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7화
7화
음습한 냄새가 났다. 끈적하게 말라붙은 핏물이 구둣발에 달라붙었다. 개의치 않는다는 듯 테즈만이 성큼 긴 다리를 뻗었다.
“살, 살려줘.”
대여섯 명의 남자가 알몸으로 무릎을 꿇은 채 있었다. 손은 케이블타이로 포박당한 채, 벌벌 떠는 남자들의 상태는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너덜너덜하다. 딱 맞은 표현이었다. 칼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는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다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살려달라고 중얼댈 뿐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간 테즈만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느님.”
그의 입에서 나온 하느님이라는 단어에 현장에 있는 모두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말은 그의 정신을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용서해주세요.”
검은색 장갑을 낀 손이 홀스터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잘빠진 은색의 철제 리볼버였다. 무기라고 하기에는 예술품처럼 보이는 리볼버는 그와 잘 어울렸다.
“우리 수녀님이 나쁜 짓을 하면 회개하라고 해서.”
“제기랄! 살려줘…. 난 그냥 시키는 대로…!”
남자의 이마에 총구를 겨냥한 테즈만이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기자 실린더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총성이 울렸다.
탕-.
“아. 쏘고 말하는 거였나.”
발밑에 쓰러진 남자를 감정 없는 눈으로 바라보던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리볼버를 뒤로 건넸다. 그러자 그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리볼버를 받아들었다.
남자의 이름은 드한이었다. 퇴폐적이고 야릇한 얼굴만큼이나 성격 또한 무척이나 날카롭고 예민했다. 리볼버를 받아 든 드한이 테즈만 옆에 서며 능글맞게 물었다.
“테즈만 님 입에서 신이라니, 다들 소름 끼쳐서 죽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탕-! 또 다른 총성과 함께 남자 하나가 또 쓰러졌다.
“신 따위 믿지 않아. 우리 수녀님을 믿지.”
“수녀님이요?”
수녀라는 소리에 드한이 느릿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드디어 테즈만이 여자에 흥미가 생겼다고 해서 좋아했더니 상대는 동양인 수녀였다. 하필이면 동양인 수녀라니.
드한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우선 제 보스가 여자에 흥미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흥미만 생긴다면 다른 걸로 갈아치우는 건 문제가 되지 않을 테니.
연달아 총성이 울렸다.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테즈만이 몸을 돌렸다. 검은 세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칵트가 그를 보자마자 조용히 뒷좌석 문을 열었다.
“르로이가 곧 도착한다고 하는데 보시지 않고 가십니까?”
칵트의 물음에 테즈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저택으로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테즈만이 탄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검은색 세단 세 대가 따랐다.
“그 수녀라는 게, 우리가 성당에서 봤던 여자 맞나?”
언제 온 것인지 칵트의 옆에 선 드한이 인상을 구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얼굴이라도 자세히 볼 걸 그랬어. 쯧.”
칵트와 르로이, 둘 다 테즈만을 향한 충성심은 대단했지만 드한을 이기지는 못했다. 매춘 골목에서 태어나서 버려진 드한은 소매치기를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다시피 했다. 가끔은 소매치기를 하다 두들겨 맞기도 했다. 그날도 그랬다. 하필이면 매춘부를 관리하는 관리인의 지갑에 손을 댄 탓에 피떡이 될 정도로 두들겨 맞은 날이었다. 할딱거리며 겨우 숨을 내쉬고 있을 때, 드한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테즈만이었다.
드한에게 테즈만의 존재는 신이었다. 제 세계의 전부이자 살아갈 이유였다.
“동양인 여자라니.”
어이가 없다는 듯 드한이 헛웃음을 쳤다. 테즈만의 생모가 동양인이 섞였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며 파바드 패밀리가 그의 생모 때문에 동양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테즈만은 그 수녀와 엮여서는 안 됐다. 앞으로 파바드 패밀리의 보스는 테즈만이 될 테니까.
“수녀면 얌전히 성당에 처박혀 있겠지만….”
서늘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드한을 칵트가 조용히 불러 세웠다.
“드한. 쓸데없는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하? 쓸데없는 짓이 뭔데?”
“테즈만 님이 원하지 않는 짓 같은 거 말이지.”
경고가 담긴 말이었다. 그 말의 속뜻 또한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드한은 멈출 수가 없었다.
“칵트, 나이가 들더니 너무 물러진 거 아니야?”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문 드한이 헛웃음을 쳤다.
