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21화
21.
시계를 찾았다고 외치던 순간, 하임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슥, 사각―
목덜미를 느리게 기어다니는, 축축하고 오싹한 감촉에 온몸의 털이 곤두선 탓이었다.
콱―
곧이어 뜨거운 바늘 두 개가 동시에 박히자 통증이 튀며 숨이 턱, 막혔다. 뇌까지 아찔해지는 따끔한 고통은 둘째 치고, 잔털이 달린 다리들이 살갗을 스치는 감각이 몇 배는 더 소름 끼쳤다.
그 순간부터 하임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아득한 공포에 어깨 하나 까딱하는 것조차 쉽지 않던 순간, 무혁이 그녀에게 달라붙어 있던 무언가를 거칠게 떼어 냈다.
이후 정신을 수습할 틈도 없이 무혁에 의해 번쩍 들렸고, 어느새 그에게 안긴 채 빠른 속도로 하산 중이었다. 장신답게 시원스러우면서도 나아갈 방향이 확고한 발걸음이었다.
규칙적인 흔들림에 그녀가 무혁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려 했지만, 결국 억누르지 못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으흑…….”
얼굴이 그의 쇄골 아래에 파묻히며 서러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목 주위로 빠르게 퍼지는 통증과 몸에 남은 끔찍한 감촉이 계속 따라붙어 숨을 제대로 쉬기도 버거웠다.
무혁은 그런 하임의 떨림을 놓치지 않고 팔에 더 힘을 주었다. 달래는 말 대신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이 그녀를 더 안심시켜 주었다.
산길 아래로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둘의 숨소리만이 흐를 뿐이었다. 주위에 온통 나무뿐이라 헷갈릴 법한데도 무혁은 왔던 그대로 정확하게 길을 뚫고 나아갔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 산 입구에 다다르자, 내내 훌쩍이던 하임이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습관처럼 주위를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는데 무혁이 그녀를 더 바짝 고쳐 안았다.
“신경 쓸 거 없어요.”
네가 뭘 하려든 간에 필요 없다는 듯, 무심히 내뱉는 말투는 겨울 산 절벽처럼 시리고 건조했다. 하임은 속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어 조심스레 그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달빛 아래 드러난 얼굴은 결을 반듯이 세운 칼날 같았다. 차갑게 금이 간 것 같은 눈매, 솔잎 끝처럼 예리하게 뻗은 콧대, 또렷하게 경직된 턱선. 지금까지의 태도마저 전부 허상이었나 싶을 만큼 온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서워.’
어쩌면 이게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그 순간 하임의 머릿속에 의심이 스쳤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무채색 벽을 마주한 것처럼 긴장감이 서늘하게 배어들었다. 알 수 없는 미묘한 기분에 휩싸인 와중 무혁이 그녀와 시선을 맞췄다.
“많이 아픕니까?”
하임은 물린 부위가 뜨겁고 욱신거렸으나 고개를 저었다.
“이 마을에 병원 같은 건 아예 없나? 집이 어딘지부터 말해 봐요.”
그녀는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여담 마을엔 당연히 병원이 없거니와 집에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부, 분교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어차피 약통이 거기 있으니까…….”
“…….”
그는 두 번 묻는 대신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데 그쳤다.
무혁의 행동엔 호들갑도 부산스러움도 없었다. 체격에 비해 침착한 움직임은 유난히 절제되어 있기까지 했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도 하임은 왠지 그가 어느 때보다 제게 집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리 정면만 보고 있었는데도 신경이 전부 제게 기울어 있는 것 같달까. 그런 기분이 들자 그가 무섭다고 느껴졌던 감정이 사르르 씻겨 내려갔다.
분교로 돌아온 무혁은 창문이 없는 구석에 하임을 세운 뒤 손전등을 켰다.
“잠깐 확인할 테니 그대로 있어요.”
아까 그녀의 목에 붙어 있던 건 다리 길이 포함, 약 7cm 정도 되는 거미였다. 뛰어다니며 사냥하는 늑대거미류 중 하나로 추정되는데, 이 거미들은 풀과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종류마다 다른 독성을 지니고 있다는 거였다. 하임의 몸에서 떨치는 걸 우선한 나머지 정확히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한 터였다. 무혁은 하임의 상처부터 유심히 살폈다. 미세한 빨간 점 두 개가 찍힌 부위는 단단했고, 그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었다.
“발진이네요. 독성이 좀 있는 거미였나 봅니다.”
