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30화
30.
며칠 후, 오밤중에 야산을 찾는 것이 일상이 된 무혁은 성기로부터 봉주의 이력에 관해 듣게 되었다.
“수술 기록은 확실히 있어요. 이 근방 지방 병원에서 심혈관 질환으로 관상 동맥 우회술을 받았고, 지금은 항혈소판제, 혈압약, 심장 보호제를 복용 중입니다.”
심장에 손을 댈 만큼 큰 질병을 앓았다면 예전처럼 몸을 혹사하긴 어려울 터였다. 짧은 동작이나 순간적인 힘은 버틸 수 있어도, 한계를 넘기면 치명적인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하임이 혼자서 산을 타며 생계를 책임지는 이유가 어렴풋이 읽혔다.
“195X 출생인데 출생 연도까지 허위는 아닐 거 같고, 개명 전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어요. 그 시절 기록을 작정하고 지웠다면, 본인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알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195X…….”
무혁의 머릿속에 외조부의 얼굴이 스쳤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그는 청소년기 대부분을 외조부 밑에서 보냈다. 특수 부대 요원이 된 것 역시 같은 길을 걸었던 그의 영향이 컸다. 총을 처음 쥐는 법도, 숨을 죽이는 법도, 살아남는 방식도 외조부에게서 배웠다.
“그러고 보니 195X년생이면 형 외할아버지랑 동년배 아니에요? 역시 간첩 아니면 공작 요원 쪽으로 좁혀지는 느낌인데.”
“…….”
외조부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 ‘기밀 특수 부대’라 부를 만한 조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공식 기록조차 남지 않은 비공식 합동 전력은 많아야 한두 개.
이름도, 역사도 없이 부대 번호만 존재하던 조직이었다. 정권과 판단에 따라 언제든 생성되고, 필요 없어지면 통째로 사라질 수 있던 전력.
대북 침투, 암살·납치·파괴 공작, 외국 정보 기관과의 협력 혹은 충돌이 주 임무라고 봐야 했다.
“그 시절에 활동했던 간첩들은 대부분 사살당하거나 수감 처리됐어. 운이 좋아 봤자 해외로 빼돌려졌고. 민간인 통제 구역에 애매하게 숨겨 두고 감시만 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데.”
무혁은 봉주가 적어도 간첩은 아닐 거란 결론에 이르렀다. 따져 보면 신분 말소의 방식 또한 기존 간첩들과는 달랐다. 보통 가짜 신분을 만들어 해외에서 활동하거나 기록 자체를 해외로 넘겨 버리는 식이라면, 그의 경우는 해외 이동 기록은커녕 외부 활동조차 힘든 곳에 오랜 시간을 고여 있었다.
“그 노인네 몸에 있는 흉터도 고문 흔적이 아니라 전투 중에 생긴 실전형 상처들이야. 간첩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정면충돌을 반복하며 살아남기는 힘들었을 테지.”
간첩들의 임무는 보통 잠입, 탈출 위주인 데다가 발각될 시에는 도주가 우선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조합해 보면 국가가 스파이를 숨겼다기 보다, 쓰던 칼을 칼집에 영영 꽂아 둔 채 처박아 둔 느낌이었다.
제 외조부와 같은 시대를 건너왔고, 같은 방식으로 피를 묻혔을지도 모를 노인이었다. 하지만 외조부는 끝까지 이름을 잃지 않았다. 공식 기록에서 지워지지도, 존재 자체를 봉인당하지도 않았다. 결이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이 정도면 외부에선 그 영감의 생사조차 몰랐겠군.”
“그러게요. 실존하는 건 분명한데 실명을 알 길이 없고, 국가 기록에서까지 지워진 존재. 마침 성도 ‘임’ 씨고, 이렇게 보면 무슨 ‘임꺽정’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성기가 웃으며 늘어놓는 잡소리를 듣던 무혁이 멈칫했다.
“…….”
임꺽정. 임꺽정이라.
백성들에겐 의적이자 영웅이었지만, 국가 입장에선 지워 버려야 했던 반란자 같은 존재. 정확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이미지’로만 전설처럼 떠도는 인물.
무혁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임꺽정이 아닌, ‘다른’ 임꺽정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지운 이름 없는 영웅이자, 명문화된 기록 대신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존재. 영웅으로 기리기엔 불편하고, 반역자로 부르기엔 애매한 인간.
“하.”
무혁이 냉소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봉주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지만 한편으론 좆 같은 구석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애초에 농락당한 건 나였나.”
“농락이라뇨?”
“씨발, 그 영감이 더 먼저 내 존재를 알아낸 것 같다는 소리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혁이 별안간 나사 하나 빠진 살인마처럼 실소를 흘려 대기 시작했다. 그를 미친놈 보듯 하던 성기가 그대로 입을 다물며 거리를 벌렸다.
* * *
무혁은 이따금 아무도 없는 폐분교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임의 집이 불편한 건 아니지만 이곳은 이곳만의 장점이 있었다.