“우리는 목적이 같아. 테즈만 님이 더 올라가실 수 있도록, 그에 걸맞은 여자를 옆에 둬야지. 그래, 예를 들면 테즈만 님께 반해서 쫓아다니던 총리 막내딸 정도 말이야.”
도움이 되는 여자를 만나야 한다는 드한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테즈만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여자라면 자신들도 틀림없이 따를 것이었다.
하지만.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야.”
테즈만이 선택하는 거였다. 그가 칵트, 드한, 르로이를 옆에 둔 것처럼.
“칵트!”
답답한 듯 드한이 미간을 팍, 찌푸리며 칵트를 불러세웠다.
“시끄럽네요.”
동시에 두 사람의 시선은 물론, 그곳에 있던 파바드 패밀리의 고개가 한 곳으로 향했다.
“테즈만 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흐트러짐이라고는 하나 없는, 우아하게 걸어오는 폼이 마치 귀공자를 연상시켰다. 탁한 카키색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남자를 향해 드한이 입을 열었다.
“늦었잖아, 르로이.”
드한이 다가와서는 르로이의 어깨 위로 손을 뻗어 어깨동무하려고 했다. 그 손을 가볍게 쳐내며 르로이가 말했다.
“시끄러운 건 딱 질색입니다, 드한.”
온화하고 다정할 것 같은 얼굴로 드한을 응시하는 르로이의 눈빛에는 감정이 없었다.
“그리고 드한이 잊은 모양인데, 칵트는 테즈만 님의 비서입니다. 예의, 차리세요.”
동갑임에도 제게 존댓말을 써대며 거리를 두는 르로이가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르로이는 드한에게 유일한 친구였으니.
“알았다고. 그나저나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오다가 뒤진 줄 알았잖아.”
“전 죽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죽으면 모를까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하는 르로이를 보며 드한이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이래서 내가 르로이를 친구로 두는 거라니까.”
르로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애초에 감정 없는 사냥개로 키워진 탓에 더욱 그랬다. 드한이 뭐라고 하든 듣지도 않은 채, 르로이가 칵트에게 다가섰다.
“테즈만 님은 가셨습니까?”
“그래. 내일 저택으로 오라신다.”
“알겠습니다.”
테즈만이 없기에 더는 볼일이 없어진 르로이가 현장을 떠나려던 때, 드한이 그를 붙잡았다.
“르로이. 너도 알고 있어? 테즈만 님께서 동양인 수녀한테 빠지셨다는 거.”
“그때, 성당에서 본 여자 말입니까?”
“그래.”
드한은 르로이의 표정을 읽으려고 애썼다. 아무리 칵트라고 한들 르로이까지 반대한다면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했으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르로이의 표정은 평소와 같이 차분했다.
“그렇군요? 그게 끝이라고?!”
“뭐, 어떻습니까. 테즈만 님이 원하신다는데. 제가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죠.”
“아니, 상대가...!”
“드한 또한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고요.”
차분하게 말을 내뱉는 르로이를 보며 드한이 이를 아득, 깨물었다.
“하? 이대로 마테오 님이 파바드 패밀리의 보스가 돼도 상관없다는 걸로 들리네.”
무표정했던 르로이의 눈썹이 미묘하게 들썩였다.
“이대로 테즈만 님이 뒷방에 물러나게 하려고? 지금은 마테오 님이 테즈만 님과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한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있나?”
구부정하게 숙인 몸으로 건들거리며 르로이에게 다가간 드한이 소름 끼치게 웃어 보였다.
“마테오 님이 뒤통수를 쳐서 테즈만 님이 죽기라도 한다... 컥!”
그대로 손을 뻗어 드한의 목을 움켜쥔 르로이가 무서울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한. 적당히 하세요. 전 드한의 헛소리를 들어줄 만큼 여유롭지 않습니다.”
르로이가 움켜쥐고 있던 드한의 목을 놓았다. 카악, 하고 침을 바닥에 퉤 뱉으며 드한이 고개를 들었다.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안타깝지만 전 목 졸리며 좋아하는 변태는 질색이라.”
“내가 좋아해서 졸라준 거 아니었어?”
고개를 뒤로 젖히며 드한이 목을 내보였다. 방금 르로이에게 졸린 목에는 불그스름한 손자국이 나 있었다. 드한이 손가락으로 손자국 위를 가리켰다.
“앞으로는 이 위쪽을 조여줘. 난 여기 졸리는 게 더 흥분되니까.”
그러고는 한 손으로 바지 앞섬을 움켜쥐는 드한을 등지며 르로이가 마지막 말을 뱉어냈다.
“드한 만큼이나 저 또한 테즈만 님을 위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