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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64화


64. 소음기를 장착한 총구에서 불꽃 대신 짧은 압축음이 튀었다. 그러나 봉주의 이마를 겨눴던 궤적은 미묘하게 틀어졌다. 같은 순간, 남자의 어깨가 뒤로 크게 젖혀지며 둔탁한 충격음이 울렸다. 총을 쥔 팔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돌아보려 했으나 두 번째 충격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윽.” 균형이 무너진 그의 몸이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간발의 차로 총격을 피한 봉주가 그제야 시선을 옮겼다. “꼭 이렇게 요란하게 처리하셔야 했습니까?” 마당에 유유자적 나타난 무혁이 심드렁히 물었다. 그는 쓰러진 I.D.C 처리조 요원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총구를 낮게 고정했다. 남자는 이를 악물며 다시 방아쇠를 당기려 했지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인 무혁은 그의 심장에 구멍을 내는 것으로 끝을 보았다. “곧 시끄러워질 겁니다.” 봉주는 무혁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점점 거세지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무혁은 어딘가 생각이 많아 보이는 노인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 몇 주 전, 지금까지 만들어 둔 사제 무기를 시험해 볼 때가 왔다던 봉주의 말이 떠올랐다. 자칫하면 봉주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리스크가 있었지만, 무혁은 오래도록 복수를 꿈꿔 온 노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NEXA 내 폭발물을 전문으로 다루는 요원을 통해 기폭 회로를 정리하고, 외부 충격에 오작동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덧댔다. 폭압이 집 안쪽으로만 퍼지도록 구조를 계산했고, 마당 쪽 피해는 최소화하게끔 손을 봤더랬다. 그러나 봉주가 정말로 제 손으로 집을 터트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참이었다. 그것도 오늘, 제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대낮에 말이다. 하여간 괴짜 같은 노인네임은 확실했다. “장난감 다루듯 쓰기엔 위험하다고, 주의 드렸잖습니까.” 봉주가 코웃음을 치며 손을 탁탁 털었다. “만들어 둔 건 다 쓰고 뒤져야 덜 아쉬울 거 아니여.”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졌다면 영감님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시방, 아주 저주를 해라잉.” 봉주는 이건 시작에 불과할 거라며 덧붙였다. 무혁도 동의하는 바였다. 청명국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어쩌면 I.D.C를 이용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리란 추측이 들었다. “팀원들은 왜 내쫓았습니까?” “있어 봤자 방해될 게 뻔하니 내쫓았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짤막한 실소를 흘린 무혁은 봉주가 삼동이의 행방을 묻자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러고 보니 삼동이가 보이지 않았다. * * * “미친…….” 공유 채널을 통해 소식을 확인한 소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화염에 잠긴 집을 보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정말 보통이 아닌 할아버지네.” 봉주가 무사하니 다행이지만 하임이 이 소식을 들으면 기절초풍할 게 뻔했다. 며칠째 속이 좋지 않다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상태라 괜히 충격을 더할 필요는 없었다. 하임에게 먹을 죽을 끓여야겠다는 생각에 쌀을 씻던 중이었다. “언니…….” 계단에서 조심스러운 부름이 들려왔다. 창백한 얼굴에 얇은 카디건을 걸친 하임의 표정이 어딘가 경직되어 있었다. “하임 씨, 벌써 일어났어요? 죽 끓여 줄 테니 잠깐 기다려요.” “언니, 밖에 무슨 소리예요?” “소리라니요?” “계속 위잉― 하는 진동음 같은 게 들려서요. 자다가 소리 때문에 깼는데…….” “…….” 수도를 잠근 소진이 조용하기만 한 집 안을 좌에서 우로 훑었다.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하임이 덧붙였다. “뭐가 날아다니는 소리 같은데, 벌레라기엔 너무 커요. 멈췄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것 같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진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말없이 거실 창 쪽으로 걸어가 커튼을 살짝만 젖혔다. 