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61화
61.
“해킹으로 확보한 청명국 인력 이동 정보도 일부 흘렸어요. 특정 구간 통신 패널을 익명 제보 형식으로 넘겼고요. 군 정보망이 아니라 민간 분석 채널을 통해서요.”
“출처는.”
“해외 싱크 탱크 쪽으로 위장했습니다. 접경 지역 통신량 이상 징후라는 식으로요. 정식 보고로 올라가진 않겠지만 최소한 내부에서 한 번은 재확인할 겁니다.”
청명국이 움직일수록 남측 어딘가에 시선이 닿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만드는 조치였다. 대놓고 막는 대신,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을 심는 것이 목표였다.
“신철민 쪽 반응은 어때.”
“아직 없습니다. 다만 민통선 해제 구역 중 하나에 대한 추가 안전 점검 요청이 내부에서 올라왔어요.”
성기가 파일 하나를 더 꺼냈다.
“그리고 특정 실험 물자 통관 건이 하나 포착됐어요. 의료 장비로 분류되어 있지만, 문서에 I.D.C 계열과 겹치는 코드가 있습니다. 현재 세관 쪽에 ‘정밀 분류 재검토’ 요청이 들어가도록 손을 써 두었습니다.”
“와우.”
소진이 나직한 감탄사를 흘리며 박수 치는 시늉을 했다.
“최연소 정보 분석관이라더니 소문값 하네. 그래서 지연은 얼마나 되는 건데?”
“공식 절차로는 최소 사흘. 추가 자료 요청이 붙으면 일주일 이상도 가능합니다.”
“그놈들 어지간히 똥줄 타겠네.”
소진이 고소하다며 비웃음을 흘렸다.
거래는 속도가 생명인 법이었다. 자금과 물자가 묶이고 인력이 주목받으면 삼자 간 신뢰에도 균열이 갈 터였다. 누군가 실수한 건지, 내부에 새는 구멍이 생긴 건지 의심이 돌기 시작하면 판은 더 이상 안정적으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전면 차단은 하지 마. 계속 흔들기만 해.”
무혁의 말에 성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저쪽도 금방 눈치채긴 할 거예요. 내부 점검이 시작되면 움직임이 빨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야 신철민이 직접 나서겠지.”
무혁의 시선이 밤이 깊어진 창밖으로 옮겨 갔다. 그는 성기와 소진이 돌아간 뒤에 지하실로 걸음을 옮겼다.
고양이로 인해 천식이 동반된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는 하루타의 얼굴은 눈에 띄게 부어 있었다. 한쪽 눈두덩이가 심하게 부어올라 비대칭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창백한 입술은 푸르게 질려 있었다.
소진이 일반 경구용 항히스타민제로 처치했다고 했으나 기관지 수축은 여전한 듯 보였다. 숨을 들이실 때마다 미세한 천명음이 섞여 있었다.
“아파, 살려 줘…….”
무혁은 천식성 반응을 잡기 위한 흡입형 기관지 확장제와 프리필드 펜 하나를 꺼냈다. 하루타의 입안에 살부타몰 성분의 흡입기를 밀어 넣고 두 번 분사한 뒤, 허벅지 외측에 에피네프린 자동 주사기를 꽂아 넣었다.
하루타의 근육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가 풀리며, 거칠던 호흡이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갈라지던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자 그가 식은땀에 젖은 얼굴을 바닥으로 떨궜다.
“고작 고양이 한 마리에 죽을 몸뚱어리면 애초에 오래 버티지도 못하겠군.”
무혁이 사용한 주사기를 의료 폐기 통에 던져 넣었다.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짧게 울리던 순간, 하루타가 웅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마, 말하겠습니다…….”
“…….”
“낫게 하는 방법…….”
숨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탓에 하루타의 말끝이 자꾸 갈라졌다.
“하지만, 하지만 많이 고통스러울 겁니다…….”
무혁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비스듬히 돌아보았다. 곧이곧대로 믿기보단 그를 반쯤 의심하고 가늠하는 시선이었다.
“방법부터 말해.”
하루타는 무혁이 건네준 물 한 컵을 비우고 한동안 숨을 골랐다. 인내심 있게 기다린 끝에 그의 목소리가 나직이 울려 퍼졌다.
“……공명을 피하는 건 의미 없습니다. 청각 공명 증후군을 낫게 하려면 역치를 올려야 합니다. 일부러 같은 주파수로 반복적으로 자극하고, 폭주 직전에서 차단해야 치료 가능성이 올라갈 겁니다. 뇌가 그 자극을 ‘위협’이 아니라 ‘기준’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겁니다.”
두 남자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일단 그 치료법을 행하기 위해선 특수 음향실이 필요합니다. 단계적으로 강도를 올리되 중간에 억제 약물을 병행해야 할 거고요.”