하임 또한 자신이 거미한테 물렸으리란 걸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목덜미가 욱신거리다 못해 쿡쿡 안쪽까지 쑤셔 대는 느낌이 들었고, 몸속 어딘가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번졌다.
무혁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태를 짐작한다는 듯 손바닥으로 그녀의 이마를 덮었다.
“열도 나기 시작하고.”
곧바로 하임의 소매를 걷어 두드러기 반응을 살피던 무혁이 멈칫했다. 그의 시선은 손전등이 비추는 그녀의 옷에 머물러 있었다.
“……돌겠네.”
옷에 들러붙은 잉크 방울만 한 점들이 흙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꿈틀거리고 있었다. 건드려도 하필 산란한 암컷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늑대거미 암컷은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마리의 새끼를 태우고 다닌다는 사실을 전하면 하임은 기겁하다 못해 졸도할 것 같았다.
그냥 집에 데려다 줄 걸 그랬나.
아니지, 이 꼴로 갔다간 집이 거미 소굴이 되어 버릴지도.
“왜, 왜요……?”
뭔가 낌새를 눈치챘다는 듯, 하임은 그의 시선이 꽂힌 곳을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궁금하긴 하나 왠지 모르는 게 나을 성싶었다.
낮게 혀를 찬 무혁은 그녀의 옷에 우글거리는 검은 점들을 태울 듯 노려보다가 시선을 들었다. 분명 제게도 옮겨붙었을 테지. 착각일지 모르겠으나 옷 속 어딘가가 간지러운 것도 같았다.
그는 하임의 손가락 사이로 삐죽 나온 시곗줄을 보며 허탈함을 삼켰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그녀는 그걸 악착같이 손에 쥐고 있었다.
“하임 씨.”
“……네?”
“일단 그쪽 옷부터 벗겨야 할 거 같으니까 놀라지 말아요.”
하임을 더 얼어붙게 만드는 의미심장한 말이었으나 고민은 짧았다. 대략 상황을 눈치챈 그녀는 뭐라도 해 줬으면 하는 심경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혁이 손전등을 벽 방향으로 돌리자 형체만 겨우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주위가 어두워졌다. 이내 그는 망설임 없이 하임의 겉옷부터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속옷 차림이 되어서야 깔끔히 손을 뗀 그는 과감히 본인의 옷도 벗었다.
옷이 사라락,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하임은 양팔을 가슴께에 교차한 채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머지않아 몸이 공중에 들리자 그녀는 가까스로 비명을 삼켰다. 자신이 이런 꼴로 남자에게 안겼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무혁이 2층 화장실로 걸음을 옮기는 동안, 하임은 몸을 움츠린 채 숨을 얕게 쉬었다. 그의 체온은 놀라울 만큼 뜨거웠고, 굳건한 육체는 견고하게 짜인 근육으로 가득했다. 말랑하기만 한 제 몸과는 상반되어 도저히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몰랐다.
차가운 타일 바닥 위에 하임을 내려놓는 손길에선 그 어떠한 사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레버를 돌린 무혁이 나직이 경고하듯 말했다.
“알다시피 지하수라 차가워요. 물 뿌려 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씻고, 정 못 참겠으면 나 안아요. 머리는 간지러운 곳 없습니까?”
끄덕끄덕.
“그럼 다행이고.”
쇄골 아래로 차가운 물줄기가 떨어지자 하임이 다급히 숨을 삼켰다. 뼛속까지 단숨에 얼려 버릴 듯한 지독한 냉기에 눈앞에 별이 튀었다.
“아!”
채 몇 초도 버티지 못한 하임이 본능적으로 온기를 찾아 무혁에게 달라붙었다.
“흐으, 너무, 너무 차가워요…….”
“벌레가 어디에 붙어 있을지 모르니 어쩔 수 없어요.”
무혁은 바들바들 떠는 여체 위로 다소 냉정하게 물줄기를 쏟아부었다. 안 그래도 차갑던 물이 날씨 탓에 완전히 얼음물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매달리듯 그의 허리에 두 팔을 감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무혁은 하임의 허벅지에 붙어 있던 새끼 거미를 떼어 내고는, 속옷 부위를 제외한 그녀의 몸을 가볍게 문질렀다.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그녀는 스스로 씻을 여력이 없어 보였다.
그는 본인의 몸 위로도 냉수를 끼얹었다.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고 나서야 호스를 던지듯 내려놓고 다시 하임을 안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