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40화
40.
짧은 찰나였으나 그 눈길은 사람을 훑는 수준이 아니었다. 안쪽까지 꿰뚫어 보겠다는 듯, 냉담하고 날카로운 시선이었다.
이내 남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삼동이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쿵, 내려앉았다.
‘……위험하다.’
위험한 사람들이야.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삼동이는 괜히 등을 곧추세우고 숨을 삼켰다.
방금 스친 눈빛 하나만으로도, 저 사람들이 이 마을에 평범한 일로 온 게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천종이 형아한테 알려야 해.’
왠지 모르겠지만 촉이 그리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저 남자들이 그를 맞닥트리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할머니, 삼동이 화장실 좀 쓸게요.”
서둘러 자리를 옮긴 삼동이는 하임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녀는 받지 않았다. 초조함에 그는 커다란 덩치로 발을 구르며 연달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무혁에게 핸드폰이 생겼단 사실 자체를 몰랐기에 우선 하임에게 문자를 남겼다.
“무전기를 갖고 올 걸 그랬어.”
말숙 할머니 댁을 나선 삼동이는 남자들이 사라진 길을 조심스레 뒤쫓기 시작했다. 갈림길에 몸을 숨기고 살피자니 저 멀리 마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저쪽으로 가면 폐분교를 지나 하임이네로 가는 길인데……!’
전전긍긍하던 삼동이는 지름길 쪽으로 향하며 머리를 굴렸다. 만약에 폐분교에 있는 아지트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상황이 더 곤란해질 것 같았다.
“아……!”
머지않아 무언가 퍼뜩 떠오른 삼동이는 동네에 유일한 아이들이 사는 집으로 재빨리 달려갔다.
“보민아, 동민아! 삼동이랑 놀자아!”
* * *
‘오태구’라는 가명의 남자는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좌에서 우로 훑었다.
“…….”
여담 마을.
이곳의 민통선 해제는 우연이 아니었고, 그 흐름은 플랜 단계에서부터 그의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었다. 여담 마을은 언젠가 쓰일 ‘무대’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통제 가능하고, 변수가 제한된 곳.
울프독이 사라진 지점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었기에, 최소한 확인은 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을 풀어 살폈을 때, 울프독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인근 의료 기록도 동시에 대조했다. 군 단위 의료 기관과 읍내 의원, 약국 처방 이력까지 추적했으나, 수상한 외상 치료나 해독제 사용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정도 부상을 입고 살아남았다면 의약품 없이 회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딘가에는 흔적이 남아야 했다.
마을은 항상 조용했고, 외부 유입도 눈에 띄지 않았다. 고립된 산골이라는 점은 숨기에 적합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지나치게 노출된 구조였다. 만약 울프독이 이 마을에 대해 뭔가 수상함을 느꼈다면 이곳을 기피할 거라고도 판단했다. 하여 그 뒤로는 복귀를 위해 도주했을 그의 흔적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튼 참이었다.
울프독의 오피스텔과 그 반경, 그가 사적으로 드나들던 도심 거점들에 인력을 집중 배치해 동선을 훑고 또 훑었다. 주변인을 통해 다른 은신처로 빠졌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은 울프독의 거점 주변에서 소수 인원만 남기고 전원 철수한 상태였다. 몇 주째 이어진 매복에도 성과가 없자 더 이상 그 자리를 붙들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던 무렵, 우연히 끼어든 보고서 하나가 흐름을 틀었다.
혀끝이 잘린 환자.
옆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40대 남자는 평범한 민간인이었다. 그런데 사고도 폭행도 아닌 ‘원인 불명 외상’이란 진단 기록이 남아 있었다. 더 기묘한 건 그다음이었다.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을 남긴 채, 환자의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점이다. 사망은 아니었으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운 것처럼 깔끔했다.
혀.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선택.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경고에 가까운 수법이었고,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인간은 흔치 않았다.
그 환자의 주변을 캐 보았으나 채권 관계와 마을 분쟁 같은 사소한 이야기들만 흘러나왔다. 표면은 하찮았지만 처리 방식에 있어서 어딘가 께름칙한 냄새가 났다.
