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29화
29화
마피아. 자꾸만 수아의 머릿속에 세글자가 떠올랐다. 아무리 세상과 단절한 채 수도자의 삶을 살았다지만 마피아가 뭔지는 알고 있었다.
온갖 나쁜 짓을 다 하는 것도 모자라서 살인까지 하는 범죄조직.
테즈만이 그럴 리가. 부정하던 수아의 머릿속에 그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십자가를 사람의 머리에 박아 넣던 모습이.
바닥에 피를 쏟아내건 말건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제게 말을 걸던 그가.
“어제도, 그제도 테즈만은 사람을 죽였어. 그게 마피아거든.”
마테오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자꾸 울렸다.
제게 말을 걸려는 칵트를 피해 침실로 도망쳤던 수아였다. 수아가 침실에 있는 이상, 칵트마저도 테즈만의 허락 없이는 침실을 들어올 수 없었다.
수아가 침실을 나왔다. 놀란 칵트를 지나쳐 그가 항상 앉아있던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 가득히 올려진 서류들을 빠르게 훑었다.
사람을 죽인다든가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주식이나 금융 관련 용어들이 적힌 메모들 뿐이었다. 물론, 중간중간 이상한 단어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 마피아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농담...이었잖아.”
사이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마테오가 그녀에게 접근했을 때, 바짝 긴장하던 칵트의 모습을 떠올리며 수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질 나쁜 농담이었어.”
테즈만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마테오가 그녀를 괴롭히려 한 말일 것이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가라앉은 표정의 테즈만이 서재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노크 없이 서재 문이 열렸다. 노크를 하지 않았다는 건 그 서재의 주인이라는 뜻이었고.
수아가 고개를 들자 어두운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테즈만과 마주했다.
“테즈만?”
“칵트.”
그가 칵트를 향해 말을 이었다.
“나가 있어.”
조용히 내깔리는 말에 칵트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서재를 나갔다. 이윽고 완전히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수아가 그를 보며 입을 뗐다.
“테즈만, 나 안 믿어요. 걱정 말아요.”
그러자 그의 눈가가 작게 경련했다.
“무얼?”
“...아, 그.. 테즈만이 마피아라는 거. 테즈만의 형이라는 분이 그랬거든요. 테즈만이 사람을 죽이는 마피아라고. 걱정 말아요, 난 테즈만이,”
“맞는데.”
뭐? 세상이 멈춘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지, 금 뭐라고...”
가라앉은 얼굴로 그가 수아를 향해 걸어왔다.
“수아.”
“잠, 잠깐만... 오지 말아봐요. 장난치지 말고.”
“장난 아니야.”
테즈만이 그녀의 손을 잡아채고는 제 쪽으로 이끌었다.
“맞아요. 파바드 패밀리. 내 할아버지는 유럽을 너머 미국까지 세력을 확장한 최초의 마피아였어요.”
차분하게 목소리를 내는 그였지만 수아를 내려다보는 눈동자는 혼탁했다.
“내 아버지는 유럽을 쥐고 있는 마피아 대부 중 하나였는데 그 빌어먹을 마피아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자선사업과 정치를 시작했죠. 그래서 단번에 명망 높은 집안으로 바뀌어 버렸죠.”
“그, 그건 다 옛날이야기잖아요. 그렇죠?”
확인하듯 묻는 수아의 얼굴에 애절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 애절함을 잔인하게 짓밟는 말이 들려왔다.
“아니.”
아니라고?
“주식과 투자를 하며 은행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내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쪽으로는.”
짧은 숨을 들이마신 그가 말을 뱉어냈다.
“우리를 겨눈 적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는 것도 내 일이에요.”
총알을 박아준다니.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막아섰던 수아가 주춤하며 뒷걸음질 쳤다.
“수아.”
“오, 오지 말아요.”
혼란스러웠다. 진즉에 확인을 안 한 제 잘못이었다. 애초에 질문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자 혐오가 몰려들었다. 끝도 없는 자기혐오가.
“... 그때... 십자가에 머리를 박힌 남자... 살았다고 했었죠.”
대답이 없는 그를 올려다보는 수아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 사실 죽은 거죠? 내게 거짓말을 한 거죠?”
바보같이 믿었었다. 애초에 머리가 뚫리고 성당 바닥을 흥건하게 피로 물들인 사람이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내가 벌을 받은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는 것 같아.”
신을 배반하고 타락한 벌. 작게 떨리는 몸으로 중얼거리던 수아가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신께서 벌을 주신 거예요. 흐윽, 내가, 내가 감히...!”
테즈만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며 우는 수아의 허리를 바짝 끌어당겼다.
“수아.”
“하악, 내 잘못이야. 내가, 흡!”
