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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28화


28화 수아는 정원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테즈만의 정원은 매일 구경해도 새로웠다. 질리지 않을 정도로 크기도 했고 예뻤다. 흥얼거리며 정원으로 향하려던 그녀의 앞에 칵트가 막아섰다. “오늘은 정원 말고 저택 위층을 구경하시겠습니까?” “정원에 무슨 일 있나요?” 의아한 얼굴로 묻는 수아를 향해 칵트가 미소를 지었다. “아, 지금 정원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있어서 산책하기가 조금 그렇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나요? 일손이 모자라면 제가 도와드려도 되는데.” 수아를 시켰다가 테즈만에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게다가 대대적인 손질이라는 것은 테즈만이 수아를 위한 온실을 리모델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완성될 때까지는 비밀이었기에 최대한 그녀가 모르게 해야 했다. “괜찮습니다. 아, 저택에 미술 작품들이 많습니다. 유명한 작품들도 있고요.” 예전에 미켈레가 탈세를 목적으로 사둔 고가의 미술품이 저택에 남아있었다. 그림은 물론 예술품이라는 예술품은 다 사들인 덕에 수아가 좋아할 만한 작품도 꽤 있을 것이었다. “가서 보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미술작품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한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가볼래요.” “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테즈만의 저택은 총 여덟 개의 방이 있었는데 그중 두 개는 보여지지 않는 방이었다. 하나는 서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테즈만의 침실이었으며 또 하나는 예술품들과 귀중품을 모아둔 방이었다. 2층에 있는 서재 반대편, 복도 끝 벽에 붙은 그림 하나. 벽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그림은 여신이 축복을 내리는 그림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단순히 그림을 걸어둔 줄 알겠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그림 앞에선 칵트가 손을 뻗더니 액자 틀을 쓸었다. 칵트의 손가락이 무언가를 꾹 누르자 그림 위로 레이저 빛 같은 게 쏘였다. 자세히 보니 가상 레이저 숫자 키패드였다. 레이저 빛이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만들어내자 칵트가 조심스럽게 번호를 눌렀다. 0423. 숫자를 누르자 덜컥하더니 그림 액자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수아를 보며 칵트가 미소를 지었다. “들어오세요.” 그림 액자를 마치 문처럼 열자 그 안쪽으로 진귀한 장면들이 펼쳐졌다. “와...” 줄지어 늘어진 금고들, 투명한 유리 박스 안에 담긴 갖가지의 보석들, 그리고 벽에 즐비하게 붙은 그림들까지. 입이 저절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는 수아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그림도 붙어 있었다. 대체 얼마나 돈이 많으면 이 정도일까. 새삼 테즈만의 재력이 궁금했다. “...그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 “네, 말씀해보세요.” 얼마 전까지 수도자였던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궁금했다. 이런 대저택을 소유한 것도 모자라서 고가의 미술품까지 가지고 있는 테즈만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그... 테즈만은 얼마나 부자인 거예요? 아니, 대체 뭘 하는 사람이길래….” 그러고 보니 그의 직업이 뭔지 알지 못했다. 아니, 테즈만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나이가 몇 살인지, 생일은 언제인지, 하는 일은 무엇인지라든가 가족관계까지도. 어느 것도 하나 정확하게 아는 게 없었다. 이렇게 무지할 줄이야. 대체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 흔들려서 수녀까지 포기하고 나올 줄이야. 다시 생각해도 단단히 홀려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만큼, 마음을 가라앉힌 수아가 입을 뗐다. “그래서 테즈만은 하는 일이 뭐예요?” 서재에서 르로이와 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 몇몇 나라를 거론하며 이야기를 끝내고는 줄곧 서재에 틀어박혔다. 그런 걸 보면 금융과 관련된 쪽이 아닌가 싶었다. “그게...”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얼굴로 머뭇거리는 칵트를 보며 수아가 의아하던 찰나였다. “그거 내가 답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소리가 난 쪽으로 수아가 돌아서자 익숙한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금안. 