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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화


3. 미성년자인지 성인인지 구분 안 가는 앳된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듯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본인이 귀신 같은 꼴을 하곤 저를 귀신 취급하니 무혁은 순간적으로 얼이 빠졌다. 내가 지금 귀신을 보고 있는 건가? 하는 상상이 안 그래도 흐릿한 정신을 더 시끄럽게 흩트려 놓았다. 이 시간에, 그것도 출입 금지 구역인 이 깊은 산속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이었다. 정말로 헛것을 보는 건가. 씨발, 내가 벌써 뒤졌나 보네. 그렇지 않고서야 내 눈앞에 이딴 게 보일 리가 있나. “제발 살려 주세요…….” 간절하게 흐느끼며 비는 상대의 말에 무혁이 턱을 굳혔다. 겁에 질려 있으나 보름달처럼 선연히 아른거리는 눈동자, 가쁘게 들이쉬는 숨은 정확히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무혁은 이 공간에 있어서는 안 될 민간인임을 깨닫고 낮게 욕을 뇌까렸다. 오한이 온 것처럼 벌벌 떠는 여자 곁엔 촌티가 팍팍 나는 소쿠리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산에서 딸 법한 약초와 버섯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게 왜 여기 있는지, 상대의 정확한 정체가 뭔지 깊이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생존이 급박한 상황에서 무혁은 제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 빠르게 압축해서 받아들였다. “혹시 그 안에 해독초도 있나?” “……네, 네?” “해독초. 독을 치료하는 약초 말이야. 허튼짓하지 않는 이상 민간인은 안 해치니까 쫄지 말고.” 이내 여자의 얼굴이 공포와 당혹이 섞인 표정으로 흔들렸다. 한낱 새끼 초식 동물에 불과한 상대를 바라보던 무혁이 조금이나마 긴장을 내려놓으며 벽에 등을 기댔다. 스르르 미끄러지듯 앉는 그의 입술 사이로 고통 어린 숨이 흘러나왔다. 무혁은 조끼 주머니에 넣어 둔 비상약을 물 없이 잘근잘근 씹어 넘겼다. 그러나 고작 이것으로 해결하기에는 몸 상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더 구석으로 갈 수도 없건만, 더듬더듬 물러나며 끝까지 경계를 놓지 않던 여자가 무서워하는 와중에도 저를 빤히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씨발, 별것도 없어 보이는 어린 여자애가 뭘 할 수 있다고. 무혁은 새벽이 또렷해지고 있음을 느끼며 두 눈을 감았다. 여기서 뒤지면 이 여자라도 내 시신을 거둬 주려나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만약 누군가가 저를 뒤쫓아 온다면 가엾은 민간인도 무사하지 못할 게 뻔했다. “됐다. 해독초는 무슨.” “…….” “곧 죽을 사람 데리러 온 귀신인 거 아니면 빨리 집으로 가라.” “…….”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다시는 이런 곳에 발 들일 생각 말고.” 무혁은 실없이 말을 흘리며 목을 느릿하게 더듬었다. 제겐 부적과도 같은 외조부의 유품은 경사면을 구를 때 어딘가로 사라진 모양이었다. ‘하필 그걸 잃어버리다니.’ 그는 자신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가늠해 보았다. 빌어먹을 산속은 또 왜 이렇게 추워서는. 그리 여기던 중에 갑자기 옆에서 아주 조심스럽고 미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무혁은 내리깐 눈꺼풀 사이로 제 눈치를 보는 여자를 가만히 곁눈질했다. 이대로 이곳을 뛰쳐나간다면 그러려니 하며 보내 줄 생각이었다. 다만 신고할 생각은 하지 말라고 경고하려던 찰나에 여자의 목소리가 먼저 정적을 깼다. “해, 해독초 있어요. 여, 여기요…….” 여자가 벌벌 떠는 손으로 웬 풀떼기를 건네자 무혁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그것을 입에 넣었다. 쓴맛과 흙내가 뒤섞인 맛은 형편없었으나 약초는 약초인지 한약방에서나 맡아 봤던 향이 입안에 맴돌았다. “피, 피가…….” 소스라치며 중얼거리던 여자가 또 다른 무언가를 건넸다. 제법 정신이 돌아왔는지 이번엔 노루궁뎅이버섯이라고 친절히 설명까지 덧붙여 주었다. 그 후로도 가짓수가 얼마 안 되는 풀떼기를 신중하게 고르다가 잠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이번에도 의심 없이 받아먹은 무혁은 쓴맛 사이로 버섯 특유의 수분이 퍼지는 걸 느끼며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여자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그녀는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깨끗한 손수건을 상처에 꽉 묶는 것으로 지혈을 도왔다. “…….” “이제 됐으니까 집에나 가지.” “혹시…… 군인이세요?” 