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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38화


38. 하임이 제 위에 앉아 있어도 무겁기는커녕 솜으로 채운 인형을 올려놓은 것 같았다. 그는 저와의 행위를 더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살을 더 찌워야겠다고 생각하며 혀끝으로 클리토리스를 튕겼다. 좀 건드렸다고 살짝 부어오른 살점이 미약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씨발, 왜 이리 달아.’ 허구한 날 산에서 캔 쓰디쓴 것들만 먹으면서 흘려 대는 물은 왜 이리 단지. 무혁은 그 어떤 마약도 이 단물보다 중독적일 순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살이 찌면 흐르는 샘물도 늘려나. 짝―! “흣!” “엉덩이 내려요. 구멍 착각할 거 같으니까.” 포동포동한 살을 아프지 않게 내려친 무혁은, 둔부를 쥐어짜듯 주무르며 입술을 더 바짝 붙였다. 이완으로 조금 넓어진 구멍 입구에 혀를 끼워 넣자 그녀가 본능적으로 사타구니에 힘을 주었다. 그는 그 하찮은 발버둥에 웃음을 삼키며 혀로 길을 뚫었다. “하으응…….” 교성이 한층 간드러졌다. 무혁은 혀로 내부를 휘젓고 내벽을 쓸며 음탕한 탐구를 이어 갔다. 유륜이 솟은 가슴 너머로 하임의 표정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꼿꼿했던 자세가 무너지고, 외설적으로 풀리는 얼굴에 무혁의 페니스가 열렬히 반응했다. 그는 오늘도 쿠퍼액만 줄줄 흘려 대는 제 남근이 가엾다고 자조하며 그녀의 모습을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콱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또 이렇게 섹시하고 야할 수가 있나. 마음 같아선 하임을 잡아먹다 못해 영혼마저 쏙쏙 빼먹고 싶었다. 하지만 피임 기구 없이 넣었다가는 참지 못하고 이 작은 뱃속에 제 씨를 잔뜩 싸 버릴 것만 같았다. 무혁은 아쉬운 심경을 담아 애액이 멈추지 않는 음부를 강하게 빨아들였다. 촉촉한 날개살을 아프지 않게 씹고 날카로운 코끝으로 클리토리스를 꾹 눌렀다. 탱글한 살점이 혀끝에 튕길수록 괴팍한 성미가 튀어 올랐다. “아흣!” 초점이 흐려지다 못해 머릿속이 완전히 혼몽해진 하임이 울 것 같은 얼굴로 신음했다. 그녀는 그의 바람대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처, 천종 씨…….” 바들바들 떨며 고개를 저었지만, 무혁은 쉬이 놔주지 않고 기어이 하임을 몇 번 더 절정으로 이끌었다. 무너지려는 그녀를 지탱하겠답시고 두 가슴을 마구 주무르며 아래를 쉬지 않고 휘저었다. 머지않아 하임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나서야 무혁이 그녀를 번쩍 들며 상체를 일으켰다. 여운에 파르르 떠는 그녀의 어깨에 옷을 걸쳐 주고는 제 품에서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머지않아 진이 모조리 빠진 하임이 그대로 잠에 빠졌다. 무혁은 손수 그녀에게 옷을 입혀 준 뒤 이부자리에 뉘었다.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서늘한 무표정으로 새근새근 자는 그녀를 지켜보다가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톱만 한 스펀지 두 개는 주변의 소리를 차단해 주는 폼 타입 귀마개였다. 무혁은 하임의 양쪽 귀에 귀마개를 슬며시 꽂아 넣고는 방을 벗어났다. 언제 흥분했냐는 듯 냉담한 눈빛으로 찬 바람을 쐬고 있기를 한참, 귀가한 봉주가 마루에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하고 멈춰 섰다. “…….” “…….” 무혁은 오늘도 제 속셈을 꿰뚫어 보려는 듯한 냉혹한 눈길을 받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긋한 걸음으로 봉주 앞에 선 그는 마찬가지로 상대를 간파하기 위해 눈매를 날카롭게 벼렸다. “어디 다녀오십니까?” “알면서 뭘 묻고 지랄이여.”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시방, 뭐가 궁금하든 간에 묻는 건 네 맘이지만 대답하는 건 내 맘이여.” “임하임 씨의 청각에 관한 겁니다.” “…….” 칼날처럼 무뎌 보이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던 봉주의 시선이 흔들렸다. 무혁은 그 미묘한 균열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혹시 I.D.C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 “통합 방산 평의회에 대해 알고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밤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숨소리조차 허용되지 않는 정적 속에서 날카로운 봉주의 눈빛이 무혁을 노려보았다. 쉬이 입을 열 생각이 없는 듯했으나 그 침묵은 결국 시인이나 다름없었다. “임하임 씨의 청각 능력이 간접적으로라도 I.D.C와 관련이 있습니까?” 연달아 묻자 내내 말이 없던 봉주의 잇새로 서릿발 같은 어조가 흘러나왔다.