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17화. 표적
“…아니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는데, 목소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한 박자 늦었다.
칸쥬는 그 대답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씩 웃었다.
“그래요?”
그는 시선을 모니터로 돌렸다.
채팅은 여전히 끓고 있었고, 방금 전 벌칙의 여운이 아직 화면 위에 남아 있었다.
— 대기실1열: 계 속 해
— 관찰자A: 대은하 확대점
— 오늘도관전: 폭유핑두년
— 화면고정: 은하 멘탈 잡아라
“자. 다음~”
칸쥬가 손뼉을 가볍게 치며 흐름을 끊었다.
그 말에 소파 위의 긴장이 한 박자 느슨해졌다.
“은하 님 벌칙 끝. 게임은 계속.”
그는 젠가를 다시 중앙으로 밀어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는… 누구~?”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어?”
미온이 눈을 한 번 크게 깜빡였다가, 곧 웃었다.
“나야?”
쵸비가 턱으로 젠가를 가리켰다.
“손 떨리면 지는 거.”
“아, 부담 주지 마.”
옆에서 하루비가 방해하려 달라붙어도 평온한 미온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소매를 살짝 걷고 있었다.
블록을 집는 손끝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툭.
문제없이 빠져나왔다.
“어? 성공?”
“아쉽네.”
하루비가 괜히 투덜거렸다.
칸쥬도 웃으며 고개를 젓자 미온은 블록을 위에 올려두고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음, 그럼 그냥 이번엔 제가 자진해서 하나 할게요.”
“엥?”
“뭐야, 왜?”
미온은 대답 대신 웃으며 상체를 살짝 흔들었다.
“덥지 않아요? 니트.”
그 말에 채팅이 바로 반응했다.
— 니트집착: 어?
— 관전중독: 자발적 암캐ㄷㄷㄷ
— 화면고정: 미온 판단력 무엇
미온은 카메라를 의식하듯 천천히 니트를 벗어 소파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과한 동작은 없었지만, 속옷만 남아도 예쁜 몸매에 그 여유가 오히려 눈에 띄었다.
“이 정도면 분위기 환기죠?”
“와, 미온 여유 보소.”
칸쥬의 말에 하루비가 손뼉을 쳤다.
“언니 이런 거 은근히 잘해.”
쵸비는 짧게 말했다.
“프로네.”
칸쥬가 그 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야, 그럼 나도 뭐 하나 해야 되나?”
그는 일부러 장난스럽게 허리를 들썩였다.
“바지는 입고… 음, 팬티만 벗을까?”
“미쳤어?”
“꺼져.”
“선 넘지 마라~”
여자 셋이 동시에 태클을 걸자 칸쥬는 손을 번쩍 들며 웃었다.
“농담, 농담.”
그러곤 고개를 숙여 발끝을 보더니,
“그럼 이 정도.”
양말 한 짝을 벗어 흔들었다.
“아잉. 탈의 완료.”
— 칸쥬로비: ㅋㅋㅋㅋㅋㅋㅋㅋ휴
— 열어분이게실환가요: 이게 뭐냐
순간 분위기가 한 번 더 풀어졌다.
웃음이 돌고, 긴장이 풀리고 방송은 다시 게임의 얼굴을 되찾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아까보다 조금 덜 굳은 손으로 무릎 위를 정리했다.
아직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이제는 끌려가는 느낌은 아니었다.
칸쥬가 다시 젠가를 두드렸다.
“자, 그럼 진짜로 계속 갑니다.”
“다음은…”
그의 시선이 천천히 돌아왔다.
“쵸비부터?”
젠가는 다시 쌓였다.
“자— 계속 갑니다.”
칸쥬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이번엔 빠르게 갈게요. 흐름 끊기면 재미 없거든.”
첫 블록은 쵸비.
툭.
아슬아슬했지만 넘어가진 않았다.
미온은 조심스럽게, 그러나 정확하게 성공.
