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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EP019-이해


“헤이즈. 종마라는 단어 알아?” “종마… 수컷 말한테 쓰는 단어, 맞죠?” “맞아. 그 중에서도 혈통이 우수한 개체.” 협회 건물의 지하에 있는 자료실. 더스트 언니와 나는 자료실 가장 안쪽, 굳게 닫힌 문 앞에 서있다. 문 옆에 있는 보안 장치에 언니가 카드키를 대지만, 삐- ‘보안 등급 S등급 이상 직원만 출입 가능한 구역입니다.’ “…맨날 지부장님이랑 다녀서 깜빡했네. 헤이즈, 카드키 좀.” “아! 여, 여기요.” 다시, 장치에 내 카드키를 대자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잠금이 풀린다. 열린 문 안에는 조금 좁고 먼지 냄새가 나는 방이 있다. 언니는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서며 옆에 있던 캐비닛을 연다. “먼저… 너도 알겠지만, 지부장님은 초기 S급 히어로들 중 한 명이야.” 스크랩이 된 신문 기사를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주는 언니. 헤드라인에는 ‘S급 히어로 ‘실바’, 정부의 차세대 히어로 양성 계획에 적극 협조 약속’ 이라고 적혀 있다. “그 중에서도 미래의 S급 히어로들을 양성하는 계획에 가장 협조적인 사람이었고.” “어… 뉴스로 들어보긴 한 것 같아요.” “그런데 각성의 조건은 아무도 몰라. S급 히어로를 ‘키운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 “지부장님은 히어로의 자질이 유전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종마로 뽑힌 거야.” “그, 그럼….” “정확히는 자신의 아이를 S급 히어로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극비리에 진행된 프로젝트였지.” 스크랩 된 기사를 넘기자 다른 신문 기사가 보인다. ‘S급 히어로 ‘실바’, 미래의 S급 히어로 양성에 돌연 반대 입장 발표…’ ‘힘=권력… 누구보다 강한 S급 히어로가 두려워하는 것은 ‘세대 교체’?’ “이런 입장을 발표한 뒤로도 계속해서 제안이 들어왔어. 한… 3년 정도, 계속.” “어, 어떤 제안이요…?” “자기 아내랑 자서 S급 히어로를 임신시켜라… 결혼해서 씨앗 낭비할 생각 마라… 당신 혈통을 퍼트리는 게 곧 히어로 양성이다.” “…….” “그런 권유가 3년이 넘게 이어지니 지부장님은 미치기 직전이었지. 만찬에 초대를 받아 갔더니 식사에 짐승에게 쓰는 발정제가 섞여 있던 적도 있어.” 다시, 더스트 언니가 기사를 넘긴다. 이번에는 신문 기사가 아니라 깔끔한 양식의 보고서다. ‘조사 보고서 – 피의자: 매튜 앤더슨’ “이건…?” “그러다가 일이 터졌어. 사이드킥이랑 같이 S급 빌런의 테러를 방어하려고 출동했는데, 폭발 때문에 붕괴되는 건물에 고립된 거야.” “둘이서요?” “그래. 건물은 무너지기 직전. 지하실에 갇혀서 꼼짝 없이 죽게 생긴 지부장님은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어.” “…….” “3년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자신을 종마로만 여기는 사람들에게 사랑 없는 섹스… 번식을 권유 받은 지부장님이야. 그걸 꾹 참기만 했던 사람은 결국….” 언니의 손가락이 보고서의 한 줄을 짚는다. ‘테러 현장에 고립된 5시간 동안 피의자가 동행한 A급 히어로를 강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 다수 발견됨.’ “눈이 돌아갔지.” “…….” “그래서 은퇴했어.” “네? 체… 체포가 아니라 은퇴요?” “다음 줄도 읽어봐.” ‘그러나 피해자인 동행한 A급 히어로의 완강한 혐의 부인으로 인해 체포 불가. 히어로 자격 정지 2년 및 접근금지명령 역시 피해자의 적극 반대로 부결됨.’ “…이거, 아니죠?” “맞아.” 더스트 언니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빤히 바라본다. 