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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EP023-만약


“망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도 스스로 억누를 수 있는 수준이다?” “어… 최근에는 그런 편이죠.” “좋네요. 결국에는 본인 의지가 제일 중요한데.” 결국 은지랑 같이 다시 이 이상한 의사를 만나러 왔다. 매튜 씨에게 물어봤더니 원래 성격이 좀 괴팍한 편이라는 소문이 있긴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나도 조금 긴장을 하긴 했지만… 옆에 앉아있는 은지의 표정이 엄청나게 진지해서 왠지 귀엽다. 일단 내가 은지와 매튜 씨에게 어떤 부탁을 하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람… 왠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 모로 괴상하다. “설문지에…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괴로운 상황은 연인을 다른 남자에게 완전히 빼앗기는 것이라고 썼고.” “…….” “그럼 이렇게 해보죠?” “어떻게요…?”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듣고 있던 은지가 대신 대답을 했다. “망상 대신 상상을 하게 만들어요.” “차이가… 있어요?” “있죠. 상상은 그게 가짜라는 걸 인지하는 상태에서 주도적으로 하는 거니까.” “그럼 어떻게….” “지금은 승윤 씨가 망상을 하고, 그 다음에 모종의 방법으로 그걸 해소하는 방법을 썼죠?” “네.” “순서를 바꿔요. 먼저 뭔가를 하고, 그걸로 상상을 하던, 기대를 하던.” 수동적으로 망상을 하게 되는 것과 능동적으로 상상을 한다는 것… 거기서 거기 같아 보여도 제어할 수 있냐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진짜로 유능한 의사였던 거야, 이 여자? “그리고 이제….” 이번에는 내가 체크를 해서 가져온 설문지를 뒤적거린다. 그리고 한 가지 문항을 펜으로 짚으면서 읽어준다. “나는 다른 남자와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과 패배감을 느끼고 즐긴 적이 있냐는 질문에… 예.” “…….” “지금 승윤 씨는 답도 없는 마조니까-” “예, 예?” “맞잖아요? 빌런이 그렇게 만든 건데.” 구, 굳이 앞에 답도 없다는 말을 붙여야 하나. 하여튼… 이상해. “그런 비교를 헤이즈 씨가 하면서 승윤 씨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하세요.” “…….” “승윤 씨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도록 상황을 자세하게 제시하면서.” 은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마도 이전에 내 부탁 때문에 했던 말들이 생각난 탓이 아닐까. 그리고 의사는 어제 나에게 줬던 것과 비슷한 두께의 종이 더미를 은지에게 내민다. “자, 하면 좋을 말들. 어떻게 자극을 주면 효과적인지.” “아, 네….” “비교는… 전 남친이 있으면 전 남친으로 하거나, 아니면 대충 주변에 있는 괜찮은 남자도 좋고.” “…….” 비교 대상이 될 남자는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의사. “당분간은 원래 쓰던 방법과 이걸 같이 시도해봐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거, 여자친구한테 준 건 되도록 보지 말고.” “왜요?” 내 마지막 질문은 가볍게 무시를 당했다. 의사는 이미 우리에게 볼 일이 끝났다는 것처럼 몸을 돌려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가자.” “으… 으응.”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지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나가면서 작게, 조금은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들릴 정도로 속삭인다. “이상한 사람이지?” “…웅.” 살짝 웃으면서 대답하는 은지. 손에 들린 저 종이에 뭐가 적혀 있는지 궁금하긴 해도… 역시, 의사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참자. *** 집에 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은지랑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되어서 조금은 기쁘기도 하다. 