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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4화. 고블린


나는 물끄러미 방 안을 둘러보는 엘레노아를 불렀다. "엘레노아" "두 사람 혹시 무슨 정보라도 찾으셨나요?" 엘레노아는 아무런 정보도 찾지 못했는지, 방에서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루크레치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엘레노아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계속 얘기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소형 마물, 고블린정도 크기의 마물. 딱 그런 종류로 추정된다." "호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는 처음 이 집에 도착해서 앉아 있던 의자로 돌아가 의견을 나누었다. 루크레치아는 손가락 두 개를 서로 비비다가 살짝 뗐다. 누런 액이 살짝 거품을 내며 끈적한 실을 만들어냈다. 그 모습에 엘레노아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이게 뭐죠?" “마물의 체액입니다. 정확한 종류는 알 수 없지만, 체구가 작은 마물이 이곳을 지나며 흘린 것으로 보입니다.” "으음…." 엘레노아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머릿속을 정리했다. 마을 주민들이 발견하지 못하던 마물의 실체까진 아니었으나, 우리는 그 증거를 찾았다. 그렇다면 마물은 실존하는 생명체일 가능성이 높고, 여성들을 납치할 때 직접 마을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루크레치아가 얘기한 작은 체구. 그 순간 엘레노아는 그녀가 그런 의견을 제시한 이유를 알 것 같다는 듯 입을 열었다. "어딘가 비밀통로가 있는 거네요." 엘레노아의 생각이 맞았는지, 루크레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마을 내부에 외부와 이어진 통로가 있다는 겁니다. 밤에도, 낮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는 곳이겠죠. 그렇다면 마을을 둘러싼 벽을 통과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내부와 외부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루크레치아는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들어 우리를 한 번씩 쳐다보더니 내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죠. 후배님?" "루크레치아가 하는 말이라면 틀릴 일은 없겠지." "하아? 카엘군. 너무 의심이 1도 없는 거 아니야?" 내 태도에 엘레노아는 장난스럽게 볼을 부풀리며 삐진 척했다. "하지만 엘레노아. 그녀는 로엔하임이라고. 추적이나 수색에 있어서 그녀의 의견이 우리의 의견보다 틀릴 일은 적을 거야" "으음…. 갑자기 그렇게 얘기하면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걸" 로엔하임. 루크레치아의 가문이자 한때 북부의 맹주로서 위용을 떨쳤던 대귀족 중 하나였다. 제국의 북부는 춥고 농작물이 자라기엔 그리 적합한 땅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북부의 산맥들은 대다수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흉포한 야생 동물들이 틈만 나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자연스레 북부 사람들은 채집과 사냥에 가까운 삶을 살았고, 그것은 그들을 강인한 사냥꾼, 혹은 끈질긴 추적자로 만들어주었다. 비록 로엔하임이 몰락했다지만, 그들이 가진 지식과 지혜는 그 후계자인 그녀에게 오롯이 전달되었음이 틀림없었다. "자. 그럼 그 비밀통로라는 것은 어디에 있을까요?" "아마 이 집 어딘가 있을 거로 생각되는데?" 내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시선 집중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내 입술을 매만졌다. "너무 부담스럽다고…." "사람 궁금하게 하지 말고 얼른 대답해 줘요. 카엘군!" "으응. 그야 촌장한테 들었던 피해자들은 꼭 가족 얘기가 나오더라고. 그에 반해 이 집에 있던 사람은 병으로 남편을 잃은 과부라고 했어. 그 탓에 실종된 것도 모르고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고 했지. 만약 다른 곳에 비밀 통로가 있었더라면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발견했을 확률이 높아." "그렇다면 조금 과격하게 수색해볼까요?" 엘레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완드를 꺼내 한 번 휘둘렀다. 갈색의 마력이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와 완드를 타고 그 첨단에 뭉치더니 곧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무형의 마력을 유형의 형태로 물질화시켜 물리력을 부여하는 그녀만의 능력이 발동된 것이다. 이윽고 갈색 마력은 바닥을 향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쿵! 콰직! 마력들이 나무 바닥과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딪치더니, 그대로 바닥을 박살 내버렸다. 동시에 오랫동안 쓰지 않은 집에 쌓여 있던 먼지가 거칠게 일어나며 우리 기관지로 파고들었고, 곧 기침이 터져 나왔다. "콜록! 엘레노아!" 