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11화
11화
미약한 힘이었다. 제 가슴팍을 미는 수아의 손을 보며 테즈만이 작게 웃었다. 몽롱한 눈동자에 억지로 힘을 주려는 그녀의 모습이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그가 고개를 내렸다. 수아의 눈가에 입을 맞추는 그의 시선이 성당 중앙 제대로 향했다. 저 가운데 수아를 올려놓고 그대로 범한다면, 제 밑에서 엉망으로 울다가 결국에는 제게 매달릴 그녀를 떠올리자 잔뜩 피가 몰린 페니스가 한계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미 빳빳하게 선 페니스가 바지 위로 선명하게 표가 났다. 묵직하고도 거대한 페니스는 바지를 찢고서 나오겠다는 듯 잔뜩 성이 나 있었다. 찌를 듯 솟은 페니스가 닿은 곳은 그와 몸을 맞대고 있는 수아였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어도 제 복부를 찌르는 게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챈 수아가 움찔거리며 몸을 뒤로 뺐다.
“그…. 그만.”
애처로운 몸부림에 그가 조용히 허리에 감은 팔을 풀었다. 감은 팔을 풀자마자 휘청거리는 수아 덕에 다시금 그녀를 감싸 안아야 했지만.
“이런. 어쩔 수 없네요.”
마치 인형을 들 듯 자신을 가볍게 안아 드는 그를 보며 수아는 경악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 수-아?”
심장이 철렁하고 바닥까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수-아. 이렇게 부를 사람이 이곳에서는 딱 한 명이라는 것도. 그 한 명이 빈첸시오 신부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기에.
창백하게 굳은 얼굴의 수아와 달리 테즈만은 여유로웠다. 그녀를 안은 채, 몸을 돌려서는 성당 문을 연 채 선 빈첸시오 신부를 향해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아, 혹시 지난번에 오셔서 성당에 기부금을 내주신...?”
“네, 맞습니다.”
“지난번, 기부해주신 기부금은 성당 기금으로 잘 사용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빈첸시오 신부의 시선이 그의 품에 안긴 수아에게 향했다.
“그, 신부님...!”
수아가 말을 잇기도 전에 테즈만이 가로챘다.
“수녀님께서 쓰러지실 뻔하신 걸 제가 잡았습니다. 계속 비틀거리시는 것 같아서 부축보다는 안는 게 더 편하기에.”
빈첸시오 신부가 수아의 얼굴을 살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니 열이 있는 듯했다. 얼마 전에도 그녀가 아팠던 것을 떠올린 빈첸시오 신부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아직 혼자 걷는 건 무리실 듯하니, 수녀원 앞쪽까지 제가 모셔다드리죠.”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주님의 축복이 항상 함께하기를.”
테즈만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빈첸시오 신부에게 인사를 하고는 성당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에서 좀 멀어졌을 때, 수아가 입을 열었다.
“... 내려줘요.”
“보고 계실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내려줘요.”
“더 이상하게 보이지 않나? 조금 전에 쓰러질 뻔해서 안겼는데 성당 밖을 나오자마자 걷는다니.”
잔뜩 젖은 붉은 눈가로 수아가 입술을 꾹 물었다. 가뜩이나 붉은 입술에 피가 몰리며 더 붉어졌다. 어디까지 제 인내심을 보려고 하는 건지. 매서워진 그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물지 마.”
멈칫한 수아가 잇새를 벌리자 물려있던 입술이 톡, 나왔다. 조금 전까지 제가 물고 빨던 입술이라니. 다시금 입 안에 넣고 싶은 충동을 삼키며 테즈만이 목소리를 냈다.
“수녀님이 물고 있으면 나도 물고 싶어지잖아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 한마디마다 몸이 달아오르며 반응했다. 하지만 수아는 이 모든 것이 빈첸시오 신부를 만나서, 놀라서 그런 거라는 구차한 자기 합리화를 해댔다.
“그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환속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왜 하필 지금 르로이가 물었던 말이 생각나는 걸까. 사랑이라니. 금기어 같은 단어였다. 고작 알게 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남자를 사랑할 리 없을뿐더러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서도 안 됐다.
하지만 매번 그를 볼 때마다 주체하지 못하며 넘실거리는 감정들은 명백하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쉽게 인정할 수도, 아니 인정해서도 안 됐다. 만약 그에게 동요하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더는 수녀로서도, 아네스 수녀 옆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다. 다른 선택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기에 수아에게 수녀는 맹목적이었다.
