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100화
#100
화창한 날씨의 식탁은 간소했다. 밀라 혼자서, 점심을 거창하게 차려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나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는 오레스터 역시 팔을 걷어붙였다.
셋이 힘을 합쳐 부엌에서 시간을 보낸 결과 식탁은 제법 손님을 초대한 식탁 같아졌으나, 그래도 풍성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스텔라는 멍하니 제 앞에 앉은 부모님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마주 앉아 식사를 한 게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정말로 어릴 때. 그러니까 오빠가 알렉시스만 할 때 일이었다. 반추를 하고 싶어도 기억이 흐릿하여 그때의 상황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모친이 서궁에 머물렀을 무렵 종종 그들을 데리고 그녀를 만나러 갔었다.
“들어요.”
아버지가 스푼을 들며 말했다. 슬란과 스텔라는 차례대로 식사를 시작했다. 양고기를 푹 끓인 스튜와 호박꽃 튀김 요리는 무척 맛있었다. 어릴 때도 이런 요리를 먹었던 것 같은데 착각일까. 엄마는 종종 그들에게 직접 요리를 해 주고는 했었다.
평민들에겐 특별한 일이 아닐지 몰라도 살림에 여유가 있는 유복한 지주 부인들은 좀체 부엌일에 손을 대지 않으니까. 하물며 황후였던 사람이다. 황궁 사람들의 눈에는 그녀가 하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이상해 보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래도 스텔라는 엄마가 좋았다. 엄마만이 그녀의 유일한 편이었다. 그런데…….
“아가씨가 이렇게 어린데 시집이라니. 어머니께서 많이 아쉬워하겠어요.”
“아…….”
“그래도 분명 좋은 사람을 배필로 맞이하니 아가씨의 어머니도 몹시 기뻐하지 않겠어?”
난나의 말에 스텔라가 대꾸하기도 전, 오레스터가 대답했다. 스텔라는 물끄러미 제 아버지를 보았다. 모친이 변한 게 없듯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크고 두툼한 몸과, 날렵한 얼굴……. 서슬 퍼런 기백까지. 그대로였다. 오빠는 종종 그를 마주하여 국정을 논의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그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정말로 자식들에게 무심했다. 그녀도 알렉시스도……. 그저 정치에 필요한 장기말인 것 같았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문득 글라스를 들어 술을 삼키던 오레스터가 연초를 태우고 오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슬란이 느릿하게 자신도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식탁을 일어났다.
“화가 나셨습니까?”
연초를 무는 부친을 향해 슬란이 물었다. 연기를 뱉어내던 오레스터가 그를 돌아보았다. 날카로운 눈이었으나 슬란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어리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그와 맞닥트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누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먼저였다. 아니, 그것은 핑계였을지도. 자신이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정도의 미친 짓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아무리 반쪽짜리 권력을 가진 황제라고 해도 그는 황제였다. 한데 황궁을 이렇게 예고 없이 며칠씩이나 비우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허용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스텔라의 소원이었습니다.”
“…….”
“들어 주고 싶었어요.”
슬란은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러고는 ‘송구합니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부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빤히 바라보다 무심하게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주먹으로 한 대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황제를 처벌할 방도가 없으니 물리적으로라도 분풀이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는 황제였고, 상황이었으나 본질적으로는 무장이었다. 한데 작은 힐난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
“그만 가.”
“……예.”
“다시는 이런 식으로 찾아오지 마라.”
“…….”
“네 어머니를 사랑한다면. 마음 깊이 그녀가 평온하길 원한다면……. 내 말을 들어.”
슬란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말간 하늘을 보며 연초를 태울 뿐이었다.
점심은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식탁은 화기애애했고 오레스터의 염려와 달리 어떤 불안과 불행의 전조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내 스텔라와 웃었다. 스텔라는 그녀의 앞에서 곧 신랑이 될 정혼자가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인지 말했다. 잘생기고 부유하고…. 무엇보다 그녀만을 위한다고 했다. 난나는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제 딸이 그런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처럼. 오레스터는 감동적인 얼굴로 스텔라의 말을 듣는 여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네 사람은 거의 저녁 무렵에 헤어졌다. 난나는 외가로 향한다는 그들에게 이런저런 먹거리를 싸 주었다. 호박꽃 튀김과, 제비꽃 설탕 절임. 체리와 말린 살구 같은 간편한 음식들을 싸서 스텔라의 품에 안겼다. 그러며 축하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스텔라는 모친이 안겨 준 작은 바구니를 가슴에 안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행복하게 살아요.”
