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단편야설

한 편 완결 소설

성인소설 목록

최신 단편

야설 읽기
밍키넷 소설
토스트 메세지 나오는곳
텔레그램 공식채널

밍키넷 공식보증업체

30화 30화


30화 발드르가 굳어 있는 동안, 하녀들이 얼어붙은 아나와 잔느를 데려가 따뜻한 물에 담그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아나는 금방 깨어났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했다. 아나는 정신이 들자마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발드르는 먼저 깨어난 아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선생님과 미끄럼을 타러 호수에 갔어요. 그런데 그만 얼음이 깨져서, 다 제 탓이에요. 제가 그곳에 가자고 졸랐어요. 선생님이 그곳에서 절 꺼내 주셨어요. 나뭇가지를 가져다, 그리고 자기 외투를 입혀 주시고 저한테 노래를 부르라고, 계속⋯⋯ 노래를 부르라고.' 두서없는 말을 한참 듣고서야 그는 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파악했다. 그는 아나와 눈을 맞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의 양 팔뚝을 붙잡고 물었다. '그런데 넌 그곳에 왜 보모가 아니라 가정 교사와 갔지?' 수업 시간 후의 놀이 상대는 보모의 일이었다. '하지만 보모 언니는 늘 바빠요. 이곳에서 제 말을 들어 주고 저랑 놀아 주는 사람은 선생님밖에 없어요.' '⋯⋯.' '이곳엔 선생님 말곤⋯⋯ 아무도 없어요.' 마침내 아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이 죽으면 어떻게 하죠? 나 때문에? 다 나 때문이에요. 심장이 터질 거 같아요.' 그때 처음으로, 발드르는 이전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을 했다. 아나를 품에 안아 달래 준 것이다. 아나는 그의 어깨에 매달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물었다. '선생님이 죽으면 어떻게 해요?' 아나의 뜨거운 눈물이 그의 어깨를 적셨고, 발드르는 아나를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으며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온기를 느꼈다. '걱정 마라, 아나. 선생님은 괜찮으실 거야.' 하지만 잔느는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열이 나고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격렬하게 기침을 했다. 어머니 때와 비슷한 증상이었다. 발드르는 매 시간 잔느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의식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을 때마다 그의 마음이 술렁거렸는데, 선생님을 꼭 살려 달라는 아나의 간청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나에게 그녀가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냥 그가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 '잃고 싶지 않아. 그녀가 없다면 아나를 가르치는 것도 가르치는 것이지만⋯⋯ 나는 어떡한단 말인가?' 그때 발드르는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 자신이 잔느를 단순한 양녀의 가정 교사로 여기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나 언제부터?' 하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와는 별 접점도 없지 않았는가?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대체 언제부터지? 다른 사람들은 포기한 아나를 가르쳐 낸 순간부터인가?' 아니면 말을 타고 내 앞뜰을 돌아다니고, 나무 아래서 책을 읽다 요정처럼 잠들어 있던 때, 양 치맛자락을 들어 올려 두 다리를 드러내고 사과를 줍고, 겨울 추운 날에도 산책을 강행하던 때? 그때인가? 아니면 다른 때?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 봐도 어느 순간이 계기고 시작인지 알 수 없었다. 여자가 깨어나지 않은 지 하루하고도 하룻밤이 넘어갈 적에 그는 보고를 받는 것만으로는 견딜 수 없어졌다. “내가 직접 보아야겠다.” 발드르는 야심한 밤 폴린느 부인을 불러 가정 교사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잔느는 벽난로가의 소파에 누워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달라붙은 이마에서 진땀이 흐르고 입술은 부르터 있었으며 난롯불에 비친 얼굴은 창백했다. 그 모습이 그가 알던 누군가와 겹쳐졌을 때, 발드르의 이마에서도 식은땀이 흘렀다. '이 여자도 죽는 걸까, 어머니처럼?' 발드르는 서서 잔느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불현듯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드르는 사랑이라는 것이 언젠가 그의 머리 위로 벼락처럼 내려치는 종류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사랑에 빠뜨렸던 것처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나타나 미모로 한순간에 자신을 사로잡아 버릴 것이라고. 그랬기에 그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는 것을 경계하고 대비해 왔다. '그런데 이 여자라고? 정말로?'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궁금했다. 과연 누가 자신의 아성을 무너뜨릴지. 그런데 모두가 인정하는 대단한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니고, 공주도 아니고, 몰락한 백작 가문 출신의 유배자가 그의 눈앞에 누워 있었다. 