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60화
60.
지하실에서 의문의 목소리를 들은 직후, 하임은 단순히 놀란 걸 넘어 조금은 패닉 상태였다. 그녀를 더욱 충격에 빠트린 건, 저를 제외하고 이곳에 드나드는 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듯한 태도 때문이었다.
무혁이 요즘 무척이나 예민하고 바빠 보여 대놓고 묻기엔 조심스러웠다. 얼굴 보기도 힘들거니와 어렵게 닿은 통화조차 채 3분을 넘기지 못했다. 어쩌다가 한 번 떠보듯 물어봤으나,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말고 편히 쉬기만 하면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단호한 명령 같은 어조에 기가 죽어 버린 하임은 그와의 대화가 어려워졌다.
저조해진 컨디션이 신경 쓰였는지, 소진은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하라며 타이를 뿐이었다. 하임은 지난번에 납치를 당한 이후로 무혁이 지나치게 날이 서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를 사랑하는 것과 그의 통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기 때문에 하임은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의 과잉보호 속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기에 몰래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하임은 잠깐 자리를 비우겠다는 소진의 말을 평소처럼 흘려듣지 않았다. 그리고 몰래 그녀의 동태를 살폈다. 짧은 외출 후에 돌아온 그녀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나 하임은 예민하게 청각을 곤두세웠고, 잘그락거리는 미세한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추측하건대 열쇠 꾸러미를 만지는 소리 같았다.
하임은 소진이 방을 나올 기척을 보이자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자니 곧 소진이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아마도 하임이 평소처럼 낮잠을 자고 있으리라 여긴 듯싶었다.
“…….”
소진의 발걸음이 멀어질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던 하임은 주위가 고요해지자 다시 움직였다. 커튼 뒤에 바짝 붙은 채로 소진이 주택 건물을 빙 돌아 뒤편으로 향하는 걸 지켜보았다.
소진의 양손에는 검은 공구 박스와 열쇠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저쪽에도 지하실로 향하는 문이 있는 건가? 뭘 하시려는 거지?’
조심조심하며 1층으로 내려간 하임은 지하실 문에 귀를 대 보았으나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현관으로 향했다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망설였다.
‘아, 맞다. CCTV…….’
천장엔 카메라가 입구를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고, 지금 제 모습 또한 고스란히 녹화가 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즉각적으로 반응이 없는 걸 보아 무혁이 지금 CCTV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만약 그가 돌려 보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들킬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확인만 해 보고 오자.’
하임은 무혁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좋아하면서도, 그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 알고 싶었다.
무혁이 감추는 것이 뭔지, 왜 소진은 아무렇지 않게 지하실을 드나드는 건지, 지난번 들었던 그 목소리의 정체는 뭔지.
하임이 조심스레 현관문을 열었다. 무척 오랜만에 쐬는 서늘한 바깥 공기가 피부에 스며들었다.
현관문을 반쯤 열어 둔 그녀는 마당을 비추는 CCTV를 슬쩍 올려다보곤 담벼락에 붙었다. 들킬지 안 들킬지는 모르겠지만 화단과 외벽 사이의 좁은 공간을 골라 움직였다.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자 콘크리트 바닥이 흙으로 바뀌었다.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가장자리의 잔디를 밟으며 유난히 크게 뛰는 심장 언저리를 매만졌다.
‘문이다.’
지하실 외부 출입문은 건물 후면 보일러실 옆에 붙어 있었다. 몇 걸음 떨어진 위치에 멈춘 하임은 벽에 등을 붙이고 숨을 죽였다. 눈을 감고 집중하니 이내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고막에 걸렸다.
“뭔 사내자식이 이렇게 허약해?”
“헉, 허억, 허어억…….”
“고양이 알레르기가 이렇게 심한 사람은 처음 봤네. 고양이도 내보냈고 약도 투여했으니까 엄살 좀 그만 떨어.”
차갑게 가라앉은 소진의 말소리와 거칠게 끊기는 남자의 호흡이 뒤섞였다.
