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4화
#4
제 부친이 두려워 그런 것 같았다. 황제가 자녀들에게 무관심한 만큼, 아니, 싫어하는 만큼 그의 아이들도 그를 두려워했다. 때때로 스텔라는 제 아버지를 두고 ‘싫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난나는 아이가 황제의 앞에서도 그럴까 봐 엄하게 훈육했다.
‘그런 말을 하면 안 돼.’
‘왜? 왜 그러면 안 돼요? 폐하도 우리를 싫어하는데.’
스텔라는 고개를 팩 돌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남매 중 누구도 황제를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바마마’란 말도 쓰지 않았다. 황제가 아이들을 제 자식으로 대하지 않는 것처럼 그 애들도 황제를 제 아버지로 여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목적이 있어서 태어난 애들이고,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건……. 예상한 적 없으나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학대받지 않는 것이 어디인가 싶었다.
그 애들은……. 난나가 낳은 애들은 스타테이라가 낳은 애들이 아니니까. 황제는 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랑하고 싶지 않다고. 오기로라도 난나가 낳은 애들에게 차가워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그래도 폐하는 리리의 아버지야. 리리가 세상에 있게 해 준 분이고. 또…….’
‘피이-’
‘리리야.’
‘싫어! 싫다구! 엄마도 싫단 말이야!’
스텔라가 하얀 인형을 난나에게 휘둘렀다. 솜이 빽빽하게 들어찬 인형이라 조금도 아프지 않았으나 가슴이 따끔거렸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딸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스텔라는. 아니. 리리는 알고 있다. 자신이 왜 스텔라인지. 왜 미움받는지.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밉다고 하는 것일까.
그런 이유로 이제는 딸에게까지 미움을 받는 것일까.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는 죽어도 스타테이라가 될 수 없는데. 스타테이라는 오래전 깊이 잠들어 다시 깨어나지 않는데……. 껍데기조차 흉내 낼 수 없는 여자를 두고 난나는 눈물을 조금씩 삼켰다.
“조금 더 제대로 먹어 봐. 오늘 도미 요리도 아주 신선해.”
어린 알렉시스가 유모의 두 팔에 안겨 나갔음에도 제대로 식기를 움직이지 않는 난나를 보며 황태후가 근심 어린 얼굴로 몰했다. 그녀의 말에 하녀가 먼저 다가와 푹 익힌 도미 요리와 살사 소스를 얹은 어린 돼지 요리를 조각내어 접시에 가져다주었다.
난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엷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쥐꼬리만큼 도미 살점을 떼어 내 입으로 넣자 황태후가 한숨을 쉬었다.
“혹시 회임이라도 하였나?”
황태후가 물었다. 난나는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럴 리가. 난나는 고개를 저었다. 황제의 심기가 상하였을까 봐 그를 살폈지만 그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난나가 임신을 하든 유산을 하든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하긴 오늘 아침까지 멀쩡히 살아 숨 쉬던 애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해도 낯빛 한 번 바뀌지 않던 남자다. 난나에게 일어나는 일에 놀라움을 느낄 리가 없었다.
스타테이라였다면 달랐겠지. 그러니까 ‘진짜’였다면……. 한낱 시녀 따위가 아니라. 그러니까 스타테이라의 시녀 따위가 아니라 스타테이라였다면 그녀가 종잇장에 손가락이 베여도 당장이라도 그녀가 날아가 버릴 듯한 얼굴을 할 것이다.
난나는 심지어 그 얼굴을 본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제 아내가 닳을까 두려운 얼굴…….
“아뇨, 그렇지 않아요. 황태후 폐하. 좋은 소식이 있다면 가장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난나는 예의 바른 얼굴로 입술을 뗐다. 과연 임신이 황제에게 좋은 소식일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와 달리 황태후는 난나의 반복되는 임신과 출산을 기꺼워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하긴, 팔코메르는 건국 초기였다. 그들이 황가가 아니라 북방의 대원수 일가였을 때도 자손이 무수했던 엔로이 황가에 비해 손이 귀하다고 했다.