믿기지도 않고 인정할 수도 없는데 깨달아 보니 이미 그렇게 되었다. '믿기지가 않아.' 눈앞의 여자가 유배당하지 않았다면 평생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매해 이런저런 초대장이 공작저로 날아들어도 그는 둥지를 지키는 용처럼 궁정에는 좀처럼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배가 아니었더라면 그녀 또한 궁정을 떠나 이곳에 올 일은 없었을 테니. '이래서야 형보다 더하지 않은가.' 깨달음의 밤이 흐른 뒤, 잔느는 다행히 깨어났다. 잔느가 깨어났단 소식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갔으면서도 그는 그 밤의 깨달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며칠을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는 데 보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여자가 한 말을 해석하느라 밤을 새우고 있는 것이다. '공작 각하께서 영민하고 다정한 분을 아내로 맞이하려는 희망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공작 각하께서는 충분히 그런 분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으시니까요.' 잔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 부여를 하면서. ❖ ❖ ❖ 정찬실에서 실언을 한 이후 나는 처신을 바르게 하려고 애썼다. 스카디 공작은 국왕 폐하 다음가는 대귀족인데 자주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고 또 아주 가끔은 함께 식사까지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태도가 허물어지고 말았는지도 몰랐다. 나는 서재에도 가지 않고 아나와의 수업 외에는 방에 틀어박혀 근신했다. 근신하는 중에는 뭘 했느냐 하면,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안에게, 그립고 늘 보고 싶은 어머니에게. 동생과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였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쓰고 또 고쳐 쓰기를 반복했다. 실언으로 인해 편지를 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털어 내면서. 편지를 쓰기 시작하니 눌러 왔던 그리움이 왈칵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편지지에 눈물을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려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곤 했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나 없는 그곳에서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보낼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편지를 써 내려가는 동안 아나의 보모 자리는 내내 공석이었다. 아나는 수업 시간 후에도 자주 내 방을 찾아왔다. 어느 날은 한밤중에 찾아와, 자기 방으로 와서 잠들기 직전까지 책을 읽어 달라 부탁하기도 했다. “혼자 자기 무서워요.” 나는 아나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내 여동생도 아나보다 더 나이 먹어서까지 혼자 자는 것을 어려워했었다. 아나가 읽어 달라고 하는 책은 구전되는 여러 이야기를 모아 놓은 설화집이었는데, 어차피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읽다 보면 또 재미있었다. 아나의 방에서 아나가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어 주던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엄마랑 아빠가 보고 싶지 않으세요?” 책을 읽어 주던 나는 내 겨드랑이와 팔 사이에 파고든 아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처럼 어른이 되면 더 이상 엄마, 아빠는 안 보고 싶어지는 건가요?” 마침 내가 읽던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여자아이의 이야기였다. 아나가 아름다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보고 싶지. 정말 보고 싶지.” 나는 사실대로 대답해 주었다. “저도요. 가끔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나요. 그런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 “공작님께선 우리 엄마, 아빠가 죽었다고 하는데 나는 믿을 수가 없어요. 엄마랑 아빠가 나만 두고 가 버릴 리가 없는데, 꿈을 꾸는 거 같아요. 모두 다요.” 나는 아나의 부모님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아나의 말을 그저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선생님, 여긴 너무 좋지만⋯⋯ 좋은 침대에서 잘 수도 있고, 예쁜 드레스도 입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지만⋯⋯. 그리고 선생님이랑도 놀 수 있지만⋯⋯.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어요.” “⋯⋯.” “집에 가고 싶어요, 선생님. 꿈이라면 깨고 싶어요.” 그 말에 도대체 무슨 위로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아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엄마, 아빠를 잃고 여기 오게 된 걸까?' 나는 변변치 않은 말주변으로 위로하는 대신 아나를 꼭 안아 주었다.

고객센터 Sup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