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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71화


71. 차는 해안 도로를 따라 길게 뻗은 고속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동해 쪽 하늘은 이미 붉게 기울기 시작했고,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햇빛이 마지막 기운을 태우듯 번져 있었다. 무혁은 이 사태 속에서 중성이 신철민 곁에 붙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거래를 성사시키는 일 따위는 애초에 그의 관심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런 혼란을 기회로 삼았을 가능성이 컸다. 신철민 쪽이 뒤집히든 말든 상관없이, 그 틈을 타 제게 접근할 수만 있다면 충분했을 것이다. 결국 저를 노리는 만큼 하임에게 붙었을 테지. 그녀가 저를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미끼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캡틴, 실장님입니다.” 성기가 단말기를 건네기 무섭게 종만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 진무혁. 여기 완전히 뒤집혔다. 수화기 너머에는 여러 사람의 말소리와 무전이 뒤엉켜 있었다. 상황실 특유의 분주한 소음이었다. -방금 군 쪽에서 긴급 보고가 올라왔다. 북측 군사 분계선 인근 마을에서 주민 몇 명이 탈출하다가 총에 맞았어. 탈북 시도인 줄 알았는데 상황이 이상해. 우리 쪽 초소가 확인한 바로는 북측 주민들이 포승줄에 묶여 있었다더군. 북측이 민간인을 납치해 가둬 놓았고, 그중 일부가 도망치려다 총에 맞은 상황이야. “최근에 청명국 쪽 인원들이 드나들던 지역 쪽입니까.” -그래. I.D.C에 실험체로 넘기려는 결정적인 증거를 잡은 거나 마찬가지지. 차창 밖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한 바다가 스쳐 지나갔다. 종만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어. 오늘 오후에 인천항에서 컨테이너 하나가 세관에 걸렸다. 지난번, 실험 물자 코드가 I.D.C 계열과 겹친다는 걸 발견한 성기가 ‘정밀 분류 재검토’ 요청이 들어가도록 손을 써 둔 건이었다. “뭐였습니까.” -신경 자극 장치, 생체 반응 측정 모듈, 감각 증폭 실험 장비라더군. 역시 I.D.C 연구 라인에서 쓰는 장비들과 동일 계열이다. 무혁이 대비해 둔 것들이 하나씩 걸려들고 있었다. 그들은 하임과 소진, 하루타 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사이, 뒤에서는 거래를 서둘러 끝내려 했을 터였다. 북쪽에서 사람을 넘기고 남쪽 항구로 장비를 들여오고, 그 사이에서 실험 라인을 완성하려던 계산이었을 테지만 흐름이 뒤집혔다. 군사 분계선에서 주민 탈주가 터졌고, 인천항에서는 실험 장비가 세관에 걸렸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 잡힌 조각들이 한 방향을 가리키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지금 위에서도 상황 공유됐고, 군과 국정원, 해경까지 전부 비상 걸렸다. 청명국과 I.D.C 연결 고리가 공식 보고에 올라간 상태야. 신철민도 이제 끝이다. “체포 명령은 떨어진 겁니까.” -맞아. 내부 정리 끝나는 대로 바로 체포 들어갈 거고, 내부 관련인들까지 줄줄이 밝혀지면 정치권이고 뭐고 지금은 못 막는다. 잠깐 웃음 비슷한 숨이 섞였다. -너 이번에 진짜 큰 놈들 건드린 건 아냐? 안 그래도 겁대가리 없는 놈이 죽다 살아오더니 아예 간을 꺼내 놓고 사는구먼. 아, 그리고 이중성 말이다. 죽이지 말고 생포해 와라. “…….” -내 말 좀 들어, 이 자식아. 그 새끼 주둥이에서 뽑아낼 게 산더미인데 죽이면 끝이잖냐. 살아 있어야 털어 낼 거 아니야. 무혁이 아무 말이 없자 종만이 설득하듯 살살 타일렀다. -심문 가능한 정도로만 숨 붙여 두라고. 어? 또 눈 돌아서 난도질해 놓지 말고 이번만 참아. 원하면 심문은 네가 하게 해 줄, 아니다, 그럼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꼴인데. 에효.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는 무슨. 네가 언제 내 말을 제대로 들은 적이 있어야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부탁이니까 말 좀 들어라. 그 새끼만 잡아 오면 판이 완전히 뒤집힐 거야. 국내에 숨어든 청명국이든 I.D.C든 전부 줄줄이 엮여 나올지 어떻게 알아. 지금 거래가 엎어져서 저쪽도 발등에 불 떨어졌을 거다. 그러면 놈들이 할 선택은 하나야. 증거 없애고 살아 있는 놈들부터 치우겠지. “……적어도 숨은 붙여서 데려가도록 하죠.” -너만 믿는다. 그리고 증원 보냈으니 몸 좀 사려라. 또 반쯤 죽은 꼴로 돌아오지 말고. 네 보고서 쓰기도 지긋지긋하다. 통신이 끊긴 후, 지원팀 위치를 확인한 성기가 그들에게 좌표를 전송했다. 저 앞에 하임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산이 보이자 무혁의 동공이 단숨에 수축했다. “당장 산 출입부터 막아. 