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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9화


9화 차에서 내린 르로이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고풍스러운 대저택. 그가 모시는 분과 잘 어울리는 저택이었다. 르로이가 발걸음을 옮겼다. 르로이의 냄새를 맡은 건지 검은색의 사냥개 서너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테즈만이 정원에 풀어놓은 사냥개들이었다. 착한 개들은 아니었다. 사냥개의 습성을 가진 터라 사람을 보든 짐승을 보든 날카로운 이를 내놓는 것이 먼저였다. 당연하게도 주인인 테즈만과 그를 따르는 세 사람, 칵트, 르로이, 드한에게만 꼬리를 흔들었다. 마치 세 사람과 같이 저도 제 주인을 따르는 짐승이라는 양. 눈인사라도 하듯 사냥개들을 한 번씩 훑고는 르로이가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르로이.” 르로이를 먼저 반긴 것은 칵트였다. “테즈만 님께서는 서재에 계십니까?” “그래. 어서 올라가 봐.” 고개를 끄덕인 르로이가 슬쩍 주위를 살폈다. 그 모습을 보고는 칵트가 웃음을 터트렸다. “드한은 카포들 교육하러 갔어.” 일방적으로 드한만 르로이에게 집착하는 걸로 보이지만 안 그런 척해도 르로이도 드한을 꽤 생각했다. 정작 르로이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나머지 드한이 혼자 들이대는 것처럼 보였지만. 성격이 상극인 두 사람이 티격태격할 때면 칵트는 여간 재밌는 게 아니었다. 지금처럼 항상 무표정한 르로이의 얼굴에서 민망하다는 게 표가 날 때면 더욱 그랬다. “곧 올 테니까, 음, 그래. 테즈만 님과 이야기가 끝나면 시간이 대충 맞겠네.” “그럼 오기 전에 빨리 가야겠군요.” 말과는 달리 느긋하게 서재로 발걸음을 옮기는 르로이를 보며 칵트는 조용히 웃음을 참아 넘겼다. 똑, 똑. 맑고 청아하면서도 둔탁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접니다, 르로이.” 안쪽에서 들어오라는 테즈만의 목소리에 르로이가 거대한 문을 천천히 열어젖혔다. 항상 보는 모습인데도 새로웠다. 고작 창틀에 몸을 기대서는 정원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이 들었다. 정원을 응시하던 금색의 눈동자가 천천히 르로이에게 향했다. “천푸 쪽은 어때.” “안에서 내부 균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천푸. 중국 본토와 홍콩, 대만에서 활동하는 흑사회였다. 메스암페타민을 생산, 가공하여 전 세계로 판매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어마어마한 돈을 세탁할 곳이 필요했는데 딱 알맞은 것이 건설업이었다. 겉만 번지르르한 대기업 건설사가 된 천푸의 보스인 예가항은 본격적으로 음지 사업을 양지로 꺼내놓기 위해 금융업까지 침투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까지 손을 뻗기 시작하면서 파바드 패밀리와 대립하게 되었다. 가뜩이나 테즈만이 유럽과 아시아의 금융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더욱 날이 설 수밖에 없었으며 천푸 또한 그를 견제했다. 최근 들어 테즈만이 관리하는 곳에서 배신자가 늘어난 것도 다 천푸의 수작질 때문이었다. 이 와중에 균열이라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무슨 균열.” “예욱문이 세력을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보스 자리를 노린다고 하더군요.” 천푸의 보스는 예가항이었다. 예욱문은 예가항의 하나뿐인 아들이었고. “권력에 눈이 멀었군.” 테즈만이 짧게 혀를 찼다. “태국에 공장이 있다고 했나.” “네.” 골든 트라이앵글. 태국과 미얀마, 라오스 정 가운데 위치한 곳이었다. 천푸가 오랫동안 터를 잡고 마약을 생산하고 제조하는 곳이기도 했다. “공장 하나 날려버려.” “알겠습니다.” 친절하게 공장까지 날려 주고 경고했는데 알아먹어야 했다. 안 그러면 천푸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럼, 가보겠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르로이를 가만히 보던 테즈만이 입을 뗐다. “르로이.” “네.” 테즈만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아있었다. “난 우리 수녀님께서 원하는 대로 했는데 말이야.” 회개하라고 해서 용서를 구했다. 당장이라도 수아를 이 저택 안에 감금시키고 싶은 욕구도 억누르며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잘 보일까 하며 성당에 기부금도 보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며칠째, 수아가 성당에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매일 새벽녘에 나오던 기도도 하러 오지도 않았고 성당 문을 여닫는 일 또한 그녀가 아닌 다른 신부가 하고 있었다. 참지 못한 그가 미사에 불쑥 찾아왔을 때, 수아는 테즈만을 보고 황급히 자리를 떠버렸다. “성당 다녀 본 적이 있다고 했던가.” “네, 있습니다.” 다녀본 적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세례까지 받으며 열렬하게 믿었다. 르로이의 부모는 미친 사람처럼 신이라는 존재에 집착했기에 강제로 그를 성당에 밀어 넣었다. 그 덕에 르로이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지만, 이제는 과거였고 기억에서 지운 일이었다. “르로이.” “네.” 르로이를 향해 테즈만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수녀님께서 왜 그러시는지 좀 알아 와.” 테즈만이 말하는 수녀를 르로이도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는 제 발로 갈 일이 없던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본 것은 피가 낭자한 성당 바닥과 시체 하나, 그리고 수녀 하나를 품에 안고 있는 테즈만이었다. 칵트가 말하던 동양인 수녀가 아무래도 그 수녀인 듯싶었다. 드한이 날뛸 만도 했다. 동양인 수녀라니. 하지만 그 정도였다. 르로이는 생각이 없었다. 테즈만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위해서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오직 시키는 대로 할 뿐. “알겠습니다.” 담백하다 못해 건조한 대답을 끝으로 테즈만의 서재에서 나온 르로이를 누군가 불러 세웠다. “드한.” 언제 온 것인지 피가 말라붙은 셔츠로 제게 다가오는 드한을 보며 르로이가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저택에 왔으면 날 보고는 가야지? 안 그래?” “바쁩니다. 비켜주세요.” 르로이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채, 드한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물었다. “그래서 테즈만 님께서 뭐래?” 어차피 무시해도 집요하게 물을 것이니 말해주는 게 좋았다. “수녀님을 만나 뵙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수녀?” 수녀라는 소리에 드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테즈만이 르로이에게까지 수녀를 만나라고 하는 것을 보면 빠져도 단단히 빠진 게 틀림없었다. 그러자 걱정이 됐다. 정말로 테즈만이 진심이 되기라도 한다면. 생각만 해도 역겨웠다. 테즈만의 짝은 고작 그런 여자가 아니었으니까. 싸늘해진 드한의 눈동자를 본 르로이가 입을 열었다. “드한.” “왜?” “테즈만님이 선택하신 일에는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 그게 저희 둘이 할 일입니다.” 짜증이 치솟은 것인지 작게 경련하는 드한의 눈가를 보며 르로이가 마지막 말을 뱉어냈다. “그러니 허튼 생각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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