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5화
#5
난나는 그날따라 배가 고팠다. 평소에도 입덧이 아주 심한 편은 아니었는데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자 식욕이 마구 당겼다. 게다가 지난밤부터 계속해서 먹고 싶었던 요리였다. 남부인 로랑에서 생산되는 포도주와 황실의 목장에서 관리되는 젖소의 우유로 만든 풍미 좋은 버터를 아낌없이 써서 만든 요리였다.
버터를 가득 머금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익힌 칠면조 요리가 무척이나 맛있었다. 인생에 단 한 번 스타테이라의 배려로 먹어 본 요리였던지라 어쩌면 정신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황제는 난나가 칠면조의 다리를 잡고 열심히 오물거리는 게 정말로 돼지 같다 생각한 모양이다.
‘매음굴에서 굴러먹던 계집이라 그런지 스텔라가 아무리 가르쳐도 천한 태가 벗겨지지도 않아.’
황제가 쥐고 있던 나이프를 던지며 밥맛이 떨어졌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나는 두려움에 굳어 얼른 냅킨으로 입술을 닦았다. 다람쥐처럼 볼에 가득 담고 있던 칠면조 살을 꾸역꾸역 씹어 억지로 삼켰으나 명치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그녀는 다이닝 룸을 미련 없이 떠나는 황제를 붙잡아 보려 했으나 감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가 흘렸던 말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매음굴에서 굴러먹던 계집. 처먹는 데 한이 맺혔냐고…….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얼음송곳으로 부드러운 심장의 판막을 긁어내리는 것 같았다. 그가 하는 말이 모두 옳으니까. 매음굴에서 굴러먹었다는 것도. 처먹는 데 한이 맺혔다는 것도. 심지어 그의 앞에서 체면도 없이 돼지 새끼처럼 군 것 또한 맞는 말이다. 스타테이라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녀는 뜨끈해지는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콧등이 시큰거리며 눈물이 비죽 흘러나왔다.
“폐하.”
상념에서 깨어났다. 문득 토일레트 룸의 문이 열렸다. 친근한 하녀의 목소리였다. 그녀가 빨리 다이닝 룸으로 돌아가 보아야 할 것 같다며 말했다.
“무슨 일 있어?”
“그게……. 황, 황녀 전하께서 실례를 하셔서.”
“뭐?”
“황녀 전하께서 소피를 보셨어요.”
하녀는 차마 시선을 맞추지 못한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나는 피가 식는 것을 느끼며 화급히 다이닝 룸으로 돌아갔다. 상황은 예상한 것보다 끔찍했다. 그녀는 얼마 먹지도 않은 속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스텔라가 울고 있었다. 황제는 특별한 표정이랄 게 없었고 황태후는 꽤나 놀란 모양이다. 그러나 이내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는지 황녀의 부친인 황제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난나는 스텔라의 앞으로 가 무릎을 꿇었다. 비단 드레스를 살펴보려는데 지린내가 확 풍겼다. 창피함에 볼이 발긋하게 물들며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시끄럽구나.”
황제가 읊조렸다. 그건 스텔라에 대한 책망이나 혹은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난나에 대한 원망이라기보단 그저 현장에 대한 감상 같았다. 그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다이닝 룸을 떠났다.
황태후가 하녀를 향해 눈짓했다. 곧장 하녀가 다가와 어린 황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난나는 고개를 숙인 채 어기적거리며 다이닝 룸을 빠져나가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식사가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다.
황태후 역시 그런 모양이었다. 셰리주 한 모금으로 식사를 갈무리한 여자가 자리를 일어났다. 난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스타테이라를 보러 가야지.”
“저는 황녀가 걱정되어서…….”
“하면 슬란이라도 이리 보내렴.”
황태후가 손을 뻗었다. 난나는 그 고운 손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술을 뗐다.
“……태자를 홀로 보내는 건 어려울 것 같으니 함께 가겠습니다.”
어렵게 입술을 달막거렸다. 황태후는 더 입술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차분히 뒤를 돌았다. 난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눈을 가볍게 감는데 현기증이 밀어닥쳤다. 그 까만 어둠에 사이로 스타테이라의 말간 잔상이 피어올랐다.