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를 짐승 새끼에게 너무 과분한 친절을 베풀었구먼. 이제 니놈이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 “대답해 주시죠.” “쓰벌, 니놈 새끼 뭘 믿고 내가 주둥이를 나불거린단 말이여. 내가 마지막으로 베풀어 주는 자비이니께, 더는 그만 설치고 썩 꺼지는 게 좋을 거여.” “임하임 씨를 위해서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그 간사한 혀로 우리 순진한 손녀 그만 꼬드기고. 온전한 몸뚱어리로 보내 줄 때 얌전히 사라져라잉.” “그럼 독고일재의 외손자로서 임하임 씨를 책임지고 보호하겠다고 약속드린다면, 믿으시겠습니까?” “…….” 그 이름 하나에 지난 시간이 한꺼번에 들춰진 듯, 봉주의 턱선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미 눈치채고 계셨잖습니까. 제가 누군지.” 오래 묻어 두었던 이름을 정면으로 맞닥트린 봉주의 호흡이 한 박자 늦게 따라붙었다. 그는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무혁을 쏘아보았지만, 그 안광에는 조금 전까지의 위협은 없었다. 대신 계산과 회상이 뒤섞인 듯한 깊은 어둠이 스쳤다. “영감님이 아니었다면 저희 외조부께서도 진작에 죽은 목숨이었을 거란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랬다면 저도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테죠.” “…….” “외조부 대신 영감님한테 은혜를 갚으려는 건 아닙니다. 제가 신경 쓰는 대상은 임하임 씨 한 명뿐입니다.” “……새끼가 감사 인사도 싸가지 없게 하는구먼. 나야말로 니가 일재의 핏줄이든 뭐든 간에 알 바 아니여.” 봉주는 바늘구멍 하나 뚫기 힘들 정도로 빈틈이 없어 보였으나, 어딘가 복잡 미묘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네가 네 할애비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모르겄다만. 그 반반한 낯짝은 일재를 꽤나 닮았을진 몰라도 그래 봤자 껍데기뿐인디.” “돌아가신 외조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같은 기관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절 믿으실 수 없다면 독고일재의 손자를 믿어 보십시오.” “…….” 그저 묵묵히 무혁을 바라보기만 하던 봉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등을 보였다. 허락도, 불신도 아닌, 아직 계산을 끝내지 못한 자가 남긴 무거운 침묵이었다. * * * 때는 1970년대. 대외적으로는 안정과 성장을 말하던 시기였지만, 내부에선 정권 교체와 권력 재편을 앞두고 수면 아래의 폭력이 일상이던 때였다. 정부는 법과 외교로는 처리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기록에 남지 않을 칼을 하나 만들었다. 정식 명칭조차 부여되지 않은 비공식 합동 특수 전력. 육·해·공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았고, 필요할 때마다 각 부대에서 인원을 차출해 구성됐다. 작전이 끝나면 해산됐고, 서류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처리됐다. 남는 건 결과뿐이었다. 봉주는 당시 그 칼의 일부였다. 대북 침투, 국외 비밀 공작, 요인 제거, 인질 회수, 시설 파괴. 임무의 성격은 늘 같았다. 난이도와 무관하게 실패는 허용되지 않았고, 생환은 조건이 아니었다. 부대원들에겐 이름 대신 번호가 주어졌고, 군번줄 대신 회중시계가 지급됐다. 뚜껑 안쪽엔 외부인이 알아볼 수 없는 내부 식별 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무기라 여겼고, 무기로서 기능하는 데 익숙해져 갔다. 몇몇은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 사이엔 묵직한 전우애가 쌓였다. 독고일재 또한 그중 하나였고 유독 각별했던 동료이기도 했다. 마지막 임무가 내려오기 전까진, 봉주의 목표도 단순했다. 작전을 완수하고, 살아남아 다음 작전에 투입되는 것. 그런데 1970년대 후반의 어느 날, 이상한 작전이 하나 떨어졌다. 초기 브리핑부터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목표는 명확했지만 세부 계획은 허술했고, 지원 약속은 문서로만 존재할 뿐 행해지지 않았다. 통신선은 단방향으로만 열려 있었으며 철수 시점은 끝내 명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임무는 완수됐다. 그러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추가 지시는 없었고, 예정됐던 교신 시각은 여러 차례 지나갔다. 며칠이 지나도록 구조 신호조차 오지 않았다. 그제야 봉주는 확신했다. 이 작전은 부대원 전원을 처리하기 위해 짜인 판이라는 걸. 이건 돌아오지 말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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