“이쪽으로 가면 폐교된 지 오래된 분교가 하나 있고, 거기서 더 쭉 가면 뒷산 바로 밑에 집 한 채가 나와요. 거기는 심마니 영감이 사는 집인데, 그 인간 성질이 하도 더러워서 인사할 필요까진 없을 거고. 쯧. 하여튼, 이제 딱히 더 볼 곳은 없을 텐데 더 구경하시렵니까?”
최 이장의 말을 적당히 흘려듣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폐분교는 겉모습부터가 낡고 음산해서 마을의 흉물과도 다름없어 보였다.
“폐분교라.”
여차하면 귀신이 나올 듯한 비주얼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발길을 꺼리는 곳이야말로 그들에겐 더없이 안전한 그늘이었고, 사냥꾼으로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지점이었다.
남자는 코트 안쪽 주머니에 든 금속 손잡이를 느긋하게 매만지며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떤 곳인지 궁금하군요. 우선 저곳부터 둘러봐야겠습니다.”
* * *
폐분교 앞에 이르자 최 이장이 먼저 발걸음을 늦췄다. 건물은 가까이서 보니 더 처참했다. 깨진 유리창 사이로 바람이 스치며 낡은 교실을 긁고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여긴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귀신도 나오고, 재수 옴 붙은 곳이라…….”
구시렁거리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최 이장은 슬쩍 건물 안을 훔쳐보곤 아예 입구 끝자락에 멈춰 섰다. 더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남자는 그 반응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성가신 늙은이를 달고 다니느니 오히려 떼 놓고 다니는 편이 나았다. 그는 뒤에 선 부하 둘을 향해 짧게 눈짓했다. 말없이 흩어진 둘은 폐분교 후문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
혼자가 된 남자가 폐분교 안으로 발을 들였다.
문턱을 넘는 순간 공기가 훅, 달라졌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오래 쌓인 먼지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복도 바닥에는 깨지거나 썩은 파편이 흩어져 있었고, 버려진 표지판이 반쯤 뜯긴 채 매달려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든 게 완벽하게 방치되어 있었다. 걸음을 늦춘 남자는 발소리가 과하게 울리지 않도록 체중을 조절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무너진 책상, 뒤집힌 의자들 사이를 지나칠 때마다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습관처럼 구조를 읽고 시야의 사각을 훑었다. 그러던 중, 그는 어느 지점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
바닥 위, 먼지로 뒤덮인 타일 사이에 선명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오래된 흔적이 아니었다. 쓸려 나간 먼지의 결이 아직 살아 있었고, 발볼이 닿은 자국이 꽤 또렷했다.
발자국을 유심히 바라보는 남자의 눈썹이 기묘하게 위로 솟았다. 그대로 눈만 치켜뜬 그는 복도를 잔잔히 태울 듯 응시했다.
남자는 코트 끝에 묻은 먼지를 장갑으로 툭툭 털고는 반대쪽 끝을 향해 걸었다. 최근의 것처럼 보이는 인위적인 흔적을 쫓으며 계단으로 방향을 틀었다.
삐걱―
낡은 계단이 낮게 울리자 그는 순간적으로 체중을 빼며 발걸음을 죽였다. 그리고 2층에 올라선 순간, 미세하게 표정이 변했다.
풍경 자체는 1층과 다를 바 없었으나 공기가 묘하게 달랐다. 오래 방치된 공간 특유의 싸늘함 대신, 설명하기 어려운 잔열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입안의 살을 짓씹었다.
어쩌면 울프독의 잔재가 이 건물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며들었다. 그는 문틈, 바닥, 천장 모서리까지 하나도 흘리지 않고 집요하게 시야를 갈랐다.
그때였다.
샤샥―
아주 미세한 소리가 남자의 고막에 걸렸다. 바람으로 넘기기엔 결이 다른 소음에 그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는 고개만 틀어 소리가 난 방향을 겨눴다.
냉랭한 눈길이 잠긴 철문 하나, 반쯤 열린 교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자리한 화장실을 차례로 오갔다.
조용히 교실 안으로 발을 들인 남자가 책상 하나 없이 휑한 공간을 눈에 담았다. 내부를 한 바퀴 훑다가 뒤편 벽에 붙은 수납함에서 시선을 멈췄다. 빗자루나 걸레 따위를 보관했을 법한 애매한 크기의 철제함이었다.
그 순간, 남자의 눈동자에 싸늘한 이채가 스쳤다.
그는 확신에 가까운 직감으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수납함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수납함 문을 거세게 걷어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