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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39화


39화 그 말에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가 나와 도련님의 관계를 물은 것은 단순한 궁금증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제가 도련님께 다시 서신을 쓰겠습니다. 더 이상 서신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그럴 필요까진 없소. 오히려 그대의 서신이 다른 이의 손에 들어간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오. 그대의 말이 진심이라 믿으니 더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소.” 공작이 내 진심을 알아주어 다행이었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신이 모르는 사람 손에 들어가 읽히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새삼 섬뜩했다. 궁정을 둘러싼 모든 것이. 어쩌면 나는 그동안 정말 무서운 세계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음식이 식는군, 식사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 ❖ ❖ 식사를 하면서 발드르는 마음속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눈앞의 이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전혀 모른다고 말이다. '그간 마엘 공자의 마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튕겨 내 왔겠군. 그의 속이 많이 상했겠어.' 공작은 마엘의 서신을 읽을 때 뜨거움을 느꼈다. 선생님이 떠나신 후 저는 오직 선생님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엘은 열병을 앓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잘 지내고 계시지 못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제가 드릴 말씀은 버티어 주시라는 것뿐입니다. 신께서 다시 우리를 선택해 주실 때까지. <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고 살아 있는 한 기회가 오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이성과 분별력을 잃게 하는 열병을. 마엘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서신이 혹시라도 원수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를 해하기 위해 얼마든지 오독되고 조작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는 서신을 자신의 메신저에게 전달했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다. 그리고 발드르는 그 이유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도 같은 열병을 앓고 있었으므로. 그만큼이나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정치적 화마에 휘말려 유배형을 당한 옛 가정 교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은 단순히 마엘이 그녀를 손위 누이처럼 아끼는 정도라면 절대로 나오지 못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잔느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익숙지 않은 사람인데 말은 단호했고 머뭇거림이 없었으며, 눈빛에는 진실을 말할 때 나오는 떳떳함이 있었다. 그녀는 마엘을 아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듯했다. 그냥 귀여운 어린아이라고.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 열세 살이었을 뿐이지 그가 알기로 지금 그는 성년에 가까운 나이였다. 사랑을 모를 나이가 아니란 뜻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데 나이 차가 대체 무슨 상관이지?' 나이 차가 그만큼 나니 마엘이 자신을 여인으로 생각할 리 없다는, 확신에 찬 잔느의 말을 듣는데 발드르는 그냥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만찬 때 그녀에게 마엘과의 관계에 대해 물어본 것은, 겉으로는 정치적 입장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었지만 사실 그녀의 마음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대답을 들은 그는 마엘의 마음과 그녀의 마음을 모두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녀가 다정하긴 하나 남자의 마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으리라는 것도 짐작하게 되었다. '경쟁자가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군. 그것도 일개 귀족이 아니라 왕의 아들이라.' 그녀를 사랑하는 상대는 정부의 소생이긴 하나 왕의 아들이었고, 그 정부 또한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만약 잔느가 유배 오지 않았더라면 마엘은 언젠가 그녀를 차지했을 것이다. 상상이 그의 질투심에 불을 붙였고, 질투심은 그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부족해.' 그것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만찬으로는 채울 수 없는 굶주림이 점차 자신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질투심이 그의 정념을 일깨웠다. 그녀를 알고 싶을 뿐만 아니라 만지고 싶고 안고 싶다는 욕망이 더 이상 부정 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너무 부족해.' 처음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에 한 번 식사를 하며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갈증이 해소될 것이라고. 그러나 막상 지내고 보니 그 시간은 오히려 갈증 난 목에 바닷물을 들이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정기적인 시간은 처음에는 기쁨과 만족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보고 있으니 만지고 싶었다. 그는 점차 그녀의 말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두 눈이, 윤기 나는 머리칼이, 입술이, 부드러워 보이는 어깨의 곡선과 가슴의 윤곽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반짝이는 두눈을 덮는 얇은 눈꺼풀에 입 맞추고 붉고 모양 좋은 입술 사이에 혀를 집어넣고, 부드러워 보이는 살결을 손과 입으로 더듬고 드레스를 벗겨 그 속에 숨겨진 몸을 보고 싶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신의 성난 것을 밀어 넣고 싶다는 아주 원초적인 욕망이 뒤늦게 눈을 떴다. 사랑하면서도 파괴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 단정한 자태가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자신 아래서 울부짖게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도 억누르려 해 보았다. 지금도 나쁘지 않았으므로. 그러나 그것이 억누르고자 하면 억눌리는 종류의 욕망이었다면, 지금껏 인류는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번 욕망이 눈을 뜨자 그는 이제 전과는 다른 의미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안고 싶어.' 한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 영원히 소유하여 나만 바라보게 하고 싶다는 욕망, 속속들이 알고, 안고, 자신의 아이를 낳게 하고 싶은 욕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갖고 싶어.' 분별력도 없고 도덕성도 없으며 도무지 멈추지 않는 그 욕망은 한번 눈을 뜨자 백 개의 눈알이 달린 괴물처럼 도저히 잠들 줄 몰랐다. 만찬을 함께한 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저속하고 저열하고, 그저 눈먼 본능에만 충실한 꿈이었다. ❖ ❖ ❖ 꿈속에서 그는 여자의 드레스를 벗기고 두 다리를 벌리게 한 뒤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정신없이 그곳을 빨았다. 혀에 닿는 부드러운 살덩이가 그를 흥분시켰다. 너무도 맛있는 고깃덩이를 문 개처럼,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혹시 나 있을지 모를 다른 경쟁자를 쫓아내려는 듯이 그는 으르렁거렸다. 그녀의 두 다리 깊숙한 곳의 봉긋한 둔덕, 그 아래 자리 잡은 균열에서는 다디단 과즙이 흘러나왔다. 끊임없이 그녀는 몸부림쳤고, 목에서는 새된 교성이 흘러나왔다. 그의 귀에는 그 소리마저도 감미로운 음악 같았다. 두 손으로 움켜쥔 그녀의 허벅지가 경련하듯 움찔거렸다. 그 움찔거림은 거의 발작에 가까웠다. 그는 아주 오래 그녀의 그곳을 핥고 깊이 빨아 당기며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면서 그 냄새와 맛을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 각인시켰다. 그녀의 두 손이 그의 머리를 밀어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손은 바들바들 떨며 그의 머리칼을 훑다가 잡아당겼다. 말의 고삐를 움켜쥐듯 세게. 그 감각조차 쾌감으로 느껴졌다. 그는 그녀의 그곳을 빨면서 두 눈을 들어 그녀를 감상했다.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두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두 눈을 꽉 감았다. 마치 풀숲에 머리를 박고 몸을 숨겼다 믿는 꿩처럼, 그러기라도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그곳에서 입을 떼고 그녀의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떨고 있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입술을 타액으로 젖은 자신의 입으로 덮었다. 그녀의 입안으로 혀를 깊숙이 밀어 넣으며 그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가슴은 봉긋하고 부드러웠다. 입안으로 번지는 쾌감과 떨림을 느끼면서 그는 손안에 들어오는 가슴을 가능한 한 부드러운 손길로 주무르고 굴리고 또 문질렀다. 그리고 몸으로 짓누르며 그녀의 몸을 느꼈다. 그의 그곳은 이미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까 맛보았던 부드러운 살덩이에, 그 균열에 자신의 것을 들이밀고 그저 미쳐 날뛰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시간을 되도록 오래 연장하고 싶었다. 모든 것이 끝나기 전에 가능한 한 그녀의 피부를 어루만지고 입 맞추고 애무하고 싶었다. 두 욕망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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