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229화
소피아가 말했다.
“성공했을 때의 이익이 너무 큽니다. 황궁 서기관실은 될 수 있으면 빨리 빼앗아 와야 합니다.”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암살이라니, 성정에 맞지 않는 일이었으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면 할 것이다. 더러운 일이라 해도 기꺼이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던가.
마르틴은 올리비아의 판단력을 믿는다고 했지만, 테오도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개인적인 관계가 너무 깊다.
자신과 깊은 관계가 아니었어도 그녀는 루트가르트에 희생을 요구하는 것을 꺼릴 것이다. 그녀가 처음에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달아나듯 사라진 이유를 생각해 보라.
하지만 자신의 안전 때문이든, 루트가르트를 염려해서든, 그건 잘못된 선택이다.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그녀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었지만, 설령 천칭에 올려진 것이 그것뿐이었다 해도 테오도르는 기꺼이 자기 자신을 던졌을 것이다.
“하겠습니다.”
테오도르는 소피아에게 답했다. 마르틴이 반발했다.
“안 됩니다.”
“다만,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전이어야 할 겁니다. 근위대장으로서든, 루트가르트의 가주로서든, 제가 이끌고 있는 세력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를 인지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소피아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를 말씀입니까? 그럼, 준비가 되는 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테오도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인사를 올리고 먼저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마르틴이 심각한 얼굴로 테오도르를 쳐다보았다.
“안 됩니다, 테오도르 경. 경 자신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슈바벤 공작가가 헬무트 슈바벤을 잃는 것보다 우리가 테오도르 경을 잃는 게 훨씬 치명적입니다. 만약의 경우라도 생기면….”
“글쎄, 나는 헬무트 슈바벤의 호위 중에 날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 안 해.”
소피아에게 말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한 어조로 테오도르는 대답했다.
“그리고 범인이라는 걸 들켰다고 해도 슈바벤이 과연 나를 바로 지목하여 처벌을 요구할 수 있을까?”
“황녀 전하께 정치적 부담이 되리라는 생각도 하셔야지요.”
“그건 좀 부담되긴 하는군. 그렇지만 무조건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가능성 있는 작전이라면 검토할 이유가 충분하지.”
테오도르는 발덴펠스 장군이 내세운 조건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사실 조건이라기보다 해야만 할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군권을 이양받고 황태녀 책봉식을 한다. 하지만 황제의 육성이 닿는 곳 너머로 황명이 닿지 않는 지금, 그건 수도에서나 통용되는 권위이다.
그 자신이 변경백이기에 테오도르는 다른 변경백들과 지방에 주둔한 황군의 지휘관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있었다.
자원이 중앙에 집중적으로 투자되면서 변경군은 독립적인 성향을 띠게 된 지 수십 년이다. 루트가르트 군처럼 본래도 독립부대에 가까운 변경백의 군대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해군과 마찬가지로 충성의 대상인 황실과의 유대는 끊어졌고, 슈바벤을 싫어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러지 않은 자는 이미 척결되었을 터였다.
황녀를 숨기느라 침묵을 지킨 그의 부친 정도나 예외적인 경우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은 루트가르트도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
그러니 그들을 모아들이기 위해서는 황명이 필요하다. 불분명하고 의심스러운 밀명 같은 것이 아니라 국새가 찍힌 진짜 황명이.
그러려면 황실 서기관실을 장악하거나, 적어도 제 기능을 못 하게 해야 한다.
***
앙할트 백작은 답답한 얼굴로 아내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앙할트 백작 부인도 할 말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녀가 모피로 된 머프를 흔들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황녀님께서 문을 열어 주지 않으시는데 나더러 어쩌라는 거예요?”
“그러게 오냐오냐만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그게 선대 공작님의 뜻이었다면서요! 그리고 내가 황녀님을 키우기라도 했나요? 내가 황녀님의 시녀가 된 건 고작 4년 전이에요!”
앙할트 백작 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도 아직 젊은 여자였고, 로엘라와는 기껏해야 여섯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책임을 밀어붙이니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
백작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고 또 한 번 탄식했다. 그리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내를 타이르듯 말했다.
