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권나은
다음 날, 난 윤재호의 연락처를 공재준에게 꺼냈다.
"팀장님, 이 남자가 어떤 여자를 유산시켰어요"
공재준이 메모를 받아 들었다.
"뭐? 고의 유산은 최소 무기징역인데?"
"근데, 아무 처벌도 안받았어요."
공재준이 연락처를 봤다.
"윤재호?"
"네. 이 새끼가 임산부 배를 발로 차서 유산시켰습니다."
"음..."
"팀장님이 도와주세요."
공재준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래... 알아 볼께"
"그리고, 그 여자. 강간을 당해서 임신 한거에요. 누가 강간한건지도"
"강간?"
"아마도 배달부일거 같아요"
공재준이 멈췄다.
"배달?"
"네. 집에 배달 왔을 때 강간했을 거에요."
"신고를 안했으면 기록이 없을 거야. 근데 배달 기록은 남아. 그 집에 그날 누가 왔는지."
"..."
"주소랑 날짜만 알면, 배달 기록 뒤져서 찾을 수 있어."
공재준은 유능했다. 머리가 팍팍 돌았다.
"이 주소가 그 여자가 살던 주소지?"
"맞아요."
"날짜는 유산 시점 기준으로 역산하면 돼. 임신 주수 빼면, 강간 당한 날이 나와."
"..."
"내 동생이 국정원에서 일해, 알아볼께."
"감사합니다"
"근데 태오야."
"네."
"강간범 찾아서 뭐 하게."
나도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해야 분이 풀릴지.
ㅡㅡㅡㅡㅡ
난 단톡방에 다시 들어갔다.
- 오태권 : 어제 못 오신 분들은 계좌번호를 남겨주세요.
- 봄비 : 다녀오신 분들께 들었어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 핑크쭈쭈 : 그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나도 갈껄 ㅠㅠ
- 핑크쭈쭈 : 저희 생계까지 걱정하시고... 울었어요.
- 봄비 : 저도 태오씨 사랑해도 되나요?
- 노래하는김노래 : 태오씨, 저 보지가 얼얼해요ㅋㅋㅋ
- 20055 : 또 박히고 싶당.
- 봄비 : 부럽부럽
- 지옥에핀꽃 : 미안해요...
- 오태권 : 지옥에핀꽃님, 뭐가 미안해요.
- 지옥에핀꽃 : 제가 출산관리국에 항의해서...
- 지옥에핀꽃 : 다들 위험해진 거 같아서요.
- 오태권 : 괜찮아요. 그것 때문에 모인 거고, 이제 다 정리됐어요.
- 봄비 : 태오씨 진짜 천사
- 핑크쭈쭈 : 계좌 남겨도 돼요? 진짜 받아도 되나요?
- 오태권 : 네. 남겨주세요.
- 지옥에핀꽃 : 전 돈은 안받을께요.
- 지옥에핀꽃 : 제가 사고 친 건데 돈까지 받으면 안 돼요.
- 오태권 : 그런 거 아니에요. 받으세요.
- 지옥에핀꽃 : 스스로 해볼게요. 태오씨 덕분에 희망이 생겼어요.
폰을 봤다.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희망.
F등급 집단 거주구역에 갔을 때 느껴졌던
세상을 포기한 것 같은 냄새.
그 냄새가 걷히고 있다.
그 동네가 떠올랐다.
햇볕이 안 드는 집들.
빨래도 안 널린 베란다.
사람이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던 곳.
웃음소리가 없던 동네.
근데 지금.
단톡방에서 백 명이 웃고 있었다.
박히고 싶다고.
사랑해도 되냐고.
스스로 해보겠다고.
그때 DM이 왔다.
진태유.
출산관리국.
찐3년팬.
[도대체 뭐 하고 다니십니까?]
아...
뭐라고 답을 하지...
[그냥.. 회사다니고...]
전화가 왔다.
진태유.
"안녕하세요?"
"태오씨, 도대체 뭐 하고 다니세요."
"그냥..."
"A등급, S등급에서 신고가 몇건 들어왔어요"
"왜요?"
"케어사들이 갑자기 출근을 안한다고"
"그래요?"
