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20화
20.
“조심해요. 굴러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
“춥진 않아요?”
“괘, 괜찮아요.”
하임은 설레는 와중 시계의 흔적을 놓칠까 싶어 마음이 급했다.
“제가 시계 찾는 거 도와드릴게요. 음, 우리 구역을 나눠서 찾아볼까요?”
“……그러든지.”
무혁은 황급히 제게서 멀어지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바위를 기준으로 제가 오른쪽 찾아볼 테니까 천종 씨는 왼쪽을 찾아보세요.”
“그래요.”
무혁은 이미 시계의 위치를 짐작한 듯하면서도 어설픈 연기를 시작한 하임의 뜻에 따라 주기로 했다.
모종의 유혹에 이끌린 사람처럼 특정 방향으로 향한 그녀는 땅에 귀를 갖다 댔다가, 흙을 뒤적거리길 반복하며 점점 그와 거리를 벌렸다.
서늘한 시선으로 하임의 움직임을 좇던 무혁이 한쪽 눈썹을 느리게 치켜올렸다.
‘너무 멀리 가는 거 아닌가 싶은데.’
이러다 시야에서 사라지겠다 싶어 부르려던 찰나, 어스름히 보이는 그녀의 그림자가 갑자기 아래로 쑥, 꺼졌다.
“…….”
턱을 딱딱하게 굳힌 무혁은 하임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심장 밑동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자각하기도 전에 발이 움직이며 제 시선이 꽂혀 있던 방향으로 나아갔다.
거추장스러운 자연의 쓰레기들을 짓밟으며 성큼성큼 나아가자, 커다란 바위 아래 엎드려 있는 하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날을 누그러트린 무혁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임 씨.”
무언가에 완전히 집중한 듯, 대꾸도 없는 그녀는 자세히 보니 오른팔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앙상한 손목에 들린 건 손바닥만 한 모종삽이었다.
“임하임 씨, 거기서 뭐 합니까?”
온몸을 납작 엎드린 자세는 흡사 땅굴이라도 파려는 작은 짐승 같았다.
저게 지금 뭐 하는 짓인지. 무혁이 한숨을 흘리며 머리를 쓸어 넘기다가 속으로 욕을 뇌까렸다. 손이 흙범벅이라는 걸 까먹은 탓이었다.
하, 씹.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하고 씻으러 가야겠다 싶었다.
“그만해요. 그러다 뱀 나오겠습니다.”
분명 제 목소리가 들릴 텐데도, 하임은 땅을 뒤적이는 데에 정신이 팔려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하임 씨? 그만하라고 했어요.”
“여기 어딘가에…….”
전에 없던 개무시에 어처구니가 없는 무혁이 차갑게 실소하며 터벅터벅 나아갔다.
“임하임 씨.”
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종삽으로 흙을 긁어내던 그녀가 갑자기 상체를 번쩍, 일으켰다.
“찾았다!”
“…….”
우뚝 멈춰 선 무혁은 하임의 오른손에 걸려 있는 낯익은 실루엣을 응시했다. 길게 늘어진 줄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둥근 시계.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저걸 찾았다고?’
그것도 하루 만에?
그녀의 능력을 살펴볼 겸 반신반의하며 던져 본 말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 새까만 암흑 속, 이 드넓은 산 중턱에서 외조부의 유품을 정확히 찾아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무혁의 내면은 복잡하게 뒤엉켰다. 하임이 가진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정밀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놀라움이라 표하기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뒤늦게 그를 돌아본 하임이 흥분에 찬 얼굴로 들뜬 목소리를 내는 순간.
“천종 씨, 제가 시계 찾았……!”
돌연 그녀의 말끝이 갑자기 뚝, 끊겼다. 귀신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단숨에 사색이 되는 모습에 무혁이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가 반사적으로 칼을 꺼내 듦과 동시에, 온몸을 부르르 떤 하임이 짧고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악!”
“……!”
무혁의 신경이 번개처럼 번쩍 튀었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 그가 그녀에게 튕겨 나갔다.
* * *
NEXA 소속, 최연소 정보 분석관 출신인 남성기는 오늘도 바람막이 위에 새파란 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택배 기사만큼 동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외부인은 없었고, 어딜 배회해도 의심을 살 일 없는 존재였다.
특히 새벽 배송은 밤의 연장선에 가까웠다. 불 꺼진 집들 사이를 오가며 하루 사이에 달라진 작은 변화를 포착했다.