하루비는 일부러 흔들며 빼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게 더 쫄리지 않나?”
끼익—
그녀다운 장난기에 연이어 빠진 잠깐 탑이 흔들렸지만 이상한 균형을 맞추며 멈췄다.
그리고 돌아온 내 차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블록을 바라봤다.
아까보다 손끝이 더 뜨거웠다.
아까의 벌칙, 아까의 시선, 아까의 말들.
젖통을 내보이는 그게 전부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괜찮아. 이번엔 천천히.’
손을 뻗었다.
툭.
처음엔 잘 움직였다.
조금 더, 끼—
탑이 흔들렸다.
“어.”
누군가 숨을 들이마셨다.
“왁—”
그리고 결정타로 곧 옆에서 칸쥬의 목소리가 낮게 들어왔다.
나는 손을 멈추려 했지만—
타닥.
이미 늦었다.
한 블록이 빠지며 중심이 무너졌고 그 다음은 연쇄였다.
나무가 탁자 위로 와르르 흩어졌다.
“아하하하~!!”
“은하 님 방해공작 제대로 당했네!”
“어차피 슬슬 무너질 때였잖아.”
— 터졌다진짜: 아…
— 관찰자A: 져버렸네
— 대기실1열: 와 이걸 여기서
— 화면고정: 칸쥬 원픽인듯ㅋㅋㅋ 뭐벗으려나
나는 굳은 채로 손을 거둬들였다.
“으으...!”
동경에 가까웠던 그에게 생기는 괘씸함에 돌아보자 칸쥬가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자.”
그는 오히려 탑을 한 번 보고, 나를 봤다.
“이번 판 패자는~ 은하 님!”
쏟아지는 채팅에 승부 조작이라 한들 도망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앞에서 미온은 분위기를 올린다며 자발적으로 벗기까지 했는데.
“벌칙.”
칸쥬는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
“아까랑 같은 수위로 갈게요!”
하루비가 웃으며 말했다.
“봐봐. 일부러 그런 거지?”
“티났어?”
칸쥬의 대답은 빨랐지만 도움되는 건 없었다.
내 옆에 놓인 하얀 레이스 브라랑 같은 수위라면, 이미 젖어버린 팬티 뿐이었다.
나는 그 말에 반사적으로 무릎을 붙였다.
치마가 있다는 사실이 안도라기보다는 시간을 벌어주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같은 수위면.”
내 입에서 먼저 말이 나왔다.
나도 놀랐다.
도망치지 않고 조건을 이해한 채로 말하고 있다는 게.
칸쥬가 나를 봤다.
방송용이 아닌 조금 더 느린 눈빛.
“걱정 마요.”
그는 일부러 가볍게 덧붙였다.
“치마 아래 있으니까.”
그 말이 더 위험하게 들린 건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하루비가 웃음을 삼켰다.
— 대기실1열: ㅇㄱㅁㅈ
— 관찰자A: 너 이과냐?
— 화면고정: 치마 있으니까 ㄱㅊ
치마 자락이 살짝 당겨지며 안쪽에서 습한 감각이 더 선명해졌다.
‘…보여지는 건데.’
손이 치마 위에서 잠깐 멈췄다.
모니터를 한 번, 카메라를 한 번.
다들 보고 있다.
치마 안으로 손을 넣는 동작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했다.
천이 스치는 소리조차 마이크에 걸리지 않을 만큼.
“어…”
숨을 삼키는 나의 소리가 적나라했다.
미온은 모니터를 보며 등을 폈고, 쵸비는 고개를 아주 살짝 기울였다.
카메라는 그대로였다.
움직이지 않았다.
애액묻은 천이 미끄러지며, 붙었다가 풀리는 압력.
이미 남아 있던 열기가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반응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아니.
‘보여주고 싶어.’
칸쥬는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를 힐끗 보며 웃었다.
이슈몰이 각을 인지한 인기스트리머의 촉은 성공한 셈이었다.
