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109화 폭발하라
“주군! 얼굴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무실에 들어서자, 보고할 것들을 들고 있던 노틀이 화들짝 놀랐다.
“아~. 신경 쓰지 마시오.”
손을 휘저으며 의자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아! 왕후 마마, 바이올렛 비께서는 기운이 넘치시는군요.”
노틀의 인사에 이브리에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노틀.”
“좋은 아침. 총리.”
‘그래. 너희만 좋으면 됐다.’
“보고는 들었습니다. 불순자가 잡혔다고요?”
노틀의 말에 내가 한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불순? 그래 불순이지 불순이야.”
그 녀석 때문에 어젯밤에 이브리에와 바이올렛에게 쥐어 짜인 생각만 하면.
“어떻게 처분할까요?”
노틀이 로즈의 처분을 묻자, 이브리에가 답했다.
“그 건은 제가 처리합니다.”
이브리에의 처음 보는 굳은 표정에 노틀이 흠칫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툴리 족장 아니 이제 기술부 장관이지! 그는 어디 있습니까?”
“일찍 출근했다가 드워프 공방 구역으로 갔습니다.”
“흠. 같이 가려 했더니. 그럼 난 그곳으로 가봐야겠군.”
그 뒤로 간략한 보고를 받고 드워프 공방 구역으로 향했다.
드워프 구역에서는 특별히 조심했다.
그들은 과도하게 날 두려워했기 때문인데 그들의 역사를 듣고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암살자처럼 사람들을 피해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 펑!
“꺄아악!”
“으허억!”
꽤 큰 폭발 소리와 남, 여들의 비명이 들렸다.
소리가 난 쪽으로 뛰어가자 두 명의 여자 드워프와 세 명의 남자 드워프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뛰어 들어가자, 폭발 소리에 놀랐던 드워프들이 더 놀라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미. 미미미 천한 종이 주군을 뵈뵈뵈뵈습니다.”
다섯의 드워프들이 잔뜩 굳어 손발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자주 만나는 드워프들이야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일반 드워프들은 아직 날 두려워한다.
심약한 드워프들은 선체로 기절하거나 오줌을 지리는 경우도 있어 될 수 있으면 이들 앞에 나타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칼리움 베르다나스, 도대체 드워프들에게 어떻게 했길래 이러냐.’
그런 그들이 안쓰러워 속으로 그들을 그렇게 만든 녀석을 욕해 주었다.
“방금 폭발 소리는 뭐지?”
“히익. 예에. 그….”
유난히 볼과 코끝이 붉은 젊은 드워프가 말하려고 하자 옆에 있던 다른 여자 드워프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괜찮으니까 말해봐.”
“그게…. 그러니까.”
왠지 그들이 망설이는 것 같아서 살짝 드래곤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섯 드워프들이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희 친구 녀석 중에 장난이 심한 녀석이 있는데 그 녀석이 저희를 놀려 준다고 장난을 친 거라.”
“폭발을 일으켜 장난을 쳤다고?”
“그게 워낙 엉뚱한 데다 일하는 걸 싫어해서.”
“으음. 그 녀석 이름이 뭐지?”
“에… 에디손입니다. 마라카스 대장간의 아들이죠.”
“에디손이라.... 좋아!”
아직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드워프들을 놔두고 드워프 공방 쪽으로 몸을 날렸다.
‘에디손…. 뭔가 느낌이 온다.’
마라카스 대장간은 툴리 대장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툴리 대장간이 무기를 주로 만든다면 마라카스 대장간은 생활용품을 주로 만드는 대장간이었다.
‘부디, 에디손이라는 이름다운 녀석이었으면 좋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대장간에 가까이 갔을 때였다.
- 땡그랑.
“아…. 아버지. 그거 맞으면 저 죽어요. 죽는다고요.”
“그래 이놈아 차라리 죽어라. 죽어.”
“아버지. 으아…. 으아아아.”
그때 대장간 문이 벌컥 열리면서 드워프 중에서도 유난히 키가 작고 날씬한 젊은 드워프 하나가 뛰어나오다가 나를 보고는 내 뒤로 숨었다.
“나 좀 도와줘요. 아버지가 날 죽이려고 해.”
그는 내가 누구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내 뒤로 숨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이런 썩을 놈이 그냥 뒈져라~!!”
그때 쫓아 나오던 중년의 드워프가 손에 들고 있던 주철 주전자를 내가 있는 쪽으로 냅다 던졌다.
그러고 나서 그의 눈이 점점 커지는 게 보였다.