은지는 소파에 앉아서, 아까 의사에게 받은 종이를 무척 진중한 시선으로 훑어보고 있다. “무슨 내용이길래 그렇게 보고 있어?” “으, 응? 아… 그냥 시, 신기해서.” “뭐가?” “이런 말들이 진짜로 오빠한테 도움이 되는 건가? 싶은 말들만 잔뜩 있거든….” …아직 내용은 모르지만, 아마 지금의 내 상태를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만약 이게 효과가 있다면, 매튜 씨의 도움을 받을 일이 줄어드는 거잖아.” “그치… 자꾸 부탁을 하는 건 조금 미안하기도 해.” “해볼까? 오늘.” “오… 오늘 바로?”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하면 다음에 해도 괜찮아.” “으음… 아, 아니야. 아직 어색하긴 해도… 해볼게.” 결심을 마친 은지가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방으로 향한다. 왠지… 망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뭔가를 하게 된다는 거, 조금은 어색하다. …마치 내가 원래부터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된 기분이다. “오, 오빠! 와도 돼.” “어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에, 정말로 일어날 가능성은 드물겠지만 아주 만약에. 내가 치료가 끝난 뒤에도 이런 괴로움과 짜릿함을 잊지 못해서 계속 은지와 매튜 씨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면? “…….” “이쪽으로 오, 올라 올래…?” “…응.” 다른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은지가 기다리고 있는 침대로.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은지도,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눕고, 은지도 그 옆에 따라서 천천히… 몸을 눕힌다. “먼저… 아직 많이 어색하고 서투르니까, 오빠도 웃으면 안돼?” “그럼.” “그리고 지, 지금부터 하는 말들에는 거짓말도 섞여 있으니까!” “그건 평소에도 내가 부탁하던 거니까 괜찮아.” “…그치? 으, 음. 흠. 헛기침을 하면서 목을 가다듬은 은지가 조금 더 내 쪽으로 가까이 붙는다. 부드러운 가슴이 상체에 눌리는 느낌도 분명 좋지만… 귓가에 닿는 매끄러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그… 오빠 부탁을 받고 매튜 씨랑 마지막으로 했던 날. 기억하지?” “응.” “그날 이후로 매튜 씨가 나, 나한테 엄청… 잘해준다?” “…….” 은지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방금보다 더 가까이 거리를 좁힌다. 목소리는 작고, 부드럽고, 조금은 떨리지만 약간 뜨겁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매튜 씨, 나랑 또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 “…….” “며칠 전에는, 체육관에서 운동하다가 매튜 씨랑 마주쳤는데… 필요하면 또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다. 체육관에 마사지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도 그렇고, 애초에 마사지는… 건전한 행위다. “으, 음… 사실 지난번에 마사지 받았을 때… 엄청 기분 좋기도 했고.” “…….” “매튜 씨 손… 오빠 손보다 더 크, 크고… 단단하고, 힘도 쌔니까….” 내 손을 살짝 잡고, 시선은 나를 향하면서 천천히 말을 이어가는 은지. 이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는 건, 분명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따라갔다…?” “…….” “지난번에 거기… 오빠 허락 받고, 매튜 씨한테 보… 보지까지 마, 마사지 받은 곳.” “…그리고?”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 마사지 받았는데, 몸을 꾸욱, 꾹- 누르는 힘이 엄청 쌔서… 좋거든.” “…….” “나, 엄청 얇은 바지만 입고 있기도 했고… 매튜 씨가 허벅지 안쪽을 꽉 잡고 눌러주는데….” 매튜 씨의 커다란 손이 은지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잡고 강하게 눌러주는 모습. 아슬아슬하게 보지에 닿지 않았지만, 그 힘이랑 존재감은 충분히 보지에 전해지는 그런 모습. “…좋았어. 