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6화
6화
십자 성호를 그으며 눈을 뜬 수아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와 입술을 맞댔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죄책감에 차마 십자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매일 밤낮으로 회개하는 기도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빈첸시오 신부는 수아의 신앙심에 깊게 감명받은 듯 그녀가 기도를 할 때면 자리를 비켜주기도 했다. 단지 죄를 덜기 위함인데 오히려 그 모습이 좋게 보이니 수아는 더 괴로웠다.
성격 탓을 하기에는 그저 핑계였다. 따지고 물었어야 했다. 어떻게 수녀에게 입술을 맞댈 생각을 했냐고. 하지만 차마 묻지 못한 것은 자신도 그 입맞춤에 동요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차마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적이 없다는 듯 그대로 수면 아래로 묻어놓고 싶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아네스 수녀를 보며 어릴 때부터 수녀를 꿈꿔왔기에 남자는 무조건 멀리했다. 언제든 신께 모든 걸 바칠 수 있도록.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바로 수도원에서 쭉 있었기에 남자와 대화를 하는 것은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과 몇몇 신부님들이 다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닥친 사고처럼 테즈만은 그녀의 세계를 뒤흔들었다. 수아는 그와의 입맞춤을 생각하면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며 가슴이 뛰었고 성당에 올 때면 저도 모르게 근처를 확인했다.
혹시 그가 있을까 봐.
“... 안돼.”
울먹이는 목소리가 절규하는 듯이 들렸다. 명백한 타락이었다. 그 남자는 제게 선악과를 내민 뱀이었다. 수아는 원하든, 원하지 않던 선악과를 베어 물었고. 한 번 맛을 보았으니 계속 생각날 것이었다. 이미 수아의 몸 깊은 곳에 자리를 잡은 채 불쑥불쑥 떠오를 것이다.
수아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 아니야. 안돼.”
간절하게 모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유기 서원까지 마쳤다. 종신 서원식만 하면 어엿한 수녀였다. 아마도 신께서 종신 서원식을 하기 전에 주는 시험일 것이라며 수아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흔들리지 말자. 흔들리지 말아.
“수녀님.”
지독하게 낮은 저음이 왜 달콤하게 들리는 걸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기에 수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또 기도 중이신가.”
조용한 성당 안에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발걸음 소리가 점차 다가올수록 수아의 심장 소리가 점점 커졌다.
수아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부디 그가 아니기를. 애써 기도하는 척하는 수아의 옆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맞잡은 두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가 조용히 수아의 옆에 앉았다. 미세하게 움찔거리는 수아의 어깨를 보자 테즈만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팔꿈치를 의자 등받이에 대고는 손으로는 턱을 괬다. 관망하는 듯한 눈동자가 수아에게 고정됐다. 대놓고 볼 참이었다. 수아가 어떻게 나올지.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결국 수아가 눈을 떴다. 가녀린 손이 이마, 명치,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를 오가며 십자가를 그었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테즈만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기도를 참 좋아하시네요.”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가능했다. 테즈만을 따르는 칵트와 드한, 르로이 세 사람만 봐도 맹목적으로 그를 믿었으니까. 하지만 신은 달랐다. 실존하지도 않는, 보이지도 않는 존재를 그토록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신기했다.
솔직히 말하면 신기한 것만은 아니었다. 거슬렸다. 수아의 모든 신경이 신이라는 존재에게 향하는 것이.
“원래 다들 그렇게 많이 하나.”
수아의 고개가 천천히 제 옆에 앉은 테즈만을 향했다. 창백한 얼굴과 달리 유독 불그스름한 눈가가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기도하러 오셨나요?”
“수녀님 보러 왔다고 하면?”
긴장한 건지 작게 진동하는 수아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가학심이 들끓었다. 울려놓고 달래주고 싶은, 변태적인 심보였다. 소용돌이치며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상냥하게 테즈만이 목소리를 냈다.
“오늘부터 독실한 신자가 될까 하는데.”
사람을 상대할 때 가면을 쓰는 것 같은 귀찮은 짓은 딱 질색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그 귀찮은 짓을 하고 있었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 네?”
“수녀님 때문에 내가 신 좀 믿어보려고.”
느른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퍼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돼요?”
두 눈을 끔벅이며 그의 얼굴을 살피던 수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요?”