자세히 보니 테즈만의 금안과는 달랐다. 그보다 더 투명하고 옅은 금색이었다. “안녕, 수녀님.” 흐트러짐 없이 바짝 올린 금발과 단정한 슈트 차림으로 걸어오는 마테오를 보며 수아가 칵트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안녕하십니까, 마테오 님.” 칵트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수아의 눈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테즈만 님은 지금 서재에...” “아니, 오늘은 테즈만을 만나러 온 게 아니야.” 마테오가 느릿한 발걸음으로 향한 곳은 바로 수아의 앞이었다. “수녀님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삐딱한 시선이 수아에게 향했다. 동양인치고는 반반하게 생긴 얼굴. 유난히 눈에 띄는 거라면 새하얀 피부 위 붉은 눈가와 입술이었다. “내 이름은 마테오. 테즈만의 형이지.” 테즈만의 형이라는 말에 수아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수아가 인사를 하자 마테오가 칵트를 향해 이만 가보라는 눈짓을 했다. “테즈만 님께서,” “알아. 아무 짓도 안 해. 설마 테즈만의 저택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겠어? 단지 대화를 하려는 것뿐이야.” 마테오의 시선이 다시금 수아에게 향했다. “내 동생이 꼭꼭 숨겨둔 보물이 대체 어떤 건지.” 찝찝한 듯 떠나질 못하던 칵트가 다시금 눈짓하는 마테오를 보며 조용히 물러났다. 칵트가 먼발치로 떨어지자 마테오가 수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뭐가 궁금하다고?” “아 그게...” 막상 물어보려고 하니까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 게다가 상대는 테즈만의 형이었으니까. “너무 많아서 모르겠으면 내가 말해줄까.” 형제긴 형제인 모양이었다. 미끈하게 올라가는 입술 끝이 마치 뱀 같다고 느꼈으니까. “난 테즈만의 형. 아버지는 그 유명한 파바드 가의 보스.” 보스라는 말이 사업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기에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녀님.” 마테오의 뒷말이 이어지기 전까지는. “수녀님이 마피아의 정부가 되는 건 보지 못했는데. 그렇게 좋았나 봐? 테즈만이.” 마피아? “잠깐만, 지금 마피아라고...” “테즈만이 말하지 않았나 봐?” 얼마나 연기를 해댄 건지. 작게 중얼거리던 마테오가 웃으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내렸다. “수녀님, 내가 뭐 하나 말해줄까?” 장난기가 다분한 입술 끝에 비틀린 감정이 덧붙였다. “어제도, 그제도 테즈만은 사람을 죽였어. 그게 마피아거든.” 사람을 죽였다니. 마테오를 응시하는 수아의 눈빛에 불신이 가득했다. “거, 짓말하지 마요.” “내가 왜 수녀님한테 거짓말을 하지? 난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데.” 그때였다. 서재를 나와 복도를 지나던 테즈만의 시야에 마테오와 수아가 담겼다. 그 모습에 성큼성큼 다가온 테즈만이 수아의 손을 잡고는 제 등 뒤로 끌었다. “뭐야.” 차갑게 내리깔린 음성에 마테오가 무슨 문제냐는 듯 물었다. “오랜만에 놀러 와서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데?” “이야기를 나눴는데 왜 수아 표정이 굳어 있지?” “글쎄. 네가 마피아라는 소리에 굳었나?” 그러자 테즈만의 눈가가 작게 경련했다. “칵트.” “... 네, 테즈만 님.” “수아, 서재로 데려가.” “알겠습니다.” 칵트가 수아를 향해 말했다. “수아, 가시죠...” “테, 테즈만...” “수아, 서재에서 기다려요.” 단호한 테즈만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수아가 발걸음을 뗐다. 칵트와 함께 그녀가 서재로 향하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그의 시야에 더는 수아가 담기지 않았을 때였다. 싸늘한 눈빛으로 마테오를 응시한 채 말했다. “우리 수아에게 무슨 개소리를 지껄인 거야, 마테오.” 우리 수아. 테즈만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직접 들어야 믿을 것 같은 말이었다. “정말 진심이었나 봐.” “시끄러워.” “그런데 테즈만.” 그가 웃으며 테즈만을 향해 다가왔다. 그러고는 가볍게 어깨를 툭툭 치며 스치듯 말을 뱉어냈다. “어쩌지. 네 수아는 네가 마피아인 걸 몰랐던 것 같은데.” 딱딱하게 굳어지는 테즈만의 얼굴을 보자니 실수를 한 듯했지만 상관없었다. 마테오와 테즈만의 사이는 딱 그 정도였으니까. “난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차라리 말해주는 것이 나았다. 나중에 길길이 날뛸 제 어머니를 대신해서.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서는 마테오를 테즈만은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테즈만의 머릿속에는 서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수아로 가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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