루크레치아의 외침에 엘레노아는 코끝의 가려움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미안하다고 소리치곤, 마력을 움직여 창문을 열었다. 한동안 손사래를 치며 먼지들의 습격을 막아내자 간신히 환기가 되었고, 그제야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있었다. "크흥. 엘레노아. 갑자기 그렇게 다 부숴버리면 어떻게 해" "카엘군. 미안!" 엘레노아는 방출한 마력을 다시 거둬들이며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윙크를 날리곤 사과했다. 아름다운 미녀의 애교에 나는 뭐라 더 할 수 없이 그저 실실 웃으며 용서해 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만담을 지켜보던 루크레치아는 한숨을 한 번 쉬고 엘레노아에게 새로운 임무를 하달했다. “엘레노아. 아까 그 촌장에게 가서 우리가 마셨던 물에 넣었다는 차에 대해 확인하고 와.” "차요?" 루크레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 마을을 기준으로 어디서 자생하는지, 그리고 어떤 효능이 있는지.... 그 정도만 알아 오면 될 것 같아. 그동안 나와 카엘이 집 안을 수색하고 있을 테니까." "으흐흠" 엘레노아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루크레치아를 한 번 흘겨보고는, 손가락으로 제 두 눈을 가리켰다가 나를 가리켰다. 마치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둘이서 딴짓하지 말라는 것 같았다. 나는 살며시 웃으며 얼른 갔다 오라고 했다. "하아. 할 수 없지. 금방 갔다 올게" 엘레노아는 곧장 촌장의 집으로 향했고, 과부의 집에는 루크레치아와 나만 남았다. "루크레치아. 그럼 어디서부터.... 읍!" 나는 각자 수색할 영역을 나누자고 말하려다가, 갑작스럽게 입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깜짝 놀랐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루크레치아가 내 입술에 살짝 입맞춤한 것이었다. 평소에도 항상 침착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붉은 기가 서려 있었다. “엘레노아가 사고를 쳤으니, 이 정도 벌은 받아야겠죠. 안 그렇습니까, 후배님?”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나는 그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혹시라도 엘레노아가 정말로 갔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린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엘레노아는 항상 중요한순간엔 가장 냉철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어째서 평소엔 이렇게 덤벙대는지 모르겠어" “그게 그녀의 매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럼. 다시 수색을 진행해볼까?" 우리는 곧 서로 영역을 나눠 집 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 엘레노아는 금새 다시 과부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인기척을 느낀 나와 루크레치아는 몸 이곳저곳에 먼지를 묻힌 채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 다 꼴이 말이 아닌데? 뭐라도 찾았어?" "일단 입구로 보이는 건. 그보다 약초에 대한 건?" 나는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물었다. "응.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을에서 북서쪽 숲에 있고 약초꾼이 정기적으로 공급, 최근 사건 때매 지금은 마을에 남은 양이 없다고 하고, 효능은 심리적 안정과 진통 효과랍니다. 자, 루크레치아." 엘레노아는 자신을 촌장에게 갔다 오게 한 이유를 알려달라는 듯 루크레치아를 지그시 바라봤다. 루크레치아는 살짝 혀로 입술을 축이며 말했다. “체액은 자주 섭취하는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과일 같은 것을 먹으면 달콤한 향이 나기도 하죠.” "그런 건 어떻게 알았죠?" 엘레노아의 질문에 루크레치아는 그저 짧게 가문 비전이라고만 답했다. 엘레노아는 그녀의 답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를 바라보며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팔뚝을 내밀었다. "카엘군. 혹시 내 몸에선 어떤 냄새가 나? 오늘 아침에 먹은 맛없는 흑빵 냄새일까나?" "읏! 엘레노아. 너무 가깝다고." 갑자기 팔뚝을 들이밀면서 성큼 다가온 엘레노아의 행동에, 나는 그녀의 팔뚝보다도 가슴께를 스치고 있는 커다란 가슴 때문에 얼굴을 더 붉혔다. "그… 그만하고 얼른 따라와. 비밀 통로를 찾았으니까." "예이~ 예이~" 내가 앞장서서 간 곳에는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나뭇바닥이 있었다. 그 안에는 자그마한 터널이 하나 있었는데, 평범한 성인 인간이 들어가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크기였다. 만약 들어가려면 엎드려서 기어가야 할 크기였는데, 도저히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엘레노아. 마력을 이용해서 통로를 막아줘." "좋아, 카엘군." 