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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65화


65. 하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핏기 없는 입술에 이마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출발할 때부터 귀마개를 꽂고 있었으나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양손은 여전히 귀를 감싸 쥔 채였다. 소진은 하임의 상태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입안을 짓씹었다. “괜찮아요, 하임 씨?” “너무 시끄러워서…… 고통스러워요…….” 하임이 가슴을 빠르게 들썩이며 중얼거렸다. 도시의 소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겹치고 겹친 파형이 벽을 통과해 진동으로 밀려왔다. 브레이크 마찰음, 고주파 경적, 건물 외벽을 타고 울리는 반사음,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 등. 모든 것을 귀마개로 차단하기엔 무리였고, 하임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소음에 괴로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토록 많은 소리를 한꺼번에 담아본 건 생전 처음이었다. “하임 씨? 곧 도착할 거니까 조금만 참아요.” “흐으으…….” 머지않아 하임의 초점마저 흐릿해지자 소진의 마음도 급해졌다. 출발할 때부터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하임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하루타의 입술이 움직였다. “……청각 과부하 반응. 이대로 두면 의식을 잃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지금 병원에 가기엔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병원에 간다고 해도 그들이 하임에게 해 줄 수 있는 처치는 없을 성싶었다. 욕을 중얼거린 소진이 액셀을 지그시 밟으며 속도를 높였다. 교차로 앞에서 방향 지시 등도 켜지 않은 채 우측으로 급히 핸들을 틀었다. “야, 연구원! 뭐라도 좀 해 봐! 허튼짓했다간 너부터 죽일 줄 알고.” 그녀가 날카롭게 보채며 단도를 던졌다. 스스로 포승줄을 잘라낸 하루타가 하임의 두 손목을 잡아 제지했다. “그렇다고 귀를 막으려고 하면 안 돼요. 오히려 압력이 쌓여서 더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러나 이미 한계에 다다른 하임은 그의 조언조차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리더니 숨이 점점 짧아졌다. “아파…… 너무 아파…….” 모든 소리가 겹쳐 하나의 압력처럼 귀를 짓누르고 찔러 왔다. 이토록 끔찍한 고통은 난생처음이었다. 갈수록 들이마시는 숨보다 내쉬는 숨이 더 가빠지며, 과호흡 증상과 경련까지 오기 시작했다. 양 귀를 움켜쥔 하임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듯 기울어졌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젖어 있었다. 경련이 점점 더 심해지자 하루타가 하임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심박이 비정상적으로 빨랐다. 그는 룸 미러를 통해 소진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지금은 하임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젠장.” 소진은 당장 앞에 보이는 건물 진입로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를 가장 구석에 밀어 넣고 시동을 끄자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하임의 호흡은 여전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소진은 어쩔 수 없이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낸 뒤, 그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을 채웠다. 하루타가 눈치껏 하임을 제게 기대게끔 하며 자세를 잡았다. “미안해요, 하임 씨.” “흐으으…….” “안전한 곳으로 옮겨 줄 테니까 잠깐 눈 좀 붙이고 있어요.” 소진은 하임의 소매를 걷고는 조심스레 바늘로 피부를 뚫었다. 약물이 천천히 주입되는 동안 하임의 몸이 한 번 크게 움찔했다. “최소 용량이라 위험할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조금만, 조금만 참아요.” 하루타는 하임을 단단히 붙잡은 채 호흡을 지켜봤다. 가쁘던 숨이 차차 안정되기 시작하더니 이내 경련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 하임의 눈꺼풀이 잘게 떨리다가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가 천천히 감겼다. 가슴이 한 번 크게 들썩인 뒤, 마침내 호흡이 일정한 간격을 찾았다. 소진은 그제야 한숨 돌렸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울프독이 지금 하임 씨 꼴 봤으면 완전 눈 뒤집혔겠는데.” 