무혁과 만화책을 볼 생각으로 신나게 달려온 삼동이는 기대와 달리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저를 바라보는 무혁의 눈빛이 꼭 먹잇감을 재는 맹수 같았기 때문이다.
[형아, 왜?]
[왜 그렇게 봐?]
[삼동이한테 서운한 거 있어?]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말 대신 이어지는 건 살벌한 시선뿐이었다. 삼동이는 그 묵직한 눈총을 견디다 못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괜히 바닥을 훑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딴청을 피웠다.
마치 네가 지난날에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안다는 듯한, 스스로 네 죄를 고하라는 듯한 압박이 전신을 눌러 왔다. 삼동이의 어깨가 점점 움츠러들었다.
“형아, 자꾸 그렇게 무섭게 째려보면 삼동이는 섭섭…….”
“네가 좋아하는 만화에서 배신자 새끼들을 어떻게 족치는지 아나?”
“……할 자격이 없지.”
삼동이가 풀이 잔뜩 죽은 낯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제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 듯했으나 그로선 고의가 아니었다.
“미안해, 형아. 삼동이가 잘못했어.”
“…….”
“영감님이 말 안 하면 형아 쫓아낸다고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 준다고 했단 말이야.”
“날 위해서 날 팔았다?”
씨발,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네.
무혁은 신랄한 비웃음을 터트리며 혀로 입안을 굴렸다.
“언제부터. 어떻게.”
“……하임이가 거미한테 물려서 아팠던 날. 그날 영감님이 하임이 닭 고아 먹일 거니까 밥 먹으러 오라고 해서 갔었어…….”
“갔다가 들켰다는 거군.”
“……응. 삼동이는 거짓말 잘 못 한단 말이야.”
가마솥 안에서 옷을 발견한 봉주가 삼동이를 찾아갔고, 그럭저럭 잘 넘어갔다고 들은 터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영감님은 우리 마을 최강 보스라고 했잖아. 제일 무서운 사람인데 어떻게 속여…….”
요약하자면 하임이 약을 먹고 잠이 든 후에, 봉주가 삼동이를 취조하듯 몰아붙이는 바람에 사실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당장 분교 쳐들어가겠다고 해서 삼동이가 얼마나 힘들게 말렸는데. 내가 형아는 나라 지키는 군인인 데다가 심지어 특수 요원이라고 하니까, 넘어가 주는 대신 형아에 대해서 알아 오라고 했어…….”
무혁은 기가 차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그러니까, 그 노인네는 여차하면 정말로 저를 죽일 계획이었단 뜻이었다. 만약 자신이 우연히 이곳에 숨어든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했을 것이다.
“형아는 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고 하니까 소지품 사진이라도 찍어 오라고 했는데, 삼동이는 형아 씻고 있을 때 시계 사진밖에 안 찍었어. 근데 할아버지가 그거면 됐다고 했어.”
삼동이의 하찮은 자백을 듣던 무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시계라.”
“하임이가 찾아 줬다는 목걸이 달린 시계. 군번줄은 형이 매고 있어서 못 찍으니까…….”
“…….”
발견 후에 하임이 내내 손에서 놓지 않았던 외조부의 유품. 그 후엔 그녀의 손을 벗어나 창고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그 시계를 찍어 간 거면, 전부를 본 거나 다름없겠군.”
“……?”
“그 영감으로선 일이 아주 쉽게 풀렸겠어.”
그 회중시계는 제 외조부가 현역 시절에 부대에서 받은 비공식 표식이었다. 무혁이 전해 들은 바로는, 단순히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물건이 아니었다.
극소수 인원에게만 전달된 이것은 군번줄 대용인 동시에 서로를 식별하기 위한 장치였다. 뚜껑 안쪽엔 일반인이 알아볼 수 없는 내부 식별 코드가 각인돼 있었고, 이름도 계급도 적혀 있지 않았다.
작전 투입 전 부대원들은 멈춘 상태의 회중시계를 받는데,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작전 개시 타임을 의미한다. 개시 직전 모두 같은 시각으로 태엽을 감아 시간을 흐르게 하고, 작전 중 동료가 사망할 시엔 남은 이들이 사망 시각에 맞춰 사망자 시계의 태엽을 멈춘다.
배터리가 없는 태엽식 회중시계는 시간이 흐를지, 멈출지를 직접 선택해야 하는 물건이었다. 같은 작전에 투입됐더라도 시계가 멈춘 시각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끝까지 움직였고, 누군가는 중간에 멎었다. 기록은 남지 않았으며 멈춘 시계만이 죽음을 증명했다.
‘그’ 임꺽정 또한 이 식별물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외조부와 등을 맞댔던 전우인 동시에 조직을 깨뜨린 방아쇠가 바로 ‘그’ 임꺽정이기에.
곧 봉주는 무혁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의 정체까지 낱낱이 알고 있었다는 거로 봐도 무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