제가 본인을 해치지 않을 거란 것만큼은 확실히 자각했는지, 이젠 커다란 눈망울에 호기심과 걱정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언제 봤다고 생판 남을 걱정하는 건지, 무혁으로선 실로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헤픈 인심이었다. 하긴, 촌스러운 옷차림과 행색을 보아하니 도시에선 살아 본 적 없는 산골 소녀 같았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텐데. 부모님은 이러고 다니는 거 아나?” “부모님은 안 계세요. 그리고 저는 어린애 아니고 스, 스물세 살인데요…….” “…….” 내내 어린애 취급한 것이 못마땅했는지 그녀가 소심한 목소리로 반격했다. 무혁은 이 얼굴이 스물세 살이라는 점이 조금 의외였으나 그래 봤자 저와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와 별개로 흙 속에서 웬 진주를 발견한 듯한 기분도 들었으나 그 또한 잠깐 스쳐 지나가는 감흥에 불과했다. 짐작해 보자니 여자는 출입 금지 구역에서 몰래 약초를 캐다가 이곳에 숨어든 모양이었다. 그리 요란하게 굴러떨어졌으니 숨을 법도 했다. “네가 몇 살이든 간에 지금 여기 있어서 득 될 거 없다는 거 잘 알지.” “…….” “그러니까, 여러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얼른…… 후우.”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무혁이 차마 말을 다 맺지 못하고 신음했다. 약초가 드라마틱한 효과는 주지 못했는지 온몸이 잘게 경련하기 시작했다. 저체온증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어떡해…….’를 남발하던 여자애는 보기보다 고집이 센 경향이 있었다. 집에 가라는 말을 여러 번 했음에도 차마 혼자 떠나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나쁜 놈들이 오고 있어. 그러니까 제발 좀, 가라.” “……!” 지레 겁을 준 무혁이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색색, 가쁜 숨을 흘렸다. 저도 모르는 새에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가고 있었다. “저랑 가, 같이 가요.” 연달아 놀랄 말을 해 대는 여자는 제 반이 될까 싶은 몸으로 저를 부축하려 하다가 당연히 실패했다. 제 팔 하나도 들기 버거워 보이는 주제에 뭘 한다고. 이제 약간 귀찮아진 무혁은 조용히 무시하다가 피부에 스치는 온기에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휙― 이번에도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무혁은 자신이 가라고 해 놓고 여자를 품으로 끌어당겼다는 사실을 한 박자 뒤늦게 알아차렸다. 작고 부드러운 몸이 잘 데운 핫팩처럼 뜨끈했다. 그는 이 여자를 안고 있으면 몇십 분은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팔에 힘을 주었다. “저, 저기……!”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건지, 여자는 추행이라 여길 법한 상황에도 비명 한번 내지르지 않았다. 금세 입을 다물더니 그저 통나무처럼 온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무혁은 그녀가 지나치리만큼 낮은 제 체온을 알아채고 호의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어디서 굴러온 건진 몰라도 멍청한 호구 같은 여자였다. 생전 여자를 이런 식으로 간절하게 안아 본 적이 없는 무혁은 오직 생존 본능에만 이끌려 움직였다. 보드라운 얼굴과 어깨 사이로 제 이마를 묻기도 하고 얼음장 같은 제 볼을 찹쌀떡처럼 말랑한 여자의 볼에 맞대기도 했다. 씨발, 난로에 있다가 나오기라도 했나. “뭐가 이리 따듯해.” “…….” 성냥을 태우며 얄팍한 온기에 의지하다가 숨을 거둔 성냥팔이 소녀의 심경이 이랬을까. 이 순간만큼은 제 생명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한낱 불씨에 불과한 것 같았다. 생판 처음 보는 여자를 끌어안은 채 맞는 죽음은 이제껏 그가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종류였다. 한동안 신음 같은 숨을 흘리던 그는 불현듯 이게 무슨 개짓인가 싶어 그녀를 안은 팔을 놓았다. 빈틈없이 맞붙었던 몸이 떨어지기 무섭게 온도가 달라졌다. 언제 따듯했냐는 듯 냉기를 단숨에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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