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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외전 13화


외전 13화 잔느의 가족이 이곳에 도착했다는 것은 그들이 아직 왕세자의 손안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발드르는 잔느의 가족이 도착하자마자 빈 손님방 중 가장 좋은 방을 내주고 편히 쉴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라 명했다.     잔느의 가족이 도착한 날, 발드르는 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적잖게 놀랐다. 무엇보다 시종 느껴지는 화기애애함이 그랬다. 대화의 중심은 잔느의 동생이었지만 모두가 한두 마디 거들며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간간이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굴러다녔다. 발드르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다들 진심으로 이 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자신처럼 잔느의 가족과 처음으로 식사를 하는 아나조차도⋯⋯. '⋯⋯.' 그것이 발드르에게는 무척 충격이었다. 아나가 저택에 오고 나서 발드르는 아나와 식사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때 아나의 식사 예절은 끔찍한 수준이어서 발드르는 언성을 높였고 결국 아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실 가족의 식사란 그런 것 아닌가? 예절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예절을 가르치는 것? 발드르는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에서 즐거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식사 시간에는 늘 조용해야 했고 제대로 된 식기를 사용해야 했으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에게 입을 열 때는 자신의 태도에 대해 지적해야 할 때뿐이었다. 그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는? 아무 대화도 없거나 차라리 아무 대화도 없는 게 나을 때만 존재했다.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는 일단 한번 시작하기만 하면 아버지께 빈정거리기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가 입을 열까 봐 조마조마했다. 그래서 발드르는 혼자가 되자 처음으로 마음을 놓고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저택에 가족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로 잔느가 이 저택에 도착하기 전까지, 발드르는 진심으로 홀로 식사하기를 즐겼다. 그런데 이 가족의 식사는 어떤가? 가족이 한데 모여도 이토록 온화하고 재미있게 식사할 수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의문에 휩싸인 발드르의 귓가에 여러 이야기가 들려왔다. 발드르의 귀가 자연스럽게 기울여졌다. 몸이 얼어붙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따스한 모닥불에 끌리듯이. 가끔 어이없을 만큼 우스운 이야기도 있어 그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때였다. 발드르의 시선이 잔느의 어머니인 툴루즈 부인과 부딪친 것은. 부인은 가장 상석인 그의 대각선 옆 왼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부인의 외모는 언뜻 잔느가 나이 들었을 때를 짐작하게 했다. 부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로 몸을 기울이며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공작 각하. 여자들이 모이면 어쩔 수 없이 떠들썩해지는 법이지요.” “아닙니다. 듣기 좋습니다. 정말입니다.” 발드르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게 부인과 물꼬가 트여 대화를 하게 되었다. “어렸을 땐 말괄량이였답니다, 제 동생보다 더요.” 부인은 잔느에 대해, 그녀의 입으로는 듣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를 말해 주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어릴 때는 어땠는지⋯⋯. 하나같이 그가 궁금했던 이야기였다.     식사가 끝났을 때 발드르는 진심으로 그들과 함께 더 식사하고 싶었다. 그들 가족의 일원이 되어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날의 식사는 즐겁고 재미있었다. 이후 발드르는 잔느의 가족과 주에 두어 번 식사 시간을 가졌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 중 한 명으로 녹아들었다. 몇 주 후 잔느가 아나의 가정교사로 자신의 동생을 추천했을 때 발드르가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은 그것이 잔느의 요청이라서가 아니라 식사를 함께하며 이미 안에 대해서 알았기 때문이었다. 잔느의 후임자로 안만 한 후임자가 없으리라는 것을.     잔느의 가족도 모셔 왔겠다, 발드르는 겉으로는 결혼식 준비를 거침없이 진행해 나갔다. 