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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1화


1. ※본 작품의 배경은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구역을 참고하였으나 지역, 기관, 명칭 등은 창작된 것이며 실제 환경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작품 내 사건 및 일부 병명 또한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다. 닭이 울기도 전에 낡은 방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하임은 슬금슬금 마루 끝에 걸터앉아 신발을 꿰어 신고는, 건넛방에서 들려오는 조부의 거친 코골이에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그는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이 작은 시골집엔 둘뿐이었고, 하임은 언제나 할아버지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도 훨씬 더 이른 기상이었다. 하임은 방문 쪽을 한 번 더 흘끔 본 뒤 호빵 모양의 귀마개를 귀에 바짝 눌러 끼웠다. 제법 쌀쌀한 늦가을부터는 귀마개를 꼭 챙기는 편이었다. 그녀는 차디찬 새벽 공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심스레 대문을 넘었다. 주변을 살피며 뒷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운 듯하면서도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인구수가 적은 마을 끝자락이라 누군가가 하임을 발견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았다. 집 뒤편은 산과 곧바로 이어져 있었고, 산길 하나만 타면 능선을 넘어 다른 산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군의 허가 없이는 풀 한 포기도 밟을 수 없던 땅이자, 지도에서도 회색으로만 표시되던 구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통선이 해제된 뒤로 이 여담 마을과 뒷산은 행정적으로 ‘자유 구역’이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통제가 한꺼번에 풀린 건 아니지만, 전처럼 군인들의 삼엄하고 혹독한 감시는 없어진 터였다. “오늘은 찾아야 할 텐데…….” 작게 중얼거린 하임이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걸음마를 완전히 뗀 무렵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산을 탔다. 이 산 저 산을 오르내리며 산길을 읽는 법, 낙엽 아래 무엇이 있는지 가늠하는 법, 약초의 잎과 줄기를 구분하는 감각을 자연스레 익혀 왔다. 산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집터나 다름없었다. 계절의 변화가 빠른 여담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겨울이 빨리 찾아오는 지역 중 하나였다. 그녀는 완연한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꼭 찾아야 할 것이 있었다. 천종산삼. 발견할 수만 있다면 몇 해를 굶어도 아깝지 않을 전설 속 약초. 심마니들 사이에서 ‘하늘이 내린 산삼’이라 불리는 천종산삼은 야생 동물이 산삼 열매를 먹고 배설한 씨앗에서 자란 것으로,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순수종이라 가치가 가장 높은 삼이었다. 채취하기가 극도로 어렵고 귀한 만큼 모든 심마니의 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보통 천종산삼의 나이는 50년이 넘지만, 100년에 다다르는 노삼도 존재했다. 물론 그것을 발견하는 건 로또 당첨보다 어려웠다. 그 값어치 또한 억 소리가 났다. 하임은 그 희박한 가능성을 품고 산 중턱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최대한 아끼며 갚았으나, 돌아가신 할머니의 병원비, 할아버지의 수술비 등 아직 부채가 남아 있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올 초에 수술한 뒤로 몸이 쇠약해져 예전처럼 산을 타는 것에 무리가 있었다. 본인은 끄떡없다고 강변했지만 하임은 그가 눈에 띄게 노쇠했음을 인지했다. 할아버지마저 잘못된다면 세상 어디에도 저를 붙들어 줄 이가 없을 터였다. ‘한 번 더 저희 가문에 기적을 내려 주세요.’ 그녀는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약 15년 전, 할아버지가 발견한 100년짜리 천종산삼이 지금까지의 생계를 버티게 해 준 것처럼, 부디 한 번 더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하임은 오래전에 보았으나 잊히지 않는 영물을 떠올리며 조용히 손을 내렸다. 내년부터 외지인 출입이 본격적으로 허용되면 산은 탐사꾼들과 약초꾼들로 북적일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산을 노리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하여 외지인들이 오기 전에 최대한 산을 샅샅이 뒤져 볼 생각이었다. 