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17화 진짜는 슬픈거야
성녀는 내가 아직 옮겨 다닐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오늘은 여기 들어가 있어. 안에서 푹 쉬어.”
그래 내가 옮겨 다닐 수 있다는 걸 알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물론 언젠가는 알려야겠지만.
난 성녀가 새로 입은 팬티로 옮겨가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출발합니다.”
용사 아슬란 표트르의 우렁찬 마력이 담긴 외침에 대열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네.’
토벌대 주요 전력 22명과 일반 병사 200명이라고 할 때 많다고 생각했지만, 이런저런 지원 인원이나 짐꾼, 시종이나 하인들이 따라붙자 400명에 육박하는 대 무리였다.
성녀를 제외한 인원들은 말을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성녀는 지붕은 있지만 벽은 없는 다소 작은 마차에 에듀와 둘이 탔고 말은 에듀가 직접 몰았다.
병사들은 걷거나 공간이 조금 있는 짐마차에 걸터앉았다.
3일 전의 출정식이 축제였다면 실제 출발하는 오늘은 눈물과 아쉬움, 걱정과 격려가 뒤섞인 숭고한 분위기였다.
병사들의 가족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손을 흔들었고 병사들은 애써 늠름한 모습으로 화답했다.
“성녀님, 부디 우리 아들을 지켜 주세요.”
“성녀님 제 동생에게 축복을.”
“이 노파의 하나뿐인 손자입니다. 부디 마리 신의 축복을.”
사람들은 이제 기댈 곳이 신앙뿐인지 성녀의 마차 옆에 엎드리며 간절히 축복을 빌었다.
“마리 신께서 그대들과 함께 하시기를.”
그렇게 대답한 성녀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 토벌대에 어린 자녀가 있거나 부양자가 없는 가족이 있는 경우 지원받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만 해도 성인이 2년을 벌어야 하는 돈이 일시에 지급되고 토벌이 끝나면 그에 맞는 엄청난 혜택이 있기에 가난한 자들의 지원이 많았다.
그러나 저번 베른 토벌에서 살아 돌아온 일반 병사는 200명 중 단 45명뿐이었다.
그것도 몸 성하게 돌아온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토벌대가 멀어지자, 신성교국 주민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살아 만나자, 형제여’라는 행진곡이었다.
교국의 성을 벗어나 토벌대는 드넓은 목초지에 들어섰다.
“서두릅시다. 어두워지기 전에 황금의 강에 도착해야 합니다.”
선두에 선 길잡이 기사가 소리쳤다.
그의 소리에 덜컥거리는 갑옷 소리와 무기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커졌다.
아침에 출발하고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떠 있을 때 토벌대는 어느 작은 개울이 흐르는 언덕에 도착했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합니다.”
길잡이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에서 ‘에구에구'하는 신음과 함께 털썩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서도 훈련된 병사답게 바로 식사 준비를 했다.
각자 가져온 빵과 육포 그리고 물통을 꺼내 허기를 채웠다.
‘성녀 얘는 또 왜 이래?’
아까부터 성녀의 시선이 용사와 루비나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 팬티로 옮겨온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아무 움직임 없이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자꾸 요 이틀간의 굉장했던 성녀의 모습이 떠올라 다시 아랫도리가 묵직해졌다.
‘아이고 성녀야. 재들은 안된다니까. 너도 만만치는 않지만, 재들은 진짜야.’
결코 넘봐서는 안 되는 금단의 구역을 넘보는 것 같은 이 음란 성녀가 안쓰러워졌다.
[부러운 년.]
성녀의 머릿속에서 질투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분명 루비나 공주에게 향한 속마음일 것이다.
‘아이고 성녀야. 이럴 때라도 좀 가만히 있자. 넌 어떻게 하루 종일 그 생각뿐이냐.’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녀가 일어나 천천히 용사와 루비나에게 걸어갔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둘이서 꽁냥 거리며 이야기하다 그림자가 드리우자, 용사와 루비나가 동시에 위를 올려 보았다.
“성녀님?”
반응한 것은 루비나였다.
“무슨 볼일이라도?”
그녀의 시선에는 경계의 빛이 감돌고 있었다.
‘설마 지금도 용사의 정액이 묻은 팬티를 입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과 함께 나는 외쳤다.
‘바꿔.’
- 번쩍
빛이 점멸하고 성녀의 체취가 아닌 다른 체취가 느껴졌다.
나는 루비나 공주의 생각을 읽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녀의 팬티로 옮겨 온 것이다.
‘다행히 용사 정액은 없는 것 같군.’
정말이지 남자의 그 냄새를 직접 맡기는 끔찍했다.
뭐, 루비나 공주는 무슨 꿀이라도 되는 것처럼 잘만 받아먹긴 했지만.
[뭐야? 성녀? 왜 그런 눈을 뜨고 우리 표트르를 보는 건데? 설마?]
아니나 다를까, 루비나 공주는 극도로 성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성녀야. 포기해라. 이 여자는 용사를 공유할 생각이 전혀 없단다.’
난 용사의 정액이 묻었을 때 그 역시 성녀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하긴 자지 달린 남자치고 성녀 마다할 놈은 남색가뿐일 거다.
‘게다가 용사 이놈도 꽤 난봉꾼이거든.’
“용사 아슬란.”
“예. 성녀님.”
성녀의 목소리가 꽤 진지하고 단호했다.
‘설마 너. 내 보지를 핥아라.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
내 생각과 동시에 루비나의 생각이 밀려들었다.
[감히 겨우 3년 된 성녀가 우리 표트르를 막 불러? 음란 마귀 같은 게?]
‘어우야. 루비나 얘 혹시 사람 속 꿰뚫어 보는 능력 있나?’
성녀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한 것 같아 왠지 소름이 돋았다.