“뭐? 천식? 하, 진짜 가지가지 하네.”
“하루타 아파…….”
“곧 약효가 돌 거니까 참아. 이거 고치는 동안 얌전히 입 다물고 있어. 시끄럽게 하면 혀 잘라 버린다.”
하임은 저를 대할 때와는 크게 다른 소진의 태도에 놀라면서도 대화 내용에 집중했다. 그러다 지하실에 갇혀 있는 이가 하루타라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경악했다.
“하루타 약 더, 더 필요해…….”
“약물 과다 복용으로 뒤지고 싶어서 그래? 하긴, 널 어떻게 도륙할지 고민하는 집주인 손에 죽는 것보단 그게 훨씬 낫긴 하겠다.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 마비면 완전 호상이지.”
하임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데 어쩌냐. 넌 네가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못 죽는다던데. 내 앞에서도 띨띨이인 척 집어치우고 대가리나 성실히 굴려. 청각 공명 증후군인지 뭔지, 그거 치료법 알아내면 집주인이 목숨은 부지하게 해 준다잖아.”
하임의 심장이 전력 질주하는 사람처럼 시끄럽게 뛰었다. 청각 공명 증후군이라니. 이름만 익히 들어왔던 옆 마을의 하루타가 제 병의 치료법을 알 수도 있다는 사실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왜 다른 사람도 아닌 하루타인지, 무혁이 어떻게 알고 그를 이곳에 가둬 놓은 건지, 마치 모르는 세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벌벌 떨며 미지의 두려움과 직면했다. 저 때문에 장 씨 아저씨의 혀를 자른 것도 모자라, 누군가를 감금하기까지 한 무혁의 잔혹함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렇게 계속 무혁 씨 곁에 있는 게 맞는 걸까?’
그를 무척 좋아하는데도,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 같다는 무력감과 두려움이 마음을 괴롭게 했다.
“왜 대답이 없어. 여기서 살아 나가고 싶은 거 아니었어?”
“그 사람들이 하루타를 죽일 거야…….”
“어딜 가도 죽을 거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치료법을 알아내서 거래를 제안하던가. 그놈들이 너 찾지 못하게 숨겨 달라고 하면 집주인이 그 정도는 들어줄지도?”
대화 소리에 집중하는데 지척에서 야아아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하임은 고양이를 귀여워할 여유도 없이 서둘러 지하실의 반응을 살폈다.
“아, 저놈의 고양이. 계속 기어들어 오네.”
‘……!’
당장이라도 튀어나와 고양이를 쫓아낼 기세에 하임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까치발로 왔던 길을 되돌아간 그녀는 다행히 소진에게 들키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다시 2층으로 향하는 내내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무혁이 돌아올 때까지 자는 척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별안간 속이 뒤집히는 느낌과 함께 토기가 밀려왔다.
“우욱.”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간 하임의 등이 크게 들썩였다. 결국 오늘도 먹은 걸 전부 게워 낸 그녀는 금세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 * *
무혁은 귀가하자마자 하임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그녀가 자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물러났다. 머지않아 성기가 그의 주택에 도착하자 세 사람이 함께 서재로 향했다.
“1차 조치 끝났어요. I.D.C 쪽 자금 흐름 중 일부를 외부 금융 감시망에 걸리도록 설계해 두었습니다.”
“노출될 걱정은.”
“해외 페이퍼 법인을 통해 들어오는 중간 결제 라인을 건든 거라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거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반복 패턴이 있어 의심을 사기엔 충분할 거고, 회계상 문제는 없어 보여도 비정상적 경유로 분류되도록 신호만 줬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찔렀다고 단정하기엔 애매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금융 감시 시스템은 한 번 걸리면 자동으로 추적을 시작한다. I.D.C 입장에선 불필요한 확인 절차가 생기고, 내부 점검이 불가피할 터였다.
“좋아. 그 다음은.”
성기가 화면을 넘기자 지도 위에 붉은 점들이 이동 경로를 따라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