아.. 소은이 한명일 때와는 달랐다.
147명의 동반 연락두절...
난 저들이 신고를 못할거라 생각했다.
그들이 돈을 주고 케어사들의 등급을 조작했으니까.
"그리고, 지옥에핀꽃이라는 사람이 출산관리국에 항의했어요"
"무슨 항의요."
"자기가 가임인데 F로 조작당했다고. 케어사로 팔렸다고."
"..."
"그래서 출산관리국이 신고 들어온 사람들의 기록을 열어봤어요."
"..."
"근데, 정말로 데이터는 아무 이상없는 가임, D등급이에요."
"이상하네요"
"그러게요. 이상하죠? 왜 그동안 그 사람들이 케어사로 일했는지"
"그걸 왜 저에게..."
"영장을 받아서 케어사들의 휴대폰 이동경로를 추적했어요"
"네?"
"근데, 어제 권태오씨 회사 연수원으로 모이더라구요."
"아..."
"이제 말하세요. 도대체 뭐 하고 다니십니까?"
"그냥, 국대정자 팬미팅?"
"하하하..."
"하하하..."
나도 따라 웃었다. 발뺌할 방법이 없다.
"우리 내일 소주 한잔 할까요?"
"..."
"전 수정씨가 행복하길 바래요. 이제 겨우 행복해졌는데..."
"네..."
"그 행복, 태오씨만 지켜줄 수 있어요."
"네. 소주 한잔 하시죠."
전화를 끊고
생각에 빠졌다.
진태유는 이미 내가 그랬다는 걸 알고 있다.
빠져나갈 방법....
팬미팅으로 둘러대는게 통할리가 없잖아?
그럼...
빠져나가지 말고, 더 파고들면...
내가 잡히면...
내가 잡히면?
누가 두려울까?
돈을 내고 등급을 조작한 놈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들.
무궁화 주렁주렁 단 새끼들.
그 새끼들이 두려워할 거다.
내가 잡히면.
수사가 시작되면.
케어사 등급이 왜 조작됐는지.
누가 돈을 냈는지.
다 까발려진다.
출산정보시스템에 접속했다.
147명의 케어사들이 배치된 A등급과 S등급의 리스트를 추렸다.
135명.
S등급들은 두명씩 케어사를 상주시키고 있었다.
- 김창대 (010482003 / A등급)
- 박종현 (011059287 / A등급)
- 서태웅 (012773541 / A등급)
...
스크롤을 내리며, 한명씩 연락처를 정리했다.
...
- 윤대규 (013906115 / A등급)
- 박무진 (010310007 / S등급)
박무진.
씨발. 박무진.
케어사 두 명.
* 이선주 (닉네임 : 불임보지)
* 김노래 (닉네임 : 노래하는김노래)
내 친부.
이 새끼도 가임 여자를 F로 만들어서,
집에 두고 있었다.
접속로그를 지우고,
노트북을 닫았다.
씨발.
왜 하필 이런 새끼가 아버지냐...
처음으로 엄마가 미웠다.
그래고 불쌍했다.
폰을 들었다.
엄마 번호.
통화 버튼을 못 눌렀다.
뭐라고 물어.
엄마. 박무진이 내 아빠야?
물어서.
엄마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면.
엄마가 17년 만에 그 이름을 말하면.
그걸 들을 자신이.
없었다.
ㅡㅡㅡㅡㅡ
다음날 내 회사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일하기도 싫다.
머리만 복잡하다.
발소리가 났다.
"와.. 저 여자 누구야?"
"존나 이쁘네"
"인턴이야?"
"쌔끈하다. 진짜로"
"따먹고 싶다"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엎드린 채로 고개만 돌렸다.
여자 허벅지가 보였다.
치마가 너무 짧다.
팬티가 보일락 말락...
그리고, 다리가 하얗네?
만져볼까?
"오빠? 일 안해? 쳐 자빠져 자?"
고개를 들었다.
"나은아?"
"오빠, 나 첫 출근했어. ㅋㅋㅋㅋ"
뒤에서 동료들이 웅성거렸다.
"권태오 동생이야?"