하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결혼 청원서에 어떻게 랑시스의 국왕이나 왕세자의 사인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아무리 궁리해 봐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결혼식 준비는 거의 다 끝나 가고 있었다. 이제 발드르가 원하기만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왕세자가 보낸 전령이 저택에 도착한 것은. “왕세자가 사람을 보냈다고?” 전령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발드르는 온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잔느가 프랑을 떠나온 지도 시일이 꽤 흐르지 않았는가. 왕세자가 뒤늦게 잔느와 그녀 가족의 부재를 깨닫고 그녀를 찾기 위해 사람을 보내왔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쩌면 청원서의 사인 없이 오늘 당장이라도 사제를 납치해 결혼식을 올리고 첫날밤을 치러야 할지도 모르겠군. 전령에게는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도 보지 못했다고 말하고, 그래도 냄새를 맡은 전령이 돌아가지 않고 버틴다면 죽여야겠지? 외부에는 전령이 오는 길에 곰에게 참변을 당한 걸로 보고하고?' 발드르는 어떻게 시치미를 떼어야 할까 고민하며 전령을 집무실로 들여보냈다. “왕세자 전하께서 내게 무슨 일로 서신을 보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군.” 발드르는 전령이 들고 온 서신 봉투의 봉인을 뜯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혼잣말을 했다. “읽기 전에 무슨 내용인지 간략하게 말해 줄 수는 없나?” “서신에 쓰인 것이 전부입니다, 각하.” 발드르는 두 눈으로 서신을 훑어 내려갔다. 전령의 말대로 서신의 내용은 간략했다. 그는 서신을 한번 훑어보곤, 다시 읽었다. 다 읽고 보니 그것은 초대장이었다. 결혼식 초대장. 랑시스의 왕위 계승자인 왕세자 마엘 드 랑시스와 사르데냐 왕국의 공주가 결혼하게 되었으니 결혼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하하하! 그것참 경사스러운 일이오!” 상황을 알아차린 발드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왕세자는 잔느를 찾으려고 전령을 보낸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결혼식 때문에 전령을 보낸 것이지. 웃음이 터진 것은 청첩장을 읽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묘책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에 대한 묘책이었다. “참석하도록 하지. 왕세자 전하께 진심을 다해 축하한다고 전해 주게.” 초청장에 적힌 혼인식 날짜는 한 달 뒤였다. 발드르는 한 달 뒤 자신의 결혼식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프랑으로 향했다. 본래 발드르는 은둔자처럼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궁정의 그 어떤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방문은 궁정에서 화제가 되었다. “북부의 도살자가 왔다면서요?” 긍정적인 화제는 아니었다. “어디서 개가 짖는다 했더니, 피 냄새를 맡았나.” “몸은 씻고 왔을까.” 발드르의 행차는 프랑에 알려지자마자 궁정 내 귀족들의 구설에 올랐다. 발드르가 거대한 영지와 군사력을 가진 대귀족이긴 했으나 행색이 귀족들이 보기엔 심히 초라했고, 거슬러 올라가면 야만족이라 무시하는 타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구정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아예 못쓰게 되듯이 귀족들의 눈에 한번 야만인은 영원한 야만인이었다. 그러니, 제아무리 높은 작위를 받고 왕족이나 고위 귀족과 결혼한다 해도 궁정 귀족들의 눈에 그는 야만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발드르는 물론 연연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말 따위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뿐더러, 들었더라도 코웃음 쳤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오히려 귀족들이 궁정의 개처럼 보였다. 자신도 모르는 새 이가 다 빠지고 길들여져 국왕의 총애에 목매는 애완견 말이다. 발드르가 프랑에 온 목적은 오로지 하나였다. 발드르는 프랑에 도착하자마자 왕세자에게 선물을 보내며 알현을 청했다. 발드르가 인편에 보낸 선물은 자디잔 자수정과 기타 보석들로 만들어진 코르사주였다. 그가 잔느에게 한 결혼 예물에 비하면 소소하기 그지없는 선물을 왕세자는 기쁘게 받아들였다. 발드르가 왕세자를 알현한 것은 결혼식 전날 저녁때였다. 왕세자는 접견실에서 직접 서서 발드르를 맞이했다. “아름다운 물건이오. 아내가 좋아하겠군. 하지만 내게 가장 큰 선물은 보석이 아니라 그대의 방문이오. 나는 초대장을 보내면서도 그대가 참석할 것이라 생각지 못했소.” “향후 왕위에 올라 저의 주군이 되실 분이지 않습니까. 신하로서 당연히 참석해야 함이 마땅하지요. 왕세자 전하의 결혼식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발드르는 이전의 그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아부 섞인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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