“결혼 준비를 하라는 것뿐이지 않습니까? 황녀님이 직접 준비하실 일이 뭐 몇 가지나 있다고 그래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황녀님이 이 결혼식을 몇 년이나 준비했는 줄이나 아세요? 내가 처음 시녀로 인사를 드렸을 때부터 결혼식 드레스와 장식 이야기를 하던 분이에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시녀가 있으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고 좋아하셨다고요. 그런데 지금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하신다고 해서 시녀들이 마음대로 결정해서 나중에 무슨 사달이 날 줄 알고 그래요?”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지난번 자선 바자회 이후로 귀족원의 분위기가 확 올리비아 황녀에게 기울었어요. 빨리 결혼식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끌어와야 합니다. 그리고.”
“아니,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잖아요.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 거예요. 당신 목적은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 아닌가요? 내가 황녀님에게 미운털이 박혔다가 나중에 책임질 일이 생기면, 당신이라고 해서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아닐 텐데요. 이번 건 진짜로 그냥 어린애 심기를 거슬렀다고 생각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에요.”
그것도 옳은 말이었다. 앙할트 백작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초조했다.
최근 되는 일이 없다. 헬무트 슈바벤이 1황녀 암살에 실패한 직후에는 이제 자기 세상이 열린 줄 알았다. 밀정 조직의 수장으로서 자리를 굳혔고, 공적을 세울 기회도 늘어났다. 골트휘겔 봉기를 와해시켰을 때는 에제키엘이 직접 악수를 청하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는 1황녀궁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소피아 암살은 실패다. 그는 쓸 수 있는 수단을 이미 다 써 버렸고, 정보를 흘린 카롤리네 데른부르크는 죽었으므로 책임을 대신 지울 자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헬무트를 끌어내릴 수 없다. 그는 자신이 정체되어 있으며, 에제키엘이 냉담한 의심을 품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밑에서 벌어지는 첩보전은 교착 상태에 이르렀다. 이제 지속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슈바벤의 밀정 조직 쪽이었다. 월등한 규모를 지니고서도 비등하게 신경전을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얻었던 신뢰는 깎여 나가고 지나간 공적은 발판이 되지 못한 채 잊힐 것이다. 그는 헬무트처럼 에제키엘과 어린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사람이 아니다.
앙할트 백작은 부인이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열쇠가 되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로엘라 쪽 문제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것이다.
그는 아내의 손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기밀을 이야기했다.
“각하께서 만프레드 경을 불러들이셨습니다. 자선 바자회날 밤에요.”
앙할트 백작 부인은 처음에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가 이내 깜짝 놀라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앙할트 백작이 말한 만프레드 경은 수도 방위군 사령관이다. 에제키엘이 슈바벤 공작가의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 중 하나인 그를 만났다는 건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선 바자회날 밤이라면 퍽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날, 공작님과 황녀님께서는 자정 넘어서 돌아오셨잖아요?”
“그렇지요. 헬무트 경도 함께였습니다.”
자신은 그 자리에 들어가지 못했음을 새삼 곱씹으며 앙할트 백작은 이를 악물었다.
“자정 넘어서, 그날 올리비아 황녀가 한 일을 생각하면, 뭔가 결단을 내리신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결혼식도 서두르시고.”
“예. 만약에 우리가 생각한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전에 먼저 결혼식을 치르는 쪽이 나으니까요.”
앙할트 백작 부인이 침을 꼴깍 삼켰다. 결혼식부터 치르겠다는 말은 로엘라가 슈바벤 공작저의 별관으로 옮겨오면서 이미 했었지만, 그러고서도 에제키엘이 적극적이지 않아서 진전은 느릿느릿했다.
그런데 확실히 자선 바자회로부터 이틀 뒤에 결혼식을 서두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에제키엘에게 심경 변화가 있었다는 건 앙할트 백작 부인도 짐작했지만, 설마 그런 결정이 내려졌을 줄은 몰랐다.
앙할트 백작이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속삭였다.
“아직 확정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염두에 두십시오. 그 뒤로 만프레드 경, 모르겐펠스 경을 비롯해 군부 인사들과 몇 번이나 회동했습니다.”
백작 부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