오, 오빠가 해주는 것보다… 더 쌔서.” “…….” “그 다음에는 가, 갑자기… 두 손으로 엉덩이를 꽉, 엄청 쌔게 붙잡는 거야.” “그… 그러면 안되잖아.” “마, 맞지… 안되는데, 손가락이 자꾸 깊이 박히는 게 기분 좋아서….” “…….” “허벅지 만질 때부터, 보… 보지 옆을 손가락이 꾸우욱… 눌러주는 게 좀, 좋았거든….” 묘사가 좀… 과하게 자세하지 않나. 그런 의심마저도 지금은 오싹한 흥분이 된다. …발기했다. 그리고 발기해버린 자지가 바지를 부풀리는 모습은 당연히 은지에게도 보이게 된다. “…흐, 흥분했네, 오빠.” “하… 하아.” “이, 있잖아… 매튜 씨도 이쯤부터 발기했다…?” “…….” “예전에 오빠가, 내 몸 만지면서 매튜 씨가 흥분하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던 거… 기억하지?” “하, 하지.” 은지의 가슴을 만지면서 매튜 씨도 과연 은지의 몸으로 흥분하는 남자인지 알고 싶었다. 매튜 씨도 남자, 그것도 나보다 한참 강한 남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날이었다. “이번에도 내, 내 몸 만지면서… 발기했는데, 매튜 씨.” “…….” 은지의 손이 살살 밑으로 내려가더니, 부풀어오른 내 바지의 중앙 부분에서 멈춘다. 그리고 그것을 건드리지는 않은 채로 위로 올라가지만… 내 바지가 부푼 높이보다 위로, 조금 더 위로. “오빠도 아, 알겠지만….” “…….” “오빠보다, 훠… 훨씬, 더 크거든…? 한… 여, 여기까지 와.” “…….” “근데, 호텔에서 했을 때… 그만큼, 오빠보다 큰 만큼 더… 기, 기분 좋기도 했고….” 나를 향하고 있는 은지의 시선이 조금 위로 돌아간다. 마치… 정말로 있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 같다. “그게 엉덩이에 자꾸 다, 닿는 거야… 눌리기도 하고.” “그, 그래서… 했어?” “…매튜 씨가 고민하고 있길래.” “…….” “오빠처럼 이, 이렇게 발기했는데… 참으려고 하는 게 느껴져서, 내가… 말했어.” “뭐… 뭐라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 내가 낸 소리인지, 은지가 낸 소리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하…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고…♡” “…….” “사실 나도 바, 방금… 마사지 받으면서 살짝… 가, 가버린 것 같다고.” “…하아.”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여자친구가 나의 부탁도 없이 다른 남자에게 관계를 허락했다는 이야기는 분명 괴롭다. 나보다 더 강한 힘으로 몸을 만져지며, 더 기분 좋았던 이전의 관계를 몸이 떠올리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그게 아주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 나를… 흥분시킨다. “이, 이제 끝! 부, 부끄럽다, 이거어….” “…끝? 그 다음에는?” “에? 그야 당연히 거, 거짓말이니까 다음이 없지, 오빠!” “…아.” “의, 의사가 준 종이에… 이전의 경험이랑 연결해서 상상하게 만들어 보라고….” 아니… 이걸로는 조금, 조금 부족하다. 이게 망상이었다면 분명 여기서 끝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계속… 말해줘.” “…계속?”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그 뒤로 계속… 했다는 것처럼.” 확실히 그 의사, 유능하긴 하네. 지금 이 순간에 망상이 끼어들 틈이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완전히… 은지가 해주는 이야기에 끌려가는 기분이다. “…아, 알겠어. 오빠, 웃으면 안돼…?” “그럼.” 내가 감히 웃을 수 있겠어? 내 연인이 이미 한 번 살을 맞댄 남자에게 다시 따먹히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시 머뭇거리던 은지는, 꼭꼭 숨기려던 비밀을 마지못해 털어놓는 것처럼 눈을 내리깔면서… 말한다. “사, 사실… 말, 안했거든.” “…무슨 말?” “해도 된다는 말… 안했는데, 이미 젖어버린 거… 드, 들켰나봐, 그때….” “…….” “그냥 말없이, 내 바… 바지, 내리길래….” “…그래서?” “지난번에 말해준 거, 있지… 높이가 좀 높아서 허리, 살짝 들어줘야 한다고.” “…….” “…드, 들어줬어,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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