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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6화


#6 “테아가 고단하겠어. 나는 그만 나가 보도록 하마.” “저, 저도…….” “황후는 황제를 봉행해야지.” 황태후가 뒤를 돌다 고개를 돌렸다. 난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주의 마지막 날에는 늘 스타테이라를 다 함께 보러 왔다. 한 주의 마지막 날에는 다 함께 꼭 저녁을 들자고 했던 그녀의 말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사가 끝난 후에는 그녀의 처소에 다 함께 들렀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아이들도 함께였다. 난나는 왠지 아이들에게 스타테이라를 보게 하는 것이 힘들었다. 정확히는 그녀와 비교될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랑하는 자식들마저 그녀를 가짜라고 힐난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의 아이들은 아직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한다. 가짜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그리고 그 가짜의 자궁에서 태어난 자신들에 관하여 무어라 생각할지……. 난나는 그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저…… 폐하.” 좀체 움직일 생각이 없는 황제를 향해 난나가 입술을 뗐다. 슬란을 데리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조금 전 스텔라의 일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의 창백한 얼굴에 푸른 빛이 도는 게 심상치 않았다. 이러다 먹었던 걸 게워 내는 실수라도 저지르면……. 여기는 황제의 소중해 마지않는 아내의 침실이었다. 한데 난나 같은 계집이 낳은 자식이 실수를 저지른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라일.” “예.” “아이를 데리고 나가.” 문 앞에서 황제의 봉행을 위해 대기 중이던 친위대의 기사가 묵례했다. 난나는 당황하여 그를 보았다. 곧이어 라일이라 불린 젊은 기사가 난나의 손에서 슬란을 뺏어 갔다. 슬란은 당황하여 표정이 일그러졌으나 난동을 부리지는 않았다. 난나는 자그마한 입술을 달막이는 아이를 향해 ‘돌아가 있어. 엄마도 금방 갈게’ 하고 속삭였다. 슬란은 그제야 굳은 표정을 풀었다. 마침내 둘이 남았다. 난나는 호흡이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천천히 폐가 섬유화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런 병을 겪은 적도 없으면서 그런 고통을 느끼고 있는 거라고…….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며 맥박이 미끄러지듯 빨라졌다. 그녀는 두려움에 뻣뻣하게 굳어 그를 쳐다보았다. 황제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내였다. 특히 그의 아내 앞에서라면 늘 기사도를 지켰다. 정중하고 신사다웠다. 그러니 의식이 없는 여자의 앞이라 하더라도 그런 짓은 저지르지 않겠지. 그러니까 난나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그런 짓’은……. 난나는 말아 문 입술에 힘을 주며 메슥거리는 속을 진정시켰다. 스타테이라에게서 손을 거둔 황제가 뒤를 돌았다. 칼날 같은 얼굴이 무섭도록 아름다웠다. 기사답게 검고 짧은 머리를 몇 가닥 남겨 둔 채 반듯하게 넘긴 남자는 호박색 눈을 갖고 있었다. 다만 그 눈동자는 보석처럼 빛나기보다 수림 속의 검은 짐승처럼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보고 있자면 정말로 날카로운 어금니를 가진 맹수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폐하.” “할 말이 있어 남으라고 한 거다.” “예?” “이번 달 안으로 궁을 비워 주었으면 해.” “그게 무슨…….” “에버하르트 공작과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됐어.” 느닷없는 통보였다. 난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에버하르트 공작은 그녀의 양부였다. 스타테이라의 생부이기도 했다. 난나를 황제의 두 번째 황후로 만든 남자이며 한때 그녀의 주인이기도 했다. 아니. 지금도 썩 다르지 않았다. 스타테이라 또한 그녀의 주인 아가씨나 다름없고……. 그래서 어떨 때 난나는 주인 아가씨를 대신하여 아가씨의 남편과 자식을 낳은 것 같았다. “그럼, 그럼…….” 난나는 입술을 달막거렸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긴 했지만 그리 불편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쨌든 황궁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난나는 황후로 사는 게 싫었다. 황후가 되는 게 싫었던 것처럼. 