평소와 똑같이 덤덤하고 차분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야.” “그, 그럼… 지부장님이랑 해봤다는 게….” “아, 그 뒤로도 가끔 하고 있어.” “네…?” “지부장님이 참다참다 더는 못 참을 것 같을 때.” “…언니, 지부장님 좋아해요?” “아니. 하지만 이해하지.” 그, 그게 어떻게 이해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야? “너도 승윤 씨의 고통을 이해하니까 지부장님을 사랑하지 않아도 섹스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 그건 상황이 다르잖아요….” “두 사람 다 잘못한 건 없어. 그걸 제일 잘 아는 위치인 우리가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일 뿐이지.” “…….” “아, 그래도 조심해. 하게 될 때는 지부장님, 진짜 종마처럼 좀… 거칠거든.” 이야기를 끝낸 더스트 언니가 펼쳤던 파일을 탁, 덮는다.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었고. “그래도 엄청 기분 좋아. 지부장님이랑 하는 거.” “어, 언니!! 그건 물어본 적 없어요…!” “장난이야.” 자, 장난… 맞지?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모르겠어…. “승윤 씨한테는 말해도 된다고 지부장님 허락 받았어. 비밀 유지는 당연히 필수.” “아, 알겠어요….” *** “…그렇대.” “허어….”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감정은 분명한 동정이었다. 나에게는 서로를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만큼 사랑하는 연인이 있기에 더더욱. “그리고 아까, 얘기 듣고 올 때… 매튜 씨한테 문자가 왔어.” “뭐라고?” “…자기 사정은 신경 쓰지 말고 오빠랑 나, 둘이서 결정하라고.” 정말이지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말 그대로의 영웅이다. 하지만 매튜 씨는 알고 있을까? 당신에게 이런 짓을 맡긴다는 양심의 가책마저도 지금의 나에게는… 배덕감이 섞인 짜릿함이다. “…후우.” 종마… 애정 없는 섹스. 번식, 짝짓기, 교미. 은지가 그런 걸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야. 질문이 잘못됐어. 그런 거친 섹스를 경험하고 난 은지가 나에게 돌아와서, 만족할 수 있을까? “하… 하.” “왜, 왜 그래, 오빠?” “…아니야.”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다니, 나는 정말로 망가지고 있구나. 고작 일주일 정도 은지에게 욕망을 털어놓지 못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지 않아? “…하자.” “…….” “사실, 나… 또 혼자서 참아보려고 했어. 미안.” “…알지, 오빠.” “그런데… 그런데, 이 얘기를 들으니까 안되겠어.” “…….” “매튜 씨한테 따먹히고 돌아온 네가, 나랑 하는 섹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게 상상돼.” 망상. 이건 망상이다. 몇 시간 동안이나 연락이 두절된 끝에 돌아온 은지의 목덜미에 남은 얼룩덜룩한 키스 마크.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 조금씩 번져 있는 화장. “종마처럼 거칠게 너한테 박아댄 끝에 분명히 안쪽에 싸겠지. 그게… 그게 너무, 기대돼.” “…….” “짐승이 하는 것처럼 매튜 씨에게 거칠게 따먹히는 네가, 기분 좋아할 것 같아서….” 나랑 하는 밋밋한 섹스로 다시는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아서…. 흥분돼. “지, 진정해, 오빠… 나는 괜찮으니까.” “…….” “…그럼 하, 하고 올까…?” “지금?” “으, 으응… 매튜 씨가 오늘도 괜찮다고 했는데.” 지금 내 대답 한 마디에 은지는 출발할 수도 있다.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려고, 이성을 잃은 히어로에게 따먹히기 위해 호텔로 향할 거다. 