하늘 위, 일정한 고도로 원을 그리듯 움직이는 검은 점이 보였다. 조금 더 먼 거리에 또 하나가 더 있었다. “……돌겠네.” 소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택을 주시하는 드론 두 대는 절대 우리 것이 아니었다. 커튼을 서둘러 닫은 그녀는 완전히 달라진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하임 씨. 일단 옷부터 입어요.” “……?” “당장 여기를 빠져나가야 할 거 같아요. 얼른요. 만약 핸드폰이 해킹된 상황이라면 추적당할 수 있으니 꺼 놓도록 해요.” 방으로 향한 소진은 곧바로 단말기에 대고 상황을 알렸다. “저택 상공 미확인 드론 2기 확인. 고도 유지하며 선회 중. 위치 노출로 피보호자 이동 준비 중.” 메시지를 남긴 그녀의 움직임은 급격히 빨라졌다.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벽면 패널을 열어 권총 두 정을 꺼냈다. 하나는 허리 뒤에 밀어 넣고, 하나는 여분 탄창과 함께 코트 안쪽 포켓에 넣었다. 하임은 아직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하임이 방으로 뛰어 올라간 사이, 소진은 차 키와 응급 키트, 소형 통신 장비 등 필요한 것들을 마저 챙겼다. 그녀는 외투만 걸치고 내려온 하임과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다가 차에 타기 직전에 멈칫했다. “…….” 차만 타고 나가면 바로 빠져나갈 수 있는 구조였다. 동선은 이미 계산되어 있었다. 그런데 벽 하나를 사이에 둔 격리실 쪽에 자연히 눈길이 갔다. 무혁의 구체적인 지시가 없는 상황에서 피보호자 우선 이동이 원칙이긴 하나, 하루타를 두고 가는 게 맞나 싶었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는 사이, 옆에 가만히 서 있던 하임이 넌지시 물었다. “……데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소진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네?” “하루타 씨요.” “…….” “저 말고 하루타 씨를 잡으러 온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럼 하루타 씨가 위험하니까…….” 놀란 소진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임은 대답 대신 흐릿하게 웃었다. 그다지 대꾸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기색이었다. “일단 뒷좌석에 타 있어요, 하임 씨.” 소진은 고민을 끝내고 지하 격리실에서 하루타를 끌어내듯 데리고 나왔다. 하루타는 당황하면서도 순순히 반대편 뒷좌석에 올라탔고, 하임을 마주하고 한층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 “…….” 마찬가지로 그를 처음 대면한 하임은 어색한 눈인사를 건넸다가 금세 시선을 돌렸다. 왜인지 저를 유독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 조금 낯설고 당혹스러웠다. “고개 숙여요, 둘 다.” 소진이 차에 시동을 걸기 무섭게 셔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곧 세 사람이 탄 차가 지상으로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듯 올라갔다. * * * 소진은 고속 도로를 타는 대신 가장 복잡한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점심시간이 겹친 도심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버스, 택시, 오토바이 등 신호가 바뀔 때마다 차량 행렬이 엉키고 풀리기를 반복했다. 드론이 따라붙기엔 시야가 너무 복잡했다. 소진이 첫 번째로 들어간 곳은 대형 복합 쇼핑몰 지하 주차장이었다. 차량을 구석에 세운 그녀는 번호판 작업을 하고 차 키를 교체했다. 다음 차량은 같은 층 반대편에 세워 둔 렌터카였다. 블랙 SUV에서 회색 세단으로 갈아탄 사이, 소진은 어느새 옷도 바뀐 상태였다. 하루타에겐 모자가 씌워졌고, 하임에겐 두터운 니트가 입혀졌다. 두 번째는 오피스 빌딩, 세 번째는 호텔 주차장. 차를 갈아탈 때마다 동선은 엇갈리게, 출구는 다르게. 소진은 요원답게 CCTV 사각과 혼잡 구간을 번갈아 이용했다. 도시는 정신없을수록 유리했고, 그럴수록 그들에게 따라붙던 눈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빠아아앙―! 복잡한 도로를 가로지르는 동안, 밖에선 경적이 연달아 울리고 어디선가 구급차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연이어 지하철이 지나가는 진동이 도로 아래에서 울컥 올라올 때였다. “하아, 하아…….” 뒤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오자 소진이 룸 미러를 올려다봤다. “하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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