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39화
39.
살아 돌아온 칼은 언제든 주인을 벨 수 있다. 정권은 그런 무기를 남겨 둘 생각이 없었다. 봉주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명령에 따라 조용히 소거될 것인가, 아니면 명령에 불복하고 살아남을 것인가.
문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부대원 중엔 가정을 꾸린 이들도 있었고, 돌아갈 곳을 믿고 버텨 온 자들도 있었다.
짧은 고민 끝에 봉주는 먼저 움직였다. 통신 담당을 제압해 외부와의 연결을 끊고, 무기고를 열어 실탄을 확보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만 골라 사실을 알렸다. 독고일재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대를 ‘정리’하기 위해 은밀히 투입된 처리조와 내부에서 짧고 잔인한 내분이 벌어졌다.
미리 대비해 둔 덕에 총성은 길지 않았고, 불필요한 교전은 피할 수 있었다. 그는 탈출 경로를 먼저 열어 두고 동료들을 밀어 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서로의 흔적을 지우며 뿔뿔이 흩어지도록 만들었다.
최후의 1인으로서 끝까지 남은 봉주는 처리조를 전부 사살하는 데 성공했지만, 끝내 도주하지 않았다. 모든 책임을 스스로 떠안은 채 체포됐고, 군사 재판도 없이 수감됐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정권이 바뀌면서 봉주는 조건부로 풀려났다. 기존 신분 말소, 모든 연줄 차단, 그리고 민간인 통제 구역에서 평생을 일반인으로 살아갈 것.
자유를 가장한 봉인이었다.
그렇게 봉주는 세상에서 지워졌고, 살아남은 동료들 또한 이름 없는 소문으로만 흩어졌다. 누군가는 그를 배신자라 불렀고, 누군가는 영웅이라 불렀다.
조직을 깨뜨리고 사람을 살린 자. 국가가 지운 이름. 그래서 살아남은 동료들은 그를 ‘임꺽정’이라고 기억했다.
그렇게 여담 마을에 터를 잡게 된 봉주는 국가의 바람대로 평범하게 살았다. 심마니라는 그럴듯한 직업으로 생계를 잇고, 마을 토박이 아가씨와 혼인하여 가정도 꾸렸다.
그럭저럭 괜찮게 키운 외동아들이 군대에 말뚝을 박겠다고 선언했을 때, 내심 탐탁지 않았지만 아들의 의사를 존중했다. 육군 장교가 된 아들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아내를 맞았다. 참하고 부지런했던 며느리는 희귀성 난청 질환을 앓았고 치료가 간절했던 터였다.
어느 의료 기관의 후원을 받아 청각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건, 아들이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최신 치료법이라며 소개된 프로그램은 비용 부담도 적었고, 절차도 간단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검사와 투약을 병행하면 된다는 설명뿐이었다.
봉주는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며느리는 치료를 받을수록 청각 반응이 미세하게 달라졌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었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변화였다.
이상함을 느낀 건 한참 뒤였다. 치료 내용에 비해 기록이 지나치게 단순했고, 담당 의료진이 자주 바뀌었다. 무엇보다 검사 결과나 경과 보고서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다.
병원은 늘 ‘연구 단계라 그렇다’는 말로 얼버무렸고, 질문을 거듭할수록 설명은 더 추상적으로 흐려졌다. 의심이 증폭되는 데 결정적이었던 건 우연히 본 문서 하나였다. 병원 로고 아래에 찍힌, 봉주에게 너무도 익숙한 표식. 과거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에서만 쓰이던 형식의 기밀 코드였다.
그제야 봉주는 깨달았다. 그곳은 일반 의료 기관이 아닌, I.D.C 산하 연구소였다. 의료 기관의 외피를 뒤집어쓴 채, 민간인을 대상으로 약물과 감각 자극 실험을 진행하는 곳이었다.
치료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임상 시험은 회복을 보장하지 않았고, 성공과 실패의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며느리는 환자가 아니라 실험 대상이었던 것이다.
봉주의 강제로 치료를 그만둔 며느리는 머지않아 뱃속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임신이 예기치 못한 합병증을 일으켰고, 며느리는 하임을 출산한 직후 자궁 이완증으로 인한 과다 출혈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사별에 정신 줄을 놓다시피 한 아들의 방황은 짧지 않았다. 어미와 달리 특출난 청각을 갖고 태어난 손녀는 홀로 남은 아비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이라곤 우는 것뿐이니, 그 울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려 줄 어른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임의 울음은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배가 고파서도 안아 달라는 뜻도 아니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손녀의 귀는 지나치게 열려 있었다. 문이 여닫히는 소리, 바람이 벽을 긁는 마찰, 멀리서 울리는 기계음까지. 세상은 아기에게 감당할 수 없는 소음 덩어리였고, 아기는 그 모든 자극을 고스란히 받아 냈다. 울음으로 터져 나온 고통은 멈출 줄 몰랐다.
