“꺄아아악! 네, 네!”
“정리가 끝나면 갈아입고 오시죠.”
아, 아직 출장 중이잖아! 정신 차리자.
그래도 사진 찍으려고 산 옷도 있고, 나중에 오빠 앞에서 입어주려고 산 옷도 있으니까.
약간 이벤트 같은 느낌으로 입으면, 오빠… 좋아하겠지?
일단 지금은 사진 찍을 때 쓰려고 산 옷으로 갈아입자.
“으, 으음… 이거 엄청… 짧네. 이렇게… 이것부터? 서, 설마 이 끈이 패, 팬티야?”
…사실 오빠도, 나도 이런 쪽으로는 흥미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많이 낯설다.
하지만 점원 분도 무난하다며 추천해주신 옷이고, 매튜 씨도 괜찮을 거라고 말했으니까….
“다… 다 입었다. 근데, 이거….”
고를 때 봤던 이미지에서 심상치 않다는 걸 확인하긴 했는데, 막상 입으니까 생각보다 더….
부끄러워….
일단 가자. 매튜 씨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저, 다 입었어요….”
“네. 사진에는 이걸 쓰도록 하죠.”
“네? 이거… 코, 콘돔….”
“행위에 대한 암시로는 가장 무난한 선택입니다.”
“어…근데 매튜 씨는 아, 안 벗으세요…?”
“오늘은 헤이즈의 사진으로 충분할 겁니다. 일부러 복장에서 큰 변화를 줬으니까요.”
그… 그런가?
하긴, 이 옷도 충분히 야… 야하고 부끄러운데.
여기서 뭘 더할 필요는 없겠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이걸 하나… 입에 물고 계시죠.”
“어… 네, 네에.”
“그리고 이것들을 이쪽에 끼워주시면….”
매튜 씨가 말하는 대로 뜯지 않은 콘돔들을 스타킹에 적당히 끼운다.
그리고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보면서 어색하게 우, 웃… 웃기 힘들지만 웃으면….
찰칵-
“후… 후아. 됐을까요…?”
“한번 보시죠.”
매튜 씨가 방금 찍은 사진을 보는데… 조금, 뭔가,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야해 보이려고 애쓰는 느낌…? 내, 내가 나를 봐서 그런 건가?
“…조금 부족해 보이지 않아요, 지부장님?”
“그건… 제가 아닌 승윤 씨가 판단할 일입니다.”
“그, 그렇긴 하죠….”
일단… 오빠한테 사진을 보내자.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한 마디만 덧붙이자.
‘혹시 조금 밋밋하면 말해줘! 한 장 더 찍어서 보내줄 테니까….’
오늘 연락이 거의 없었던 오빠라서 답장도 조금 늦게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곧바로 휴대폰이 울린다.
오빠에게서 온 답장은,
‘그럼 부탁할게. 가능하면 매튜 씨랑 같이, 조금 더 심한 사진으로.’
“그, 그렇다는 데요, 매튜 씨?”
“…….”
“혹시 오늘도… 피곤하신 건….”
“아닙니다. 빠르게 준비하겠습니다.”
***
은지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자극이 조금… 덜했다.
바뀌기 전의 의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같은 자극으로는 점점 망상을 억누르기 힘들어질 겁니다.’
정확했다.
꽤 파격적인 차림을 한 채로 콘돔을 물고 있는 은지, 분명 자극적이고 노골적이다.
나는 저런 차림을 좋아한다고 한 적이 없으니 저건 매튜 씨의 취향인 걸까?
하지만 조금… 부족해.
뭔가 한 장이 더… 이것보다 더 자극적이고 더 노골적인 사진 한 장만 더 있다면….
띠링-
왔다.
조급함이 다분하게 느껴지는 손으로 황급히 휴대폰을 들고, 문자를 확인한다.
“…하.”
더 심한 사진을 부탁한 말은 실수였을까?
방금 전 사진 속에 있던 미개봉된 콘돔들이 전부… 어떤 액체로 채워진 채, 은지의 옷에 묶여있다.
그리고 은지는 이쪽을 내려다보면서, 매튜 씨의 위로 올라타….
조금만 허리를 내리면 삽입이 되어버릴 듯한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젖혀진 팬티 너머로 이미 귀두가 보지에 닿고 있다.
“…했을까?”
설마. 은지는 그저 내가 조금 더한 자극을 부탁했기에 이런 구도로 사진을 찍은 것 뿐이다.
게다가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렇게나 많은 콘돔들을 채우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이성적으로는 저 콘돔을 채우는 액체는 물이고, 이건 연출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내 머리는….
어쩌면 전부 다 미리 찍어둔 사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억지로 끄집어내며 괴로움을 느낀다.
“하아… 후.”
사진 촬영이 끝나기 무섭게 허리를 내리는 은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S급 히어로가 되어 지부장과 출장을 갔지만, 숙소에서 노골적인 코스프레를 한 채로 떡치느라 바쁜 은지를.
그리고… 참는다.
괴로운 순간을 내 앞으로 들이밀면서 편하게 망상에 몸을 맡기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무시한다.
언제까지?
…내일 밤, 은지가 돌아오기 전까지.
‘으, 으응…♡ 오, 옷…♡’
야릇하고 가쁜 은지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매튜 씨의 취향에 맞는 옷을 입고, 콘돔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코스프레 섹스를 하는 은지의 들뜬 숨소리가.
아… 이번에는 조금, 참기 힘들지도.
너무 심한 사진을 부탁한 건가…?
“하… 하, 하아….”
그래도 참아. 이렇게 참는 연습을 하려고 은지를 출장에 보내고, 사진도 부탁한 거잖아.
지금은 내가 망상을 억누르는 걸 도와줄 사람도 곁에 없잖아.
…한 명이 있긴 하지만, 별로 도움을 받고 싶지 않은 수상한 사람이잖아.
“후- 하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