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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화 197화


37. 시녀와 여관 안나가 오랜만에 입궁했을 때 제일 먼저 그녀를 맞이한 것은 새 개인실이었다. “세상에.” 황족을 모시는 시녀라면 모두 황궁 안에 개인실이 주어지게 마련이다. 숙직할 때는 물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부르심을 대비하여 밤에도 퇴궁하지 않고 머무르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안나에게 주어진 공간은 침실과 측근 하녀를 위한 작은 방이 전부였다. 비록 하녀가 없는 안나가 그 작은 방도 알차게 사용하긴 했지만, 본래 고용인의 공간은 셈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녀의 위치가 시녀들 중에서도 낮은 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주어진 개인실은 별도의 응접실과 파우더룸까지 딸려 있는 큰 공간이었다. 이전의 개인실에 비해 올리비아의 침소까지의 거리도 확 줄었다. 자네트의 개인실에 비해도 딸리지 않았다. 소피아는 그녀에게 응접실을 보여 주면서 말했다. “일단 본래 있던 대로 응접실 가구를 그대로 두었지만, 무어바흐 양이 원하는 대로 꾸미면 좋아요. 서재나 집무실로 쓰는 것도 좋겠지요. 서류 작업할 일이 많을 테니.” “네! 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안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다음에는 파우더룸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도 제 마음대로 꾸며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좁은 공간인데 어떻게 하려고요?” “이곳에 티룸을 꾸미거나 하면 어떨까 싶어서요. 아니면, 작은 책상을 놓고 중요한 서류는 이쪽에서 처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을 거예요.” 고위 귀족 출신의 시녀들이 들었다면 그럼 화장은 어디에서 하느냐고 눈을 휘둥그레 떴겠지만, 소피아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난다는 게, 그것도 필수적인 생활 공간이 아니라 일이나 취미에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요. 뜻대로 하면 돼요. 필요한 가구는 한스 경에게 말하면 되고요.” “네!” 안나는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피아는 그녀가 그 기쁨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도록 잠시 기다린 다음에 올리비아에게 향했다. 안나는 여전히 상기된 얼굴인 채 소피아에게 말했다. “일이 아주, 아주 많다고 들었어요.” “막히는 부분도 많고, 절대적인 양도 많아요. 일단 지원서만 해도 수천 장을 봐야 할 거예요. 그중에서 사람을 고르려면 또 따로 알아봐야 하고.” “그렇군요.” “무어바흐 양은 당분간 크로네 별궁에 설치된 공정조세청에서 일을 봐야 할 거예요. 낯선 지원자들을 바로 황녀궁으로 들일 수는 없으니까요. 집에서 출퇴근해도 좋지만, 황녀궁의 개인실로 퇴근해도 좋아요.” “네.” 안나는 그걸 야근이나 숙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분간은 개인실을 꾸미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집에 돌아가 봐야 부모님에게서 테오도르나 결혼 계획에 대한 질문에 시달릴 테니까. 호기심 어린 시선은 여기에도 있을 테지만, 그래도 대놓고 묻는 사람은 없으리라. 일단 그녀에게 직접 물을 만한 입장인 사람은 이 약혼이 가짜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딱 한 명만 빼고 말이다. 마침 서재에서 나오던 자네트가 안나를 보고 깜짝 놀라더니 얼른 다가와 다정하게 말했다. “안나 양! 별일 없이 건강한 모습을 보니 정말 기뻐요! 안나 양이 납치당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아, 고맙습니다.” 안나는 약간의 얼떨떨함과 당혹감을 느꼈다. 자네트는 그들의 약혼이 바이덴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가짜였다는 걸 모르는 건가?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건 꽤 기밀을 요한 계략이었다. 안덱스 백작 부인은 알고 있었지만, 자네트에게까지 알려 주지는 않았으리라. 무어바흐 백작 부인도 모를 테고. 자네트가 진심이라는 게 느껴졌으므로 안나는 기쁘게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다. 다소 경망스러운 데가 있지만, 진심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좋은 사람이다. “더 쉬지 않아도 괜찮아요?” “오래 쉬었어요. 다친 곳도 없고, 테오도르 경께서도 잘 보살펴 주셔서요. 지금은 일이 하고 싶어서 좀이 쑤실 정도예요.” “하긴, 루트가르트 백작님이….” 말하다 말고 자네트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안색이 흐려지더니 이내 복잡한 연민의 빛이 얼굴에 스쳤다. 안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으므로 의아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자네트와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라 굳이 물을 마음이 없었는데, 소피아가 자연스럽게 사이에 끼어들었다. “레이디 자네트는 할 일을 모두 마치셨을까요?” “아, 죄송합니다, 시녀장님. 