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2화
2.
여담 마을 인근 야산. 04:37 AM.
달조차 등을 돌린 어두운 밤이었다.
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 아래, 산맥의 윤곽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민통선 해제 직후에 생긴 일시적 안보 공백, 그 허점을 파고든 건 간첩만이 아니었다. 어둠에 편입된 존재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림자처럼 스며든 네 명의 검은 실루엣이 산등성이를 타고 기어올랐다.
국가 간 비공식 공조로만 존재하는 기밀 네트워크 ‘NEXA(National External eXecutive Agency; 국외 특임 조사단)’ 소속, 캡틴 진무혁이 선두를 유지하며 왼쪽 손등에 고정된 디지털 맵을 스캔했다.
“동쪽 능선으로 진입. 사선 47도 유지, 간격 벌리고 들어간다.”
저음의 명령은 잘 벼려진 금속처럼 정확했다. 숨결 하나 허투루 새지 않는 발성은 완벽하게 훈련된 자라는 걸 증명했다.
“이무열, 열 감지 먼저 확인해. 반경 200미터 범위 잡고 잡음 유도해.”
명령은 짧았지만 무혁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를 따르는 팀원들은 즉각적인 움직임으로 명령을 따랐다. 그들은 말보다 신호에 익숙한 자들이었고, 그 신호의 진원은 늘 진무혁이었다.
“표적 북동쪽 1.2km 이동 중. 트래킹 경로 이탈.”
이중성의 보고가 이어지자 무혁의 시선이 미세하게 날을 세웠다. 그는 곧장 바람의 흐름을 읽듯 주변의 지형을 훑었다.
“2인 1조로 움직인다. 최이연, 내 뒤로 따라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지시였다. 한 조가 된 중성과 무열은 곧장 오른쪽 능선으로 빠졌다. 네 명의 발소리는 낙엽 위에서도 고요했고, 움직임은 바람처럼 낮고 민첩했다.
오직 ‘표적’만을 향해 조율된, 훈련된 본능만이 그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무혁은 시선을 산 아래로 떨구며 짧게 숨을 정리했다.
“중성, 측면에서 밀어. 무열이는 후방 커버하고. 표적 선회 시엔 교차 차단 들어간다.”
-확인.
무전기의 낮은 진동을 끝으로 숲은 다시 조용해졌다.
무혁은 넷 중 현장 경험이 가장 적은 이연을 이끌며 경사로를 따라 내려갔다. 이연은 발끝에 실리는 무게마저 제어하는 리더의 걸음에 속으로 경탄했다. 그가 어떻게 최연소 캡틴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는지 뼈저리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위험을 예감하는 감각을 넘어, 위험을 앞질러 움직이는 본능. 이건 경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는 숨을 고르는 타이밍조차 무혁의 호흡에 맞췄다. 신입답지 않게 흔들리지 않는 시야와 망설임 없는 발놀림이었지만 어깨에 실린 긴장감은 미처 숨기지 못해 손이 떨렸다.
그 순간, 무전기 수신부가 짧게 진동했다.
-표적 속도 증가. 경사면 벗어나 저지대 진입 직전.
눈을 가늘게 접은 무혁이 곧장 소형 열화상 장비를 다시 켰다. 화면에 떠오르는 적외선의 윤곽이 흐릿하게 떨렸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세를 낮춘 채로 사면을 사선으로 훑듯 이동했다. 열화상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표적의 실루엣이 어느새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 있었다.
“최이연, 엄호해.”
한쪽 무릎을 꿇은 무혁이 총의 스코프를 조정했다. 미세한 오차조차 허락할 수 없기에 그는 숨조차 쉬지 않았다. 그가 받은 단 하나의 명령이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표적을 사살하라.
그는 절차대로, 예측대로, 이론대로 정확한 타이밍만 기다렸다. 바람의 흐름과 각도를 계산하여 신중하게 조준점을 조율하던 찰나, 돌연 표적이 고개를 돌렸다.
표적의 시선이 정조준되듯 자신을 향하고, 불현듯 조준선 너머에서 시선이 맞닿은 듯한 불길한 기척이 지나갔다. 무혁의 손가락이 방아쇠 위에서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
조준경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그가 미간을 꿈틀거렸다.
‘방금…….’
엄폐는 완벽했으며 표적이 이쪽을 포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데 표적이 뜬금없이, 그리고 정확히 이 방향을 꺾어 보았다.
마치 그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이.
무혁은 말도 안 된다고 치부하면서도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갑자기 서늘한 칼바람이 뇌리를 긁고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는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손가락을 딱 붙인 채로 굳었다.
머지않아 표적은 본인이 사정거리 안에 들었다는 것마저 안다는 듯이 홀연히 나무 뒤로 사라졌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무혁의 잇새로 싸늘한 욕이 흘러나왔다.
“……씨발.”
표적의 궤적을 따라 경로를 틀려던 찰나, 무전기에서 중성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캡틴, 좌측 능선 쪽에 사각지대 있습니다. 그쪽에서 기다릴 테니 표적 몰아 주십시오.
“경로 바꾼다.”
지체 없이 총을 거둔 무혁은 중성이 말한 방향으로 몸을 트는 동시에 무전에 손을 댔다.
“무열, 중성이와 동선 나누고 주시선 유지하면서 속도 늦춰. 현재 정확한 위치 보고해.”
응답 대신 정적이 돌아오는 통에 무혁이 다시 송신 버튼을 눌렀다.
“무열, 응답.”
침묵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자 무혁의 걸음이 그 자리에서 멎었다.