그리고 어떻게? 어떻게 범해질까? 나 따위의 평범한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긴 할까? 그 두꺼운 손으로 은지의 허리를 붙잡고 확실하게 사정이 끝날 때까지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며 허리를 짓눌러댈까? 침대에 엎어진 은지는 가만히 허리를 들어줄 수밖에 없겠지. 다리는 활짝 벌리고, 매튜 씨의 허리 높이에 맞춰서 들어올린 엉덩이가 찌그러져 눌릴 정도로 거칠게 박히면서… 가버리겠지. 아니면 서로를 마주보는 채로… 그렇지 않아도 민감한 가슴을 쥐어 짜이면서 박히는 은지는 어떨까? …여기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은지가 참아내기엔 너무 강렬하고 아찔한 쾌감이 쉴 새 없이 자궁을 두드릴 거다. 배려심은 그다지 없는, 말 그대로 종마가 사정하기 직전의 스퍼트처럼 거칠고 묵직하게. 그것도 아니라면, 일어선 채로 팔이 뒤로 붙들려 무력하게 범해지는 것은? 연속된 오르가즘의 반복에 지친 몸은 매튜 씨의 두꺼운 허리가 부딪힐 때마다 크게 흔들릴 거다. 힘이 풀린 두 다리로는 간신히 버티며 쓰러지지도 못한 채, 그리고 절정과 함께 보지를 조여대면서…. 결국에는, 은지도 깨달으면서 느끼지 않을까? 이 남자와 하는 섹스가 훨씬 더 기분 좋다는 걸. 거친 짐승 같은, 애정은 조금 덜어낸 대신 원초적인 욕망에 충실한 그런 짝짓기에 조금 빠져버리는 건 아닐까. 사정을 당하는 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매튜 씨에게 달라붙어, 다리를 허리에 걸고 손으로는 등을 긁어대면서- “오, 오호오, 옷…♡ 오, 오오, 옥... ♡” 한심하고 추잡스러운 신음을 질질 흘리면서… 사정을 받아내는- “…오빠?” “…아.” “지, 지금도 망상… 본 거지? 숨기지 말고 말해줘… 응?” “…맞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바란다. 최소한 나를 도와주는 이 사람들이 그 과정 속에서 기분 좋아 졌으면 좋겠다. 은지도, 매튜 씨도.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조금은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주니까. “은지야.” “으응…?” “…부탁할게.” 잠시 침묵하던 은지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표정에서는 많은 감정이 엿보이고 있지만, 희미한 홍조가 번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후우… 괘, 괜찮아! 매튜 씨도 이해할 거야.” “…….” “그리고 나도, 오빠가 어떤 상태인지 아니까 당연히… 이해해. 그, 그럼… 갔다 올게?” “…콘돔.” “웅?” “콘돔… 쓸 거야?” “다, 당연하지!” 아… 아. 나는 내심 대답을 망설이는 은지를 기대한 걸 수도. “하… 하나만 더. 하기 직전에 사진 한 장만 찍어줘.” “사진?” “이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게… 매튜 씨랑 같이.” “…….” “하는 도중에는 괜찮으니까, 하기 직전에. 그리고 끝난 직후에도.” “…알겠어, 오빠.” 그 두 사진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너의 입으로 듣고 싶으니까. …결정이 끝나자 준비는 순식간이었다. 짧은 준비를 마치고, 은지는 출발했다. 언제까지 돌아오겠다는 말을 깜빡한 건 분명한 우연이었다. 그리고 대신, 30분 정도가 지난 뒤.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짧막한 '사랑해'라는 한 단어와 함께 도착한 사진 한 장. “하… 하아.” 은지는 지금부터 매튜 씨에게 따먹힌다. 자신이 얼마나 거칠어질 지 몰라 선을 지키려고 했던 남자의 품에 나의 연인이 안긴다. 그리고 나는 그게 가슴 떨릴 정도로… 흥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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