대답 대신 테즈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수아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활짝 폈다.
“회개하세요!”
회개? 그게 뭐냐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를 향해 수아가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 그러니까…. 그동안 잘못한 것을 신께 고백하고 용서받는 거예요.”
“잘못한 것을 고백하면 용서받는다고?”
“네. 정말로 뉘우치고 바른길로 간다면 용서해주실 거예요.”
그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든 잘못을 용서한다고? 누가, 누구한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지금 제 앞에 있는 토끼를 안심시키려면 속아 넘어가는 척해야 했다.
“아, 아주 일리 있는 말이네. 그래서 수녀님. 고백만 하면 돼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수아가 이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신자가 되고 싶어요?”
“거짓말 아닌데.”
“우선... 기도만 해보세요. 미사에 오셔서 신부님 말씀도 듣고 그러다가 예비자 교리도 듣고 정식으로 세례 신청도 하시면 돼요. 그리고...”
신을 믿는다고 하면 끝날 일일 줄 알았는데 해야 할 게 많았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었지만 제 앞에서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수아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그 귀찮은 일들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다 들었어요?”
들었을 리가. 조잘대는 입술을 베어 물고 그 사이로 혀를 집어넣어서는 입 안을 샅샅이 훑고 싶은 걸 참느라 정신이 나가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수아를 향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도부터 해볼까요? 이렇게 두 손을 모으고...”
감긴 두 눈 아래로 뻗은 속눈썹이 아찔했다.
“아직은 거창하게 무언가를 말할 필요는 없어요. 솔직하게만.”
“솔직하게?”
수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와 비슷하게 손을 모은 테즈만이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된다고 했나?”
눈을 뜬 수아가 제 옆에서 손을 모은 그를 바라보았다. 황금색의 눈동자가 마치 블랙홀 같았다. 가만히 바라보다가는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아... 네.”
수아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게 하더니 눈을 감았다.
“솔직하게 고백할 테니 다 용서해주세요.”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아도,”
“키스하고 싶어요.”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키스라니. 말을 잇지 못한 채 사색이 된 수아와 달리 테즈만은 느긋했다.
“수녀님 입술 안으로 혀를 집어넣고 샅샅이 핥고. 결국엔 실신할 때까지 물고 빨고 싶은데.”
“...그, 그만...”
“용서해주세요.”
천천히 눈을 뜬 테즈만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
당황스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붉은 눈가를 당장이라도 혀를 내밀어 핥고 싶었다.
“왜, 수녀님.”
수아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그가 물었다.
“솔직하게 고백해야 한다며.”
“그, 그런 건...!”
“그런 건?”
벌어진 입술이 꾹 닫혔다. 신 앞에서 솔직해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었기에. 게다가 용서해달라는 회개 기도였다. 불순한 마음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 앞으로 기도할 때는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지 말고 속으로 하세요.”
“속으로 하면 신이 어떻게 알아듣지?”
“알아들으세요. 그러니까 절대 입 밖으로 소리 내지 마세요.”
혹여 빈첸시오 신부나 다른 신자들 앞에서 그럴까 봐 겁이 났다.
“그리고 전 유기 서원을 끝낸 수녀이긴 하지만 정식 수녀는 아니에요. 곧 종신 서원을 받고 정식 수녀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제게 가까이 오는 건 자제해주세요.”
“왜, 왜 수녀님한테 가까이 가면 안 되는데?”
“... 전 신께 제 모든 걸 바치겠다고 약속드렸으니까요. 청빈, 정결, 순명. 오직 하느님께만 제 모든 걸 드릴 수 있어요.”
매끈하던 그의 미간에 금이 갔다. 청빈, 정결, 순명. 고리타분한 말들을 테즈만이 좋게 들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오직 하느님께만 모든 걸 드릴 수 있다니. 잠자고 있던 본능적인 소유욕이 꿈틀댔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제 저택에 데려가 감금할까. 음험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아. 아.”
하지만 테즈만이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그녀의 맹목적인 믿음이 신이 아닌 제게 오는 것. 수아의 완전한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맞춰줄 생각이었다.
“잘 알겠어요, 수녀님.”
하느님께만 모든 걸 드릴 수 있다는 그녀의 기가 막힌 말까지도 이해하는 척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