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단편야설

한 편 완결 소설

성인소설 목록

최신 단편

야설 읽기
밍키넷 소설
토스트 메세지 나오는곳
텔레그램 공식채널

밍키넷 공식보증업체

14화 14화


14화 이상해지는 상황에 나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만⋯⋯ 설령 말 타는 법을 배운다 한들 어디에 쓸 수 있겠습니까. 유배자인 제가 말을 탈 수 있다 한들 갈 수 있는 곳도 없고, 무엇보다도 설령 갈 곳이 있다 하더라도⋯⋯ 저는 말을 관리할 돈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승마가 귀족들의 기본 소양인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공작은 내 말에 의아해했다. “말이야 마구간지기가 관리하는 것이고, 필요한 뒤에 재주를 배우면 늦은 법이니 말타는 일의 쓸모는 말을 몰아 보며 차차 찾아보시오. 아무튼, 겨울이 오고 있소. 그대는 타지 사람이라 아직 이곳의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 알지 못하지.” 그 말 그대로였다. 처음엔 긴장했으나 이곳의 기후는 자주 부슬비가 내리고 안개에 휩싸이긴 했어도 생각한 것만큼 춥지는 않았다. 얼어붙은 땅, 혹한의 대지라는 악명에 맞지 않게 이곳의 가을은 따스하고 아름다웠다. “그때도 뜀걸음을 하고 있으면 그대의 폐가 얼어붙을 것이오. 승마복이 마련되는 대로 수업에 참여하시오.” “저는! 저는 달리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공작 각하께서만 허락하신다면 계속 뛰고 싶습니다.” “말타기도 곧 그렇게 될 것이오.” 그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뜀걸음이야, 원한다면 연병장이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고. 승마는 그보다 재미있는 운동이오. 말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감정과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영리한 동물이라 교감하는 재미가 있지.” “⋯⋯.” “말은 쥐나 새 따위에도 깜짝 놀라는 동물이지만, 교감이 깊어지면 주인을 위해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드오. 나는 말이 개보다 더 충직하다 믿소. 그대도 금방 말에 정을 들일 것이오.” '⋯⋯내가 왜 말에 정을 들여야 하지?'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다. '일개 가정 교사인 내가, 그것도 유배자이자 이방인인 내가 말과 정을 들여서 이 남자가 얻는 이득이 무엇이란 말인가?' 말은 무척 값비싼 동물이었다. 그것이 수레를 끄는 짐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내게주고 말타기 연습을 시키려는 남자가 나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왜?' 눈앞의 남자는 내게 불가해한 존재였다, 정말로. 그를 이해할 날은 영원히 오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막 뜀걸음에 정을 붙였더니 말타기를 하라니. '양 허벅지가 쓸려 피범벅이 되었었지. 속치마가 피로 흠뻑 젖고 골반이 부서지는 충격에도 달리고 또 달려야 했고⋯⋯.' 유배 길에 된통 당한 뒤로 나는 말타기에 진저리가 난 상태였다. 그때의 고통을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이었고 죄수가 제 운명을 손에 쥔 간수에게 반항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결국 정찬 다음 날, 나는 상인에게 승마복과 승마용 부츠를 주문했다. 보름 뒤 적지 않은 돈이 진한 자줏빛 승마복과 무릎까지 오는 승마용 부츠로 바뀌었다. 맞춤 승마복은 뜀걸음을 할 때 입었던 하녀복보다 훨씬 움직이기 편했지만, 나는 그저 귀찮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이걸 대체 왜 해야 하지?' 때때로 숨 쉬는 것조차 노역처럼 느껴지고, 그냥 이대로 잠겨 죽으라고 충동질하는 우울 쪽이 오히려 친숙했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실내 연습장으로 향했을 땐 얼른 이 일을 해치우자는 마음뿐이었다. 내게 승마를 가르쳐 줄 선생은 초로의 남자였다. 마구간지기가 마사에서 내 말을 끌고 왔고, 나는 공작 각하가 내게 하사한 말과 마주했다. 나는 놀랐다. 마구간지기가 끌고 온 말이 생각보다 작아서였다. 내가 보아 온 대부분의 말은 목을 한껏 치켜들면 성인 남성의 키를 넘고, 지방 한 점 없어 보이는 근육질의 몸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말이 좀 무서웠다. 그러나 눈앞의 말은 내 키보다 살짝 작을 정도로 땅딸막하고 무엇보다 온몸이 복슬복슬한 털로 덮여 있었다. 캐러멜색 털에 가려진 눈은 마찬가지로 캐러멜색이었다. “망아지 아닌가요? 이렇게 작은 말을 제가 타도 될까요?” “허허, 아닙니다. 종 자체가 작은 것이지 다 큰 놈입니다.” 마구간지기가 안장을 얹지 않은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순하고 사람 태우는 것을 좋아하는 암말이지요. 