헐떡이는 그녀의 입안으로 그가 숨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수아가 거칠게 반항하며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미약했다. 마치 바위처럼 꿈쩍도 안 하자 절망하듯 수아의 손이 그의 가슴팍의 옷을 말아쥐었다.
계속해서 불어넣는 숨에 들썩이던 수아의 가슴도 어느 정도 진정되는 듯했다.
“흐읍...”
흐느낌과 섞인 신음이 그의 입속에서 삼켜졌다. 수아의 헐떡임이 잦아들었다는 것을 느낀 그가 입속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그녀가 움찔하며 가슴팍에 올렸던 손으로 밀어내는 것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마치 그녀를 달래듯 혀가 부드럽게 입안을 쓸었다. 그답지 않은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천천히 입 안쪽 여린 살을 쓸고 이를 훑고 마지막으로는 그녀의 혀를 건드렸다.
평소처럼 강하게 흡입하며 옭아매지 않았다. 녹아내릴 듯이 부드럽게 그녀의 혀를 핥고 빨았다. 마치 아껴둔 사탕을 녹여 먹는 것처럼.
그의 애절한 키스에 수아의 눈가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머리로는 거부를 해도 결국 마음이 문제였다. 고작 키스 하나로 마음을 열어버렸으니.
미워할 수도 없게끔 제 마음까지 빼앗아 버린 그가 싫었다.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쉽게 입술이 떨어졌다.
잔뜩 젖은 눈으로 수아가 그를 올려다봤다. 미간을 좁힌 채, 그가 손을 뻗어서는 수아의 눈가를 훔쳐냈다.
“수아.”
오늘따라 유독 그의 입에서 떨어지는 제 이름이 달았다.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야.”
그가 단번에 수아를 안아 들었다.
“뭐, 뭐 하는...!”
성큼 침실로 향한 그가 그녀를 침대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침대 옆 협탁 서랍을 뒤지는가 싶더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약통이라는 것을.
테즈만이 상비약으로 서랍장에 둔 것이었다. 신경안정제를 겸하는 수면제. 큰 자상을 입어 잠들기 어려울 때 진통제와 함께 먹는 약이었다.
“그, 그거 뭔데요. 그거...”
약통을 열자 작은 알약들이 쏟아졌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든 그가 입에 물었다.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자도록 해.”
“싫, 싫어...! 흡.”
수아의 입안으로 혀와 함께 알약이 밀려 들어왔다. 삼키지 않게 버둥거리는 그녀의 혀를 누르고는 목구멍까지 알약을 밀어 넣었다. 사이즈가 작은 알약은 그녀의 목구멍에서 녹기 시작했다. 씁쓸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 쓴맛이 싫어서 이리저리 혀를 움직이던 수아가 본능적으로 그의 혀를 빨았다. 그의 입에서 넘어오는 타액을 빨며 혀에 가득한 쓴맛을 없애려 했다.
그걸 아는 듯 테즈만은 제 타액을 모아서는 그녀의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남김없이 싹싹, 그녀의 입안에서 쓴맛이 모두 없어지도록.
점차 정신이 몽롱해졌다. 끓어오르며 제 정신을 삼키던 감정들도 어느새 가라앉아있었다. 몸이 점차 가라앉는 기분에 수아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졸렸다.
한참을 이어진 키스는 수아의 혀가 움직임을 멈추고 결국에는 몸이 축 늘어지자 끝이 났다.
수아를 침대에 반듯하게 눕힌 뒤 이불까지 덮어준 그가 그녀의 입술에 묻은 타액을 혀로 핥아냈다. 아무것도 모르길, 좋은 것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바라지 않았다. 수아가 오직 제 품에서 행복만 하기를 바랐다. 아무 생각도 없이,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준 뒤에 침실을 나온 그의 표정이 살벌했다.
수아는 아마 깊게 잠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반나절 이상은 잠들 터.
서재를 지나쳐 밖으로 나오자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칵트를 향해 테즈만이 싸늘하게 목소리를 냈다.
“마테오는.”
그가 찾을 것을 알았다는 듯 칵트가 이미 찾아둔 정보를 읊었다.
“오늘 점심에 보스와 식사 자리에 참석하신다고 합니다.”
보스라면 제 아버지인 미켈레였다. 지난밤, 미켈레한테서 전화가 와있던 것이 생각났다. 아마 같이 밥 먹자는 이야기였나 싶었다.
“좋네.”
마침 전화도 왔으니 참석은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목적은 따로 있지만.
그의 시선이 방으로 향했다. 울면서 잠든 수아의 얼굴이 아직도 아른거렸다.
“침실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하게 해. 깨면 바로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닥을 뚫을 듯한 저음이 저택에 울렸다.
“카포들과 솔저들을 늘려. 개새끼 하나도 함부로 저택에 드나들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