하루에 무려 스무 시간 가까이. 잠들었다 싶으면 곧바로 비명을 토해 내는 데다가 안아도 달래지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가 봐도 ‘유난히 예민한 아이’라는 말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아들은 점점 피폐해지고, 이성과 감정의 충돌을 통제하지 못했다. 아내를 잃은 상실 위에 밤낮없이 이어지는 울음이 겹치니 절망만 커졌다. 딸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고통 앞에서 빠르게 무너져 갔다.
결국 아들은 버티지 못했다. 어느 날 새벽, 아이가 잠시 잠든 틈을 타 조용히 집을 나선 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남겨진 것은 소리를 견디지 못해 우는 손녀와 모든 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린 봉주뿐이었다.
* * *
삼동이는 오늘도 여담 마을 아래쪽에 있는 어르신 댁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겨울이라 밭일은 뜸했지만 대신 장작을 패서 쌓아 두고, 얼기 쉬운 수도관에 헝겊을 감아 주는 일이 남아 있었다.
마루 밑에 들락거리며 손을 놀리다 보니 손끝이 얼얼했으나 이 정도는 익숙했다. 삼동이는 마을과 마을 사이를 오가며 품팔이를 하는 게 즐거웠다. 사람들을 만나 정을 나누면 외로울 틈이 없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삼동이를 봐 온 어르신들은 그를 손주처럼 예뻐했고, 그 또한 가족처럼 따르며 두루두루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터였다.
“…….”
막 말숙 할머니네서 작업을 끝내고 도구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삼동이는 오늘따라 자꾸만 바깥이 신경 쓰였다. 평소라면 점심 무렵엔 개 짖는 소리나 바람 소리 말고는 고요했을 시간, 오늘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잦았다.
담 너머로 낮은 목소리들이 오갔고, 낯선 말투가 간간이 섞였다. 삼동이는 장작더미 옆에 쪼그려 앉은 채 마을 어귀 쪽을 훔쳐봤다.
길을 안내하는 듯한 최 이장 뒤로 처음 보는 남성들이 따라붙고 있었다. 등산객 차림도 공무원 차림도 아닌 애매한 복장에 삼동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마을 집집마다 뚝뚝한 시선을 던지며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순찰이라기엔 너무 느렸고, 구경이라기엔 너무 진지했다.
“할머니.”
삼동이는 일을 하던 손을 멈추고 마당에 앉아 있던 말숙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저 사람들은 누구예요?”
할머니는 그의 시선을 따라 잠시 담 너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글쎄다, 이장님이 데리고 온 걸 보면 외부 사람들은 맞는디.”
“외부 사람들이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내가 어찌 알겠누.”
아리송해하던 사이 방문객들과의 거리가 차츰 좁혀지고 있었다. 삼동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계속 그들을 흘끔거렸다.
세 명의 남자는 겉보기엔 다들 무표정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들이라 그 고요함이 좀 기묘하게 느껴졌다. 웃지도 찌푸리지도 않는 표정 아래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했다.
이장을 바라보는 눈빛 또한 느슨했지만 사람을 대하는 눈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을을 훑는 것조차 가볍게 스쳐 가는 것이 아닌, 필요한 곳에서 정확히 멈추는 느낌이랄까. 특히 집과 담장, 골목의 굴곡을 지나칠 때마다 멈칫하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 짧은 순간마다 분명한 목적이 엿보였다.
삼동이는 특유의 뛰어난 관찰력으로 자신이 보는 풍경 그대로를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저들의 움직임은 마치 무언가를 찾다가, 오래 헤맨 끝에 마침내 범위를 좁혀 온 사람들 같았다. 한편으론 머릿속에 그려 둔 지도를 확인하는 것 같기도 했다.
“……뭐지.”
셋 중 둘은 젊은 남자였다. 코트 자락에 가려졌지만 널찍한 어깨선과 단단한 가슴께는 물론 전반적으로 탄탄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또렷한 턱선에 군더더기 없는 얼굴. 보기 좋게 잘 빠졌지만, 이상하게도 선해 보인다는 인상은 들지 않았다.
멋있다는 감상보다 그들이 풍기는 기세가 꺼림칙하여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때였다.
“…….”
막 담장 바로 옆을 지나치던 남자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정확히 삼동이에게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