* * *
스타테이라는 팔코메르의 건국 황제인 칼 오레스테스의 정후이며 그의 유일한 아내였다. 유년 시절부터 함께한 둘은 각각 스물여섯. 그리고 스물이 되었을 때 스타테이라의 고향인 동부 ‘팔라테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훗날 ‘칼’ 그러니까 오레스터 황제가 구제국을 멸망시키고 신제국의 황제가 되자 스타테이라 또한 그의 황후가 되었다. 그리 두 사람이 오래도록 행복했다면 난나의 인생도 별 탈이 없었을 것이다.
아니, 과연 그리 별 탈이 없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보다는 나았겠지. 난나는 세월을 잊은 채 잠이 든 아리따운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스타테이라는 세간이 말하는 그리 정형화된 미녀는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감탄할 만큼 조각처럼 아름답고 눈부신 미녀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여자는 뭇사람들을 유혹하는 매력이 있었다.
남녀를 떠나 그렇게 매력적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스타테이라만큼 용감하고 다정한 여자는 없으니까. 난나는 늘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그늘 한 점 없이 웃을 수 있을까. 햇살이 사람이 된다면 꼭 스타테이라 같을 듯했다. 그래서 그녀는 스타테이라를 여름볕의 요정이라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그녀는 여름의 신록처럼 푸르고 눈부시게 빛나니까. 밝은 금발에 여름 나뭇잎의 조각을 잘라다 붙인 듯한 초록빛 눈동자. 밀랍처럼 하얀 피부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명랑하며 사랑스러웠다. 난나는 그 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못해 시선을 비스듬히 떨어뜨리곤 했다.
“칼.”
문득 황태후가 그를 불렀다. 이만 처소를 떠나자는 뜻이다. 그러나 황제는 듣지 못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모친은 성화를 내지 않고 그 어둑한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평소 난나를 가엾게 여기고 황제의 흉포함과 난폭함을 나무라는 황태후였으나 그가 자신의 정후를 그리워하는 마음만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가 난나의 모자람을 책망하거나 출신의 미비함을 수단 삼아 공격할 때도 주의를 주긴 하지만 그 원색적인 비난에 대해서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스타테이라의 완벽함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리라.
난나는 음울한 얼굴을 한 채 눈으로 바닥만 더듬다가 아내의 흩어진 머리칼을 걷어 주기 위해 얼굴을 어루만지는 황제의 손을 보았다. 크고 날렵한 손이었다. 귀족의 손이기 전에 무장의 손이라 그는 손등에 얼룩덜룩한 상흔을 매달고 있었다.
구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한 숱한 전쟁은 그를 살인귀로 만들었다. 어느 교단의 사제는 그가 왕재가 아닌 그저 전쟁귀라고 했다. 그리 명명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중에는 세 살 난 어린애도, 임부도 있었다. 그리고 종내는 구제국의 황제였다. 그의 목을 잘라 성벽에 내걸 때까지. 그는 망설임 없이 도륙했다.
그런 손이 스타테이라에게만큼은 다정하여……. 도저히 같은 손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손이 난나를 폭행하고 겁탈했다고. 매번 그녀를 쓰러트려 모욕하던 사내다. 스타테이라에게 부드럽게 휘어지던 붉은 입술. 그녀의 뺨과 콧등에 닿던 그 말캉한 입술은 언제나 그녀를 향해 냉소했다.
‘그러니까 같은 사람이 아냐. 나는 그를 결코 가질 수 없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인데. 너무나도 명확한 일인데 왜 그때 난나는 들떴을까. 왜 그와 결혼하는 것에 행복해했을까.
눈두덩이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녀를 두고 자신의 아내에게 가없이 다정한 남자를 바라보는 일은 아직도 가슴 아팠다. 이렇게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가슴 한편을 무겁게 누르는 둔통이 아직도 적응되지 않아서.
그러니까, 간극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의 존중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니까. 난나는 입술을 말아 문 채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봄볕이 언제 내리쬈냐는 양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