- 턱.
내가 날아오는 주전자를 한 손으로 받아 내자 드워프 마라카스가 입을 떡 벌리고 어버버거리며 몸이 굳어 있었다.
내 뒤에 숨어 있던 녀석은 갑자기 자기 아버지가 움직이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리고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는 이상한지 나를 올려 보았다.
날아온 주전자를 잡아 살펴보던 나는 내 뒤에 숨었던 작은 덩치의 드워프와 눈이 마주쳤다.
“그대가 에디손인가?”
내 물음에 그는 대답은 하지 않고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렇소만. 뉘신 데 초면에 반말이요?”
“나? 음. 팬…. 아니 칸이라고 하네만.”
“칸? 음. 칸이라는 이름을 가지면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해도 되는 거요?”
에디손의 표정과 당당함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드워프들을 만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모든 드워프들은 나를 본능적으로 무서워했다.
칼리움의 이름 베르다나스를 물려받은 순간부터 그들은 나를 드래곤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넌 내가 무섭지 않냐?”
내 물음에 에디손이 나를 다시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귀신도 아니고 괴물도 아닌데 무서워할 이유가 뭐요?”
그때 거의 혼이 빠져나간 마라카스가 덜덜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와서는 자기 아들의 목덜미를 잡아 냅다 땅바닥에 내다 꽂으며 무릎을 꿇었다.
“위…. 위대하신 자여. 부디 자비를 모자라긴 하지만 제 아들놈의 잘못을 용서하시옵소서. 부디 아들 녀석은 살려 주시고 저…. 저를.”
마라카스가 위대한 자라고 부르자 에디손이 자기 아버지가 누르는 손을 뿌리치고 고개를 들었다.
드워프들이 위대한 자라고 부르는 존재는 단 하나.
그들을 지배하는 드래곤 뿐이었다.
“뭐야? 꼬리라도 없는데? 비늘도 없…. 커억.”
순간 마라카스가 에디손의 목젖을 손날로 쳐서 그의 말을 끊고는 말했다.
“위대하신 자여. 제 아들은 백치입니다. 부디 용서를.”
“됐으니까 일어나.”
더 놔두었다가는 뭔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력한 힘에 의해 몸이 일어서지자, 그의 눈은 더 커지고 손의 떨림은 더 강해졌다.
‘젠장. 드워프들은 다 겁쟁이들인가?’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아니라는 건 잘 안다.
호전적이고 용맹한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단 하나, 자신들을 지배하는 드래곤 뿐이다.
“네가 에디손이라고 했나?”
“그런데요.”
하지만 에디손만큼은 전혀 주눅 들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까. 다른 드워프들을 놀라게 해 준 거 그게 뭐지?”
“아~! 그거 마정석가루죠.”
“마정석 가루? 그걸로 어떻게 놀라게 했지?”
“이…. 이 녀석이 또 이상한 걸 만들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구나. 당장 무릎 꿇고 잘못을 빌거라.”
마라카스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내가 자기 아들의 장난을 추궁하려는 줄 알고 당황해서 다그쳤다.
“마라카스, 뭐라 하려는 게 아니니 그만하시오.”
내 말에 에디손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한번 보여드릴까요?”
지금까지 자기 아버지에게 혼나며 시무룩해하던 표정이 어느새 밝아지고 눈빛도 초롱초롱해졌다.
“한번 보자.”
에디손은 신이 나서 어딘가로 뛰어가더니 뭔가를 잔뜩 들고 왔다.
그걸 본 마라카스가 ‘끙’하는 못마땅한 소리를 내었다.
“마정석 가루가 충격에 불이 붙거나 폭발하는 걸 아시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렇게…. 나무판자 한쪽에 쇠판을 달고 다른 판에는 못을 박고 두 개를 이렇게, 이렇게 묶은 다음에.”
내가 눈을 빛내며 머리를 끄덕이고 녀석의 말을 듣자, 신이 나서 설명하며 계속 만들었다.
“이렇게 두 나무판 한쪽을 이런 줄로 꼭 묶은 다음에 앞쪽을 벌려 충분히 버틸만한 작은 나무를 넣고 여기에 줄을 묶은 다음.”
녀석이 신이 나서 자신이 만든 걸 바닥에 놓고 돌로 고정했다.
그리고 쇠판을 단 작은 나무판자 위에 마정석 가루를 뿌린 다음에 뒤쪽으로 물러났다.
“멀리서 이렇게 당기면 줄을 묶은 나무가 부러지거나 빠지면서~~!!”