성기는 배송 시간대를 바꿔 가며 매번 다른 복장으로 이곳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간첩 사살 작전에 투입된 요원 네 명이 시체도 없이 한꺼번에 증발했다. 사고로 처리하기엔 너무 조용했고, 우연이나 작전의 연장선이라 하기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특히 현장 요원 1인자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핵심 인물, 진무혁의 실종은 내부에서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윗선은 슬슬 ‘실종사’로 마무리 지으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남성기는 그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윗선 몰래 실종된 요원들의 거주지와 주변 관계를 차례로 훑어봤지만 특이 사항은 없었다. 감시의 흔적도, 외부 접촉도 없었으며 지나치게 평온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그랬다.
‘저 새끼들은 대체 정체가 뭘까.’
성기는 길 건너편 건물 창가에 기대서서 무혁의 집 주변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며칠 전까지는 아무런 인기척이나 출입 기록 없이 조용했건만, 갑자기 침묵이 깨졌다.
집을 중심으로 일정한 거리에서 맴도는 기척. 소속을 알 수 없는 이들이 풀숲에 숨을 죽인 사냥개처럼 주인 없는 건물을 감시하고 있었다.
무혁의 개인 서버는 접속 기록이 없었고 비상 연락망도 묵묵부답이었으나, 성기는 직감에 가까운 확신을 느꼈다.
‘안 죽었네.’
죽은 사람의 집 근처엔 감시가 붙지 않는 법. 그러나 무혁의 동네는 고요하지만 소란스러웠다. 현장 경험은 없다시피 하지만 오랫동안 현장 요원들의 생존 신호를 읽어 온 사람으로서 알 수 있었다.
‘캡틴은 살아 있다.’
그가 무혁의 생존을 확신한 또 다른 이유는, 최근 자신을 향한 낯선 시선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저를 노렸나 싶어 동선을 바꿔 가며 떠보았지만, 상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배회할 뿐 직접적으로 건들지는 않았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목표는 자신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저를 통해 무혁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그럼 대체 지금 어딨는 거야.”
시선을 거둔 성기는 택배 기사 특유의 무기력한 자세로 계단을 올랐다. 그는 답답한 속을 태우며 차에 타자마자 수첩에 기록을 이어 갔다.
어쩌면 무혁은 의도적으로 몸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었다. 문제는 그 와중에도 본부에 도움을 요청하긴커녕 생존 여부조차 알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럴 여유가 못 되는 상황이어서인지, 아니면 요청하는 순간 노출될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어서인지. 전자라면 상황이 그만큼 급박한 거고, 후자라면 내부에 의심해야 할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골치 아프네.”
성기는 정답 없는 가설을 몇 번이고 뒤집어 보다가, 속 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오늘 치 배송을 마무리 지었다.
무혁의 집에서 5km 정도 떨어진 동네에 트럭을 세운 그는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라면이 익어 가는 동안 휴대폰 게임을 시작한 성기는 의미 없는 조작을 반복하며 머릿속을 식혔다.
뿅뿅― 뿅뿅―
화면 속 개구리가 연잎 사이를 튕기듯 건너뛰며 아이템을 획득했다. 화면을 톡 건드리면 개구리가 앞으로 점프하고, 이를 잘못 재면 물에 빠진다.
장애물은 늘 같은 패턴으로 반복됐고, 기록은 오래 버틴 시간과 점프 수로만 매겨졌다. 전략 따윈 필요 없는 단순한 게임은 머리를 비우기에 딱 좋은 종류였다.
뿅뿅― 뿅뿅―
성기는 리듬을 타듯 화면을 눌렀다. 연잎, 통나무, 다시 연잎.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손만 움직였다. 실패해도 손해 볼 게 없는 게임이라 마음이 더 느슨해졌고, 복잡한 상념들을 가라앉히기에도 제격이었다.
뾰로롱―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화면 상단에 알림이 떴다. 신기록 달성. 랭킹 2위.
성기는 그다지 기쁜 기색도 없이 컵라면을 크게 한입 넣었다. 습관처럼 랭킹 창을 열자 맨 위에 고정된 닉네임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 랭킹 1위: Jindog. 마지막 접속: 52일 전.
“…….”
성기는 비딱하게 등을 기대며 혀로 입안을 굴렸다. 이런 게임에까지 이름을 남겨 두고 사라질 줄이야.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누운 채, 세상 무료한 얼굴로 화면을 두들기던 무혁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성기는 라면 국물이 식어 가는 것도 잊은 채 새로 고침 버튼을 눌렀다. 랭킹은 그대로였고, 1위 또한 그대로였다.
“아, 진짜 어딨는 거냐고요, 형…….”
낮게 흘린 혼잣말이 편의점 한구석에서 허공으로 흩어졌다. 성기는 콜라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다시 핸드폰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