그럼 다음에 또 이야기해요, 안나 양.” “네, 레이디 자네트.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나는 자네트와 마주 인사했다. 시종이 도착 소식을 알리자마자 문이 열렸다. 안나는 약간 긴장하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올리비아는 어려운 주인이었다. 안나는 자기처럼 평범한 사람은 그녀 같은 대단한 사람을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거실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종이 뭉치가 잔뜩 쌓여 있었지만, 올리비아는 거기가 아니라 창가에 앉아 있었다. 오전의 환한 햇살을 받은 금빛 머리칼에 후광처럼 반짝임이 떠올랐다. “아, 왔어?” 앞에 놓인 수틀을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이 슬쩍 밀어놓으며 올리비아가 일어섰다. 안나는 공손히 무릎을 구부리며 인사를 올렸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황녀님?” “몸은 좀 괜찮고?” “휴가를 내주신 덕에 푹 쉬었습니다.” 올리비아가 손을 뻗었다. 안나는 그 손등에 키스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그러는 대신에 안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포옹했다. 아름다운 몸에 안기는 순간 안나의 심장이 순간적으로 덜컥 내려앉았다. 올리비아가 그의 등을 두어 번 두드리고 놓아주었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 맡아 줘서 고마워. 안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쉽게 황궁을 뒤집지 못했을 거야.” “아니… 아닙니다.” 안나는 붉어진 얼굴로 애써 말했다. 내려앉았던 심장은 그 기세 그대로 다시 펄쩍 위로 뛰어올라 마구 요동쳤다. 자신이 그녀의 신뢰를 얻어냈고 앞으로 출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가 바라던 바를 충족시켰다는 것 자체가 무척 감격스러웠다. 안나는 자신이 황녀를 이토록 숭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도취가 빠지고 나면 생각이 또 달라지겠지만, 지금이라면 목숨도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올리비아는 자매라도 되는 것처럼 그녀의 팔을 잡고 다정하게 소파 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앞으로도 해 줘야 할 일이 아주 많아. 소피아가 먼저 이것저것 이야기했지?” “대략적으로는 테오도르 경에게도 먼저 들었습니다. 공정조세청에서 일할 시녀를 대규모로 선발하실 예정이시라고요.” “그래. 우선 1백 명 정도로 시작하려고 해.” “너무 많지 않은가요? 탄원을 미리 듣고 정리해 두기 위한 인력이라고 들었습니다. 탄원자의 수도 백여 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명목이었어. 내 시녀라면 공적인 문제를 처리할 수 있으니 그대로 공정조세청에 필요한 모든 일을 시킬 거야. 법안 검토부터 실사까지 전부. 행정부에서 제때 협력하지 않으면 1백 명만으로도 모자랄 수도 있겠지.” 그건 안나가 1백 명 선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기껏해야 이삼십 명을 생각하고 있었던 그녀는 생각 이상의 규모에 압도되었다. 게다가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그, 그렇다면, 사실상 시녀가 아니라 관리를 선발하시는 것이군요.” “그렇지. 일단 시녀라는 명목이니까 여자 중에서만 선발할 수 있겠지만.” 올리비아가 미소를 지었다. “어쩌겠어? 불만 있으면 관리를 제때 지원해 주든가, 아니면 정식으로 선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해 주든가 했어야지. 너무 염려하지 마. 한 번에 1백 명을 전부 선발하라는 게 아니니까.” “네.” 그래도 책임이 너무 막중하다 싶어 안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올리비아는 손가락을 튕겨 시종을 불러 차 심부름을 시키고 말했다. “안나는 여학교 출신이니까, 그쪽부터 시작하면 좋을 거야. 다니던 학교의 선생님이나 친구를 초빙해도 괜찮고.” “네?” “일단 일을 도울 사람을 선발하고, 그다음에 숫자를 늘려나가. 인사를 다룰 사람만도 수가 상당히 필요할 거야. 이건 각 대학의 입학자 명부인데.” 올리비아가 트롤리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졸업자, 수료자, 중퇴자, 누구라도 좋아. 시녀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접촉해 봐. 고급 인력도 필요하니까. 공보에 싣긴 했지만, 몰라서 지원하지 못하거나 소극적인 사람도 있을 테니.” “제, 제가 이런 막중한 일을 맡아도 될지….” 안나가 더듬거리자 올리비아는 빙긋 웃었다. “안나는 이미 용기와 충성심을 증명했고, 마침 이 일을 하기에도 적당한 사람이야. 무엇 때문에 내 시녀가 되었어? 황녀의 시녀 일을 한 적이 있다는 이력을 가지고 혼처를 찾으려던 건 아니잖아?” “아니에요. 저는…, 원래 궁내부 여관이 되고 싶었어요.” 이제까지 아주 친한 친구를 제외하고는 별로 말해 본 적이 없는, 이미 지나간 꿈을 그녀는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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