간이 철책이 있던 곳으로 향한 그녀는 주변에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좀 더 북쪽으로 나아갔다. 얼마 전부터 철거가 시작됐지만 구역을 넘지 말라는 붉은 경고 테이프는 여전히 산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혹시라도 제거되지 않은 지뢰가 남아 있을 가능성 때문이었다. ‘출입 금지’ 표식 앞에 멈춰 선 하임은 귀마개를 벗고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 지면에 한쪽 귀를 바짝 대고선 눈을 감은 채 숨을 죽였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멀어지며 땅속의 흐름만 또렷해졌다. 청각 공명 증후군. 하임이 앓고 있는, 일종의 과민성 청각 반응으로 극희귀 질환이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특정 주파수 대역의 진동과 소리에 비정상적으로 민감했고, 때로는 전깃줄의 떨림에, 때로는 지면 아래 흐르는 물소리에도 고개를 돌리곤 했다. 이 같은 능력으로 땅속에 지뢰가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걸 듣고, 감지하지 못하는 걸 감지하는 능력. 그래서 혼자일 때만 그 귀를 열었고, 남들 앞에선 들리는 소리도 모른 척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 그녀는 조용히 땅속의 숨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지뢰는 없어.’ 이른 겨울잠에 든 야생 동물의 느릿한 숨소리만 느껴질 뿐이었다.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자 하임은 곧바로 붉은 테이프를 넘었다. 처음 디뎌 보는 땅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 눅진했고, 정적은 더 싸늘하고 깊었다. 긴장이 되어서인지 풀잎의 생김새도 바람의 결도 괜스레 다르게 느껴졌다. 습기를 머금은 흙 내음이 은근하게 코끝을 스치자 그녀는 냄새 속에서 방향을 골라내듯 몸을 기울였다. 머지않아 밤과 새벽 사이의 경계가 걷히기 시작하며, 나뭇가지에 맺힌 이슬이 소리 없이 반짝였다. 주변을 훑던 하임의 시선이 어딘가에 멈췄다. 낙엽에 절반쯤 가려진 그루터기 위, 희끄무레하고 둥근 무언가가 털을 곤두세우고 매달려 있었다. 손가락 두 개를 모아 조심스레 감싸 들자, 은은한 수분감과 부드러운 탄력이 손끝에 닿았다. 노루궁뎅이버섯이었다. 하임은 뿌리 부분을 해치지 않도록 칼날을 옆으로 눕혀 잘랐다. 초입부터 노루궁뎅이버섯을 발견하다니 왠지 느낌이 좋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땅을 샅샅이 살피는데 이번엔 시야 끝에 선명한 붉은 빛이 들어왔다. 묵은 통나무 틈새에 낮게 붙은 버섯은 색이 마른 피처럼 진했고, 이슬에 젖어 묘한 윤기를 띠고 있었다. 납작한 접시처럼 생긴 이것은 다름 아닌 영지버섯이었다. “우아…….” 여기 완전 노다지잖아. 귀한 것들이 이상할 만큼 눈에 잘 띄다니. 영지버섯을 고이 가방에 넣는 하임의 눈매가 사르르 접히며 광대가 귀엽게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밀림처럼 빽빽한 나무 사이를 능숙하게 헤쳐 나가며 다양한 약초와 버섯을 부지런히 캤다. 가지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한 어슴푸레한 빛에 의지하며 발을 옮기던 중, 문득 거친 소음이 예민한 고막을 파고들었다. 무언가 굴러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하임이 소리의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 처음엔 바위 혹은 짐승인가 싶었으나 언뜻언뜻 짤막하고 거친 신음이 섞여 들었다. 이곳에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어, 어떡하지?” 뭔가 사고가 난 듯했지만 하임으로선 그것까지 신경 쓸 사정은 못 되었다. 서둘러 주변을 살피던 그녀는 버려진 작은 초소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그곳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머지않아 깨달았다. 콰앙―! 부서질 듯 열린 문 너머 나타난 존재는 하임을 생애 가장 큰 공포로 떨게 만들었다. 밤을 통째로 집어삼킨 듯한, 거대한 어둠의 그림자가 제 눈앞에 있었다.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를 형체가 그녀를 발견하고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밀었다. “꺅―!” 식겁한 하임의 입술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허억, 사, 살려 주세요……!” 거친 숨소리, 짙은 피 냄새, 형형한 살기. 어쩌면 귀신보다 더 잔혹하고 무서운 괴물을 맞닥트린 것 같은 기분에 심장이 바닥으로 쿵, 곤두박질쳤다. 어쩌면 채 아침이 밝기도 전에 이곳에서 죽게 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당할지도 모른다. 하임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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