“그러니까, 극한의 고통을 동반한 치료법밖에 방법이 없다는 건가.”
“개개인에 따라 몇 번은 버틸 수 있겠지만…… 일정 구간을 넘길 때는 통증이 거의 발작 수준으로 올 겁니다. 구토, 실신, 일시적 청각 왜곡도 생길 수 있습니다.”
무혁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좆 같은 치료를 하면 완치될 확률은.”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 제거는 어렵습니다. 대신 공명에 무너지지 않는 상태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실패하면 지금보다 청각이 더 예민해질 수 있는 리스크도 있습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무 말 없이 하루타를 내려다보는 무혁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확률상 실패할 가능성은 절반 이하이긴 합니다.”
희망이 생기긴커녕 무혁의 기분은 더 개같아졌다. 하임의 체력을 떠올리니 계산이 곧바로 끝난 탓이었다.
그 연약한 몸을 한계까지 몰아붙인다는 건 치료가 아니라 위험한 도박에 가까웠다. 폭주 직전까지 자극을 가했다간 그녀는 그대로 무너져 버릴 터였다.
“다른 치료법은.”
“당장 확실한 치료법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이게 다입니다. 애초에 I.D.C는 실험체를 원상 복구 하는 방법 같은 건 고려하지 않는…….”
“없으면 새로 찾아내.”
무혁이 날카롭게 말을 자르며 명령하자 하루타의 입이 그대로 굳었다. 불가능하다고 말했다간 당장 목숨을 날려 버릴 듯한 살벌한 기세에 눌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진 무혁은 더는 말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지하실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 울렸다.
* * *
“심심해…….”
삼동이는 마루 끝에 턱을 괴고 앉았다. 유일한 단짝인 하임과 무혁이 마을을 떠난 뒤로는 가슴 한쪽 어딘가가 비어 있는 느낌이었다. 매일 같이 일상을 보내던 친구가 없으니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괜히 산 쪽을 바라보는 횟수만 늘었다.
“삼동아.”
그런 그를 봉주가 낮게 불렀다.
“이거 좀 갖다주고 와. 위쪽 능선이여.”
“네.”
삼동이가 곧장 일어섰다. 찐 옥수수와 물병, 간단한 새참 거리가 천에 싸여 있었다. 할 일이 생기면 그나마 마음이 조금 나아졌기에 길을 나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는 익숙한 산길을 오르며 콧노래로 적적함을 승화시키고자 했다. 겨울 산은 소리가 적었다. 잎이 떨어진 나무들 사이로 시야가 트여 있고, 한동안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땅은 단단히 얼어 있었다. 발을 디디는 곳마다 바삭한 서리와 마른 낙엽이 얇게 부서졌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다다르자 삼동이가 자연스레 속도를 늦췄다. 얼어붙은 흙 위에 희미한 균열이 있었다. 단순히 날이 추워 갈라진 모양과는 달랐다. 체중이 실리며 한 번 눌렸다가 다시 굳은 자국. 보폭은 일정했고, 간격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흐음.”
그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잎이 다 떨어진 가지 하나가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었다. 바람에 부러진 모양이 아닌, 손으로 힘을 주어 비튼 흔적이었다. 그 아래 나무줄기에는 의도적으로 낸 듯한, 얇게 긁힌 선이 남아 있었다. 겨울이라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쪽이 아닌가 보네.’
삼동이는 그대로 능선을 타지 않고, 오른쪽 사면으로 방향을 틀었다.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관찰하게 되는 것들을 눈여겨보며 길을 나아갔다.
깊은 산속으로 좀 더 들어가자 가지 사이에 걸린 위장망의 가장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색은 주변과 비슷했지만, 겨울 햇빛을 받아 미세하게 결이 달랐다.
“형아들.”
아무렇지 않게 다가간 삼동이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동이가 맛있는 거 가져왔어.”
이내 수풀 안쪽에서 기척이 이는가 싶더니 세 개의 형체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숨은그림찾기를 현실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숨은그림찾기는 삼동이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자신 있는 놀이이기도 했다.
눈이 초점을 맞추는 순간 배경 속에 섞여 있던 선들이 분리되고, 나뭇가지라 여겼던 것이 팔로, 바위 옆 그림자라 생각했던 것이 어깨로 바뀌었다. 좀 전까지는 분명 풍경에 불과했는데 어느새 세 명의 군인이 서 있었다.
“……와씨, 진짜 이걸 바로 찾네.”
“거봐. 내가 보통 아니라고 했지.”
“저희가 예상한 시간의 절반도 안 걸렸습니다.”
작게 오가는 속삭임에 삼동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낮게 오가는 말들이 무슨 뜻인지 궁금하지는 않았기에 그대로 천을 풀어 옥수수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