"닮았네."
"동생 진짜 이쁘다."
나은이가 동료들을 봤다.
씩 웃었다.
"안녕하세요. 비서실 인턴 권나은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저 가식적인 웃음.
존나 이쁘다.
나은이가 커피를 내 책상에 내려놨다.
"오빠. 회장님이 안부 전하래. 회장님이랑 친해? 무슨 사이야 진짜."
대답을 못 했다.
박무진이 나은이를 통해 안부를 전했다.
신호인가?
다 알고 있다는.
"야. 권나은"
"뭐"
"치마가 너무 짧아"
"하. 꼰대. 팬티 보이니까 또 꼴려?"
"아. 이 또라이년"
"동생 팬티 보면서 자지 선거야?"
"권나은 대박ㅋㅋㅋ"
"권태오가 꼼짝도 못하네? ㅋㅋㅋㅋㅋㅋ"
사무실 사람들이 웃었다.
문제는.
저 짧은 치마를 입고.
박무진 옆에 있다는 거였다.
박무진.
케어사 두 명 끼고 사는 새끼.
가임 여자를 F로 만들어 쓰는 새끼.
그 옆에 나은이가.
씨발.
나은이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나은아. 무슨일 생길거 같으면, 바로 뛰어내려와. 전화해. 알았어?"
내 표정을 보더니 나은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래. 무섭게. 알았어"
"꼭이야. 알았어?"
"팔 아퍼, 알았어. 오빠."
그때 다인이가 왔다.
"첨 뵙는 분인데..."
"안녕하세요. 비서실 인턴 권나은입니다."
"어머, 저도 인턴이에요. 김다인이에요"
"근데 우리 오빠랑 친해요?"
"친한 줄 알았는데... 아닌거 같아요. 박아주지도 않아요.ㅠ"
"ㅋㅋ"
"근데 권나은씨는 태오 오빠랑 벌써 친해요?"
"오빠가 내 팬티로 딸치고 그러니까... 그정도면 친한거죠?"
"네?"
"ㅋㅋ"
나은이가 사무실을 나갔다.
다인이가 날 봤다.
눈이 가늘어졌다.
"오빠..."
"뭐"
"오빠. 너무해요. 저 여자는 또 누구예요?"
"몰라"
"오빠, 이젠 회사 여직원 팬티까지 빌려서 딸쳐요?"
"..."
"젠장."
다인이가 사무실에서 갑자기 치마 속에 손을 넣었다.
팬티를 끌어내렸다.
"뭐해. 사람들 다 있잖아."
팬티를 내 얼굴에 던졌다.
"내 껄로 치면 되잖아요. 나... 너무 속상해요..."
"뭐야. 이거."
엉겁결에 팬티를 손에 들었다.
꽃무늬 팬티다.
"오빠. 진짜 너무해."
다인이가 얼굴을 감싸고 뛰어나갔다.
"다인씨가 팬티 벗었어."
"야.. 나 자지 터질뻔."
"권태오 썅놈새끼, 존나 부러워."
"잠깐 빌려달라고 할까?"
직원들이 웅성거렸다.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머리 속에는 그냥 박무진 생각 뿐이었다.
내가 잡히면...
내가 잡히면?
퇴근 시간.
[을지로 3가. 파란 천막 순이네 포차. 7시.]
난 진태유를 만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버스 안에서도 계속 그 생각이었다.
내가 잡히면?
파란 천막에 스프레이로 쓴 글자.
순이네 포차.
천막을 들췄다.
진태유가 구석에 앉아 소주를 삼키고 있었다.
"소주는 태오씨가 쏘는거죠?"
"왜요?"
"태오씨 계좌에서 백만원 씩 막 쏘던데, 나한테는 소주 한잔도 안 쏴요?"
"제 손목에 수갑을 채워주세요. 그러면 쏩니다."
"네?"
"제가 147명의 등급을 조작했으니까요."
진태유가 소주를 뿜었다.
"미쳤어요?"
진태유가 천막 안을 둘러봤다.
주인 아줌마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여기서 그런 말을 해요?"
"떠들썩하게 잡힐수록 좋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