그런 와중에 건국 초기이고. 엔로이의 지지 세력이 사방에서 칼날을 겨누고 있는데 황제의 자손이 겨우 셋인 데다 아직 어리기까지 하다면 그 또한 근심이 아닐 수 없겠지. 난나는 그들을 이해하는 척 그들에게서 자신을 도려내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한데 왜 그렇게 식사에 집중하질 못해. 주방장의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는 거니?”
황태후가 난나를 나무라듯 말했다. 난나는 이젠 무어라 더 변명할 길이 없어 시선을 떨어트렸다. 난나는 식욕이 없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꾸역꾸역 식사 자리를 지켜 놓고 나중에 처소로 돌아가면 지밀 하녀를 통해 무어라도 가져다 달라 말하겠지. 과일이든 빵이든 입에 욱여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대충 꾸역꾸역 씹어 삼킬 것이다.
그러다 하녀가 소문을 낼까 두려워 또 눈치를 볼 것이고. 그럴 바에 차라리 식사를 제대로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난나는 황제의 앞에서 무언가를 먹는 일이 어려웠다. 정확히는 황제가 그녀를 걸신들린 돼지 새끼인 양 쳐다보는 게 두려워 입에 음식을 넣는 게 힘들었다.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황제가 그녀를 혐오스럽다는 듯 쳐다보며 이죽거린 일이.
“그게…….”
“내버려두십시오. 황후의 출신이 모후와 다르지 않습니까. 짐과 모후의 입맛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요.”
단정한 저음이 칼날 같았다. 난나는 화끈하게 데워지는 낯을 느끼며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눈두덩 전체가 뒤틀리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민망함과 아찔함에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며 쿵쿵 뛰는 맥을 느꼈다. 그러니까 너무 빨리 뛰어서……. 심장이 그녀의 것 같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리자 곧바로 현실감을 잃었다. 그녀는 꿈결을 더듬는 것처럼 황제의 날카로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준수함을 넘어 준엄하며 고상한 얼굴이 그녀를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평소의 그 매서운 빛도 보이지 않았다. 난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를 보다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접시에 코를 박듯 시선을 거꾸로 박는데,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챈 황태후가 ‘카를!’ 하고 소리쳤다.
‘카를’, 그러니까 ‘칼 오레스테스’는 그녀를 혐오했다. 매일같이 증오했고 매일같이 역겨워했다. 더러워하는 것 이상으로 혐염하여 제 신세와 처지를 비극으로 느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그 여자의 천출 시녀와 재혼하여 아이를 낳아야 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녀와 접붙어 자식을 낳는 행위는 ‘새끼를 치는 것’이라고 했다. 자손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게 아니라 애새끼를 ‘싸지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며 자신을 인간이 아니라 종마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니 난나 또한 사람이 아니라 ‘암컷’이다.
그는 아내가 죽고 ‘암컷’을 들인 것이다. 다른 아내가 아니라……. 난나는 시큰거리는 콧등을 느끼며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신이 없어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했다. 남매가 두려운 얼굴로 그녀가 식탁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사정이 이러니 오래 비울 수도 없었다. 슬란과 스텔라도 그를 끔찍이도 두려워하니까. 그러나 난나는 식탁에서 다시 울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그날’처럼……. 청승을 떠는 것은 자신도 지겨웠다.
난나는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고 다이닝 룸과 멀지 않은 토일레트 룸으로 들어와 거울 앞에 섰다. 그러나 눈가에는 이미 물기가 번진 후였다. 그녀는 오한에 떠는 것처럼 파르르 떨다가 입술을 달막거렸다.
자꾸만 머릿속에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임신 중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일까. 황제가 그녀를 면박 주는 일이야 늘상 있는 일이었다. 그는 난나를 모욕하는 것만큼이나 상처 주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느꼈다. 정사를 응징 따위라고 생각하는 남자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돼지 새끼도 아니고. 처먹는 일에 한이 맺혔나?’
슬란을 임신했을 때였다. 평소 그녀와 식사를 함께 하는 황제가 아니었으나 임신한 황후를 돌보라는 태후의 명에 황제는 그녀와 식탁에 함께 앉아 있었다. 스타테이라와 썼던 작고 둥근 식탁이 아니라 만찬용의 기다란 식탁이었다. 함께 앉아 있다고 해도 그와 난나와의 거리는 꽤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