황제를 외사랑했던 것과 별개로 그에게 모욕적으로 안기는 일은 늘 그녀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아, 아기들도 같이 떠나는 건가요? 같이 떠날 수 있는 거겠죠?” “그 애들은 황손이니 여기 남아야지.” “하지만…….” 난나는 놀란 얼굴을 했다. 당연히 아이들과 함께 궁을 비우는 줄 알았다. 황제. 오레스터가 자식들에게 무관심하다 못해 싫어하는 편이라 더욱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그 애들은 그녀만의 아이들이 아니다. 오레스터만의 자식이 아닌 것처럼. 황손들의 거처를 두고 그의 가신들이 입을 대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에버하르트 공작을 만나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건 싫은데…….’ 난나는 음울한 얼굴을 했다. 그녀는 흘끔거리며 그를 보다가 입술을 꾹 말아 물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접견을 요청해도 거절당할 테니까. “아, 아기들이 어려서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시다시피 그 애들은 저를 닮아 부족한 편이고. 특히 알렉시스는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가라서…….” “슈발렌 자작 부인이 이르길 2황자는 특별히 예민한 편도 아니라 하더군.” 알렉시스를 2황자라 칭하는 황제의 읊조림에 난나는 낯빛을 굳혔다. 그가 아이에 관해 무심함을 드러내서가 아니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아이들을 이름으로 칭한 적이 없었다. 그 애. 혹은 저 애. 잘하면 황태자 혹은 황자였다. 사정이 그러하니 난나는 황제에게 특별한 관심을 바란 적도 없었다. 슬란이 태어났을 때는 여름 사냥을 떠났던 상태였다. 황태후의 전갈에 열흘 만에 돌아와 강보를 안아 보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 이후로는……. “……슈발렌 자작 부인은 아무것도 몰라요.” 난나는 사선으로 비스듬히 시선을 돌리며 약하게 읊조렸다.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오레스터가 정한 보모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으려 했었다. 보모의 양육 태도에 관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생모의 당연한 의무이며 권리였건만 언제나 오레스터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의 모성 같은 게 아니다. 슈발렌 자작 부인은 스타테이라의 이모였다. 듣자 하니 에버하르트 공작의 장인이자 스타테이라의 외조부인 게오르크 후작의 막내딸이 그녀였다. 그러니 난나 따위보다 일개 보모의 의견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오레스터는 황궁 담벼락에 오줌을 누는 노숙자도 스타테이라와 관련이 있다고 하면 궁정의 귀빈인 양 대접할 사람이니까. 난나는 음울한 얼굴로 드레스 자락을 움켜쥔 손에 힘을 꾹 주었다. 애들을 두고 나가는 것은 힘들었다. 특히 스텔라. 그러니까 리리를 생각하면 그랬다. 슈발렌 자작 부인은 태어난 아이가 황녀임을 알고 제 외조카의 이름을 따 스타테이라라고 부르자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유달리 까칠하고 괄괄한 성격의 딸아이와 상성이 맞지 않았다. 비교적 슬란이 순하고 무던한 편이라 더욱 적응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 그 애만이라도 데리고 떠나고 싶은데……. “폐하. 부탁드려요. 궁을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일게요. 하지만 애들만이라도 데리고 가게 해 주세요.” 난다는 비스듬히 돌렸던 시선을 바로 하며 두 손을 모았다. 감히 그와 시선을 맞추는 게 어려웠기에 그의 불거진 목울대만을 응시했다. 굵고 강건한 목이 부옇게 흐려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아니면, 아니면 보모만이라도 교체해 주시면…….” “짐이 왜 너 따위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지.” “……폐하.” “너는 그저 자궁이잖아.” 짤막한 음성은 날이 서지도 않았다. 그저 무심하고 단조로워 정말로 사실 그대로를 말하는 것 같았다. 눈 밑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황제와 부부 생활. 아니, 이런 것도 부부 생활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의 말대로 그의 자궁으로 살며 알게 된 것은 사람을 모욕하는 데도 갖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밖에 없었다. “짐이 하라는 대로 해야지.” 눈을 부옇게 만들었던 물기가 툭 하고 떨어졌다. 볼을 타고 흐르는 미지근한 물기가 금방 입술 사이로 고였다. 결국 그녀는 대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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