지자체에 요청 넣고 경찰 통해서 통제 걸라고 해.” “예. 등산로 입구부터 전부 막겠습니다.” 성기가 곧장 몇 개 채널을 동시에 열었다. 경찰 상황실과 지자체 재난 통제 라인으로 긴급 협조 요청이 들어갔다. 잠시 뒤, 화면에 ‘구조 작업으로 인한 등산로 통제 협조 진행’이라는 표시가 떴다. 차가 어느덧 산 아래로 이어지는 도로에 들어서자 무혁이 속도를 조금 더 올렸다. 성기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하임 씨 이동 로그 계속 찍히고 있습니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빠지는 중입니다.” 끼이이익―! 곧 산 입구 주차장으로 차가 거칠게 미끄러져 들어갔다. 하임이 있는 곳과는 반대 방향이지만, 그녀가 움직인 흔적을 그대로 뒤쫓는 건 의미가 없었다. 지금쯤이면 이미 방향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컸다. 오히려 능선을 가로질러 올라가는 편이 빠를 거라 판단한 무혁은 총기를 점검하자마자 차에서 튀어 나가다시피 내렸다. 홀로 덩그러니 남은 성기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늘도 성호를 그었다. “오, 주여. 악마와 찐또라이의 싸움에서 찐또라이가 이기도록 해 주시옵소서. 오늘은 미쳐 버려도 될 것 같으니 그에게 힘을 주소서. 아멘.” * * * 밖에서 올려다볼 때보다 산은 훨씬 깊고 넓었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능선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발밑의 흙길은 금세 풀과 덤불에 묻혀 버렸다. 어디든 몸을 숨길 만한 곳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하임은 방향도 가늠하지 못한 채 산을 타고 올랐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한 한적한 숲속에 이르자 하임은 나무에 기대 잠시 숨을 골랐다. 심장이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확성기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 퍼졌다.   <산림청 안내 방송입니다. 현재 구조 작업으로 인해 이 산 일대 등산로를 전면 통제하고 있습니다. 산에 계신 등산객 여러분께서는 즉시 하산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복 안내드립니다. 현재 구조 작업으로 인해 등산로 전면 통제 중입니다. 등산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을 위해 가까운 하산로로 이동해 주십시오.>   안내 방송은 산 너머 어딘가에서 메아리처럼 흘러왔다. 하지만 하임이 있는 곳은 이미 등산로에서 한참 벗어난 깊은 숲이었다. 주변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먼 어딘가에서 미세한 기척이 느껴지자 그녀의 몸이 굳었다. “…….” 하임은 숨을 죽인 채 청각을 열었다. 혹시 등산객일까 싶어 귀를 기울였지만 뭔가 달랐다. 걸음은 일정했고, 바닥을 딛는 힘도 단단했다. 무엇보다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그 틈에 금속이 맞물리는 짧은 소리가 섞였다. 철컥. 총을 장전하는 듯한 소리에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까 그 사람이야.’ 날 쫓고 있어. 하늘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숲속은 어둠이 가장 빠르게 찾아오는 곳이었다. 지금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길은 더 험해지고, 독사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을 만날 수도 있었다. 짧은 고민 끝에 하임의 시선이 어딘가에 꽂혔다. 바로 앞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줄기는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겨우 감쌀 만큼 굵었고, 중간중간 갈라진 가지들이 사다리처럼 위로 뻗어 있었다. 하임은 어릴 적 삼동이와 틈만 나면 나무를 타며 놀던 때를 떠올렸다. ‘저 위로 올라가면 저 사람은 날 못 찾고 그대로 지나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랫동안 해 보지 않았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을 것 같았다. 조용히 몸을 일으킨 그녀가 옷매무새부터 정돈했다. 그대로 나무를 움켜쥐듯 발끝에 힘을 주며 기둥 위로 몸을 끌어 올렸다. ‘생각보다 괜찮아.’ 나는 할 수 있어. 다행히 움직임은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가지 하나를 잡고 균형을 잡은 뒤, 그녀는 다음 가지로 몸을 옮기며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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