핏기 하나 없는 하임의 얼굴은 식은땀과 눈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나저나 왜 응답이 없는 거야. 하…….” 무혁에게도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소진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내 주변을 날카롭게 경계하던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시 차를 몰았다. * * * 봉주의 집이 불타기 약 한 시간 전. 오늘따라 마을은 유난히 비어 있었다. 평소 대문 앞 평상에 모여 앉아 있던 노인들의 모습도, 골목마다 들리던 낮은 기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집마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대문 위로 겨울 햇빛만 엷게 내려앉아 있었다. 동민과 보민 형제의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관광버스를 타고 떠나자 엄마는 아침부터 거실에 앉아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연신 웃음소리를 터트리느라 바빴다. 형제는 방바닥에 엎드려 장난감을 굴리다 말고 서로를 바라봤다. 밖은 고요했고, 집 안은 엄마의 웃음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눈치를 볼 어른도 없었다. “우리 삼동이 형아한테 가자!” 동민이 먼저 몸을 일으키자 보민도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두 아이는 패딩을 허둥지둥 걸치고선 문을 나섰다. 텅 빈 골목을 달리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울렸다. 익숙한 길을 쉼 없이 달린 두 형제는 저 멀리서부터 삼동이를 신나게 불러 댔다. “삼동이 형아!” “형아― 우리랑 놀자아―!” 두 형제가 마당으로 쏟아지듯 뛰어 들어갔으나 평소와 달리 조용하기만 했다. 늘 틀어 놓던 만화 주제가나 TV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삼동이 형아는 어디 갔지? 형아도 놀러 갔나?” “아니야.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여행 갈 수 있다고 했어.” “그럼 숨어 있는 거 아니야?” 가끔은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가 놀라게 해 주곤 하던 삼동이였기에, 형제의 얼굴이 슬며시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형아, 또 우리 놀리려고 숨었지?!” 평소라면 버선발로 반겨 줬을 삼동이가 보이지 않자 두 형제는 여기저기 들여다봤다. 자연스레 집 주위를 빙빙 돌며 헛간과 뒤꼍, 창고를 차례로 기웃거렸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삼동이는 없었다. “혹시 하임이 누나네 갔나?” “하임이 누나 이제 없잖아.” “봉주 할아버지는 계시잖아.” “음, 근데 나 봉주 할아버지는 무서운데에…….” 보민의 말에 동민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삼동이 형아 있나 몰래 확인만 하고 오자.” 두 형제는 곧장 하임네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곳으로 왔던 때와 다르게 걸음걸이가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괜히 봉주 할아버지를 마주칠까 싶어 담벼락에 몸을 바짝 붙이고 슬금슬금 걸었다. 봉주는 어린 두 형제에게도 제일 무서운 할아버지였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말투도 퉁명스러워서 괜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혼날 것 같았다. “소리 내지 마.” 동민의 경고에 보민도 괜히 숨을 죽였다. 그렇게 골목 끝이 보일 즈음, 동민의 걸음이 갑자기 우뚝 멈췄다. 뒤따르던 보민이 형의 등에 이마를 콩, 박았다. “형아, 왜 그…….” 왜 그러냐고 물으려는 순간, 동민이 재빨리 동생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평소 장난기로 가득한 형의 얼굴이 아니었다. 눈이 커진 채로 어딘가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자, 보민은 입이 막힌 채 눈동자만 도르르 굴렸다. 이내 동민이 천천히 몸을 낮추며 담벼락 그림자 안으로 동생을 끌어당겼다. “…….” 저 멀리, 산으로 이어지는 외진 길목에서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두 명의 누군가가 무언가를 끌고 가고 있었다. 그 무언가가 삼동이 형아라는 걸 깨닫는 순간, 동민의 눈이 조금 더 크게 뜨였다. 삼동이의 몸은 축 늘어진 채였다. 팔은 힘없이 바닥에 끌렸고, 머리는 아무렇게나 흔들렸다. 그를 데려가는 남자 둘은 무서운 얼굴로 주위를 살피다가 산 쪽으로 점점 더 멀어졌다. 동민은 처음엔 눈으로는 보고 있으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다 곧 가슴이 쿵, 내려앉는 걸 느끼며 입술이 멍하니 벌어졌다. 두려움과 충격으로 물든 아이의 눈이 점점 물기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삼동이 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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