“이무열. 대답 안 해?”
작전 중 통신 교란으로 연락이 단절되는 경우가 있긴 하나, 지금은 무열이 응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단순한 무전 단절이 아닐 거란 생각에 무혁의 미간에 미세한 균열이 일었다.
“…….”
그때, 어딘가에서 마른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극히 작고 사소한 파편음이었지만 이를 기민하게 포착한 무혁의 눈빛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최이연, 정지.”
그가 나무 뒤쪽을 향해 까딱, 고갯짓하자 이연이 서둘러 은폐 자세를 취하며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무혁은 소음이 난 방향으로 총구를 틀며 중성에게 교신을 넣었다.
“중성, 이무열 위치 파악해.”
-좌측 능선 아래, 계곡 하류에서 잠복 중입니다.
곧장 간결하고 흔들림 없는 교신이 넘어왔다.
“문제없는 거 확실해?”
-문제없습니다. 생체 신호도 정상입니다.
“알았…….”
무혁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그 말은 무열을 직접 본 게 아니라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현재 NEXA 요원 전원은 개인 장비 외에 중앙 관제 연동 장비를 끈 채로 투입된 상황이었다.
이곳에 다른 적들이 잠복 중이란 가정하에, 그들이 전파 추적 장비를 갖고 있다면 위치가 발각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체 신호가 정상이라니. 조금 전 느꼈던 정체불명의 낌새가 다시 한번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
중성은 지금 제게 거짓 보고를 하고 있었다. 무혁은 본능적으로 살생에 필요한 감각을 곤두세우면서도 머리로는 곧장 이해하지 못했다.
“……이중성, 그 위치 그대로 대기.”
-예, 캡틴.
무혁은 아무 흐트러짐이 없는 대답을 들으며 냉철하게 머리를 굴렸다. 무전을 끊은 그가 이연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찰나였다.
푸슉―
“……!”
소음기를 장착한 총에 맞은 이연의 몸이 그대로 뒤로 꺾였다. 무혁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즉시 사격 방향을 고정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총알이 날아온 어둠 속에서 짧은 신음이 터졌고, 그는 그 기척을 기점으로 또 다른 목표물을 정확히 쏴 맞혔다.
“이중성, 이무열. 응답해.”
동료의 이름을 입에 담는 순간, 별안간 무혁의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는 가물거리는 시야를 애써 붙잡았으나 갑자기 몸이 아래로 끌려가듯 무거워졌다. 이연이 총에 맞던 순간에 제 허벅지에 스친 이질적인 감각 하나가 떠올랐다.
‘설마.’
뇌가 결론을 내리기 전에 감각이 먼저 모든 상황이 틀어졌음을 알아챘다.
“좆 같네.”
숨처럼 욕이 새어 나왔다. 허벅지에서 시작된 마비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다리 전체를 잠식해 가고 있었다. 근육의 힘이 하나씩 풀려 가는 그 특유의 감각을 무혁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독침이다.
제 상태를 기민하게 더듬던 무혁은 무너지기 직전까지 본능에 매달렸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하나였다.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한 발이라도 더 갈기고 뒤져야지.
푸슉― 푸슉―
그는 조준 끝에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어딘가를 명확하게 맞히는 게 아니라 쓰러지기 전에 어떻게든 한 발이라도 더 꽂아 넣는 것이 목표였다.
무혁은 주변이 비정상적으로 고요해지는 걸 느끼자마자, 한쪽 다리를 끌어당기듯 질질 끌었다.
숨을 가다듬을 여유조차 없이 몸을 움직였으나 오른쪽 다리는 이제 제 것이 아닌 듯했다.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무게감이 급격히 사라지며 중심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하아.”
무혁의 잇새로 짧게 끊긴 숨이 새어 나왔다. 나무뿌리와 억센 돌멩이가 뒤엉킨 사면 끝을 지나려던 순간에 눈앞이 완전히 하얘졌다. 결국 발을 헛디딘 무혁은 비탈진 사면 아래로 미끄러졌다.
번쩍이는 시야와 흙냄새, 피비린내 섞인 숨결이 뒤엉킨 채 몸은 통제할 수 없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한 번, 두 번, 어깨가 땅에 부딪힐 때마다 도려내는 듯한 충격이 가슴을 짓눌렀다.
가까스로 평지에 다다르고, 굵은 나무둥치에 옆구리를 강하게 부딪힌 순간, 눈앞에 별이 튀었다. 이토록 직관적인 고통은 오랜만이었다.
“하, 씹.”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만 여전히 위험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인적이 닿지 않는 스산한 숲을 신경적으로 훑던 그의 시야 끄트머리에 웬 작고 허름한 목조 건물이 잡혔다. 1980-90년대에 지어졌다가 버려진 지 오래된 산불 감시용 초소였다.
부상으로 인해 체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었기에 무혁은 주저하지 않고 그곳을 향해 나아갔다. 낡디낡은 초소의 문짝은 한쪽 경첩이 빠져 덜렁거렸다.
콰앙―!
낡은 목재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기세 좋게 문을 밀어젖힌 무혁은 실내 먼지가 파도처럼 일자 미간을 사납게 구겼다.
그런데 그 순간, 빛이 잘 닿지 않는 구석에서 작은 그림자가 움찔하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씨발, 이건 또 뭐야.’
“꺅―!”
대번에 칼을 뽑아 든 무혁이 모가지에 칼을 들이밀었으나 가까이서 보니 웬 앳된 여자였다.
“허억, 사, 살려 주세요……!”
때아닌 제삼자의 등장에 그의 동공이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