검은색 치마와 스타킹 사이로 걸려져 나오는 하얀색 레이스 팬티.
— 후끈후끈왕: 다리 벌리자
— 기억보관함: ㅈㄴㅋㅋㅋㅋㅋ걍 개따먹고싶네
— 오늘도관전: 그래서 저기가 어디라고요?
— 관전중독: 은하련 위아래 맞춰왔네ㅋㅋㅋㅋ
그 안에 묻은 질척한 액은 나만이 아는 비밀이 아니었다.
"으흠."
브래지어 안쪽으로 숨기듯 놓아봤자 여자에 익숙한 남자는 독특한 체향을 맡고 눈썹 한쪽을 들썩였다.
...카메라에도 보였을까?
새빨개진 얼굴이 된 나는 속옷 대신 겉옷만을 걸친 채 소파에 다시 앉았다.
"거짓말쟁이네요, 은하 님."
옆에서 나를 보지도 않고 말하는 칸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치심과 창피함이 성욕으로 찾아오고 있던 탓에 나는 일부러 못들은 척 앞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젠가는 몇 바퀴를 더 돌았다.
소파 위 여자 스트리머들은 이제 각자 속옷 위까지 노출된 상태.
누구 하나 대수롭지 않게 웃고 있지만, 분위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자~ 다시 은하 님 차례네요?"
칸쥬의 말에 채팅창이 다시 요동친다.
— 너만기다림: 이거 못 넘기면 본다
— 대은하라이브: 이제 밑이냐 ㅋㅋ
— 진행잘함: 고의네 고의
내 손끝이 탑 위 블록으로 향하다 갈 곳 없는 젠가를 둘렀다.
조금만 밀어도 중심이 무너질 만큼 불안한 구조.
알면서도 손은 블록을 건드리고 있었다.
‘…걸려도 되는 거야?’
‘…아니면, 그래야 더 올라갈 수 있는 건가?’
탁.
— 레전드전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핑두2차대전: 미친 이건 못 참지
— 음란테크: 벗어라 벗어라
— 여긴천국: 내 기도가 닿았다
칸쥬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아— 걸리셨네요, 은하 님.”
그의 시선은 어디까지나 진행자답게 가볍고 능청스러웠다.
“자, 벌칙은요…”
칸쥬가 채팅창을 스윽 훑더니 장난스레 덧붙인다.
“흠… 아, 이런. 이건 조금, 방송 불가수위, 삐—”
— 다들알잖아: 대충 다 벗으란 얘기 ㅋㅋ
— 폭주기관차: 생젖or보지ㅎㅇㅇ
— 공손한변태: 미온 언니도 속옷까지 했는뎅~
칸쥬가 일부러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대신… 이건 어때요?”
뒤에서 누군가 작은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스태프였다.
칸쥬가 받은 건 블랙 케이스.
카메라 방향을 향해 기울여 툭, 보여준 그 안에는 바니걸 의상이 있었다.
깊게 파인 가슴, 뒷면이 텅 빈 T라인, 그리고 오버니삭스.
“어때요, 님들. 대꼴 인정?”
— ㅋㅋㅋㅋㅋㅋㅋㅋ: 방송 접어도 됨
— 대은하원픽: 씁 갈아입는거라도 보여줘ㅠㅠ
— 판단완료: 현기증나요 얼은요
모니터 오른쪽 상단, 숫자가 다시 튀었다.
...시청자 수는 벌써 1,500명을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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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갱신]
— 이벤트 트리거: 대체 벌칙 제안
— 선택지:
① 방송 중단
② 벌칙 수락 (의상 전환)
— 현재 선택 확률 분석:
② 92.4%
— 시청자 기대치: 극대화 상태
— 개체 반응: 거부 없음 / 수용 준비 완료
※ 다음 행동은 ‘퍼포먼스’로 기록됩니다.
※ 철회 시, 현재 상승 수치는 유지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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