“…….”
“어려움이 있어도, 남편을 믿고…….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면서 사는 거예요.”
“……네.”
스텔라는 끄덕임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멀리 떨어져 살아도 오빠와는 가끔, 아주 가끔 국가적인 행사나 혹은 친정 나들이 명목으로 긴 휴가를 허락받고 찾아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친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가 다시는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그걸 생각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스텔라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라는 말 대신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하, 한 번만 안아 주실 수 있을까요?”
스텔라는 시선을 떨어트린 채 물었다. 난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두 팔을 뻗었다. 스텔라는 울음을 참고 그녀의 가슴에 안기었다.
엄마의 품에 안긴 게 언제쯤일까. 언제가 마지막일까. 꿈에서 그려 보던 포옹이었다. 그런데 꿈에서도 스텔라는 안기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다가 엄마가 사라졌다. 안개처럼…….
문득 다정한 손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스텔라는 회초리를 참아내듯 눈을 꾹 감았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란 너무나 어려웠다.
* * *
“무슨 생각해?”
난나는 침상의 끄트머리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녹음이 삐죽 자라, 어린 곰의 송곳니 같았다. 오레스터는 그녀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 옆에 살그머니 앉았다. 침대가 삐거덕하고 울렸으나 난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두 손에는 거울이 들려 있었다. 그는 여자를 조심스럽게 올려다보았다.
“난나.”
“아무 생각도 안 했어.”
“그런데 왜 거울은 들고 있어?”
“그냥…….”
난나가 픽 웃었다. 그렇게 무거운 얼굴을 할 것 없다는 듯 엷게 웃었다. 오레스터는 시선을 돌린 여자를 끌어안았다. 이 평화가 그에게는 너무도 소중했다. 그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게 아니라 그저 난나가 평온을 찾았다는 게 중요했다. 그는 자그마한 몸을 으스러트릴 듯 끌어안았다.
난나는 가끔 거울을 들고 제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렇게 뜯어보다 보면 지난 삶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지. 종종 그렇게 거울을 보았다. 오레스터는 그걸 말릴 수가 없었다.
그는 연금술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지금까지는 이 술법으로 과거의 기억을 되찾은 사람은 없습니다. 제릭스 로투시에게 썼던 방법과는 조금 다르죠. 이 연금술은 폐하의 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계음처럼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은 중저음이 머릿속을 울렸다. 그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넋을 잃은 여자를 끌어올린 그는 자신을 죽이려 드는 난나의 공격을 고스란히 맞았다. 그리 해도 매가리 없는 손길은 그리 위협되지도 않았다. 가슴과 어깨가 베였으나 그뿐이었다. 밭은 숨을 뱉어내며 씨근거리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죽고 싶어?’
‘방해하지 마요. 제발…….’
‘나는 널 도와주려는 거야.’
‘거짓말.’
‘정말이야. 난나. 너를 돕고 싶어.’
그가 절실한 얼굴로 난나를 바라보았다. 난나는 도리질을 치다 현기증이 이는지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는 난나를 안아 들었다. 기운이 없는 난나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바르작거리며 그를 벗어나고 싶어 했는데 그저 시도에 불과했다.
그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제릭스 로투시를 떠올렸다. 그처럼, 난나 역시 기억을 잃은 채 살면 되지 않을까. 돌이킬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지 않나. 그러니 차라리 베어내면 어떨까. 단절로부터 다시 시작하면 어떨까. 그것만이 난나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는 기꺼이 그리하고 싶었다. 하여 그는 의식을 잃은 난나를 데리고 다시 황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씨씨는 괜찮겠지?”
“뭐가?”
“잘 살겠지?”
난나가 그를 돌아보았다. 오레스터는 그녀를 아득하게 바라보았다. ‘씨씨’ 는 스텔라가 난나의 앞에서 말한 가명이었다. 그는 시선을 돌린 채 입술을 뗐다.
“괜찮을 거야. 어련히 그 애의 아버지가 좋은 사내를 골랐을까.”
오레스터는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나는 그의 품에 안겨 ‘응’ 하고 대답했다. 저녁이 고요했다.
오레스터는 이 고요가 오래도록 이어지길 빌었다. 하여 그들이 언젠가 다다를 죽음마저 평온하길. 그리 만 할 수 있다면 그는 무엇이든 다시 잘라낼 수 있었다.
-<윈터 버드>,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