수아의 눈동자에 혼란과 불안이 뒤섞였다. 그리고 그 눈동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테즈만의 입가가 유려하게 휘었다.
동요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을 뿐인데 묘한 충족감이 그의 가슴속을 들끓게 했다. 이런 기분이라면 기다릴 수 있었다. 그녀가 제 품으로 뛰어들 때까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된 것을 알고 있는 듯, 정확하게 수도원 앞에서 테즈만의 두 발이 멈춰 섰다. 조심스럽게 수아의 두 발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그가 말했다.
“또 올게요, 수녀님.”
테즈만과 달리 수아는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열심히 밀어내고 밀어내봐도 자꾸만 다가오는 그가 두려웠다. 정말로 제 모든 것을 삼켜버릴까 봐. 더는 신께 기도할 염치도 나질 않았다. 수아의 혼탁한 눈동자가 바닥을 향했다. 심연이었다. 한 번 내던져지면 그대로 꺼져 들어가는.
바닥도 없는, 깊은 심연에 침잠되는 자신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작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탄식 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 묵주...!”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손에 들고 있던 묵주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야 머릿속을 채운 그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성당으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지금 가면 빈첸시오 신부와 마주할 것이다.
“... 저녁에 찾으러 가야겠네.”
아네스 수녀가 준 묵주였다. 그녀의 손에서 단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묵주. 그걸 떨어트리다니. 왜 떨어졌을까를 생각하던 수아의 머릿속에 다시금 그와 입을 맞춘 것이 떠올랐다.
입안을 헤집던 그 감촉이 떠오르자 다리 사이가 제멋대로 움찔댔다. 애써 머릿속을 떨친다 한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절망감으로 물든 눈빛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분명 밀어낼 수 있었음에도 밀어내지 못했다. 핑계도 대지 못했다. 몰아치는 쾌락에 결국 그와 혀를 섞은 것은 수아였으니까. 배덕감이 휘몰아쳤다. 바닥까지 추락한 자신을 신께서 다시 받아주실까.
이미 시험에 든 몸은 처절하게 타락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
답답한 마음에 수아가 허전한 손을 괜스레 만지작거렸다. 허전한 것이 묵주가 없어져서인지, 아니면 조금 전까지 그의 품에서 느꼈던 작열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리 사이, 포개진 틈으로 달라붙는 젖은 속옷의 느낌에 수아는 아찔한 듯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돌아선 수아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걸을 때마다 예민한 부위에 닿은 젖은 속옷이 미끄러졌다.
경험이 없어도 알 수 있었다. 속옷이 갑자기 젖은 이유가 무엇인지, 왜 다리 사이가 움찔대는지.
부정한 몸이 그를 원한다는 사실을 애써 머릿속에서 떨쳐냈다. 어서 씻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젖은 아래도, 쾌락에 젖은 몸도 물줄기에 다 씻겨 내려가길 바라며.
***
차창 너머로 쏟아지는 빛이 받으며 상체를 의자에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앉은 마테오의 모습은 무척이나 우아했다.
거만한 태도도 그가 한다면 고상하고 기품이 넘치는 태도로 바뀌었다. 모두 그의 외모가 헌신한 덕분이었다.
마테오가 고개를 들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느릿하게 치켜뜬 눈이 앞에 선 조반니에게 향했다.
“사실이야?”
그 물음에 조반니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입니다.”
“사실이라는 증거는?”
“오늘도 그 수녀가 있는 성당에 가셨더군요. 못 가시는 날에는 르로이가 대신 가는 것 같았습니다.”
르로이까지 시킨다면 수하들까지 다 안다는 이야기였다. 테즈만이 동양인 수녀에게 빠졌다니. 아버지인 미켈레가 들으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했다.
“계속 주시해.”
“알겠습니다.”
조반니가 나가고 집무실에 혼자 남은 마테오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한국인 수녀. 핏줄은 속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테즈만의 생모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고 했다. 그렇게 여자들에게 벽을 쌓더니 결국 선택한 것이 한국인이라니. 게다가 수녀였다. 평생을 홀로 신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
“기껏 선택한 게 수녀라니.”
상관은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배다른 형제의 악감정 따위 같은 건 두 사람에게는 없었다. 그렇다고 좋은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철저하게 비즈니스 파트너로 묶인 둘이었다. 테즈만이 누구를 만나든 할 일만 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일에 방해가 된다면 문제겠지만.”
그전까지는 지켜볼 생각이었다. 과연 수녀를 마음에 품은 테즈만이 어떤 선택을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