- 파앙.
많은 양의 마정석 가루가 아닌지라 폭발력은 크지 않았지만 분명히 폭발했다.
벌어진 나무판 두 개를 지탱하던 작은 나무가 빠지면서 쇠판과 못이 충격을 일으켜 마정석 가루를 폭발시킨 것이다.
“하…. 하하하하. 아하하하하.”
내가 갑자기 웃자, 마라카스와 에디손이 깜짝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훌륭하다. 훌륭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 그거야말로 뇌관(雷管)이지. 너 이 녀석 천재구나. 천재야!”
“뇌관, 뇌관, 멋진 이름인데요?”
에디손이 뇌관이라는 말을 몇 번 되뇌더니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이봐. 에디손. 너 나의 동료가 되거라.”
“예?”
“나하고 멋진 거 한번 만들어보자.”
에디손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알겠다며 자기 옷 몇 가지만 가지고 그날부로, 왕궁으로 따라 들어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에디손은 워낙 괴팍하고 장난치는 걸 좋아해서 드워프 종족들의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드워프면서 대장간 일을 싫어하고 이상한 기계나 만들던 사고뭉치 였다.
그런 녀석이 하루아침에 왕궁으로 불려 가니 사람들 수근거렸다.
마라카스가 자기 아들을 감당하지 못해 드래곤의 제물로 바쳤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원시적인 세열 수류탄을 시범 보이는 날이 다가왔다.
“주군. 이게 뭡니까?”
내가 건네주는 황토 수류탄을 받아 드는 에디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거? 멋진 거지. 너도 좋아할 거야.”
아무리 장난기 많고 엉뚱한 에디손이라도 이런 건 본 적 없을 것이다.
왕궁 뒤편 시범장에 도착하자 내가 지시한 대로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과 수많은 부처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훈련장 한가운데는 내가 미리 타이슨에게 지시한 대로 허수아비에 가죽 갑옷, 뼈 갑옷, 강철 갑옷을 입혀 모아 두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넣어 나무에 잔뜩 매달아 놓았다.
“국왕 전하 십니다.”
훈련장 안으로 들어가자, 근위대원 중 한 명이 소리쳤고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들어가며 손을 까딱거려 자리에 앉으라는 신호를 하고는 그들 앞에 섰다.
“다들 바쁘니 쓸데없는 말은 건너뛰고, 내가 그대들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이것 때문이요.”
손을 뻗자 에디손이 흙덩이 하나를 공손히 두 손으로 건네주었다.
흙덩이를 손으로 툭툭 던졌다 받기를 반복하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그걸 따라 움직였다.
“이게 뭔지 아는 분 있소?”
“황토 흙덩이 아닙니까?”
찰스 행정부 장관이 조심히 답해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흙덩이지. 하지만 그냥 흙덩이가 아니고 이거 하나로 보병과 기병이 모여있는 곳을 초토화 시킬 수 있는 무기요.”
내 말에 대신들과 군 지휘관들이 웅성거렸다.
“난 이걸, 수류탄이라 이름 지었소.”
그렇게 말하고 난 경고도 없이 훈련장 중앙에 있는 허수아비와 돼지 오줌보가 있는 곳을 향해 흙덩이를 높이 던졌다.
지난번 보다 마정석량도 많고 쇳조각들이 들어있어 더 잘 폭발할 테지만 혹시나 해서 충분히 높이 던진 것이다.
부드럽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흙덩이를 모두가 넋 놓고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엎드려~!!”
내가 소리치며 바닥에 엎드리자 다른 사람들도 얼떨결에 모두 땅에 엎드렸다.
그 순간.
- 콰과광
엄청난 소리가 들리고 이미 엎드린 사람들도 깜짝 놀라고 아직 엎드리지 못하고 엉거주춤하던 사람들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내가 허리를 펴며 말했다.
“하하하. 이 정도 거리에서는 엎드릴 필요 없지만 이걸 던지고 나면 왠지 엎드리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빙그레 웃으며 말했지만, 모든 사람의 시선은 내가 아닌 훈련장 가운데를 향해 있었고 마치 턱이라도 빠진 사람처럼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짜…. 짱이다.”
그리고 내 옆에서 눈을 깜빡이던 에디손이 황홀하다는 듯이 말했다.
뒤를 돌아 훈련장 가운데를 보니 그 많던 돼지 오줌보는 두 개를 남기고 다 터졌고 허수아비들은 모두 넘어져 있었다.
**칼리움의 왕후 이브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