보아하니 에듀도 성녀가 그렇게까지 음란한 생각을 한다는 건 모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용사 아슬란. 다음 마을에서 마차를 구하세요.”
“마차 말씀입니까?”
“네. 튼튼한 짐마차 다섯 대 정도면 될 것 같네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성녀가 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쉬고 있는 병사들을 보면서 말했다.
“저들의 짐과 무기, 갑옷을 실을 겁니다.”
“네?”
용사와 루비나 공주가 동시에 답했다.
“제 마차에도 실을 겁니다. 우린 편히 말에 마차 타고 가면서 저들은 걷는데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적 때문에 갑옷에 무기까지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녀님. 저들은 그렇게 훈련받은 병사들입니다.”
루비나 공주가 반문했다.
“훈련받았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겠죠.”
성녀의 말에 두 사람이 아무 말이 없었다.
[성녀 이년이 미쳤나? 표트르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거야 뭐야? 고작 병사들 때문에…]
나 역시 성녀의 말에 잠시 멍해졌었다.
고아처럼 거지처럼 빌어먹고 살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평민이나 일반 병사를 위해 이런 생각하던 귀족이 있었던가?
단연코 한 사람도 없었다.
더구나 국왕이나 교황과 동급인 성녀다.
갑자기 성녀가 정말 성스럽게 보였다.
루비나 공주의 저 생각을 욕할 마음도 없다.
모든 귀족도 다 저렇게 생각할 테니.
“병사들은 편하면 딴생각합니다.”
루비나 공주의 말에 성녀가 말했다.
“해 보셨나요?”
“그… 그게… 그들은 천성이 그렇게 태어나서….”
‘어이. 공주 그건 너무 멀리 갔잖아.’
[겨우 3년 된 성녀 주제에 왕족인 날 가르치려 들어? 건방지게.]
루비나 공주의 생각에 내몸이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그들도 귀족의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면 귀족이었을 겁니다.”
거기까지 말한 성녀가 루비나를 게슴츠레 뜬 눈으로 보며 말했다.
“왕족으로 태어났다면 왕자나 공주도 될 수 있겠죠.”
“그… 아무리 성녀님이시지만 왕족 모독은 못 참… 꺄아악.”
- 털썩
“루비나?”
“공주님?”
왕족 모독이라고 말하려던 루비나가 갑자기 눈을 뒤집어 까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쓰러졌다.
‘바꿔.’
- 번쩍
다시 성녀의 팬티로 온 나는 거품을 물고 흰자위를 드러내며 쓰러진 루비나 공주와 당황한 용사와 공주의 시녀, 시종들을 보면서 씩 웃었다.
‘평민의 똥침 맛이 어떠냐? 귀한 왕족님아.’
충격이 컸는지 공주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흠… 너무 깊이 들어갔나? 냄새나는 거 아니야? 뭐 용사하고 뒷구멍으로 잘도 하더구먼. 겨우 손가락에 기절하냐?’
쓰러져 치료술사에게 힐을 받는 공주를 보면서 성녀가 중얼거렸다.
“마리 신님인가? 짜증 나서 확 똥침이나 놀까 했더니만.”
‘흐음… 나 어쩌면 성녀하고 천생연분인가 봐.’
*
생각보다 한참 있다가 회복한 루비나 공주 덕에 출발이 늦어졌다.
각자 말을 타던 루비나 공주는 혼자 말을 타기 어려웠는지 용사의 앞에 한 말을 타고 이동했다.
드래곤의 혈통이라는 대륙 최고의 전투마였기에 두 사람을 태운 용사의 말은 전혀 힘든 기색도 없었다.
[루비나 저 암캐 년 대 놓고 용사 자지 만지며 가네.]
실제로는 극심한 똥침의 부작용으로 자신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거지만 어떻게 아픈지 알 리 없는 성녀는 그녀의 손 위치만 보고 오해하고 있었다.
성녀의 말대로 다음 마을에서 짐마차 다섯 대를 구한 토벌대는 병사들에게 무기와 갑옷에 자기 것을 표시하고 마차에 실으라 했다.
하지만 병사들은 기사와 공주, 용사의 눈치를 보느라 망설였다.
그리고 일부 기사 중에 갑자기 적이라도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반대 의견도 쏟아졌다.
“흐음. 벨모르가 오려면 아직 한참이고 적이라고 해봐야 하급 몬스터나 산적일 텐데. 그 정도는 기사 오라버니들이 맨손으로도 막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성녀의 저 다분히 의도가 있는 오라버니라는 말에 반대 의견은 쏙 들어가고 가슴근육만 불끈불끈 움직이는 기사들만 남았다.
그래도 병사들이 망설이자, 혀 없는 이스마엘 추기경이 자기 갑옷과 무기를 벗어 마차에 올려 두었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이 하나둘 눈치를 보면서 갑옷과 무기를 벗었고 금방 모든 인원이 가벼운 옷차림이 되었다.
루비나 공주의 항문 파열 사건(?)과 마차를 구하고 갑옷을 벗어 정리하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몸이 가벼워진 토벌대의 걷는 속도는 빨라져 예정된 시간에 황금의 강 개활지에 도착했다.
막 노을이 지고 있는 강가의 넓은 개활지에 선 성녀의 모습은 숨 막힐 것같이 아름다웠다.
그녀가 오늘 보인 의외의 면들은 그녀가 속으로 음탕하지만 그게 그녀의 본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녀. 꽤 괜찮은 여자잖아.’
나는 그녀의 클리토리스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 움찔
성녀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팬티 오빠?]
- 오른쪽 유두 핥짝. (긍정)
성녀가 작게 몸을 움찔했다.
[어떻게 한 거야?]
성녀의 목소리가 흥분에 차 있었다.