이래 봬도 사람 두 명이 탄 마차는 너끈히 몰 정도로 힘도 세고, 잔병치레 한 번 안 한 튼튼한 놈입니다. 원래 이 성에 있는 사과 과수원에서 수레를 끌던 일을 했지요. 다리가 짧아서 장애물을 넘는 건 못 하겠지만 사람이 탈 말에게 왜 그런 묘기가 필요하겠습니까? 공작님께서 아가씨께 좋은 놈을 골라 주셨습니다.” 크기가 작아서 그런지 큰 개나 고양이 같았다. 머뭇거리며 말을 바라보는데 승마 선생이 다가와 말했다. “쓰다듬어 보시겠습니까?” 선생의 권유에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낯선 사람의 손이 닿는데도 말은 기분 좋은지 두 눈을 감았다. 나는 단번에 이 말이 좋아졌다. “이 말의 이름은 뭔가요?” “이놈은⋯⋯.” “아가씨 말이니 아가씨가 지어 주셔야지요. 아가씨가 가장 많이 불러 줄 이름이니까요.” 승마 선생이 가로막듯 말했다. “이름을 지어 주시면 정도 훨씬 빨리 붙을 겁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쓰다듬으며 자세히 보니 말의 귀 안쪽은 하얗고 가장자리엔 검은 테두리가 있었다. 주둥이 쪽으로 가면 털은 옅은 흰색이 되어, 마치 밀가루에 코를 묻었다 꺼낸 듯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찌나 쉽게 바뀌는지. 눈앞의 말을 만나기 직전, 나는 말을 타는 것이 싫었다. 귀찮고 끔찍하고 말과의 교감이라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말을 만나기 전에 내게 말은 탈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이 말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는 말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네 이름을 브륄이라고 하자.” 승마는 뜀걸음보다 훨씬 어려운 운동이었다. 달린 건 브륄인데 고작 차 한 잔 마실시간 올라타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덜덜 떨리고 땀이 흠뻑 났다. 뜀걸음을 해 어느 정도 체력이 붙었다고 판단한 건 큰 착각이었다. “승마는 기술이 3, 말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7입니다. 혼자 움직이려 하지 마시고, 힘을 빼고 브륄의 움직임에 맞춰 주셔야 합니다.” 그게 말처럼 잘될 리가 없었다. 두 다리만 움직이면 어떻게든 되는 뜀걸음과 달리 승마는 전신에 걸쳐 신경 써야 할 동작이 너무 많았다. 등자에 끼운 발끝은 안쪽으로 모으고 발뒤꿈치는 지면 방향으로 눌러 하체를 밀착시키는 동시에, 허벅지와 허리에 힘을 넣어 꼿꼿한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체에 힘을 줘 뻣뻣하게 굳어 있으면 말의 움직임에 부딪쳐 서로에게 충격을 줄 수 있었다. 허벅지와 허리에 힘을 주되 상체는 부드럽게 말의 움직임에 맞추어 리듬을 타야 했다. 시선은 진행 방향을 향해 곧게, 양손에 쥔 고삐는 배꼽 언저리에 두는 데, 그렇다고 가만있으면 안 되고 부드럽게 밀고 당겨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을 머릿속에서 계속 되새기느라 다른 잡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었다. 말에서 내려왔을 땐 내 온몸이 후들후들했다. “승마가 끝나면 손바닥으로 말의 목덜미를 토닥이며 칭찬해 주는 걸 잊지 마십시오.” 나는 브륄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잘했어.” 하고 칭찬해 주었다. “내일 또 보자.” 그렇게 브륄은 내 말이 되었다. '나는 말이 개보다 더 충직하다 믿소. 그대도 금방 말에 정을 들일 것이오.' 공작의 말은 분하지만 사실이었다. 브륄에게 정을 들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말타기가 싫기만 했던 과거와 달리 나는 금방 브륄을 타는 일이 즐거워졌다. 브륄 또한 나를 태우고 달리는 일을 즐거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승마 시간 외에도 나는 시간이 나면 자주 마구간에 찾아가 브륄을 만났다. 브륄도 나를 좋아해서 내가 나타나면 두 귀를 쫑긋쫑긋 세웠다. 나는 마구간지기에게 여물 써는 법도 배우고, 브륄을 씻기고 마구를 채우는 법도 배웠으며, 긴 털을 브러싱해 주기도 했다. 귀족가의 일원이 할 만한 일이 아니라 손가락질할 만한 일이었으나 뭐 어떤가? 나는 유배 왔고 여기선 내가 귀족답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나를 흉볼 사람도 없는 것을. 브륄과 나의 호흡이 맞춰져 감에 따라, 나는 승마에 지극한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처음엔 평보도 힘들어하던 나는 이제 브륄을 타고 달렸다. 브륄을 타고 달릴 때면 이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는 듯이 느껴졌다. “이제 충분히 외승을 하셔도 되겠습니다.” 가을의 끝자락, 승마 선생님의 허락을 받은 나는 브륄을 타고 이곳저곳을 누볐다. 브륄을 탈 수 있게 되자 활동 범위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넓어졌다.

고객센터 Sup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