엘레노아는 곧 완드를 집어 들고 마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을 타고 흘러나온 마력은 자그마한 구체로 응집되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움직여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무언가 쏘아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움푹 들어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궁! 그리고 무너지는 소리가 집 안에서부터 마을을 관통해 저 멀리 숲속까지 이어져 울렸다. 마을 주민들은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뛰쳐나와 주위를 둘러봤지만, 보이는 건 먼지가 피어오르는 움푹 꺼진 바닥뿐이었다. 한동안 진정되지 않는 소란에 촌장이 놀라 우리를 찾아왔지만, 나는 이미 막혀 버린 구멍을 보여 주며 그간의 일을 얘기해주었다. 촌장은 눈가에 살짝 눈물이 어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일단 인사를 받기엔 아직 이릅니다. 실종된 사람도 찾아야 하니까요." "살아 있는 겁니까?" "아무래도…. 여성들이니까요." 나는 살짝 씁쓸한 어조로 얘기했다. 남성이라면 식량으로 쓰거나 바로 죽였을 테지만, 여성은 그들의 번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으니까. "그, 그러면 저희도 도움을…." 촌장의 말에 나는 손을 들어 만류했다. "아뇨. 여기선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전투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 나서봐야 괜히 방해가 되거나 피해만 커질 겁니다. 다만 길 안내를 위해 약초꾼을 보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부디 무운을 빌겠습니다." 촌장은 그렇게 얘기하곤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마을을 가라앉히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평범하게 생긴 약초꾼이 찾아왔다. "저를 찾으신다고…." "마을 사람들이 물에 넣고 끓이는 약초, 아시죠?" "아아…. 예. 제가 자주 가져오곤 했습니다. 딱히 이름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약초는 아니라서 사람들은 잘 모르거든요." "그럼 혹시 약초가 자라는 곳으로 안내해 줄 수 있습니까?" 약초꾼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우리는 곧장 숲속으로 향했다. 한동안 북서쪽의 숲으로 걸어가자 우거진 풀숲이 우리를 맞이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듯, 딱히 길이라고 보일 곳도 없었다. 그저 녹음으로 우거진 평범한 숲이었다. "이 숲에서 채집하곤 했습니다. 혹시 안까지 안내를 해야 할까요?" 약초꾼의 목소리가 살며시 떨려왔다. 마을 사람들이 마물에게 실종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제국의 기사까지 온 상황이었다. 평소와 달리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모르는 저 숲에 가고 싶어 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괜찮다며 약초꾼을 돌려보냈고, 그가 사라지자 곧 우리는 숲 안으로 들어갔다. 맨 앞에는 루크레치아가, 중앙에는 엘레노아가,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내가 서서 그녀들 뒤를 따라가며 주위를 경계했다. 내 두 눈엔 일렁이는 마력이 서려 있었다. 그 마력은 우거진 수풀과 나무, 그리고 바위들을 꿰뚫고 그 너머를 바라보는 투시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숲을 텅 빈 공터처럼 주시하며, 나는 혹시 모를 기습에 심혈을 기울였다. 척! 한동안 수색을 진행하던 도중, 맨 앞의 루크레치아가 손을 들어 올렸다. 미리 약속했던 신호대로 나와 엘레노아는 각자 자리에서 멈추고 몸을 살짝 낮추었다. 그리고 루크레치아의 신호를 기다렸다. 루크레치아는 조심스레 바로 앞의 나무에 다가가 바람의 방향을 읽었다. 살며시 그녀의 얼굴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느껴지는 듯했다. 다행히도 우리의 체향이 퍼질 일은 없어 보였다. 이윽고 루크레치아가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나 역시 투시의 시야를 좁혀 저 멀리 지나가는 녹색 피부의 소형 마물, 고블린들을 바라봤다. 체구가 작은 마물 중 하나로, 마물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놈들이었다. 작은 대신 사납고 대규모로 무리를 지어 인간을 습격하지만, 그리 강력한 놈들은 아니었다. 이따금 기형종이 태어나 특별한 힘을 가지기도 했지만, 눈앞의 놈들은 그런 존재는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사냥한 동물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습격해서 죽여도 무방했지만, 동물을 들고 간다면 분명히 그 끝엔 그들의 소굴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굴엔 납치해간 마을 여성들이 있을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듯, 루크레치아는 손짓으로 우리를 조심스레 불러 모은 다음 자신의 생각을 공유했다. 나와 엘레노아는 파티의 첨병이자 숙련된 사냥꾼이나 다름없는 그녀의 의견에 별다른 이의 없이 동의했다. 우리는 일정한 간격을 벌리고 그 뒤를 쫓아갔다. 이윽고 곧 동굴의 입구 하나와 맞닥뜨렸다. 동물을 사냥해 온 고블린들을 맞이하듯, 안에서 대거 무리가 뛰쳐나와 시끄럽게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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